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 책과 사람, 그리고 맑고 서늘한 그 사유의 발자취
김풍기 지음 / 푸르메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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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분재와 책장 위에 앉은 매 한 마리, 그리고 차 한 잔과 책장이 놓여진 책 앞표지는 그야말로 고즈넉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느낌입니다. 흥미진진하고 화려한 읽을 거리가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뭔가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이 책을 대하자마자 알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한 눈에 알아보는 것도 내공이라면 내공일까요? 조선 지식인들의 서가가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이러한 제목과 표지에 둘러쌓인 그 속절이 궁금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을 구입하자마자 열어젖혀 읽지 않고 몇 달 간 묵혀두었습니다. 아직은 내가 이 책을 맞이할 준비가 아니되었던 게지요. 그리하여 나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 책을 만난 것이 이즈음입니다.  

김풍기 교수의 잔잔한 글은 햇살 비치는 창가가 놓여진 도서관에서 가까운 지인에게 옛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을 들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름만으로 들어왔던 <전등신화>와 <기재기이>의 이야기들. 줄거리보다는 그 책들이 전해진 내력과 그 책 속에 담긴 작가들의 이야기가 더욱 와 닿았습니다. 여름만 되면 덮어놓고 오싹한 귀신 이야기를 찾던 나에게 귀신 이야기가 곧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임을 작가는 이리도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p34  

귀신은 현실을 멋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물異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존재다. 이것은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모르는 전혀 다른 세상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귀신을 통해서 인간을 말하려는 것, 죽은 자를 내세워 살아 있는 자를 말하려는 것, 그것이 귀신 이야기의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춘향전>을 바탕으로 해서 새롭게 쓴 한문소설인 <수산 광한루기>에는 '평비'의 매력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한다면 '댓글'로 대체할 만한 이러한 '평비'는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할 듯합니다. 시간이 있다면 이 평비의 묘미를 함뿍 느끼고 싶을 정도니까요.

더불어, <서유기>를 읽으며 인생길에 대한 단상을 적어놓은 부분에서는 무릎을 치기도 했습니다.

   
 

p81 

~불현듯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인생길이 바로 삼장법사가 걸었던 그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힘들고 어렵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요괴들을 만나는가. 

내게 고통을 주는 이들이 내 인생길에서 만나는 요괴들이라면,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요괴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재단하고, 상대방을 요괴로 몰아부치는 세상에서 나 자신을 살풋 돌아보게 만들어주는 구절이더군요. 서유기에서 삼장법사와 손오공이 만나는 수많은 요괴 못지 않은 요괴들이 버글거리는 세상이라며 소리높여 불평하곤 했는데 그 많은 요괴 속에 나 또한 속할 수 도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셈입니다.(뜨끔)

그의 말처럼 인생에도 매뉴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순간순간 예고 없이 닥치는 세파를 헤쳐가는 매뉴얼과 어이없이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 댈 경우에 도움이 되는 매뉴얼이 있다면 모두의 어깨에 지워진 짐이 조금은 가벼워 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가 덧붙인 말처럼 매뉴얼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내공을 쌓아야 하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내공을 쌓게 해 준 셈입니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 거리는 책의 소개로 알게 된 이 책과의 만남은 3월 나의 독서기에서 흐뭇한 일입니다.(왠지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라는 책의 분위기가 살풋 느껴지는 책이랄까? 물론 이 책도 아주 좋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말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매뉴얼은 아니더라도 좋은 책을 접하는 매뉴얼은 만들어 질 수 있지 싶네요. 혹 나의 소개로 인해 이 책이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매뉴얼이 된다면 더없는 영광일 듯합니다. 봄은 왔으나 봄같지 않은 3월에 책을 읽고 느낀 환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해 여기에 한 줄 남겨 보고 떠납니다. 다들 좋은 3월 되시길.... 

 오타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기억이 아니 나고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322쪽 둘째 줄'대감을'은 '대감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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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3-2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
담아갈게요. 화사한 봄날 맞이하시길요.

sokdagi 2010-04-29 16:2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댓글이 넘 늦었네요. 화사한 봄날은 사라지고 스산한 봄날이 여름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님도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