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의 회전 - 헨리 제임스 장편소설 열린책들 세계문학 192
헨리 제임스 지음, 이승은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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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은 굉장히 모호하다. 그런데 그 모호함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이 작품을 읽었는데 등골이 좀 오싹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무섭기도 했다. 선뜻선뜻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창문 밖에 누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악을 쓰고 피가 철철 흐르는 공포물보다 이렇게 심리적으로 사람을 압박하는 공포물이 사람을 좀 더 숨 막히게 하는 것 같다.

이야기는 한 저택에서 시작된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난롯가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꺼낸다. 그 중 ‘더글러스’는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무섭다며 ‘그 누구의 이야기도 이 이야기를 능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가 직접 경험한 일은 아니며 그 이야기의 ‘원고’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 무서운 이야기를 기록한 여자는 20년 전에 죽었고 죽기 전에 더글러스에게 문제의 원고를 보냈다고 한다. 죽은 여자는 더글러스 누이의 가정교사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 ‘원고’에 흥미를 느끼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자의 기록을 토대로 시작된다.

화자인 ‘나’- 즉 여자는 스무 살의 나이에 인적이 드문 시골 대저택에 가정교사로 부임한다. 그녀를 고용한 대저택의 주인은 매력적인 젊은 남자로 여자는 어쩐지 이 남자에게 처음부터 반한 것으로 보인다(이점도 모호하기는 하다). 그런데 이 남자는 저택에 머물지 않고 따로 떨어져 지내는데, 가정교사로 부임하는 그녀에게 ‘자신을 절대로 귀찮게 하지 말라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결코 호소하거나 불평하지도 말고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편지를 써서는 안 되며 모든 문제를 그녀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고 지시한다.

꽤 괜찮은 보수에 한가로운 대저택에서 별다른 간섭 없이 가정교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무척 만족한다. 게다가 그녀가 돌볼 아이들을 직접 만나보니 더더욱 기쁘지 않을 수 없다. ‘플로라’와 ‘마일스’ 두 남매는 귀엽고 상냥하며 똘똘한데다가 말도 어찌나 잘 듣는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가정부인 그로즈 부인 또한 여자에게 호의적이다. 아이들의 매력에 푹 빠져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여자 앞에 어느 날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지된다. 산책을 하던 그녀 시야에 낯선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뭘 잘 못 본 것일까? 누군가 여행객이 길을 잘못 들어 저택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간 것일까? 그런데 이 남자의 모습은 그 뒤로도 불시에 나타난다. 대체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이 책을 읽을 분들은 패스 바람.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은 여자가 정말로 유령을 봤는지, 아니면 유령을 봤다고 주장하는 그녀의 모든 이야기가 거짓(여자가 신경쇠약이나 혹은 정신병을 앓고 있을 가능성)인지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작품이다. 만약 여자가 주장하듯이 그녀가 정말로 유령을 봤고 그 유령이 가정부의 증언대로 이 저택에서 그녀보다 먼저 가정교사 생활을 했던 여자 ‘제셀’과 하인 ‘퀸트’라면 그들은 왜 계속 유령으로 머물면서 ‘플로라’와 ‘마일스’에게 여자의 생각처럼 나쁜 영향을 끼치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악’의 기운이란 대체 무엇일까?

가정부의 증언에 따르면 제셀과 퀸트는 부적절한 관계였다. 게다가 퀸트는 하인이면서 ‘감히!’ 도련님인 마일스와 가깝게 지내며 마일스에게 이러저러한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 나쁜 영향이란 도무지 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들이 유령이라면 플로라와 마일스 두 아이들은 대체 어떻게, 왜, 유령의 존재를 알고 있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그들의 존재를 ‘모르는 척’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일까?

여자가 본 것이 ‘유령’이라고 가정한다면, 여자가 생각하기에 ‘유령’ = ‘악’과 같으므로 악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이해할 만도 하다. 게다가 저택의 주인도 없는 마당에 자신이 이 아이들의 보호자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나 여자는 유령을 두려워한다기보다 유령들에게 아이들을 빼앗길 것 같아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플로라가 자기 보다는 제셀과 더 친한 것 같고, 마일스가 자신보다는 남자인 퀸트에게 더 의지하고 기대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어 한다. 즉 자신이 두 아이들을 지배(장악)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으로 보인다.

퀸트와 제셀의 부적절했던 관계에 대해 들은 이후로 그녀의 히스테리적 증세는 좀 더 심해진다. 여자의 생각에 그들은 성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고 그런 그들이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오염시키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다 보면 퀸트와 제셀이 부적절했던 관계였던 것처럼 플로라와 마일스도 어쩌면 부적절한 관계(근친상간)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여자는 아이들을 ‘순수한’ 상태 그대로 지켜주고 싶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미 그 아이들은 그저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생긴다.

여자의 눈에는 한없이 착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인 마일스는 알고 보니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무슨 일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났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여자의 머리꼭대기에서 그녀를 갖고 노는 영악함을 보이기도 한다. 여자의 생각처럼 순진하고 해맑기 만한 소년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마일스는 말끝마다 ‘사랑하는 선생님~’하며 다정하게 여자를 부르는데 어쩌면 마일스와 여자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성적인 긴장감이 있던 건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여자가 본 것이 유령이 아니라면, 즉 그 모든 것은 환상일 뿐이라면- 여자는 대체 왜 그렇게 히스테리를 부리게 된 것일까? 처음부터 끌렸던 저택의 주인에게 편지 쓸 구실이 필요했던 것일까(여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편지를 써서는 안 된다는 남자의 말을 어기고 결국 이런 일들을 계기로 편지를 쓰게 된다)? 아니면 ‘유령’이라는 존재를 빌어 아이들은 물론 그로즈 부인 등 이 저택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힘을 자신이 갖고 싶었던 걸까? 작품 속에서 마일스와 플로라는 유령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여자는 말하지만, 아이들은 유령의 존재를 부정한다. 오히려 유령을 봤다고 말하라고 다그치는 그녀에게 심하게 배신감을 느끼거나  깊은 상처를 입는다. 여자는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을 아이들에게 강요함으로써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권력자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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