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하프 트루먼 커포티 선집 2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트루먼 카포티의 <다른 목소리 다른 방>과 <풀잎 하프>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인 ‘성장 소설’에 속한다. 그러나 두 작품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전자는 조금은 그로테스크하고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다.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난해한 느낌도 든다. 그에 비해 후자인 <풀잎 하프>는 쉽고 단순하다. 그러나 무척이나 따뜻하고 다정다감하며 감동적이다.


<차가운 벽>에 실린 카포티의 단편 중 몇몇 작품이 굉장히 따뜻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는데 그런 단편의 조금 긴 버전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카포티에게는 없어서는 안되었을 그 존재, 사촌 ‘숙 포크’ 양에 관한 이야기가 <풀잎 하프>의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카포티는 네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앨라배마 주 먼로빌의 친척집에 맡겨 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순 살의 다정한 친척 ‘숙’을 만난다. <풀잎 하프>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그린다.

 
고아인 ‘콜린’은 나이든 여자 사촌들과 함께 산다. ‘돌리’와 ‘베레나’가 그들이다. 이 집에는 콜린의 사촌들과 마찬가지로 나이든 흑인 여자 하녀 ‘캐서린’이 함께 산다. 우연히 어떤 사건 때문에 자매지간인 ‘돌리’와 ‘베레나’는 사이가 틀어지고 돌리는 콜린, 캐서린과 함께 집을 나가 숲 속의 나무 오두막으로 떠난다. 어찌하다 보니 그곳에 은퇴한 판사 찰리와 소년 가장 라일리까지 합세하게 된다.


고아, 노처녀 자매, 흑인 하녀, 은퇴한 판사, 소년 가장 등 사회에서 소외 받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숲 속 오두막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감동적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따스하다. 세상에서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는, 어떤 면에서는 ‘비정상’이라고 분류될 수도 있는 이들이 작은 공동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 받으며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 한구석이 훈훈해 진다.

카포티의 사촌 ‘숙’을 모델 삼아 창조한 캐릭터가 분명한 ‘돌리’를 보자면 ‘콜린’ 즉 카포티에게 어린 시절에 이런 사람이 있었기에 그가 이런 따스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진다. 그러면서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타인에게 이런 무조건적인 진실한 애정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그 사람이 잘났든 못났든, 한 사람에게 순수하고 깊은 애정을 주고 그런 사랑과 보살핌을 받은 한 인간이 그 애정으로 이 세상에서 버텨 가고 살아갈 수 있는 동기를 얻었다면, 한 인간으로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면, 그런 무한한 사랑을 선사한 그 사람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인생을 잘 살다 갔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풀잎 하프> 속의 ‘돌리’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아주 따스하고 뭉클한 소설을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