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E. M. 포스터 전집 2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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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는데, 아까워서 1, 2부는 하루 밤에 또 3, 4부는 다른 날 밤에 이런 식으로 나눠 읽었다. 소설을 아껴두었다가 읽는 다는 심정. 이해할 사람은 이해하겠지만, 그만큼 이 소설은 참 흡인력 있다. <모리스>는 한마디로 말해서 ‘동성애’를 다룬 소설이다. 그리고 E.M 포스터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약간의 픽션을 섞어서 만든 소설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주인공 모리스 및 그의 연인인 더럼의 심리 묘사면에서 매우 빼어나다는 생각이 든다. 밀고 당기기, 처음 본 순간의 떨림, 헤어진 뒤의 더없는 절망감 등등.

신사의 나라 영국. 엄연한 사회적인 계급이 존재하는 그 꽉막히고 답답한 사회에서 캠브리지의 평범한(?) 대학생인 모리스가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 매혹당하고 자신도 모르게 끌리지만, ‘그러면 안되니까’ 그 남자의 사랑 고백에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냐며 돌아선다. 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 사춘기 시절 꿔왔던 꿈의 실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캠브리지에서 열렬한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이것은 모리스의 연인 더럼이 주장대로 순전히 플라토닉한 사랑에 머무르고 만다. 남자들끼리의 사랑은 그래야 한다고- 정신적인 사랑, 지적인 사랑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더럼의 주장에, 모리스 또한 그게 맞는 것이리라 생각하며 따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다, 모리스에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일깨워준 이 ‘더럼’이란 남자는 참 ‘더럽’게도(?) '난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어'라며 매몰차게 기존의 평온한 삶, 즉 이성애자들의 세계이자 사회 계급적으로 안락한 영국 신사의 세계로 돌아간다. ‘우리가 함께 했던 것들은 치기어린 어린애들의 장난’에 불과할 뿐이라는 태도로 모리스를 외면한다. 더럼은 모리스와의 지난 관계를 '성장 과정 중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라는 식으로 치부하고 만다. 더욱이 모리스 앞에 약혼녀를 데리고 나타나, 그의 한때 연인이었던 그에게 가장 절친한 ‘친구’로서의 의무를 다해줄 것을 강요하기 까지 한다. 천하에 몹쓸 놈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더럼의 선택도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작품을 읽어보면 수긍이 간다. 그토록 견고한 인습과 전통의 사회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 그리하여 더럼이 떠난 뒤 모리스는 암흑의 세계를 걷는다. 절망......

1, 2부는 모리스와 더럼의 캠브리지 안에서의 플라토닉한 러브와 그들의 사랑이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3부는 그로 말미암아 방황하고 절망하는 모리스, 그러면서 서서히 육체적인 부름에 괴로워하고,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에게도 새로운 연인이 등장한다. 소설의 마지막 단원인 4부에서는 모리스가 방황을 종지부 찍고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지를 숨가쁘게 그린다. 더럼과 나눈 사랑의 방식과는 다른,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사랑, 육체와 정신이 완벽하게 결합되는 사랑을 만나는 것이다. 이렇게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꽤나 감명깊다.


모리스의 새로운 연인이 더럼과는 상대적으로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이를테면 신분적인 면을 비롯하여 지적인 매력보다는, 육체적인 매력을 발산한다는 점에서, 유치할 정도로 스스럼 없다는 면에서)이라는 설정도 좋았다. 그리고 단순한 머리를 지닌, 노동 계급에 속하는 모리스의 이 새로운 연인이, 모리스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모리스 또한 자신이 속한 사회, 계급, 부, 모든 것을 버린다) 장면에서는 눈물이 왈칵 나기도 한다.

E.M. 포스터의 생애를 훑어보면, 그가 사랑했던 남자, 또는 한때 연인이었던 남자들이 모두 결국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권 안으로 귀착하는 데 반해, 포스터는 평생 독신으로 늙어갔다. 그런 그의 생애가 소설과 오버랩 되면서 슬픔을 동반한 아이러니컬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그의 사랑이 행복한 결맞을 맺을 수 없음을 알았기에, 작품에서라도 포스터의 분신임이 틀림없을 모리스가 행복해지기를 그는 바랐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모리스>는 플라토닉한 사랑에서 육체적인 기쁨을 동반한 사랑,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인습과 전통따위를 모두 벗어 던져 버리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싸워가는 한 남자의 ‘성장’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거 알지만. 지금은 죽고 싶지 않고 네가 죽는 것도 싫어.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죽으면 우리 둘 다 끝이야. 넌 그걸 깨끗하고 투명하다고 말하는 거야?”
“그래”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모리스가 말했다.
“그러면 나는 더러워지는 쪽을 택하겠어” (p.139)                                                                                       

지나간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으로 기억되게 마련이다.배움이 없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은 지난 사랑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과거의 어리석은 행동이나 음란한 욕망, 두서없이 나누던 기나긴 대화들도 돌이키지 않으니.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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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맑음 2016-11-28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내리는 날 숲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에 소설이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인데 이렇게 다시 보게되니 기쁘네요^^

잠자냥 2016-11-28 13:44   좋아요 0 | URL
네, ‘비내리는 날 숲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라는 말씀에 정말 공감합니다. <모리스>뿐만이 아니라 포스터의 모든 작품들이 숲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ㅎㅎ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 창비세계문학 45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성은애 옮김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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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공화국 말기, 서서히 나치에 물들어 가는 베를린 풍경을 ‘브래드쇼’라는 국외자(영국인이라는 국적 외에 동성애자 등 여러 의미의)의 눈으로 그렸다. 모두가 사기꾼일 거라고 말하는 ‘노리스’를 윌리엄이 끝까지 아껴준 까닭은 그에게서 또 다른 이방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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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모티브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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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벨 훅스를 만난 것은 <사랑의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통 지적 수준이 높은 이들(흔히 우리는 '학자'라고 부르는)은 그들의 박식함이나 많이 알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혹은 일부러 '글'을 어렵게 쓰는 경향이 있다. 내가 처음 만난 벨 훅스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쉽고 간결하면서도 매혹적인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벨 훅스- 그녀를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어느덧 내개 그녀의 저작은 나오는 족족 찾아봐야 할 그런 책이 되었고 <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또한 그렇게 만났다. '계급'이라는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를 그녀는 역시 쉬운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나요?"라고 입을 뗀다. 계급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잘 알다시피, 벨 훅스는 흑인이며, 여성이다.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젠더, 인종, 계급, 문화와 관련한 다수의 비평서를 집필하면서 문화비평가로 흑인 페미니스트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흑인이며, 여자로 페미니스트 운동을 하고 있다면 그녀가 속한 위치가 어느 정도일지 대충 짐작은 갈 것이다. 그녀가 1952년 미국 남부 켄터키 주의 흑인 분리 구역에서 태어나, 1973년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력을 보면서 흑인 분리 구역에서, 그것도 여자로 태어나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세월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 그녀의 고군분투기는 이 책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좌절하고 상처를 무수히 받을만한 상황인데도, 그녀는 우뚝 지금의 자리에 서 있다.

전형적인 노동 계급의 가난한 흑인 집안에서 태어나 현재는 '풍요로운 세상'으로 이동한 벨 훅스- 그녀는 '계급'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그녀는 그 문제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흑인이기‘때문에 라는 인종 문제와, '여자이기'때문에 라는 젠더의 문제로 계급 문제를 희석할 뿐이었지, 그 문제를 정면으로 언급하는 것은 꺼려해 왔고, 그녀 역시 자신이 속한 세계가 흑인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대학에서 인종과 성의 문제보다 '계급'문제가 가장 뼈아프게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단적으로 부자 흑인 집안 출신의 아이들은 가난한 집안 출신 흑인 아이들과 연대하려 하지 않으며 부자 백인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차라리 백인 빈민층과 흑인 빈민층이 연대하는 경우가 더욱 많음을 벨 훅스는 지적한다). 그러나 미국 사회 어느 곳에서도 ’계급‘이 존재한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얼마든지 노력하고,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부’를 창출하는 능력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근면, 성실한 태도 등)로 치부하며 흑인은 게으르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이념을 전파한다. 게다가 그런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의 안락한 생활을 위협하는 존재(약물에 취해, 총기를 소지하고)로 설파하기까지 한다. 흑인도 노력하면, 여자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데,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데 단지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벨 훅스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도 성공해서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 속의 ‘그 정상’이라는 위치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반문한다.


그녀에 따르면 ‘지배 계급은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할까봐 약물 중독을 심고, 노동 계급에게는 쇼핑 중독을 심었다.’ 노동 계급이 계속해서 가난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그녀는 광고의 악영향을 이야기한다. 물건을 사면 그만큼 당신의 지위가 향상된다는 거짓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현혹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난하기 때문에 재테크라는 말 자체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으로 모든 인종의 여자들과 흑인 남성들이 빠른 속도로 가난하고 혜택을 박탈당한 계급으로 유입되고 있음을 벨 훅스는 지적한다. 이 상태를 계속 두면 머지않아 미국은 계급투쟁의 장이 될 것이라는 깊은 우려와 함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는 우리가 ‘계급 문제를 직시하고, 더 많은 사실을 깨달아 경제적 정의를 위해 제대로 투쟁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급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면 제일 먼저 공정한 경제 체제부터 만들어야’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직시하고, 그 계급과 연대해야 할 것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벨 훅스는 자신이 충실하게 연대해야 할 계급은 물론 '노동 계급'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며 책을 마친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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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1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너 리그에서서 열심히 노~~오력하면 매이져 리그로 편입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매이져와 마이너라는 이 리그 시스템 자체로써의 계급적 고찰을 묻는 질문이었네요..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묻는듯합니다. 결국 리그의 자각을 통하여 투쟁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 읽어 볼만한 책이네요..참고하겠습니다.

잠자냥 2016-11-18 10:04   좋아요 1 | URL
지금의 우리 사회도,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사회도 계급간 불평등은 더 심화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 평등사회라고 착각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연대해야 할 계급끼리 인종 또는 젠더 갈등으로 오히려 더 첨예하게 대립하지요. 암튼 여러모로 답답한 요즘입니다....
 
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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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한 소개 중에 ‘위대한 러브스토리’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 문구를 보고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미카엘’이라는 제목도 그렇고. 어쩐지 정말 ‘위대한 러브스토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초반부는 조금 그럴 듯했다. 한나라는 여자와 미카엘이라는 남자가 대학 교정에서 만나서 조금씩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데이트를 하고 가까워지는 부분, 그리고 주변의 만류에도 서둘러 결혼을 하는 부분까지는 이제 곧 한나와 미카엘의 위대한 러브스토리가 펼쳐 지려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대체 언제 그 ‘위대한 러브스토리’가 펼쳐 지려나 궁금해 하고 또 궁금해 하는데, 어느덧 소설의 결말이…. 실은 읽기 상당히 지루했다. 무미건조하고 무덤덤한 문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내가 이스라엘 작가의 작품을 읽었던 적이 있던가? 아마도 없는 것 같다. 아모스 오즈는 이스라엘의 작가이며 <나의 미카엘>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꽤 유명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 작가의 작품도 처음이고, 아모스 오즈의 작품도 처음이었다.

이 소설은 꽤 낯설게 다가온다.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적 배경이 특히 그렇다. 그런 한편 작가의 문체는 무미건조하면서도 꽤 서정적이다. 서걱서걱 모래알을 씹는 듯한 기분이 든다. 머릿속으로 이스라엘, 예루살렘, 아랍, 사막 등등의 낯선 풍경을 상상하면서 작품을 읽으면 그 무미건조함이 더욱 잘 느껴진다.  

이 작품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나가 미카엘을 만나 데이트를 하고 이내 서둘러 결혼을 하기까지는 앞서 언급했듯이 위대한 러브스토리가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하는데, 결국 읽다 보면 ‘한나’와 ‘미카엘’의 아주 평범하고 지루한 결혼 생활에 대한 묘사가 전부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결혼 그 이후 첫 아이 임신, 중동 전쟁, 지질학을 전공하던 남편의 박사학위 취득, 친척 혹은 가까이 하던 이웃들의 사망, 그리고 둘째 아이의 임신… 남편의 외도 그리고 결국 서서히 파탄에 접어드는 ‘한나’의 결혼 생활.

‘한나’는 처음부터 결핍을 앓았던 사람이고, 그 결핍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미카엘’을 선택했지만 사실 ‘미카엘’은 ‘한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소설을 보는 내내 든다. 착하고 자상하고 늘 한결같은 남편이지만 ‘한나’의 외로움, 우울증, 결핍, 소외감 등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그런 그녀는 현실에서의 불만족을 매일 밤 꾸는 환상적인 ‘꿈’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하지만 결국 그것은 끝없는 우울증을 반복하게 할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위대한 러브스토리’라고 어떤 이는 이 책을 소개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러브스토리’라고 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지만 ‘위대한 스토리’라는 생각은 조금 들기도 한다.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웃이나 친척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지루하고 불만에 찬 삶이지만 그래도 계속 ‘살아야만 한다'는 ‘살아가야만 한다'는 메시지-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는 메시지를 이 책은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찌 보면 ‘한나’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그 자체가 ‘위대한 이야기’라고 이 책은 역설적으로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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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1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나와 미카엘. 두 사람 성격 다 답답해보여서 끝까지 읽는 일이 힘들었어요. ^^;;

잠자냥 2016-11-15 14:2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끝까지 답답합니다;; ㅠㅠ
 
대지 동서문화사 월드북 86
펄 벅 지음, 홍사중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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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가 모두 담긴 판본이라 읽음. 1부 <대지>만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대지>는 뒷부분이 궁금할 정도로 잘 읽히고 잘 썼다. 그러나 <아들들> <분열된 일가>로 가면서 흐름은 늘어지고, 속편은 괜히 썼다 싶어진다. 대작을 위한 욕심이 오히려 전체 작품 수준을 떨어뜨린 결과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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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10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펄 벅이 다작 작가인데도 《대지》만 많이 알려졌어요. 그 다음으로 국내에 알려진 작품이 《서태후》일 겁니다. 저는 이 소설이 처음 소개됐을 때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어올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요. ^^;;

잠자냥 2016-11-10 17:24   좋아요 0 | URL
와... 그런 작품도 있었군요! 몰랐어요. ㅎ 근데 더 읽어볼 것 같지는 않네요... ㅎㅎ

cyrus 2016-11-10 17:26   좋아요 0 | URL
제가 이제야 정확한 제목이 기억났습니다. 《연인 서태후》입니다. 이 책이 나온 지 십년 지났어요. 스테디셀러 목록에도 나옵니다. 저도 이 소설 안 읽어봤어요. 당분간은 읽어볼 기회가 오지 않을 겁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