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셰리Cheri’- 마흔아홉의 레아가 사랑에 빠져버리는 남자, 스물다섯 그의 애칭은 셰리- 이 작품에서는 ‘소중한 아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애지중지하는 사람’,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더 잘 어울린다. 레아가 셰리를 셰리라고 달콤하게 부를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다른 셰리가 떠오른다. 내 머릿속의 그는 바로 ‘셰리Sherry’ 어처구니없게도 식전주의 대명사 셰리이다. 식사 전 입맛을 돋우기 위해 마시는 술, 셰리- 그런데 묘하게도 그 셰리와 이 셰리가 잘 어울린다. 그러니까 레아의 소중한 아이 셰리Cheri는 그녀에게 한때는 식전주 셰리Sherry 같은 존재였다. 상쾌하면서도 가벼운, 부담 없이 마시기 좋은 그런 존재- 그런데 가볍게 입을 댄 그 술에 그렇게 독하게 취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레아도 셰리도 몰랐으리라.
셰리에게도 레아를 부르는 애칭이 있다. ‘누누nounou’- 셰리는 레아를 누누, 그러니까 유모라고 부른다. 유모?! 동공지진해지는 순간이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 차이도 그렇지만, 어린 녀석이 제가 사랑에 빠지는 마흔아홉의 여자를 유모라고 부른다면 그것이 과연 애칭인지, 조롱인지 아리송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불리는 당사자 레아가 불쾌해하지 않으니, 둘 사이에서만 통하는 서로의 애칭이라 인정하기로 하자. 그러니까 유모와 소중한 아이의 이 파격적인 사랑을 콜레트는 대담하게 그려나간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남자 나이 마흔아홉에 여자 나이 스물다섯이라고 해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기보다 욕 처먹기 딱 좋은데 그 반대의 조합이니 더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유모가 아이를 키워서 잡아먹는 이야기인가 오해하기도 딱 좋다.
여기서 잠깐 고개를 돌려보자. 내 마음에 드는 여자로 길러서 잡아먹고 마는 이야기들이 일찍부터 존재했다. 저 먼 서구가 아니라 동양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 그러니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치인의 사랑>(또는 <미친 사랑>)이 그러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다니자키 준이치로에게 영감을 준 것이 틀림없는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의 ‘히카리 겐지’와 ‘무라사키노 우에’의 관계가 그러하다. <치인의 사랑>에서 ‘조지’는 열다섯 살 소녀 ‘나오미’를 데려다가 키워서(아니 다 키우기도 전에) 잡아먹고, <겐지 이야기>의 ‘히카리 겐지’는 열 살 소녀 ‘무라사키노 우에’를 데려다가 역시 자기 취향대로 키워서(아니 다 키우기도 전에) 잡아먹는다. 그렇다면 유모 ‘레아’도 자신의 소중한 아이, 그러니까 셰리를 미성년 시절부터 제 취향대로 키워서 낼름 잡아먹는가?! 싶어지는데 그나마 그건 아니라서 다행스럽다. 게다가 저 ‘조지’나 ‘겐지’처럼 미성년자인 소녀들을 상대의 동의 없이(동의고 뭐고 판단하기도 어려운 나이에) 낼름 잡아먹는 게 아니라, 레아는 셰리를 어릴 때부터 죽 지켜보긴 했지만 그가 열아홉 살이던 그 어느 밤, 처음으로 키스, 식전주 같은 키스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그 짧은 키스가 두 사람의 가슴속에 서로를 향한 고깃덩어리 같은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말았으니, 둘은 식전주는 이제 제하고 본 코스로 들어가 그 이후 6년 동안 서로를 탐하는 사이가 된다.
미성년일 때 시작한 사이도 아니고, 서로의 동의 아래 이뤄진 키스&육체관계이니 둘 사이에 무엇이 문제일까 싶은데, 스물다섯이라는 나이 차이는 동서양 막론하고, 특히 여자가 남자보다 연상일 때는 문제가 되기 쉬운 모양이다. 레아의 친구이자 셰리의 엄마는 자기의 잘난 아들을 그 또래의 귀엽고 발랄한 젊은 여성에게 장가보내고 싶다. 문제는 셰리 이놈인데, 이 철딱서니 없는 망나니 같은 녀석도 엄마의 뜻을 받들어 자기 또래의 젊은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6년 동안 이어진 유모와 못된 아기의 사랑은 우쭈쭈쭈 내 소중한 아기 셰리의 결혼과 함께 끝을 봐야 하는 셈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차피 서로 쾌락을 위해 맺어졌던 관계였으므로 짐짓 가벼운 척, 별것 아닌 척, 쉽게 헤어지기로 결정한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쉬운 이별이 어디 존재할까? 심지어 무려 6년이나 이어진 관계이다. 게다가, 못된 아기 셰리 못지않게 레아 또한 못된 유모가 아닌가. 이 둘의 관계를 지켜보면 서로 좋아 죽는 게 눈에 보이는데도(두 사람만 그걸 모른다), 서로의 앞에서는 질투도 나지 않는 척 못 보면 못 봐서 힘들지 않은 척, 그립지도 않은 척,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사는 척 등등 온갖 척을 다한다. 이 두 사람을 지켜보노라면 서로 누가 안 사랑하는 척, 덜 사랑하는 척 내기라도 하는 듯 보일 지경이다. 그런데 다 보인다. 둘 다 서로 없이 못 살 거라는 거. 쿨내 진동하지만 전혀 쿨하지 못한 두 사람.
“하지만 혼자가 아니잖아! 그 여자애도 있잖아....”
“물론, 그 여자도 있지, 많은 부분은 아니지만 있긴 있지.”
“그리고 이제 더는 내가 없고.”
셰리는 대답을 말 대신 얼굴로 내비쳤다. 어쩔 줄 모르며 흔들리는 동공, 순식간에 핏기가 빠져나간 입술, 일그러진 표정, 그는 그녀가 숨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심호흡을 한 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당신은 늘 있을 거야, 누누.” (p.73)
그들은 저토록 가볍게(?) 헤어진다. 헤어지는 그 순간 레아는 너무도 능숙하게 자신의 본심을 숨기면서 잘 다스린 것, 한순간 복받친 이별의 격한 감정을 숨긴 것, 절대 해선 안 될 말을 삼킨 것, 진심을 털어놓으며 애원하고 우기고 매달리지 않은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그 이후 둘은 저마다 고통 속을 헤맨다. 레아는 레아대로 이 남자 저 남자 찾으며 가벼운 관계를 지속하지만 공허하다. 자신의 늙어가는 육체가, 시들어가는 육체가 짐짓 야속하기만 하다. 셰리는 셰리대로 젊은 아내와의 생활에 잘 적응하는 척하지만 얼마 못가 집을 나오고 호텔에 살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돈을 주고 사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그는 레아 이야기를 실컷 하고 싶다.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레아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지 못한다. 흉을 보는 척, 비판하는 척하면서도 그 본질은 결국 레아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는 ‘계속해서 떠들면서 박해받은 연인의 고충을 암시하는 너절한 말들 뒤에 숨어, 위험없이 레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은밀한 행복을’ 누리고 ‘조금 더 레아의 평판을 해치면서 속으로는 고이 간직한 그녀와의 추억을’ 기린다. ‘여섯 달 동안 불러보지 못했던 그 다정하고 쉬운 이름을 마음껏 발음하면서 레아의 모든 자애로운 모습을’ 떠올린다. 레아는 없지만 지독히도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pp.121~122)
못된 아기 셰리의 이 모습에서는 바보 같은 녀석! 하면서도 쓸쓸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군가를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그런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더는 마음껏 할 수 없는 상황이나 사이가 된 후라면 그런데도 그저 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은, 그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듯한 느낌인 그 기분을 아는 사람이라면, 셰리가 돈을 주고서라도 레아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싶어 하는 저 감정에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레아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와의 시간을 되찾은 듯 행복한 셰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를 찾아간다.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레아 앞에서 절규한다. 이제는 덜 사랑하는 척, 당신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척, 위악적인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 아니 할 수가 없다. 여자 때문에 고통스러운 게 뭔지 않다고, 당신 이후에 나를 기다리는 관계는 다 하잘것없어졌다고, 당신 때문에 난 망했다고 외치면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당신이 어디에도 없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늘, 그 6년 전의 첫 입맞춤 이후로 그를, 그녀를 지배해 온 감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숨긴다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진실. 잃어버린 후에나 터져버린 진실 앞에서 셰리와 레아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이 두 사람 앞에는 이제 행복이 펼쳐질까? ‘건물 꼭대기 층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추락 중에 느낄 수 있는 어리석은 희망이 그들 사이에 반짝’(p.199)인다. 그러나 그 이후 ‘사라졌다’는 구절이 서늘하게 더 와 닿는 것은 사랑의 속성이 대개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가엾은 셰리... 생각하면 재미있어. 너는 쇠락한 늙은 연인을 잃음으로서, 나는 스캔들 급의 젊은 연인을 잃음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소유했던 세상에서 가장 명예로운 것을 잃었으니 말이야....’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