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두 페소아를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렇게 말하니, 페소아를 다룬 영화라도 상영하는지 오해할 수 있는데, 정확히는 ‘페소아의 작품을 바탕으로 하거나 그로부터 영감을 얻은 영화들’을 상영하는 영화제이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12월 13일 목요일부터 23일까지 딱 열흘 동안만 열린다.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고 영화들도 단편이거나 상영 시간이 짧아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을 것 같지만 페소아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닐까.
내가 관심 가는 작품은 크게 셋이다. 먼저 주앙 보텔료 감독의 <불안의 영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영화 소개를 살펴보면, 리스본에 살고 있는 한 남자가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실과 구분하기 힘든 신비한 꿈을 꾼다는 내용으로 그림 같은 화면과 연극적인 연출, 몽환적 분위기로 인간의 고독을 그려나간다. 고요하고 적막한 리스본 풍경과 남자의 혼란스러운 표정 뒤로 <불안의 책> 구절이 흐른다고.

<불안의 영화>의 한 장면
페소아의 이명인 ‘알베르토 카에이로’ 시 ‘양치는 사람(O Guardador de Rebanhos)’의 낭송을 들을 수 있는 작품 <금발 소녀의 기벽>도 궁금하다. 이 작품은 상영 시간은 1시간 남짓으로 그리 길지 않은데 2015년, 106세의 나이로 타계한 포르투갈의 거장 올리베이라 감독의 작품이다. 삼촌의 사무실에서 회계로 일하는 한 젊은이의 사랑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로, 주인공 마카리오는 사무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 사귀게 되고 결혼하려고 하지만 매번 다른 장애물이 나타나면서 결혼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관련 자료를 찾다가 접한 몇몇 스틸 컷만으로도 독특한 미장센이 특징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금발 소녀의 기벽>의 한 장면
거의 평생을 리스본에서 살았던 페소아가 관광객들을 위해 영어로 쓴 리스본 가이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인 <페소아의 리스본>도 흥미로워 보인다. 1920년대에 쓰인 페소아의 리스본과 2000년대 리스본의 풍경의 대비가 독특한 향수를 만들어낸다고. 이 영화를 보면 당장 리스본으로 날아가고 싶어지는 건 아닐지.
평생 75개에 이르는 이명을 갖고 있었던 페소아. 이 영화들을 본다 해서 절대 그의 수많은 정체성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페소아가 남긴 일기나 시, 에세이를 읽는 편이 그를 아는 데 한결 도움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스크린 속에서 페소아의 향기를 만날 수 있다는 건 그의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분명 반가운 소식일 듯. 그나저나 아예 페소아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무척 흥미로울 것 같은데....
상영작 목록 및 상영 시간표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http://cinematheque.seoul.kr/rgboard/addon.php?file=programdb.php&md=read&no=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