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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상응 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정수윤 옮김 / 읻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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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훌쩍 넘고는 다자이 오사무, 더는 못 읽겠다 싶었다. 그만큼 내게 다자이 오사무는 청춘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그의 서한집이 나왔다는 소식에는 솔깃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다. 안쓰럽고 다정한 사람, 쓰시마 슈지. 돈 빌려달라는 말만큼이나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말도 많았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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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여자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 어문학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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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절대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책이다. <내가 버린 여자>라니. 제목 자체도 문제가 많지만 무엇보다 내용이 예상 가능하다. 단물 쓴물 다 빨아먹고 여자를 뻥 차버리는 나쁜 놈 관점에서 쓰인 소설이겠지. 우리나라 70~80년대 호스티스 문학이나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가난하고 순진한 여자를 못된 놈이 등쳐먹고는 나 몰라라 ‘버리고’ 달아나는 그런 문학이나 영화(‘버린다’는 표현도 불쾌하다). 그런데 이렇게 삼류 멜로, 에로(?) 영화나 문학이 상상되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순전히 작가가 ‘엔도 슈사큐’였기 때문이다. 만일 그 저자가 그 옛날 유명했던(?) 나상만(이 이름을 아는 사람, 연식 나온다)이었다면, 그래서 그 저자가 이런 제목의 소설을 발표했더라면 절대로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엔도 슈사쿠’이다. 물론 그의 작품임에도 내용이 예상 가능하다. 어떤 못된 놈이 여자를 사귀면서 단물 다 빨아먹고 차버리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너무나 성스러운 인물이었던지라 쉽사리 마음에서 지우지 못하고 마음속에 부채감을 안고 살아가는 그런 내용이 아닐까. 그래서 훗날 후회하는 심정으로 그 ‘버린’ 여자를 회고하는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 얼마쯤은 이런 예상을 하고 책을 펼쳤다. 그리고 그 생각은 조금은 들어맞는다. 작품 초반부터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이 작품은 ‘나의 수기’와 ‘손목의 반점’이라는 두 개의 제목이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나의 수기’는 주인공인 ‘나’, 즉 ‘요시오카’ 관점으로 서술된다. ‘나’는 전후(戰後) 일본의 가난한 대학생이다. 소설 첫 장은 ‘나’와 함께 생활하는 친구 두 사람의 가난하고  비루한 일상, 너무나 더럽기 짝이 없는 하숙 생활을 묘사하는데 엔도 슈사쿠가 직접 그런 생활을 해봤는지 너무나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어서 구토가 날 듯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 두 남학생은 가난하고 돈도 없어서 늘 굶주려있다. 실제 배고픔과 성욕 두 가지 면에서 모두. 가난하니까 연애를 할 수 없고, 그러다 보니 끓어오르는 성욕을 채울 길 없고. 이 두 남자는 돈도 벌고, 여자와 연애도 하고 싶다고 늘 노래를 부른다.

‘나’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온다. 어느 날 우연히 삼류 잡지를 살펴보던 중 잡지 독자란에 올라온 어떤 여성이 보낸 글을 읽게 된다. 여자는 참 순진하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로부터 답장을 받고 싶다는 편지와 함께, 자기 주소를 남겼다. 될 대로 되라, 아무나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나’는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그렇게 해서 나, 그러니까 ‘요시오카’는 드디어 그 여자를 만나게 된다. 약속 장소로 나가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이 여자를 저렴한 가격으로 ‘해치울’ 생각밖에 없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그런 자신에게 욕지기를 느끼기도 한다. 그런 삼류 잡지 독자 투고란에 글을 보내는, 그것도 맞춤법도 엉망진창인 여자가 헤겔과 마르크스 운운하는 대학생인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리가 없다. 실제로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는 그 여자, ‘미츠’를 보고는 크게 실망한다. 못생겨도 저렇게 못생겼을 수가. 게다가 비누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여공인지라 차림새도 형편없다. 그럼에도 요시오카는 소기의 목적. 그러니까 여자와 하룻밤 섹스하려는 그 목적을 위해서 그 모든 못마땅함을 꾹 참는다. 술을 이용한 고전적인 나쁜 수법을 써서 미츠를 여관으로 끌고 가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미츠의 강한 거부와 함께 어떤 점 때문에 결국 자신의 동물적 욕망을 이루지는 못하고 터덜터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결국 두 번째 만남에서는 자신의 목적을 기어이 이루고 만다.

‘여자와 자고 싶다’는 그 목적을 이루고자 요시오카는 미츠에게 온갖 떼를 쓰고 심지어 강요와 협박을 하는데, 거기에 꿈쩍도 않던 미츠가 결국 마음을 연 까닭은 조금 뜻밖이다. 요시오카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몸이 왜소한 데다가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럽다. 그 모습을 본 미츠의 얼굴에 안타까움과 연민이 스쳐지나가고, 바로 그 순간을 요시오카는 놓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몸 때문에 누구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고, 연애 상대로 보지도 않으며, 값싼 동정만 한다고, 미츠 너마저도 나를 그렇게 대한다고, 그래서 나와 함께 자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라고 잔뜩 불쌍한 표정을 짓고는 미츠의 약한 부분을 건드린다. 미츠는 가여운 마음에 자기 몸을 허락한다.

남루한 여관에서 치르는 사랑 없는(요시오카는 미츠를 1%도 사랑하지 않는다) 섹스는 허무하기만 하다. 요시오카는 그런 자기 자신이 혐오스럽기 짝이 없다. 자기에게 화가 나고, 아무리 욕망 때문이라도 다시는 이런 섹스는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면서 여관을 나온다. 그것도 모자라 뒤에서 자기를 따라오는 미츠에게 폭언을 퍼붓고 떠나버린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놀란 눈으로 요시오카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미츠. 미츠는 그 뒤로 요시오카에게 연락해 보려고 애를 쓰고 그의 하숙집도 물어물어 찾아가 보지만,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하고 그 짧은 인연은 일단 여기서 끝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후 재건 시기였던지라 쉽사리 일자리를 얻은 요시오카는 반드시 출세하리라는 꿈을 품고 사회에서 첫 출발을 야심차게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끔 미츠가 떠오른다. 남루한 옛 거리를 지나거나, 둘이 몸을 섞었던 그 허름한 여관 근처를 지날 즈음에는 자기도 모르게 그 못생기고 촌스러운 미츠가 생각난다. 왜일까?

‘손목의 반점’에서는 미츠의 삶이 작가의 눈으로 그려진다. 미츠가 요시오카처럼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조리 있게 해나갈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가 선택한 방식일 것이다. 미츠는 요시오카처럼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그렇기에 대학생인 요시오카를 동경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 두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서 그 별것도 아닌 놈을 그토록 헌신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이 바보 같은 여자, 미츠의 삶에는 늘 타인에 대한 고통이 크게 자리한다. 절대로 그런 여관에서 그렇게 남자와 자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요시오카의 불쌍한 모습에 마음이 허물어져 버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요시오카에게 잘 보이려고 열심히 돈을 모아 마침내 원하던 가디건을 손에 넣을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도, 돈이 없어 쩔쩔매는 누군가에게 결국 그 돈을 모두 줘버리고 만다. “이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너의 슬픔을 다른 사람의 슬픔과 결부시키는 거야.”(107쪽) 생각하면서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을 그냥 넘기지 못한다. 자기 자신도 가진 것이 없으면서 말이다. 그러는 가운데 가난한 여공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아서 미츠의 삶은 자꾸만  밑바닥으로 떨어져 간다. 그러다가 급기야 사형 선고 같은 소식을 접하고 만다. 무심코 넘겼던 ‘손목의 반점’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의사가 ‘한센병’이라는 말을 하고, 그것이 뭔지 몰라 간호사에게 물어본 미츠는 ‘나병’이라는 말에 휘청거리고 만다.

남자에게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은 채 밑바닥 삶을 살다 끝내 한센병 환자가 되는 미츠- 이런 여주인공이라니, 정말 신파도 이보다 더한 신파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이 작품 말미에서 나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미츠는 한센병을 앓는 이들이 모인 곳에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제는 누구도 사랑해 주지 않는 이들, 누군가의 애정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이들의 삶을 마주한다.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더더욱 그럴 일이 없는 자기 인생을 저주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왠지 그들의 모습이, 고통이 마음에 아리도록 맺힌다. 그러는 사이에 요시오카는 출세도 하고, 자기가 꿈꾸던 매력적인 여자와 연애도 하는 등 나름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런데도 가끔은 미츠의 소식을 뜻밖으로 듣게 되기도 하고, 문득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우리 인생에서 타인에게 끼친 행위는, 어느 것이건 태양 아래 얼음이 녹듯이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그 상대에게 떨어져 전혀 생각지 않게 되더라도, 우리의 행위는 마음속 깊이 흔적을 남긴다는 점’(124쪽)을 어렴풋이 깨달아 가면서.

‘미츠’는 얼마 전 읽은 <바보>의 ‘가스통’과 똑닮은 인물이다. 자기 자신이 가진 것도 없고 더 내줄 것도 없으면서 결코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한다. 자기보다 못나고 약한 존재는 물론이요, 그렇지 않은 사람한테서도 고통과 아픔을 발견하면 쉬이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끌어안는다. 그 포용력은 끝을 몰라 결국 자기 자신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기도 한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왠지 어딘가에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미츠와 가스통 그 두 사람은 모두 예수의 현신과도 같다. 그래서 가스통의 주변 사람들이 그랬듯이 미츠의 주변 사람들도 쉽사리 그녀를 잊지 못한다. 동물적인 욕망, 출세와 성공, 안락한 삶, 부와 그것이 가져오는 평온한 일상 등을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추구하면서, 모두 그렇게 살아가니까 나 정도는 괜찮다고 자위하면서도 요시오카는 종종 미츠를 떠올린다. 그럴 때마다 왠지 양심의 가책을 받기도 하고, 굳이 그런 줄 깨닫지 못해도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돌덩이 하나를 얹은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시오카와 비슷한 인생을 살 것이다. 요시오카는 아주 나쁜 놈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미츠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편치는 않으니까. 지금에 만족하는 요시오카는 그 소시민적인 삶에 안주하게 되겠지만 앞으로도 가끔은 미츠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요시오카처럼 인간의 마음에는 ‘미츠’ 또는 ‘가스통’ 같은 존재를 완전히 외면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런 희미한 마음에서 믿음이, 구원이 싹틀 수 있다고 엔도 슈사쿠는 믿는 것 같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도 ‘미츠’나 ‘가스통’을 닮은 그 무엇인가가 툭툭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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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여자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 어문학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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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 같은 제목에, 신파 같은 내용인데도 결국 눈물이 나는 이상한 소설. 이것도 엔도 슈사쿠의 힘이겠지. ‘우리의 고통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 그 고통을 자기 것으로 끌어안은 여자 ‘미츠’- 예수의 얼굴이자 <바보>의 ‘가스통’과 똑닮은 그 여자가 끝내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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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2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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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에서는 해미시도, 프리실라도 죽음의 위협에 놓인다! 그런 와중에 뭔가 새로운 사랑의 그림자가... 여전히 흥미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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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11-08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잠자냥 님의 독서 스펙트럼이 참 다양합니닷. ^^

잠자냥 2020-11-08 22:23   좋아요 0 | URL
ㅎㅎㅎ재미난 책이라면... ㅎㅎ
 
뭔가 유치하지만 매우 자연스러운 쏜살 문고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박소현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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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종, 계급 문제를 바라보는 맨스필드의 섬세한 시선. 그 유명한 ‘가든 파티’의 맨스필드의 시작은 이러했구나! 이제껏 흔히 만날 수 없었던 초기작들 위주로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맨스필드 팬을 위한 필수 소장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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