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에서>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서울, 북촌에서 - 골목길에서 만난 삶, 사람
김유경 지음, 하지권 사진 / 민음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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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굽이굽이 들어간 곳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내 또래들에게조차 이렇게 아련한 기억이라면 요즘 세대들에게는 생소하기만 한 기억일 것이다. 굽이굽이 돌아 가던 미로같던 골목길은 숨바꼭질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집집마다 끼니 때가 되면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곳도 골목이었고, 친구 불러 손잡고 학교 가던 곳도 골목이었다. 그런 골목이 언제 이렇게 넓은 도로로 바뀌었는지 모를 일이다.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숨바꼭질하던 아이는 사라지고 이제는 잘 갖추어진 기성품과 같은 알록달록한 놀이터에서 너무나 세련된 놀이기구를 타고 노는 아이들만 보인다. 된장 냄새 풍겨 오던 골목길의 정겨운 풍경 역시 사라지고 없다. 때가 되면 놀이터 앞에 멈춰 서는 자가용만이 바뀐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세상이 순식간에 고요해진 느낌만 무성한 어스름녘이 스산하게 느껴진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어느 사이 생소하다는 느낌도 없이 이런 풍광에 젖어들었던 모양이다. 아니 오히려 쫙쫙 뻗어있는 도로며 넓어진 대로를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이젠 아이들과 손잡고 숨바꼭질을 하기보다는 차를 타고 다니는 일이 더욱 많아져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에 있을 때는 구질구질하다고 여겨졌던 좁디좁은 골목길이 그리워지는 것을 보니 나에게도 세월의 더께가 앉고 있는 모양이라고 나름 생각해 본다.

필자도 이런 마음에서 작업을 시작했던 것일까? ‘서울 북촌에서’란 글을 통해 필자는 서울 골목 구석구석을 훑어내고 있다. 기억 속으로 아스라히 사라져 가던 골목과 기와집, 궁궐터와 역사적인 사건을 장소를 통해 더듬어가는 그의 작업은 참으로 지난해 보인다. ‘5년의 저술, 20년의 취재, 그리고 600년의 이야기’란 책 선전 문구가 딱 알맞다 싶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는 한옥 동네의 정겨움이 어떻게 훼손되고 지켜졌는지, 그곳을 면면히 지켜가고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이제는 마트라는 곳으로 사라져버린 쌀집과 떡집, 목욕탕이 이 책에서는 정다웁게 옛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간혹 차라도 마시러 갈 때 본 삼청동이 마냥 내 눈에는 이국적인 듯하면서도 전통적인 곳으로 느껴져 좋기만 했는데 필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그게 다가 아닌 듯하다. 그 모습은 서둘러 사라진 전통 속에 어설프게 생겨난 신식문물이 혼재되어 있는 불완전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전통에 대한 감식력이 없는 나는 그것을 그냥 훑어본 것에 그쳤던 것이다. 전통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개발만 외치다 시멘트 더미에 묻혀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제야 조금 실감한다. 깨끗함을 가장하여 들어선 큼지막한 건물 뒤로 얼마나 많은 우리 조상들의숨결들이 사장되었던가! 그때 나는 도대체 무엇에 감탄하고 있었던가! 안타까움을 하소연해도 모자랄 판에 겉보기에 번드르르한 그 모습을 좋아했던 철없던 내 모습을 씁쓸하게 돌아본다. 대학 동기들과 적은 값에 술자리를 나누던 피맛골이 현재 저렇게 되어 가고 있었다는 사실도, 숭례문이 불탄지 1년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도 나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하루가 다르게 잊혀지고 있는 것들을 돌아볼 새도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첨단기기 속에서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갈수록 나에겐 여유 시간이 남아야 하건만 어찌 된 것이 갈수록 마음이 바쁘기만 하다. 첨단 장비가 벌어다 준 우리의 시간은 도대체 누가 도둑질해 간 것일까?

버스에서 지나치며 보았던 숭례문을 거쳐 종로에 다다르면 보였던 보신각 종이 좁은 틈새나마 늠름히 서 있는 것이 마냥 좋았었는데 어느 샌가 그곳에 발길이 잘 닿지 않게 되었다. 청계천이 복구되고, 광화문도 새 단장을 했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마음은 이리 휑하기만 한 것일까? 전통을 복원한다는 기치가 거창하면 거창할수록 어찌 본 모습이 사라지고 있는 것처러 느껴지는 것은 왜인지... 멈춘듯이 서울에 자리잡고 있는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운형궁, 자수궁 등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과거의 발자취를 나는 몇 번이나 더듬어 보았는지 모르겠다. 성돌이까지 시작하진 못하겠지만 예전에 돌아보다 관두었던 궁 탐방이나 다시 한 번 시작해 보아야겠다. 수 백 년 전에 우리의 조상이 더듬었던 길을 나 역시 더듬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 모습이 오롯이 남아 있다면야 더욱 좋겠지만 잃어버린 것을 부여잡고 울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다. 이제라도 더 이상 훼손됨이 없도록 두 눈 부릅뜨고 우리의 문화를, 전통을 우리가 지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적어도 시멘트가 덕지덕지 엉겨붙은 문화재를 전통이랍시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이야기를 읽다보니 괜스레 막걸리 한 사발 생각난다. 오늘 같은 날에는 나 역시 피맛골에 주저 앉아 생선 구이나 빈대떡을 안주 삼아 막걸리라도 한 사발 하면 좋을 듯 하다. 부디 이때 내 눈에 띄는 것이 인사동 ‘별다방’이 아니라 오래 된 ‘돌확’이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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