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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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설을 읽다 보면 러시아 정신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러시아 민중이나 귀족들의 수동적인 삶의 태도를 종종 비판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체호프도 그러했고,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도 그렇다.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듯한 러시아인의 수동적인 삶의 태도를 비판한 작품 가운데 단연 으뜸은 이반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일 것이다. 안드레이 마킨의 <어느 삶의 음악>에서도 이 ‘오블로모프’에 견줄만한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이 작품의 화자는 ‘안락한 생활에 대한 타고난 무관심과 체념, 부조리한 상황에 발휘하는 끈질긴 인내심’을 가진 ‘칙칙한 삶의 집적체’ 러시아 민중을 경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뮌헨의 한 철학자가 발명한 용어인 ‘호모 소비에티쿠스’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가 이 단어를 떠올리는 공간은 눈보라에 휩싸인 우릴 지방의 어느 기차역이다. 연착으로 도무지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기차를 기다리던 화자는 자신처럼 이 기차역에서 열차가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러 사람들, 그 무력한 이들을 바라보며 불만족스러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왜 이토록 무기력한가, 기차가 몇 시간이나 연착하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불평도 터뜨리지 않고, 불만도 없이 다들 입을 꾹 다물고 기다릴 뿐이다. ‘호모 소비에티쿠스’ 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가! 동포들 사이에 묻혀서 그는 머릿속으로 그 철학자의 지혜를 찬미한다. 러시아인들, 그들은 기차가 여섯 시간 째 연착하고 있음에도 ‘여러 밤을 더 이곳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아예 여기서 발붙이고 사는 것에도 익숙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디 그뿐인가! ‘저렇게 바닥에 신문지를 펼치고 라디에이터에 등을 기댄 채로, 먹을 거라고는 통조림밖에 없을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운명이려니, 숙명이려니 하고 묵묵히 받아들일 인간들이다.

그는 넌더리가 난다. 대합실의 이 맥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악몽 같다고 느낀다. ‘문명 세계로부터 아득히 떨어진 이 작은 마을들에서 삶이란 기다림과 포기’ 그리고 그저 ‘신발 깊숙한 곳의 촉촉한 온기’일 따름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눈보라에 휩싸인 이 기차역은 이 나라 역사의 축소판’이며, ‘뿌리 깊은 그 본성의 축소판’이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행동하지 않는다. ‘행동에 나설 여지를 싸잡아 비웃어 버리는’ 공간이며, ‘시간을 집어삼키고 일체의 기한과 기간과 계획을 균일화하는, 차고 넘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내일’은 그저 ‘아마도 주어질 하루’에 불과할 뿐이며, ‘이 공간과 눈(雪)과 운명이 허락하게 될 하루’를 의미할 뿐이다. ‘러시아적인 것’이 무언인지 묻는 혐오스러운 질문에 그는 ‘역사’의 외부에 자리한 나라, 5세기에 걸친 노예 상태, 스탈린 등등 온갖 부정적인 단어만을 떠올린다.

그에게 ‘호모 소비에티쿠스’는 이렇듯 저 옛날의 ‘오블로모프’,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숨만 쉬던 ‘오블로모프’처럼 주어진 삶에, 운명에 굴복하고 무기력하게 순응하고 마는 러시아적 삶의 모든 것을 뜻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아마도 이따금 발생하는 기차 연착을 제외하고는 ‘자기들이 사는 나라는 천국’이라 여기고, ‘느닷없이 확성기에서 전쟁 발발을 알리는 냉혹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대도  몸을 털고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쟁을 맞을 준비를 하고 고통과 희생을 감수할 것’이다. 그들은 ‘이 누추한 이 기차역, 철로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의 추위 속에서 굶주림이든 죽음이든 삶이든 그 모두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면서’(19쪽) 그 삶에 순응하고 말 것이다. ‘호모 소비에티쿠스’ 그들은 말이다.

동포들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이렇듯 차갑고 냉소적이다. 연민은커녕 공감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그 자신은 러시아인이 아닌가?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또한 그 무리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인지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자신은 그들과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은 그 무리를 ‘호모 소비에티쿠스’라 부를 권리, 명명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아니 그렇게 부름으로써 그들과 나를 다른 존재로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약한 갈대일지언정 스스로 그렇다는 걸 알기’에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는 이런 자기의 생각을 ‘인텔리겐치아의 낡고 교활한 논리’(20쪽)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이렇듯 이 작품의 화자는 러시아인이면서도 러시아인 무리와 거리를 두고 그들의 어떤 특성을 몹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이 화자는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태어나 볼가 지역에서 자라고 모스크바대학을 나왔음에도 프랑스로 망명을 선택한 작가 안드레이 마킨 그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  

여행 중 망명을 신청했다니, 조국에 대한 염증이 얼마나 컸기에 그러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은 이미 그곳을 벗어났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고, 그들은 ‘호모 소비에티쿠스’라고 거리를 두면서 러시아인들의 순응적인 삶을 비판하면서 냉소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렇게 책장을 조금씩 넘기려니, 이 냉소적인 화자는 이윽고 이 숨막힐 듯한 공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어떤 소리, -청명한 음악 소리를 듣고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는 한 어두운 공간에 다다라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한 노인을 발견한다. 노인은 피아노를 치며 킬킬 웃고 있다. 이 노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모스크바로 떠나는 기차가 마침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화자와 노인은 열차에 함께 오른다. 그리고 노인은 이 냉소적인 청년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 당시 난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믿었다오.” 이렇게 입을 여는 그, 노인의 이름은 ‘알렉세이 베르그’로 그는 한때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다.

<어느 삶의 음악>은 엄밀히 말하면 이 노인, 이제는 어느 간이역에서 피아노를 치며 킬킬 웃는 이 노인의 이야기이다. 피아니스트로서 전도유망했던 청년은 어쩌다가 이리 몰락한 모습으로 시골 간이역에서 자신의 신분을, 과거를 숨기듯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지나간 나날을 좇다 보면 인생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특히 이 화자가 그토록 경멸했던 ‘호모 소비에티쿠스’로서의 삶은 더더욱 그렇게 되기 어렵다는 것을, 그런 강압적인 체제 아래에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밀고와 숙청으로 점철된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기는커녕 살아남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일 수 있음을, 그러한 삶 자체가 누군가의 눈에는 운명에 순응한 비겁하고 무기력한 인생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런 체제 아래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숭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화자는 더 이상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경멸적인 단어로 쓰지는 못하리라. 그리고 지금은 러시아가 아닌 곳에서 프랑스어로 조국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작가 그 자신도 그것을 알기에 이런 작품을 쓴 것은 아닐까. 제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사람들도 ‘저마다 자기 삶의 여린 불꽃에 조심조심 입김을 내불고 있는 듯’(21쪽) 살아간다는 것을 이 작품은 조용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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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6 1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의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노인의 이야기 궁금하네요. 저도 찜해갑니다.

잠자냥 2022-09-26 20:23   좋아요 1 | URL
ㅎㅎ 받아들이기 나름인 작품 같습니다!

mini74 2022-09-26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심조심 그렇게 살아가는 삶은 어떤 모습인지 저도 궁금해요 ~ 몰락한 피아니스트의 사연도 궁금하고. 자냥님 글은 언제나 참 좋습니다 *^^* 부러워요 ㅎㅎ

잠자냥 2022-09-26 20:24   좋아요 2 | URL
네, 그 피아니스트의 삶이 참 기억에 남네요. 짧은 소설이라 금방 읽으실 거예요.

Falstaff 2022-09-26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젠 잠자냥 님 리뷰가 뜨면, 윽, 혹시 또 리뷰 백일장?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깝쇼? ㅋㅋㅋㅋ

잠자냥 2022-09-26 20:27   좋아요 1 | URL
ㅎㅎ 제가 너무 잘 써서요? ㅋㅋㅋ 농담입니다. 저는 그렇게 많이 참가하는 편도 아닌데요. ㅎㅎ 이번 달도 여러 개 있는 것 같던데, 관심 없는 책이 많아서 패스합니다. <고독한 얼굴> 같은 경우는 설터 작품이라 옳다구나 하고 읽었는데 전 작품이 그닥 와닿지 않아서 그것도 참가 포기! 암튼 이 책은 리뷰 대회 대상 도서 아닙니다요~

독서괭 2022-09-27 1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기 삶의 불꽃에 조심조심 입김을 내불고 있는 듯 살아간다니.. 참 인상적인 표현이네요. 다른 사람의 삶을 한심스럽게 여기기는 쉽지만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짜 그럴지..^^ 망명자로서 조국에 대한 애증이 묻어나올 것 같습니다. 리뷰가 물흐르듯 읽혀서 좋아요🥰

잠자냥 2022-09-27 12:52   좋아요 2 | URL
네, 작가가 자기 나라의 어떤 부분을 참을 수 없어 망명했지만 결국 조국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 작품으로 읽혔습니다. ㅎㅎ

공쟝쟝 2022-09-28 0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토록 차분한 글이라니......... 역시.... 자기 자신이 최고일 수 밖에 없는 오만한 사람답군... 그러나 나는 잠자냥의 본질을 알고 있다... (동네 사람들...읍읍...이 사람 페x인데edp...마니아고요...)
읽으면서 이 작품 화자 좀 별로다 했는 데 ㅋㅋㅋㅋㅋ 돌려까기 했나보네요? ㅋㅋ 인생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죠. 그런 인생들을 냉소할 정도의 지성(전 냉소는 지성의 산물이라 생각하지만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보지만 나는 냉소 안하고는 못견디겠는 똑똑한 노동자인지라 ㅋㅋ...)을 갖췄으면 이 정도의 글은 써서 남겼어야죠. 음, 좋은 소설일 것 같습니다.

잠자냥 2022-09-28 10:17   좋아요 1 | URL
댓글과 달리 차분한 글을 쓰는 잠자냥은 오만을 다부장님에게 배웠어요. edo도 다부장님에게 배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9-28 10:27   좋아요 2 | URL
부장님… 차분한 잠자냥에게 무슨짓을 한거냐능… 사실 나도 의식의 흐름 기법 다부장한테 배웠…(쿨럭…)

mini74 2022-10-07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냥님 아까 은근슬쩍 적립금 자랑하신 댓글 봤습니다 ㅎㅎ
축하드려요 *^^* 연휴동안 고냥님들과 행복하게 보내시길 ~~

잠자냥 2022-10-07 22:16   좋아요 1 | URL
ㅋㅋㅋ 은근 슬쩍 아니고 대놓고 했습니다! ㅋㅋㅋ 미니 님도 늘 당선 축하드리고요~~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