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두 페소아를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렇게 말하니, 페소아를 다룬 영화라도 상영하는지 오해할 수 있는데, 정확히는 ‘페소아의 작품을 바탕으로 하거나 그로부터 영감을 얻은 영화들’을 상영하는 영화제이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12월 13일 목요일부터 23일까지 딱 열흘 동안만 열린다.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고 영화들도 단편이거나 상영 시간이 짧아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을 것 같지만 페소아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닐까.


내가 관심 가는 작품은 크게 셋이다. 먼저 주앙 보텔료 감독의 <불안의 영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영화 소개를 살펴보면, 리스본에 살고 있는 한 남자가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실과 구분하기 힘든 신비한 꿈을 꾼다는 내용으로 그림 같은 화면과 연극적인 연출, 몽환적 분위기로 인간의 고독을 그려나간다. 고요하고 적막한 리스본 풍경과 남자의 혼란스러운 표정 뒤로 <불안의 책> 구절이 흐른다고.


<불안의 영화>의 한 장면

















페소아의 이명인 ‘알베르토 카에이로’ 시 ‘양치는 사람(O Guardador de Rebanhos)’의 낭송을 들을 수 있는 작품 <금발 소녀의 기벽>도 궁금하다. 이 작품은 상영 시간은 1시간 남짓으로 그리 길지 않은데 2015년, 106세의 나이로 타계한 포르투갈의 거장 올리베이라 감독의 작품이다. 삼촌의 사무실에서 회계로 일하는 한 젊은이의 사랑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로, 주인공 마카리오는 사무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 사귀게 되고 결혼하려고 하지만 매번 다른 장애물이 나타나면서 결혼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관련 자료를 찾다가 접한 몇몇 스틸 컷만으로도 독특한 미장센이 특징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금발 소녀의 기벽>의 한 장면















거의 평생을 리스본에서 살았던 페소아가 관광객들을 위해 영어로 쓴 리스본 가이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인 <페소아의 리스본>도 흥미로워 보인다. 1920년대에 쓰인 페소아의 리스본과 2000년대 리스본의 풍경의 대비가 독특한 향수를 만들어낸다고. 이 영화를 보면 당장 리스본으로 날아가고 싶어지는 건 아닐지.


















평생 75개에 이르는 이명을 갖고 있었던 페소아. 이 영화들을 본다 해서 절대 그의 수많은 정체성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페소아가 남긴 일기나 시, 에세이를 읽는 편이 그를 아는 데 한결 도움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스크린 속에서 페소아의 향기를 만날 수 있다는 건 그의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분명 반가운 소식일 듯. 그나저나 아예 페소아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무척 흥미로울 것 같은데....

상영작 목록 및 상영 시간표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http://cinematheque.seoul.kr/rgboard/addon.php?file=programdb.php&md=read&no=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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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12-11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메일로 받아본 페소아의 영화들 소식듣고 반갑더라구요. 욕심같아서는 다 보고싶네요. ㅎㅎ

잠자냥 2018-12-11 11:35   좋아요 0 | URL
역시 알고 계셨군요. ㅎㅎ 그런데 너무 기간이 짧고 평일 저녁에 볼 수 있는 영화들이 별로 없어서 슬퍼요.. 흐흑...ㅠ_ㅠ
 
소년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8
앙리 드 몽테를랑 지음, 유정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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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 표지 이미지와 <소년들>이라는 제목에서 처음에는 짐작 가능한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다. 책을 몇 쪽 넘겼을 때는 살짝 수다스럽다는 생각도 들고, 젠체하는 느낌이랄까, 기존 소설과는 색다른 시도들도 어쩐지 잘난척하는 것 같고. 어쨌든 처음에는 썩 좋지는 않았다. 가톨릭 학교 파르크 콜레주, 우리나라로 치면 중고등학교를 합친 콜레주를 배경으로 하는 소년들의 이야기는 역시 예상대로 흘러간다. 때로는 악마 같기도 하고 또 때로는 천사 같기도 한 열네 살에서 열여섯 살 소년들. 그들의 당돌하고도 열정적인, 순진무구하지만 어느 땐 지나치게 약삭빠르기도 한 모습들을 지켜보노라니 슬쩍 웃음이 나온다. 첫인상이 딱히 좋지 않았던 사람과 몇 시간을 함께 지내다보니 좀 더 대화를 나눠도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소년들>을 3분의 1쯤 읽었을 때의 심정이다. 그러다가 나는 중반 이후부터 완전히 이 책에 빠져들었다. 아, 이런 작품이 이제야 찾아왔다니 안타까웠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지금 이 나이에 읽을 수 있어서 어쩌면 이 작품을 이렇게 더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안도했다. 사랑, 그렇다 사랑.


파르크 콜레주 철학반 우등생인 알방은 학교를 대표하는 기구인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뽑힌다. 이 아카데미 소속 엘리트 학생들은 선배가 자신이 점찍은 후배를 돌보는 ‘보호 그룹’이라는 활동을 시작한다. 알방은 몇 년 전부터 좋아하던 두 살 아래인 세르주를 자신이 보호할 후배로 점찍는다. <소년들>은 알방과 세르주의 특별한 관계를 바탕으로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 즉 콜레주 학생들, 콜레주를 이끄는 원장 신부, 세르주와 남다른 관계인 드 프라츠 신부, 알방의 어머니 등을 중심으로 좀처럼 잊기 어려운 강렬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알방과 세르주의 관계는 작가인 몽테를랑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알방처럼 콜레주 철학반 학생이던 몽테를랑은 후배인 필리프 지켈과 특별한 우정을 나눴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바 있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곱씹으면서 무려 50여 년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러니 <소년들>은 몽테를랑 필생의 역작이자 얼마쯤은 자서전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작가는 ‘자전적 요소는 거의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나이 열다섯 살 반쯤 되면 사랑에 빠지는 덴 이골이 붙는다.’ 이런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소년들>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사랑’이다. 이 작품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나온다. 심지어 파르크 콜레주의 원장 신부가 학교에 세운 규칙은 ‘많이 사랑하기, 많이 포옹하기, 많이 기도하기’일 정도이다. 그는 진정한 애정의 힘을 믿는 사람으로 ‘사랑받는 자는 어디서든 사랑하기가 쉽다’고 생각한다. 그게 인간 감정의 움직임이라고 여긴다. 원장 신부의 이런 가르침(?)을 떠받들기라도 하듯이 이 학교 학생들, 특히 ‘보호 그룹’에 속한 소년들은 하나같이 선후배 커플을 이뤄 서로 열렬히 ‘사랑’한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 주인공인 알방과 세르주는 좀 더 특별하다. 


알방은 그야말로 세르주에게 미쳐있다. 똑똑하고 집안 좋은 그에 비해 세르주는 학교의 문제아다. “아,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세르주에게 늘 붙어 다니는 말이다. 이상야릇한 작은 괴물, 학교의 말썽꾸러기 세르주는 끊임없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될 만한 짓을 찾아다니고, 교사들과 자습 감독이 싫어하는 골칫덩이이다. 품행 점수가 이십 점 만점에 오 점인 학생이자, 학교에서 모두가 견딜 수 없어하는 아이. 알방이 사랑해마지 않는 세르주 수플리에는 그런 존재다. 그런데 알방은 왜 이런 세르주를 사랑할까? 알방은 ‘선을 향해서든 악을 향해서든 무차별적으로 치우치는 어떤 막연할 열정’을 지닌 소유자로 정의에 대해 매우 예민한 감각을 지녔다. 그가 보기에 세르주에 대한 이런 평가와 대우는 정당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 연약하고 가난한 소년에게 그는 한없는 사랑과 연민을 느끼고 그를 좋은 길로 이끌고 싶어 한다. 사랑에 빠진 알방에게 세르주는 완전히 특별한 존재다. 세르주에게는 특별한 냄새가 났다. ‘어디서 나는 건지 알방이 평생 궁금해 한 일종의 향기’. 세르주를 사랑하는 알방은 오후 다섯 시 무렵이면 어스름한 저녁 시간의 도움을 받아 그를 더 잘 떠올리기 위해 일부러 램프를 약간 기다렸다 켜곤 한다. 이렇게 사랑에 빠진 소년들의 모습을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읽고 있는데, 마침내 일은 벌어지고야 만다. 


사실 지금까지의 설명에서도 조금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으리라. 가톨릭 학교에서 동성 친구 사이의 ‘사랑’을 용인하고 허락한다고? 공공연하게 소년들끼리 사랑한다고? 하는 생각들. 물론, 원장 신부가 ‘더 많이 사랑하기’를 학교 규칙으로 세웠듯이 선후배끼리 서로 보호하고 아낌없이 사랑하는 일은 어느 정도는 허용된 일이었다. 단 그것은 서로 영혼의 성장을 돕는 사랑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보호 그룹’ 학생들은 신부들의 눈을 피해 은밀한 곳에서 육체적 사랑의 쾌락도 마다하지 않는다. 알방과 세르주 또한 예외는 아니다. ‘낭만적’이라는 말로 파르크에서 일어나는 이탈을 관대하게 보아주던 학교 지도자들도 알방과 세르주의 어떤 사건 앞에서는 더는 그 일탈을 너그러이 넘어가주지 않는다. 그리고 알방은 세르주와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학교를 떠난다. 아니, 퇴학당한다. 그렇게 한 시절이 간다.


그런데 알방의 사랑이 벼랑으로 내몰리게 되는 데는 ‘그저, 무얼 하든지 간에 항상 청소년기와 유년 시절을 망쳐버리는 어른들의 속성’이 큰 역할을 한다. 늘 사랑하라고 사랑을 권하던 원장 신부의 비겁함, 세르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심에 눈이 멀어 알방에게만 유독 가혹한 처벌을 내린 드 프라츠 신부 등은 처음부터 ‘특별한 우정’은 안 된다고 단언하지 않고 줄곧 눈감아주다가 자기들이 마음 내키는 때에 눈을 떠버린 것이다. 알방과 세르주가 며칠 동안 달고 다닌 황금 단추 배지가 어른들에게는 일종의 ‘약혼반지’처럼 보인다. 알방의 어머니 또한 아들과 세르주와의 관계를 불편하게 보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른들로 인해 망가진 세계, 내몰린 사랑. 알방과 세르주는 이대로 영영 다시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알방이 퇴학당하기까지의 이야기는 이 책 중반까지에 해당한다. 이때 나는 분노와 함께 가슴이 아파왔다. 귀여운 녀석들, 하면서 내내 웃다가 어느 순간 분노하고 있던 것이다.


그 뒤의 이야기부터는 거의 비통함과 서글픔 같은 것들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알방은 어머니가 바라던 남자가 된다. ‘보호받는 후배들’의 명단은 곧 다른 명단, 그러니까 사교계에서 같이 춤을 추었거나 또는 (사회적 이유로) 반드시 춤을 추어야 할 ‘여자들의 명단’으로 대체된다. 원장 신부의 경박함도, 드 프라츠 신부의 배신도, 어머니의 훔쳐보기도 모두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 이 한마디로 무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고 그런 인생. 인생이 다 그렇지! 더더군다나 알방은 남자가 남자를 욕망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이젠 비상식적이고 괴상망측하고 혐오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어린 소년들에게서 여자로 옮겨가기, ‘많은 사춘기 소년들이 경험하는 이 통과의례’는 일종의 성숙을 의미했고, 알방 또한 그렇게 그 시기를 지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정말, 그럴까?


파르크, 버릇없고 비겁하고 도벽이 있고 속물근성에 불경스럽고 무절제하고 위선적인 소년들이 있는 파르크는 창부의 집인 동시에 천사들이 옮겨온 집이었다. 이후 어디에서도 파르크에서 경험했던 관대함과 강렬함과 장점을 그는 보질 못했다. 자신에게서도, 주변에서도 다른 존재를 ‘더 훌륭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을, 다른 존재를 위해 자기 인생의 가장 귀한 보물을 희생하려 하는 욕망을 단 한 번도 다시 보지 못했다. (<소년들>, 439쪽)


알방이 학교를 떠날 무렵 드 파르츠 신부는 그에게 ‘스무 살쯤 되면 이 모든 일을 비웃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곧 스무 살을 앞둔 알방의 삶은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알방은 그럼에도 종종 세르주의 그 ‘과일 같은 얼굴’을 다시 떠올린다. ‘어떤 날에는 약간 상한 과일 같고, 저녁나절 거리의 어둠 속에서는 환하거나 반쯤 밝아지는 과일 같은 얼굴’을……. 전적으로 순수한 애정을 바쳤던 대상, 절교가 눈물 너머의 것이기 때문에 결코 헤어지던 순간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대상. 그 ‘강렬한 추억을 남긴’ 자는 바람조차 건드릴 수 없는 서늘한 저 깊은 곳에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파르크 콜레주는 알방에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잃어버린 낙원이자 청춘이며 순수였고, 어떤 존재를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던 공간이다. 그러므로 알방이 세르주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읽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이 작품의 끝부분에서도 울컥 치솟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잃어버린 낙원과도 같은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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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8
앙리 드 몽테를랑 지음, 유정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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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의 풋풋하고도 뜨거운 사랑이야기에 웃음짓다가 어느 순간 분노하고 가슴 아파하다가 비통해진다. 아이들의 삶은 어른들로 인해 망가지고, 그 어른들은 스스로 자기 삶을 망가뜨린다. 사랑, 인생, 종교,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눈부신 작품. 이 한 권으로 나는 몽테를랑 신자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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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기질
유진 오닐 지음, 백승진 옮김 / 지앤유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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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안을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과 탐욕 그로 말미암은 정신적 몰락과 붕괴 등을 그리는 데 탁월한 유진 오닐은 <시인의 기질>에서도 또 한 번 그 재능을 발휘한다. <시인의 기질>에도 한 가족이 등장한다. 이제 마흔 다섯 살인 ‘코닐리어스 멜로디’와 그의 아내 ‘노라’, 그들의 딸 ‘사라’가 이 희곡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불행을 안고 있다’는 톨스토이의 그 유명한 말처럼 이 가정의 문제는 무엇일까? 물론 아무런 문제가 없는 단란한 가정일 수도 있지만 어찌 유진 오닐의 작품에서 그러기를 바라겠는가. 그리고 이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1828년 7월, 보스턴에서 몇 마일 떨어져 있는 어느 마을,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코닐리어스 멜로디는 여관 및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 한때 이 여관은 역마차들이 지나다니며 번창했으나 노선이 끊기면서 몇 년 동안 방치된 상태이다. 손님도 거의 없는 이 퇴락한 여관 식당에서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누면서 이 작품은 시작한다. 그런데 이들의 대화로 미루어보건대 여관 주인인 멜로디에게는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술을 좀 좋아하는 것 같고, 지나간 세월에 얽매여 사는 인물인 듯하다. 이게 뭐 그리 큰 문제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곧 드러난다. 


두 사람의 대화에 이어 멜로디가 모습을 나타낸다. 그는 한때는 아주 잘생겼지만 이제는 피폐해진 얼굴이 그의 방탕한 생활의 흔적을 보여 주고 있다. 유진 오닐은 멜로디를 ‘적의를 품은 바이런류 영웅의 얼굴로 입은 오만하고 관능적이며 코는 조각을 해 놓은 듯’하다고 묘사한다. 또한 그의 매너는 과장돼 있어서 실제 그의 모습이 아니라 어떤 역할을 과장해서 연기하고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특별하고 인상적인 뭔가가 있는데, 반도전쟁 당시에 영국 귀족이 입었던 스타일의 고가의 우아한 맞춤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입만 열면 장교와 신사의 품격을 운운하면서 바이런의 시를 낭독한다. 퇴락한 여관에서 아침부터 술기운을 풍기며 영국 귀족 옷을 입고 바이런 시를 읊는 사나이라니,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신사와 귀족의 품격을 운운하는 이 기묘한 사나이의 비밀(?) 아닌 비밀은 그의 아내 노라가 등장하면서 조금씩 벗겨진다. 마흔인 노라는 세월의 흔적으로 빛바랬지만 젊었을 때는 꽤 아름다웠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그녀는 신사병에 걸린 변덕쟁이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아침부터 전전긍긍이다. 남편은 술이 들어가면 너그러워졌다가 불현듯 노라에게 화를 낸다. 그런데도 노라는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고, 또 그를 어떻게 달래는지 아는 것 같다. 멜로디의 지나간 과거를 화려하게 부추겨주고 조금씩 술을 마시게 해주면 되는 것이다. 비록 멜로디로부터 머리에서 스튜 냄새가 난다고 무자비하게 구박을 받을지언정, 허름한 옷차림에 종일 여관 일을 돌보고 오늘은 또 어떻게 외상을 얻을까 고심할지언정 노라는 남편을 받들어 모신다. 마치 멜로디가 자신의 지나간 시절과 바이런의 시를 받들어 모시듯이.


사라는 이런 부모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특히 경제적으로 무능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귀족놀이에 빠져 순종 말을 타고 다니면서 거들먹거리기만 하는 아빠에 대한 반감은 상당하다. 멜로디가 순종 말을 타고 다닐 때 노라와 사라는 아빠의 축하연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 열기 속에서 땀 흘리며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데도 멜로디는 딸이 귀족적이지 못하다고, 천하고 탐욕스럽다면서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사라가 아일랜드 사투리를 쓰면 무섭게 화를 낸다. 그러다가도 그런 자신의 모습에 흠칫 놀라 진정하고는 한다. 그런 천박한 말을 하면서 사라를 몰아세우는 것은 결코 ‘신사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귀족적이고 신사다워 ‘보일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라는 그런 멜로디를 간파하고도 남는다.

 


사라: 세상에, 오직 환상만이 아빠에겐 현실이야. 그런 동화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굉장해. 그런데 내 일을 걱정하면서 아빠의 환상을 낭비할 필요는 없어.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술이나 마시고 내 일에는 신경 쓰지 마. 아빠! 아빠는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도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해? 제정신이 아니야. 뭐가 거짓이고 환상이고, 뭐가 사실인지 전혀 분간이 안 돼? (<시인의 기질>, 59쪽)


사라에게는 한 가지 소망이자 희망이 있는데, 바로 여관 2층에 머물고 있는 사이먼과 결혼해서 이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는 것이다. 사이먼은 하버드대를 졸업한 몽상가로 하포드 가(家)의 상속자이다. 오두막에서 홀로 살면서 자연과 하나가 된 삶을 꿈꾸던 그는 사라를 사랑하게 되었고, 몸이 좋지 않아 사라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여관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사이먼의 배경을 아는 사라는 물질과 신분 상승을 꿈꾸며 어떻게든 그와 결혼하려고 애를 쓴다. 사실 사이먼의 집안인 ‘하포드 가(家)’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진 오닐은 1755년부터 1932년까지 거의 200년 동안 하포드 가(家)의 역사를 추적하는 11편의 드라마를 썼다. 하포드 집안 이야기를 통해 그는 미국 자본주의 정신이 타락해 가는 과정과 물질적 탐욕으로 인해 인간성이 어떻게 상실됐는지를 비판하고자 했다. 한 집안의 역사를 추적하고 그와 얽힌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미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그리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1편의 작품 중 대부분은 유진 오닐이 죽기 전에 불태워 버렸고, 지금은 <시인의 기질> 등 단 세 편만 전해지고 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이 <시인의 기질>은 하포드 가와 얽힌 멜로디 집안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하포드 집안사람들이 나타나면서 멜로디 집안은 위기를 맞는다. 사이먼과 사라의 관계를 떼어놓으려고 하포드 가에서 손을 쓰게 되는데, 그로 인해 ‘멜로디’의 환상이 서서히 부서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환상이 무너지고 난 뒤의 멜로디는 더없이 처참하다. 더 이상 신사이기를 포기한 그는 딸에게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폭언을 퍼붓는다. 사이먼이 아니라 여관에서 일하는 말로이가 사라의 상대로 적합하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너와 말로이는 잘 통할 거야. 사투리도 잘 어울리고. 그는 건장한 동물이지. 너희 둘은 가축우리 같은 집의 진흙 바닥 위에서 소리 지르면서 돼지들과 싸울 무식쟁이 애들을 많이 나을 수 있을 거야.’ 집안에 감도는 이상 기운 때문인지, 멜로디에게 한없이 순종적이기만 했던 노라마저도 남편에 대한 진짜 자기 생각을 사라에게 털어놓기도 한다.



노라: 자기 자신하고 자기 자존심 말고는 누군가를 생각해 본 사람이 아니야. 맞아. 빌어먹을 영국의 빨간 군복을 입고 있는 위대한 신사인 네 아빠가 나를 생각한 적은 없었어. 자존심 하나는 대단해! 그런데 그게 허상 아닌가? 더러운 술집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을 잘 속여 먹는 네드 멜로디의 핏줄 아닌가? 아니야! 이런 말 하면 안 돼! 결코 안 돼! 네 아빠는 자신의 환상을 결코 비웃지 않을 사람이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시인의 기질>,164쪽)


이 가정에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하포드 가와 어떤 일이 있었기에 고고한 ‘신사’였던 멜로디는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졌으며, 또 노라는 왜 그토록 멜로디에 대한 신랄한 발언을 딸에게 하기에 이르렀을까? 멜로디가 보기에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몽상가이면서 어수룩’한, ‘시인의 기질이 있는’ 사이먼은 탐욕스러운 사라에게는 ‘식은 죽 먹기’와도 같은 제물이다. 사라는 정말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을까? 멜로디가 바이런을 읊으며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그러나 끝내 가질 수 없었던 ‘시인의 기질’을 하포드 집안의 장남인 사이먼은 정말 갖고 있을까? 이 모든 궁금증은 <시인의 기질>을 직접 읽는 독자들만이 알 수 있으리라. 


멜로디가 그토록 아낀 순종 말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환상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환상은 살아갈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바이런의 시와 순종 말 한 마리, 잘 다려진 군복. 이런 것들만을 좇던 멜로디의 허세는 한심스러웠지만,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의 모습은 어쩐지 가엾기도 하다. 이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의 환상이 필요한 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한다. 사람을 살게도 하고 또 때로는 죽게도 하는 환상의 실체가 <시인의 기질>에서는 생생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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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아의 고백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9
알프레드 드 뮈세 지음, 김미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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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세와 조르주 상드의 실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작품. 뮈세 버전의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나 할까. 뮈세의 아름다운 문장 때문에 작품이 한결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사랑의 거의 모든 것-이렇게 사랑해야 하지만, 또 이렇게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까지-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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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05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요즘 리뷰가 왜 이리 짧으세유?ㅎ

잠자냥 2018-12-05 14:20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냥 책 읽은 기록용으로 100자평만 올리고 있네유. ㅎㅎ

카알벨루치 2018-12-05 14:22   좋아요 2 | URL
그럼 안되유~기달리는 독자들이 있는뎅~잠자냥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좋은 작가를 만났는지 감솨하고 있습니다 늘~

잠자냥 2018-12-05 14:31   좋아요 1 | URL
눼 명심하겠습니다. ㅎㅎㅎ

봄밤 2018-12-05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르주 상드의 실제 사랑을 바탕으로 했다니 궁금하네용! 꼭 읽어봐야겠어요! :)

잠자냥 2018-12-05 21:59   좋아요 0 | URL
네, 이 작품 자체로도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