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하프 트루먼 커포티 선집 2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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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카포티의 <다른 목소리 다른 방>과 <풀잎 하프>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인 ‘성장 소설’에 속한다. 그러나 두 작품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전자는 조금은 그로테스크하고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다.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난해한 느낌도 든다. 그에 비해 후자인 <풀잎 하프>는 쉽고 단순하다. 그러나 무척이나 따뜻하고 다정다감하며 감동적이다.


<차가운 벽>에 실린 카포티의 단편 중 몇몇 작품이 굉장히 따뜻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는데 그런 단편의 조금 긴 버전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카포티에게는 없어서는 안되었을 그 존재, 사촌 ‘숙 포크’ 양에 관한 이야기가 <풀잎 하프>의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카포티는 네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앨라배마 주 먼로빌의 친척집에 맡겨 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순 살의 다정한 친척 ‘숙’을 만난다. <풀잎 하프>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그린다.

 
고아인 ‘콜린’은 나이든 여자 사촌들과 함께 산다. ‘돌리’와 ‘베레나’가 그들이다. 이 집에는 콜린의 사촌들과 마찬가지로 나이든 흑인 여자 하녀 ‘캐서린’이 함께 산다. 우연히 어떤 사건 때문에 자매지간인 ‘돌리’와 ‘베레나’는 사이가 틀어지고 돌리는 콜린, 캐서린과 함께 집을 나가 숲 속의 나무 오두막으로 떠난다. 어찌하다 보니 그곳에 은퇴한 판사 찰리와 소년 가장 라일리까지 합세하게 된다.


고아, 노처녀 자매, 흑인 하녀, 은퇴한 판사, 소년 가장 등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숲 속 오두막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감동적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따스하다. 세상에서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는, 어떤 면에서는 ‘비정상’이라고 분류될 수도 있는 이들이 작은 공동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 받으며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 한구석이 훈훈해 진다.

카포티의 사촌 ‘숙’을 모델 삼아 창조한 캐릭터가 분명한 ‘돌리’를 보자면 ‘콜린’ 즉 카포티에게 어린 시절에 이런 사람이 있었기에 그가 이런 따스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진다. 그러면서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타인에게 이런 무조건적인 진실한 애정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그 사람이 잘났든 못났든, 한 사람에게 순수하고 깊은 애정을 주고 그런 사랑과 보살핌을 받은 한 인간이 그 애정으로 이 세상에서 버텨 가고 살아갈 수 있는 동기를 얻었다면, 한 인간으로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면, 그런 무한한 사랑을 선사한 그 사람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인생을 잘 살다 갔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풀잎 하프> 속의 ‘돌리’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아주 따스하고 뭉클한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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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 헨리 제임스 장편소설 열린책들 세계문학 192
헨리 제임스 지음, 이승은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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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은 굉장히 모호하다. 그런데 그 모호함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이 작품을 읽었는데 등골이 좀 오싹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무섭기도 했다. 선뜻선뜻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창문 밖에 누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악을 쓰고 피가 철철 흐르는 공포물보다 이렇게 심리적으로 사람을 압박하는 공포물이 사람을 좀 더 숨 막히게 하는 것 같다.

이야기는 한 저택에서 시작된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난롯가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꺼낸다. 그 중 ‘더글러스’는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무섭다며 ‘그 누구의 이야기도 이 이야기를 능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가 직접 경험한 일은 아니며 그 이야기의 ‘원고’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 무서운 이야기를 기록한 여자는 20년 전에 죽었고 죽기 전에 더글러스에게 문제의 원고를 보냈다고 한다. 죽은 여자는 더글러스 누이의 가정교사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 ‘원고’에 흥미를 느끼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자의 기록을 토대로 시작된다.

화자인 ‘나’- 즉 여자는 스무 살의 나이에 인적이 드문 시골 대저택에 가정교사로 부임한다. 그녀를 고용한 대저택의 주인은 매력적인 젊은 남자로 여자는 어쩐지 이 남자에게 처음부터 반한 것으로 보인다(이점도 모호하기는 하다). 그런데 이 남자는 저택에 머물지 않고 따로 떨어져 지내는데, 가정교사로 부임하는 그녀에게 ‘자신을 절대로 귀찮게 하지 말라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결코 호소하거나 불평하지도 말고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편지를 써서는 안 되며 모든 문제를 그녀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고 지시한다.

꽤 괜찮은 보수에 한가로운 대저택에서 별다른 간섭 없이 가정교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무척 만족한다. 게다가 그녀가 돌볼 아이들을 직접 만나보니 더더욱 기쁘지 않을 수 없다. ‘플로라’와 ‘마일스’ 두 남매는 귀엽고 상냥하며 똘똘한데다가 말도 어찌나 잘 듣는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가정부인 그로즈 부인 또한 여자에게 호의적이다. 아이들의 매력에 푹 빠져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여자 앞에 어느 날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지된다. 산책을 하던 그녀 시야에 낯선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뭘 잘 못 본 것일까? 누군가 여행객이 길을 잘못 들어 저택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간 것일까? 그런데 이 남자의 모습은 그 뒤로도 불시에 나타난다. 대체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이 책을 읽을 분들은 패스 바람.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은 여자가 정말로 유령을 봤는지, 아니면 유령을 봤다고 주장하는 그녀의 모든 이야기가 거짓(여자가 신경쇠약이나 혹은 정신병을 앓고 있을 가능성)인지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작품이다. 만약 여자가 주장하듯이 그녀가 정말로 유령을 봤고 그 유령이 가정부의 증언대로 이 저택에서 그녀보다 먼저 가정교사 생활을 했던 여자 ‘제셀’과 하인 ‘퀸트’라면 그들은 왜 계속 유령으로 머물면서 ‘플로라’와 ‘마일스’에게 여자의 생각처럼 나쁜 영향을 끼치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악’의 기운이란 대체 무엇일까?

가정부의 증언에 따르면 제셀과 퀸트는 부적절한 관계였다. 게다가 퀸트는 하인이면서 ‘감히!’ 도련님인 마일스와 가깝게 지내며 마일스에게 이러저러한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 나쁜 영향이란 도무지 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들이 유령이라면 플로라와 마일스 두 아이들은 대체 어떻게, 왜, 유령의 존재를 알고 있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그들의 존재를 ‘모르는 척’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일까?

여자가 본 것이 ‘유령’이라고 가정한다면, 여자가 생각하기에 ‘유령’ = ‘악’과 같으므로 악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이해할 만도 하다. 게다가 저택의 주인도 없는 마당에 자신이 이 아이들의 보호자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나 여자는 유령을 두려워한다기보다 유령들에게 아이들을 빼앗길 것 같아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플로라가 자기 보다는 제셀과 더 친한 것 같고, 마일스가 자신보다는 남자인 퀸트에게 더 의지하고 기대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어 한다. 즉 자신이 두 아이들을 지배(장악)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으로 보인다.

퀸트와 제셀의 부적절했던 관계에 대해 들은 이후로 그녀의 히스테리적 증세는 좀 더 심해진다. 여자의 생각에 그들은 성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고 그런 그들이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오염시키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다 보면 퀸트와 제셀이 부적절했던 관계였던 것처럼 플로라와 마일스도 어쩌면 부적절한 관계(근친상간)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여자는 아이들을 ‘순수한’ 상태 그대로 지켜주고 싶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미 그 아이들은 그저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생긴다.

여자의 눈에는 한없이 착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인 마일스는 알고 보니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무슨 일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났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여자의 머리꼭대기에서 그녀를 갖고 노는 영악함을 보이기도 한다. 여자의 생각처럼 순진하고 해맑기 만한 소년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마일스는 말끝마다 ‘사랑하는 선생님~’하며 다정하게 여자를 부르는데 어쩌면 마일스와 여자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성적인 긴장감이 있던 건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여자가 본 것이 유령이 아니라면, 즉 그 모든 것은 환상일 뿐이라면- 여자는 대체 왜 그렇게 히스테리를 부리게 된 것일까? 처음부터 끌렸던 저택의 주인에게 편지 쓸 구실이 필요했던 것일까(여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편지를 써서는 안 된다는 남자의 말을 어기고 결국 이런 일들을 계기로 편지를 쓰게 된다)? 아니면 ‘유령’이라는 존재를 빌어 아이들은 물론 그로즈 부인 등 이 저택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힘을 자신이 갖고 싶었던 걸까? 작품 속에서 마일스와 플로라는 유령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여자는 말하지만, 아이들은 유령의 존재를 부정한다. 오히려 유령을 봤다고 말하라고 다그치는 그녀에게 심하게 배신감을 느끼거나  깊은 상처를 입는다. 여자는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을 아이들에게 강요함으로써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권력자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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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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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친구와 함께 나쓰메 소세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소세키의 글은 담백해서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맵고 짜고 달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을 때는 확! 하고 순간적으로 입맛을 잡아끄는 게 있지만 심심한 음식은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자극적이지 않기에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곱씹을수록 음식을 이루는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나 먹는 기쁨, 맛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더욱 누릴 수 있다. 게다가 심심하고 자극적이지 않기에 두고두고 자주 꺼내 먹어도 좋다. 몇 년, 몇 십 년 생각날 때마다 먹어도 그때그때 먹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 그의 글이 바로 그렇다. 너무나도 심심한데 요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그 심심한 맛에 그의 작품을 다시 꺼내 들게 된다. 그 심심함 때문에 시간을 두고 또 다시 읽어도 질리지 않고 곱씹을수록 전에는 몰랐던 또 다른 ‘맛’을 발견하게 된다. 뭐랄까, 심심해서 절대로 질리지 않는 평양물냉면 같다고나 할까….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중 국내 번역된 것들은 거의 다 읽어간다. <풀베개>와 <우미인초> 이 두 작품만 못 읽었던 셈인데 이번에 <풀베개>를 읽었다. 아, 이제 <우미인초>한 작품만 남았다.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아마도 그의 다른 작품들을 여러 번 되새김질하며 또 읽을 듯하다. ‘현암사’에서 이미 출판되었고, 앞으로도 나올 예정인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한 권씩 장만하면서 다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풀베개>는 나쓰메 소세키 작품 중 크게 관심이 가던 작품은 아니다. 몇 번 집었다가 다른 책에 밀리고는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좋았다. 어쩌면 이렇게 유유자적, 마음의 여유가 많은 시기에 읽어서 더 잘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나쓰메 소세키는 그다지 길지 않았던 창작 시기 동안 소설은 물론 한시, 하이쿠, 수필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썼다. 이 작품에서는 나쓰메 소세키의 ‘하이쿠’를 맛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작품 전체가 한 편의 긴 ‘하이쿠’를 읽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첫 시작부터 그야말로 ‘심금’을 울린다. 이 문장을 읽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까지 적어도 5분 이상은 첫 페이지에서 멈춰있던 것 같다. “이 지(理智)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자신의 의지만 주장하면 옹색해진다.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살기 힘든 것이 심해지면 살기 편한 곳으로 옮겨 가고 싶어진다. 어디로 옮겨 가도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가 태어나고 그림이 생겨난다. (...) 옮겨 갈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 힘들다면, 살기 힘든 곳을 어느 정도 편하게 만들어 짧은 순간만이라도 짧은 목숨이 살기 좋게 해야 한다. 이에 시인이라는 천직이 생기고, 화가라는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모든 이는 인간 세상을 느긋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까닭에 소중하다.”

저 문장을 두고두고 또 읽어본다. 첫 페이지에서 읽어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나쓰메 소세키의 예술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군데군데 동서양의 문명에 대한 그의 생각도 묻어나온다.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자연으로 떠난 ‘나’는 자연 속에서 세상과 고립된 채 작품에 몰두하고자 한다. 그 자연 속에서 여러 인물을 만나며 ‘그림’을 그리고자 하지만  쉽게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그런 중 ‘나미’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게 되면서 ‘나’의 관심은 그녀에게 서서히 옮겨가는데, ‘나’는 과연 최초의 목표였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까?

‘나’가 그림을 완성했을지 어땠을지는 모르지만, 주인공의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자연속 여정을 담은 이 작품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과 같다. 곳곳에 ‘아-’하는 감탄이 나오는 하이쿠가 담겨 있어서 그런지 문장과 문장 사이에 여백이 느껴지고 그 여백 안에서 풀내음이 올라오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예술이나 인간의 삶, 근대 문명에 관한 쉽지 않은 철학적 질문을 만날 수 있다. ‘나’와 함께 산속을 거닐면서 그 해답을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이리라. 

<풀베개>- 이 한 편의 담박하면서도 진중한 하이쿠는 내게 오래도록 여러 번 읽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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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6-07-02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암사 전집중 `도련님`과 `마음`을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의 어투가 너무 불편해서 읽다가 포기했어요. 한꺼번에 다 장만할 돈은 없고 여유가 생길때마다 한권씩 천천히 사모아야 할 것 같은데 나머지 작품들 중에 혹시 먼저 읽어야 할, 좀 더 맘에 드셨던 작품이 있으시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

잠자냥 2016-07-02 23:58   좋아요 1 | URL
저는 사실 나쓰메 소세키 후기작을 참 좋아합니다. 마음, 행인, 한눈팔기. 이 세 작품이요. 마음은 읽으셨다고 하니 행인이나 한눈팔기는 어떨까 싶고요. 혹시 북깨비 님이 20대시라면 <산시로>도 읽기 좋을 듯합니다.

북깨비 2016-07-03 00:17   좋아요 1 | URL
30대 후반이에요. ㅎㅎ 행인과 한눈팔기를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2-01-17 14: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점심때 이책을 다 읽었는데 뭔가 시를 읽고 그림을 보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ㅋ 유유자적 생활이 부럽기도 하더라구요 ㅋ

잠자냥 2022-01-17 14:22   좋아요 2 | URL
맞아요. 정말 시를 읽고 그림 보는 것 같죠?
뭔가 산 속을 유유히 거닐고 싶어지는 책. ㅎㅎ

새파랑 2022-01-17 14:24   좋아요 1 | URL
이 책의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입니다. 잠자냥님 너무 잘 쓰심^^

blanca 2022-03-18 12: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글 읽고 이 책 사려고 하니 이미 구입했고 리뷰까지 썼네요. -- 충격이에요. 기억에 없어서요.

잠자냥 2022-03-18 12:42   좋아요 1 | URL
하하하하하! 크게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도 이 책 두 권이나 있어요. 똑같은 걸로.. ㅠㅠ 사고 또 사고. ㅋㅋㅋㅋㅋㅋㅋ
 
[수입] 그리고리 소콜로프 - 나이브 레코딩 전곡 [10CD]
쇼팽 (Frederic Chopin) 외 작곡, 소콜로프 (Grigory Sokolov) / NAIVE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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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이건 정말 소장용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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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코너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1
존 치버 지음, 박영원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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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코너’라는 교도소에 갇힌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페러것’- 교도소에 감금된 남자의 이야기라? 어쩐지 뻔해 보인다. 물론 책을 읽는 사람은 분위기나 작품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죄를 짓게 된 동기, 감옥 안에서의 생활, 교도소에 있는 또 다른 죄수들과의 관계나 그들의 사연 등등. <팔코너>에는 이런 모든 ‘예상 가능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교도소’라는 특이한 공간을 무대로 한 여느 작품들과 조금은 다르다. 무엇보다 <팔코너>를 매혹적인 작품으로 만든 데에는 존 치버의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

이 작품은 ‘페러것’이 ‘팔코너’에 수감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형을 살인한 죄로 구속됐다. 감옥에 들어오기 전 직업은 ‘교수’였고 심한 마약중독자이다. F동 독방에 수감되는 페러것. 교도관의 말에 따르면 F동의 ‘F는 성교(fuck), 마약중독자(freak), 멍청이(fools), 동성애자(fruits), 초범(first-timers), 뚱뚱한 놈(fat asses), 망상(phantom), 뻔뻔함(funnies), 미친놈(fanatics), 저능아(feebies), 장물아비(fences), 등신(farts)의 머리글자’라고 한다. 이 분류대로라면 페러것은 아마도 마약중독자이자, 초범에 속할지 모르겠다.

심한 마약중독자인 페러것에게는 감옥 안에서도 하루 한 알의 메타돈이 허락된다. 메타돈을 복용하며 페러것은 환상을 만나기도 하고, 환각 상태 속에서 감옥에 들어오기 전 생활을 추억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속속 페러것이 왜 마약중독자가 되었고 급기야 형을 살해하게 되었는지 드러난다. 면회를 온 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그가 감옥에 들어오기 전 삶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드러나는 ‘바깥 세계에서의 삶’을 보자면 딱히 감옥 안의 삶보다 더 행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다만 자유가 허락된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랄까.

오히려 감옥 안의 삶이 덜 외로워 보일 정도로 ‘팔코너’에 들어오기 전 페러것의 삶은 고독 그 자체다. 결혼으로 그가 직접 꾸린 가정 생활도 위태위태하고, 그가 태어나 자란 가정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어쩌면 가족이기 때문에 더) 고독하고 외로운 그를 보고 있노라면 F동 독방에 수감되어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것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인다. 오로지 마약을 통해서 그 안의 또 다른 그를 만날 때만 페러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 때문에 어디에서도 소외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그토록 마약에 집착했던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이 좀 더 흥미로웠던 이유는 페러것에게서 존 치버의 모습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딱히 행복해 보이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났고, 심한 알콜 중독자였으며, 결혼 생활을 유지했지만 평생 동성애 스캔들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실제로 동성 연인이 있었던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페러것’에게서 드러난다. 때문에 ‘페러것’은 ‘존 치버’의 분신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리고 존 치버는 ‘페러것’을 통해 어쩌면 사변적인 소설로 그쳤을 수도 있을 이야기를 붕괴되어 가는 미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언젠가 읽었던 윌리엄 버로스의 <퀴어>가 떠올랐다. 윌리엄 버로스의 자전적 이야기였던 <퀴어> 역시 마약과 동성애가 주된 소재다. 그런데 그 책은 읽는 내내 빨리 끝나길 바랐다. 그다지 긴 분량이 아니었는데도, 내가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반면 이 책은 책장을 넘기기가 아까웠다.  마약, 동성애,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 등등 사람들이 듣고 싶지도, 보고 싶어하지도 않는 소재로 이토록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팔코너>는 그래서 돋보이고 또 돋보인다. 책을 놓고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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