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말이야, 그렇게 벌써부터 술에 절어 살면 쉰도 못 채우고 주님 곁에 가게 된다고!” 불쌍하지만 불쌍하지는 않은 캐럴라인이 주디스 헌에게 말한다. 그러자 이미 소주 댓병은 깐 듯붉어진 코와 고꾸라진 혀로 주디스 헌이 대꾸한다. “이 할망구야, 그렇게 일흔이 넘도록 열심히 살아봤자 결국 당신이 가는 곳은 차디찬 무덤일 뿐이잖아! 거기가 천국이라고 생각해? 바로 지금 여기 주님 곁이 천국이야!” 그러고는 또 꿀꺽꿀꺽 술을 마시고 입술을 훔친다. 캐럴라인은 그 중년의 술주정뱅이가 못내 못마땅해 혀를 끌끌 찬다. 나의 크리스천 키네마사가 저렇게 정신적으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해주어야 하거늘!
<불쌍한 캐럴라인>은 읽는 내내 외로운 열정을 지닌 주디스 헌을 떠올리게 된다. 주디스 헌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만약 갱생(?)이라도 한다면 그래서 오래 살게 된다면 이렇게 늙지 않을까 싶은 인물이 바로 캐럴라인이다. 그런데 그렇게 늙어도 그 앞에는 여전히 ‘불쌍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캐럴라인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그녀를 언급할 때 ‘불쌍한 캐럴라인!’ 하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들은 캐럴라인을 불쌍하다고, 아니 가엾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캐럴라인은 연민이 든다기보다는 뭐랄까 불쌍하기는 한데 그 불쌍함 끝에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차게 하는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 예컨대, 주디스 헌을 생각할 때 사람들이 아. 그 여자 참 안됐지만 내가 딱히 엮이고는 싶지 않아....하는 그런 마음이랄까.
캐럴라인은 일흔두 살에 생을 마친다. <불쌍한 캐럴라인>은 캐럴라인의 장례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노파의 장례식에 다녀온 친척들은 장례 현장을 묘사하면서 한 번 더 혀를 끌끌 찬다. “불쌍한 캐럴라인!” 그런데, 상속 이야기는 뭐야? 이 가난한 노친네가 어디서 그렇게 유산이 많이 생겼어? 궁금증이 인다. 주디스 헌과 달리 이 노파는 부자이긴 한가 싶은데 웬걸, 이윽고 독자는 알게 된다. 있지도 않은 돈으로 누구에게는 몇 천 파운드를, 또 누구에는 몇 천 파운드를 주겠다는 대단한 유언장을 남긴 것이다. 그 유언장 이야기를 듣고 한 조카는 코웃음을 친다. “대단한 기생충, 엄청난 멍청이, 기막히게 지루한 분, 크나큰 고통거리”였던 그 할망구가 그렇게 엄청난 재산을 남겼을 리가 없다고. 하지만 혹시 그게 진짜는 아닐까? 친척들은 모르지만, 이 노파가 크리스천 키네마사라는 회사를 차리고 그 영화사에 투자를 받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 분주하게 뛰어다녔는데, 실은 엄청난 부자가 아니었을까? 독자는 서서히 이 노파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간다.
크리스천 키네마사- 이름은 그럴듯하다. 명분도 있어 보이고 영화 산업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이는 발명가도 이 회사 소속(?)이다. 이제 투자만 받으면 된다. 투자자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오호, 이 노파 수완이 좋구만! 싶은데 뭔가 좀 뜯어 먹을 게 있어 보이는 노인에게는 잔머리를 굴리는 사기꾼들이 들러붙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사기꾼들도 그 면면을 보면 불쌍한 캐럴라인 못지않게 불쌍하다. 일단 사기를 치려는 상대를 좀 잘못 고른 느낌이 든다. 애초부터 부자인 사람, 기꺼이 봉이 되어줄만한 사람을 잡았어야지 캐럴라인처럼 혼자 하숙집에 사는데 집세는 밀리고, 친척이 준 낡은 옷을 입고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일들을 하겠다고 여기저기 종종거리고 다니고, 아무도 실어주지 않는 글을 쓰고, 저녁밥으로 마가린 바른 빵을 먹는 노파를 선택하다니, 참으로 불쌍하지 아니한가.
그렇다. 캐럴라인도 주디스 헌도 둘 다 가난한 비혼 여성이다. 한 사람은 노파, 한 사람은 중년에 접어든 나이. 그리고 가난하기 때문에 멸시당한다. 만일 그들에게 돈이 있었다면 그 주변 사람들이 그녀들을 그토록 철저히 무시했을까? 둘 다 외모도 매력적이지 않다. 성격도....그다지 호감 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두 사람 다 주변사람들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도 외로움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해소하려고 한다. 여기서 이들의 더 큰 문제와 고독이 발생한다. 주디스 헌은 자신의 결혼 상대자로 잘못된 사람을 선택하고 오, 캐럴라인! 일흔이 넘은 그녀조차도 여전히 로맨스에 불타오른다. 사실 난 이 두 사람이 그 나이에도 여전히 로맨스를 통해 삶을 바꿔보려고 한다는 점에서 꽤 답답했다. 열정을 불태우기 전에 돈을 벌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 두 주인공이 살던 시절은 지금과 다르고 배움이 없고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 여성들이 직업을 선택하고 재산을 유지하고 지키면서 위엄 있게 살기란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은 한다. 그럼에도.........
이 두 사람과 상반된 인물이 <불쌍한 캐럴라인>에 등장하기는 한다. 캐럴라인의 먼 친척뻘인 젊은 여성 엘리너가 그렇다. 엘리너는 부모를 일찍 여의긴 했으나 상당한 유산을 받았다. 게다가 배움도 있고 자기 생각도 또렷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목표 의식도 있다. 작가인 위니프리드 홀트비의 분신이 바로 이 엘리너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자신이 지닌 특권을 알고 있고, 그 특권을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라 부모를 잘 만나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걸 괴롭게(부끄럽게) 여길 줄도 아는 사람이다. 그런 고민 때문에 가난한 친척인 캐럴라인을 만났을 때 크리스천 키네마사가 가망이 없어 보임에도 선뜻 거금을 투자해준 것이다. 그리고 캐럴라인은 엘리너의 이런 상황과 심리를 알고 그녀를 십분 활용한다. 투자금도 받아, 돈이 없을 때마다 빌리는 것이라면서 돈도 달라고 해.... 심지어.............
엘리너는 캐럴라인이나 주디스 헌에 비해 젊다. 이제 이십대이다. 그러나 캐럴라인, 주디스 헌처럼 곁에는 이제 그녀를 보호해주거나 돌봐줄 사람이 없다. 부모는 죽었고 하나뿐인 오빠는 미국 땅으로 건너가 그녀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돈이 없다면, 배움이 없다면 엘리너의 삶도 주디스 헌이나 캐럴라인과 비슷해지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게다가 이 작품에서 묘사하기에 엘리너 또한 그다지 매력적인 외모는 아니다. 옷차림도 행색도 소년에 가깝다. 그런데도 그녀 주변의 남자들은 캐럴라인이나 주디스 헌과 달리 엘리너에게는 매력을 느낀다. 왜일까? 젊어서? 돈? 물론 젊음과 돈은 중요하다. 엘리너의 매력을 만드는 데 돈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엘리너는 돈만 가진 젊은 여성이 아니다. 엘리너는 자신에게 주어진 돈으로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 배움은 그녀를 똑똑하게 만들었고, 엘리너에게 반하는 남성들은 특이하게도(특이한 건 특이한 것이다. 아마도 작가가 여성이라 여성의 똑똑함에 반하는 남성 캐릭터를 창조했는지도...-_-) 그녀의 지성미에 반한다. 대화가 통한다고 좋아한다. 그리고 엘리너는 이 배움이 있기 때문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고, 앞으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들의 구애를 뿌리칠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감 넘치게 자기들을 거절하니까 남자들은 더 안달이 난다.
캐럴라인이나, 주디스 헌이나 비혼으로 나이 들어가는 여성에게는 무엇이 꼭 필요한지 일깨워준다. 자기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돈이 꼭 필요하다. 돈이 그리 많지 않다면 무언가 다른 일을 계획할 수 있고 꿈꿀 수도 있는 배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제력과 배움, 이 두 개를 다 갖췄었다면 주디스 헌도 캐럴라인의 삶도 덜 외로웠을 테고, 덜 비참했을 것이다. 캐럴라인은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하고자 했고 신념을 지켰다고는 하는데 글쎄... 주변에 손을 벌리고 신세를 지면서 지켜나가는 신념이란 내게는 빛이 좀 바래 보인다. 돈도, 배움도 있었던 엘리너가 주디스 헌이나 캐럴라인과는 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녀 또한 결국 로맨스에 안착하고 마는 것 같아 약간, 아니 아주 좀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