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K. 딕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대 때였다. 그의 작품을 읽은 것은 아니었다. <블레이드 러너>- 컬트 팬을 거느린 그 영화 때문이었다. 1982년작- 이 오래된, 낡은 듯한 작품에 왜 그토록 많은 SF팬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처음 보았을 때는 난해하고 지루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그 음울한 분위기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서 내가 무언가 놓쳤을지도 몰라 하는 마음에 그 후에도 몇 번쯤 더 보았다. 그리고 최근의 <블레이드 러너 2049>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되었다. 당연히 영화의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찾아 읽었고 그렇게 필립 K. 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재미나게 본 많은 영화- 그러니까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첵> 같은 작품의 원작도 모두 필립 K. 딕, 그가 쓴 것임을 알고는 SF 장르를 딱히 좋아하지 않음에도 그 원작들은 찾아서 읽었다.

딕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다. 하나 같이 기억이 불분명하거나 아예 잃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이번에 <필립 K. 딕의 말>을 읽으면서 나는 그러한 인물들, 그리고 그 미미한 인물들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세계가 필립 K. 딕 그의 정신세계이자 고난에 찬 삶의 반영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평생 44권의 장편과 120여 편에 달하는 중단편을 발표했지만 살아서는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낮은 고료를 받으면서 생활고에 시달렸다. 수년 동안 중추신경 흥분제인 암페타민을 복용하며 작품을 썼고 이런 자기파멸적 생활 습관은 그에게 뒤늦은 명성을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주변 인물들과는 불화할 수밖에 없었고(5번의 결혼과 이혼), 우울증, 편집증, 망상, 불안, 공황장애 등에 시달리게 했다. 한마디로 이 책에서 말하듯 고립감, 고뇌, 갈망, 가난함은 딕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창작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그는 고독함을 달래기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과 사랑에 빠진다. 딕이 만들어낸 인물들은 모두가 그의 친구였다. 때문에 그는 책을 탈고하고 나면 상실감으로 우울증에 빠질 정도였다. 그는 말한다. “다시는 그 친구들의 말을 들을 수 없고, 다시는 그 친구들이 고투하고, 역경에 맞서 싸우는 걸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니까. 소설을 탈고한다는 건 친구들을 영영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야.”(38쪽) 고립감 속에 글을 썼던 그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로부터 위안을 얻었는데 무엇보다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이 엄청난 용기를 발휘하는 순간을 묘사하면서 가장 큰 기쁨을 느꼈다. 설령 그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현실 세계에 어떤 파문도 남기지 못한다고 해도 그랬다. 그래서 딕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쓰는 소설은 그의 용기에 대한 찬가”(39쪽)라고. 이런 그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까지 그가 빚어낸 인물들, 그 평범한 인물들의 고뇌와 분투-SF라는 어쩌면 너무나 헛된 공상의 세계임에도 그 세계를 살아가는 그들의 쉽게 지지 않으려는 투쟁만큼은 왜 그토록 마음에 남았는지 수긍하게 된다.


그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쩌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에서 어떤 의미를, 하나의 질문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일 수 있는 것에서 어떤 대답을 찾는 범주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의 직업이 하는 일은 바로 이런 질문들을 상상하는 거였다.

딕이 전에 쓴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들에서, 주인공은 세계의 질서에 관련된 엄청난 비밀을 우연히 발견하고, 믿으려는 이 하나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명하려고 무진 애쓴다. (엠마뉘엘 카레르, <필립 K. 딕>, 72쪽~80쪽 발췌)



어린 시절 필립 K. 딕을 우상으로 섬겼던 엠마뉘엘 카레르가 쓴 딕의 평전 <필립 K. 딕>에서는 재미난 일화가 나온다. 인간 심리에 관심이 많았던 딕은 어린 시절에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리 테스트를 해보곤 했는데,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어떤 종류의 정신병에 대한 성향이 강한지 보기 위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질문했을 때,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답하는지를 살폈다. 애초부터 평범한 이들의 정신세계에도 뭔가 하나쯤은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이런 사고를 하게 된 원인은 아마도 스스로 정신에 일종이 균열이 있음을 인지했고 그 균열에서 다양한-또는 특이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았기에 타인 또한 그렇지 않을까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그는 <화성의 타임슬립>에서 ‘정신병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자신을 비롯하여 인간의 정신세계에 그가 이토록 관심이 깊었던 것은 대부분의 인간들은 ‘우리의 세계가 침식당하고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받을 뿐 우리의 개인적 통일성을 향한 침략이 어디서 오는지도 알아차리지 못’(114쪽)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즉 그의 이러한 ‘주관적 세계’에 대한 탐구는 한 인물의 세계가 그보다 더 강한 위치에 있는 다른 사람의 세계에 침식당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런 섬뜩하고 기괴한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경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강자에 의한 침식- 딕은 20세기의 가장 큰 위협을 전체주의적 국가로 보았다. 그가 보기에 전체주의는 국가뿐만이 아니라 좌파 파시즘, 심리학적 운동, 종교운동, 마약중독 재활 단체, 권력자들, 책략가들 따위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었고, 심리적으로 자기보다 더 강한 위치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경향이 나타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본질적으로 이런 권력 관계에서 약자의 위치에 속하는 사람들, 즉 강하지 못한 사람들을 옹호했다. 그의 소설에서 매번 약자들이 주인공이 되어 분투하는 이유이다.


본질적으로 내가 옹호하는 대의는 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의야. 만약 나 자신이 강자였다면 전체주의를 그렇게 큰 위협으로 느끼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난 강자가 아니기 때문에 약자에게 공감한다네. 내 소설의 주인공들이 본질적으로 반反영웅들인 건 바로 그 때문이야. 거의 루저에 가까운 친구들이지만, 나는 혹독한 세상에서도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특질을 부여하려고 노력한다네. 그러는 동시에, 폭압에 대항하려고 같은 수단을 쓰다가 어느새 상대방처럼 착취적이고 조작적인 인간이 되어버리는 걸 보고 싶지는 않고. (<필립 K. 딕의 말>, 114~115쪽)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와 함께 그가 끊임없이 고민했던 주제는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였다. 딕은 <인간과 안드로이드 The Human and the Android〉라는 강연에서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질문한다. 그가 보기에 이 인간 사회에도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이지만 실제로는 안드로이드인 사람들이 있었다. 컴퓨터는 날이 갈수록 예민한 사고력을 가진 존재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은 점점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딕은 이 강연 원고를 작성하면서 아직은 인간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인간성을 강화해줄 필요가 있음을 절감한다. 딕이 생각하는 진정한 인간은 다음과 같다. “그릇된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걸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 “아니, 나는 죽이지 않을 거야.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존재.” “뇌물로 매수할 수 없고, 겁을 줘서 어떤 일을 강요할 수도 없고, 프로파간다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불법적인 시스템에 대해 불법적인 저항운동을 개시할 필요성을” 아는 존재, “법 자체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법을 어길 수도 있는”(54쪽) 존재…. 이런 정의를 읽노라면 현대는 이미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이지만 실제로는 안드로이드인 인간들의 디스토피아가 된 것은 아닌가 씁쓸해지기도 한다.

“진정한 인간과, 단지 진정한 인간을 흉내 낼 뿐인 존재들 사이의 괴리”(149쪽)를 끊임없이 고민했고, 현실 세계에서는 딕 그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친구들의 수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 속에 반영웅들을 창조한 그, 그리고 소설에서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이 엄청난 용기를 발휘하는 순간을 그리면서 무엇보다 큰 기쁨을 느꼈던 그. 필립 K. 딕은 전체주의적 국가에 맞서 각자의 고유한 세계를 지켜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안드로이드가 아닌, 진정한 인간으로서 각자의 고유한 세계를 지켜내는 일은 그가 살았던 20세기보다 이 21세기에 더더욱 중요하고 그래서 더 어려운 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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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3-28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레이드 러너 애정합니다 ㅋㅋ 그의 빻음까지도 😉

잠자냥 2023-03-28 17:25   좋아요 2 | URL
필립 K. 딕도 인간으로서는 좀 싫은 면이 있는데 ㅋㅋㅋㅋ 그 빻음까지 투영 ㅋㅋㅋㅋ

coolcat329 2023-03-28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K.딕이 이런 고민을 한 작가였군요.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인간이란 생명체가 있는 동안에는 반드시 계속 물어봐야 하는 질문 아닌가 싶습니다.
멋진 표지의 <안드로이드...> 책 갖고 있는데 또 잊고 있었네요. 블레이드 러너도 안봤구요. 작가 외모도 너무 맘에 듭니다. 😍

잠자냥 2023-03-28 21:41   좋아요 1 | URL
안드로이드… 하고 블레이드 러너 한번 보세요. 놀라운 점은 <안드로이드…> 단편이라는 거! 저도 예전에 깜놀. 영화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 대다수가 단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감독들 역량도 한몫한 거 같습니다. 그나저나 쿨캣 님 외모 취향!

coolcat329 2023-03-28 22:21   좋아요 0 | URL
헉 안드로이드가 단편인가요? 지금 찾아보니 22장 구성으로 장편같은데 중간에 이야기가 끊기나요?
책 읽고 영화도 꼭 보겠습니다~^^
근데 사진 확대해서 다시보니 제가 좀 마음이 성급했네요😅

잠자냥 2023-03-28 22:26   좋아요 2 | URL
앗 제가 <토탈 리콜>하고 헷갈렸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장편 맞습니다! ㅎㅎㅎ 사진 확대 성급 ㅋㅋㅋㅋㅋㅋ

DYDADDY 2023-03-28 19: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유하지 않는 인간과 사유하는 안드로이드 중에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인가라는 의문에서 안드로이드는 약자이기 때문에 사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약자인 우리가 강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무기 중 하나가 ‘사유함‘이라는 생각을 얻어갑니다. ^^

잠자냥 2023-03-28 21:42   좋아요 1 | URL
오 대디 님 오늘의 베댓 갑니다! ㅎㅎㅎ

DYDADDY 2023-03-28 23:48   좋아요 0 | URL
아렌트 누님이 무사유는 악이라고 규정하셨기에 약자인 우리가 도덕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사유함이라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자신의 행동을 무엇이든 합리화할 수 있는 무사유의 강자에게 대항할 수 있겠죠. ^^
저의 ‘오늘의 베댓‘은 블레이드 러너의 빻음까지 애정하는 공쟝쟝님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stella.K 2023-03-28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자기가 창조한 인물에 빠지는 작가가 있긴하군요.
피그말리온과 같은..
좀 자기파괴적 인물이었네요. 흠...

잠자냥 2023-03-28 21:43   좋아요 1 | URL
소설 속 인물들이 친구 같았다는 말에선 참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신적으로는 많은 고통이 있었던 사람 같습니다.

우끼 2023-03-28 21: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날 인간의 윤리가 무엇이어야 할지에 관한 논의가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논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좌파파시즘이라 표현하는 것이 괜찮은지 의구심이 들어요. 이미 불평등한 사회에서 고통받는 생명들이 있고, 그걸 발화하는 것을 막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ㅠㅠ 이것은 파시즘이 아닌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시스템이 개인의 윤리적 행위를 가로막고 있다면, 그것을 지적하는 것도 좌파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DYDADDY 2023-03-28 21:39   좋아요 3 | URL
파시즘은 아직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개념이지만 최소한의 합의점은 민족공동체를 신화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포퓰리즘입니다. 즉 민족주의, 신화, 포퓰리즘의 세 키워드를 놓고 보았을 때 좌파는 최소한 민족주의와 신화를 배격하기 때문에 좌파 파시즘이라는 어구는 그저 이어서 쓴 글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파시즘은 ‘나쁜 놈‘과 등치하여 사용하는 말도 안되는 현상이 있다보니 좌파 나쁜놈이라고 말하는구나 라고 이해하셔도 되지만 논박하고 싶으실 때에는 파시즘에 대한 너의 정의는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됩니다. 참고로 파시즘과 전체주의는 다른 개념입니다. ^^

잠자냥 2023-03-28 21:48   좋아요 2 | URL
최소한 우리나라에서 쓰는 좌파파시즘이라는 말은 잘못 사용된(나쁜 의도로) 말 같고요, 윤리에 대해 아무런 고민이 없는 사회, 윤리를 말하면 오히려 비정상인 취급받는 사회가 현재의 대한민국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이지만 안드로이드보다 못한 인간들이 많은 사회 같기도 하고요….

우끼 2023-03-28 22:30   좋아요 1 | URL
대디님, 제가 이해한 파시즘은 직접적 폭력 없이 배제하는 구조적이고 포퓰리즘적인 폭력이었어요. 더불어 살기 위해 인간을 한계짓는 것이 윤리이기 때문에 한계짓는다는 특성때문에 윤리가 파시즘이라는 명칭을 얻는다면, 그 또한 위험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체주의와 파시즘을 어떻게 구분하고 계신지도 궁금하네요 ㅠㅠ 저는 거의 비슷하게 생각했던것같아요

자냥님 그렇군요 ㅠ 자냥님께서 사용하는 좌파파시즘은 어떤 맥락이었을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윤리에 대한 고민이 없는 사회가 이상하다는 점은 정말 동감해요 ㅠㅠ 윤리적인 발언을 지속하는 어떤 사람은 자신을 바보로 지칭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윤리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

잠자냥 2023-03-28 22:44   좋아요 2 | URL
앗 저는 좌파 파시즘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은 없고, 본문에 쓴 글은 필립 K. 딕의 말이었습니다… 만 좌파에서도 파시즘은 있을 수 있죠. 지배자에 대한 절대 복종을 강요한다든가, 자기들만의 이데올로기가 옳다고 생각하여 다른 생각이나 사고에 무조건적으로 배타적으로 굴거나 선민사상에 물들어 있거나 대중의 자발적 사고를 경멸하거나 등등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이데올로기를 수호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제 아무리 좌파 운운한다더라도 또다른 파시즘이라고 생각합니다. 딕도 그런 의미에서 좌파 파시즘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DYDADDY 2023-03-29 00:07   좋아요 2 | URL
전체주의와 파시즘의 차이는 큰 틀에서 보면 없습니다. 한나 아렌트도 파시즘을 본질적으로 전체주의와 동일하다고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주의는 위로부터의 독재 즉 상명하복을 중시하지만 파시즘은 민족주의 공동체 신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대중의 자발적 혹은 선동적 동참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다릅니다. 그리고 파시즘의 시작인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 정권 내에서도 여러 집단의 목소리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던 점도 다른 점이지요. 전체주의도 여러 갈래가 있는데 파시즘도 그 갈래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 전체주의는 어느정도 이론이 확립되어 있는 반면 파시즘은 태생부터 좌파에서 갈라져 나와 부르주아와 함께 하면서 시작부터 이론 자체가 엉성하여 아직도 많은 논란과 학설이 있습니다.
우끼님이 언급하신 직접적 폭력 없이 배제하는 구조적이고 포퓰리즘적인 폭력은 파시즘 이론의 하나인 대중독재라고 생각합니다. 독재가 일방적인 상부의 억압이 아닌 다수의 대중이 직간접적으로 동의했기에 가능하다라는 이론인데 말씀하신 윤리라는 개념이 다수의 찬동이 필요하다는 부분에서는 동의하지만 때로는 윤리적 목소리를 내는 소수도 가능하기에 윤리를 파시즘과 등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수의 사람이 윤리라고 인정하는 것을 파시즘이라 표현하는 것은 상대적 소수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다수와 소수의 의견을 모두 들어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제가 조금 거칠게 평준화하여 말씀드린 부분에 대해 추가로 말씀드릴 부분은 실제로 좌파파시즘이라는 단어는 존재합니다. 파시즘의 뿌리가 좌파이고 스탈린이 사민주의를 비판할 때 썼던 단어입니다. 하버마스도 68혁명 당시에 학생들의 신좌파운동이 폭력적으로 변하자 좌익 파시즘이라는 단어로 비판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파시스트 당 내에서 좌파와 우파가 존재했지만 결론적으로 우파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그 단어는 사장되었죠. 현재 사용하는 좌파 파시즘은 부정적 이미지를 이용한 정치적 비난에 불과합니다.
우끼님 덕에 예전에 정리했던 자료를 뒤적이면서 다시 공부할 수 있어 기뻤어요. 이런 의문이나 질문.. 대환영입니다. ㅎㅎㅎ 제가 올려드린 글에서 우끼님이 궁금하셨던 부분이 아주 조금이나마 풀리시길 바라요. ^^

DYDADDY 2023-03-29 11:21   좋아요 1 | URL
질문하신 부분에 답글을 드려야지 하고 쓴 후에 혹시 덜 쓴 부분이나 오탈자 있나 라고 보는데 우끼님 댓글이 사라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3-29 11:24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오늘은 서재에 좀 늦게 접속했더니 그새 우끼 님 댓글 사라져서 아예 못 봤어요! ㅎㅎㅎㅎ

우끼 2023-03-29 11:29   좋아요 2 | URL
자냥님 상세히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댓글달았는데 제 우려만 너무 길게 적은것같아서 지웠었고.. 답변 달아주신거 보고 뒤늦게 다시 답니다. 사실 페미니즘에 나치즘을 붙여서 말하는, 제입장에선 나쁜 사람들도 있고, 좌파파시즘 역시도 마찬가지의 의미에서 약자를 대변하는 좌파가 부족하고 윤리적 메세지 자체가 설득력도 크지 않은(?) 시대에 윤리에 관한 논의에 개입하고 논쟁할 열의 없이 쉽게 판단내리는 그룹이 사용하고 퍼트리기 쉬운 단어처럼 보여서 경계했던것같아요. 한편으로는 논쟁에 개입하는 것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 자신을 상처입히지 않을 편한 논리를 쉽게 습득하는 것이 더 빈번해서 그런것도 같구요… 사실 논리와 실재 삶에서 실천하는 윤리에는 차이가 있기도 하구요 각자 선택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우리의 선택이 각자를 포함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남은한주 평안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대디님 오 이런 역사적 맥락이 있나요? 공부량이 늘어나는게 살짝 두려워지는 순간입니다 출처를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통일되지 않은 목소리도 파시즘이 될 수 있나요?? 저도 윤리와 파시즘을 동치시키는 건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둘의 차이를 설명해내는 데는 공부가 더 필요할것같아요. ㅠㅠ 답변 상세히 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참고해서 책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DYDADDY 2023-03-29 11:39   좋아요 1 | URL
일상에서 자기 검열은 일정 정도 필요하지만 여기에서는 편하게 글을 쓰셔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누구나 탈출구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요. ^^

공쟝쟝 2023-03-30 12:25   좋아요 2 | URL
한나 아렌트가 이런 종류의 말을 해요. (제 안에 남은 부분이라서… 제 뇌피셜 일 수 있습니다.) 공동의 세계를 짓는일에 참여하고 거기서 자신의 의견를 수정하는 것까지가 용기라고. 그러기위해 같음이 아닌 다름을 (단독자ㅋ) 고수해야 한다고. 전체주의적 도구로 정치를 하는 이런 사회정치적 현실에서 같은 편을 만난 것 같아도 그 다름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로 느꼈어요. 저는. 그러므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제시할 수 있는 주체되기의 과정으로 글쓰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하다고 느꼈고, 이제 그러기 좋은 시절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언어를 가지는 일은 노력과 비용과 여러가지 자원을 쏟아야하는 일 임에는 틀립없어요. 희진샘은 한 발 더가죠. 과정에서 다른 몸이 만나 다른 앎(지식)을 생산해야한다고.

저는 지난번 댓글부터 쭉 이어지는 우끼님이 윤리를 고민하면서도 권력을 갖기를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권력입니다. 물론 이는 상대적이죠 ㅋㅋㅋ 이런 미디어 환경에서 고작 독후감쓰는 권력ㅋㅋㅋ) 저어하는 부분에 힘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을 고치고 갱신할 수 있는 태도가 있다면 용기내셔도 될 듯 해요. 어려운 용어의 엄밀한 정의는 제가 모르는 영역이지만, 좌파아닌 ㅋㅋㅋ 신자유주의 페미로서 우정을 담아!

우끼 2023-03-30 14:56   좋아요 2 | URL
말씀듣고 생각해보니, 제가 반박받는걸 상당히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더라구요 ㅠ 항상 맞는 (?) 논리에 짓눌려서 제 몸의 목소리를 못듣고 대변하지 못하던 사람이라.. 제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게 두려웠던 것 같아요. 주도권은 쥐고 있되 맞다고 생각하는 말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지면 되는 거기도 한데요..
마찬가지로 타인도 그런 경우가 있겠지 하고 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걸 두려워하기도 했구요.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더 편하게 느끼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저를 배려해주기도 한다면, 서로 끝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페미니즘 영역의 일부를 공유하는 동지에게(좌파가 아니신데 이런 단어가 괜찮나 싶지만) 이런 응원을 받아서 기쁘고 감사합니다
진보운동 하시는 분들 내부에서도 이런 긴장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채효정님이 하신게 생각이 납니다.. 90%에 동의해도 10%에 의문이 가면 그걸 묻고 가면 안되고 계속 질문해야 한다고..

DYDADDY 2023-03-29 12:08   좋아요 1 | URL
그당시 읽었던 책 중에 파시즘 관련 책은 캐빈 패스모어의 <파시즘>과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 임지현의 <우리 안의 파시즘>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5년 전쯤 <전체주의의 기원>을 읽다가 의문이 생겨 파시즘에 대한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결국 <전체주의의 기원>은 다 못읽었어요. ㅋㅋㅋㅋ 엉뚱한 데 꽂히면 종종 그럽니다. 그리고 공부할 때에는 인터넷에서 해당 키워드와 관련된 것들을 검색해서 같이 정리했기에 아마 책에 없는 내용도 더러 있을겁니다. 혼자서 정리하다보니 어느 내용이 어느책에서 나온건지는 저도 잘 기억나지 않아요. ㅠㅠ
윤리는 다수의 시민이 인정하는 행동양식이라는 점에서 파시즘적인 성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파시즘의 변종인 나치즘의 윤리는 인종 차별과 우생학이었으니까요. 다수가 인준한다고 해서 그것이 윤리가 아니라는 것은 다수의 지지로 용산에 계시는 분을 선출한 것을 윤리적이라고 보지 않듯이 다수의 인준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전기가오리의 로티 강의에서 꼭 철학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라고 하더군요. 꼭 철학책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인문학책이나 교양서에서 필요하고 중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내것으로 만드는 것도 공부라고 생각해요. 더 확장하면 전기가오리 강의를 듣거나 무언가 새로운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 이걸 다 내 머리 속에 넣어야돼 라는 강박관념보다는 정리는 해놓되 내 삶에 필요한 부분만 그때그때 꺼내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공부량에 대한 부담감은 덜어내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