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날들
나딘 고디머 지음, 왕은철 옮김 / 책세상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이따금 언제나 모든 화제가 자기 가족 이야기로 국한된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또 가끔은 자기가 속한 세계가 자신을 대변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런 이들일수록 출신 학교와 지역, 사는 동네, 직장 이름에 민감하게 군다. 나는 이 두 부류의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아빠 차는 뭔데, 너네 아빠 차는 뭐니자랑하는 유치원생을 보는 것 같다.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성장이란 키가 크고 몸이 커지는 등 육체적 자라남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정신의 자라남도 반드시 포함된다. 인간은 어떤 의미로든 성장한다. 진정한 성장을 위해서는 여러 요소들이 따라야 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자신이 속한 세계를 타인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능력과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도 마치 자기 일처럼 느낄 줄 아는 공감 능력은 꼭 필요하다. 자신이 나고 자라온 가족, 현재 속한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그러나 그렇기에 쉽게 갖기 어려운 능력인가. 게다가 자신과 상관없는(또는 그렇게 보이는) 세계에 속한 사람에게 느끼는 공감과 연민의 능력은 또 어떤가.

 

네이딘 고디머의 <거짓의 날들>에는 이 두 가지 모습이 모두 그려진다. 고디머가 유일한 자전적 작품이라고 꼽은 이 작품의 주인공 헬렌은 고디머 그 자신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0년대. 남아프리카 광산 지역의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낸 헬렌. 책을 좋아하는 이 소녀의 세계관은 그때는 아직 협소한 광산촌과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부모의 세계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여느 흑인을 대할 때와 달리 집안일을 돌봐주는 흑인 하녀 애나와 엄마가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로 평범한 소녀이다. 백인의 특권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서 헬렌은 그걸 특권이라고 느끼지도 못하고 자란다. 단지 저 유럽, 그것도 영국 중상류층 가정 아이들의 평범한 생활을 다룬 동화책이 더 신기하다. 어느 책에도 헬렌의 집 애나처럼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며, 주인집 어머니와 아버지를 마님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흑인 여자아이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헬렌은 이상하다는 느낌만 있을 뿐 그게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제 열일곱 살인 이 소녀가 계속 그 부모와 광산촌에만 머무른다면 소녀의 성장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육체는 성장을 멈출 때까지 계속 자라겠지만 정신은 그 어떤 변화도, 충격도, 깨달음도 얻지 못하고 그저 부모의 영향 아래, 협소한 광산촌 이웃들과의 관계 안에만 머물렀을 것이다. 비록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실제로 경험하는 세상과는 달리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소녀는 어느 여름, 집을 떠나 나탈의 남부 해안에서 한때를 보내게 된다. 광산촌에서 바닷가로 장소 이동을 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헬렌은 첫 번째로 자기 세계가 깨지는 경험을 한다. 풋풋한 첫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루디와의 만남이 그렇다. 루디는 헬렌의 부모와는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다. 부와 명예, 명성 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헬렌의 부모와 달리, 루디는 그 무엇도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심지어 헬렌이 속한 세계인 광산촌을 이렇게 말한다. “광산촌에서 사는 건 너무 협소하고 기계적이고 소득 없는 삶이야.”(85). 헬렌은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고 충격을 받아서 혼날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말을 더듬는다. 화가 나고 비참하기도 하다. 그는 더 신랄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생산하기 위해 어두운 지하에서 흙을 파다가 여덟 시간이 지나면 신성불가침의 위계질서 속으로 돌아와 하느님 같은 감독관을 비롯한 윗사람들에게 웃으면서 인사하고, 아랫사람들한테 인사를 받고 말이야. 그렇다고 내 밑에 누가 있다는 말은 아니야. 흑인들을 제외하면 말이야. 그들 위에 군림하는 건 특권이 아니라고! 나는 그런 일을 원치 않아. 좋은 일자리, 좋은 가족, 따분한 도시, 속이 좁은 사람들을 원치 않아. 그런 것에는 흥미가 없다고.”(85~87). 다만 이런 말을 하는 루디가 헬렌보다 무려 열 살이나 많다는 게 지켜보는 입장으로서는 꽤 못마땅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루디와의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여름방학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헬렌은 조금 달라져 있다. 자신의 둘러싼 광산촌의 삶이 진부하고 부모의 위선도 부끄럽고 민망하다. 그렇지만 루디도 처음에 열광했던 그 모습 그대로 보이지는 않는다. ‘나이를 초월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실은 여느 사람과 다름없는 어른에 불과하다는 사실’(89)을 깨닫는다. 이 또한 다행이다. 열일곱 소녀를 탐하는 스물일곱 남자, 그러면서도 그 앞에서는 자못 인생을 아는 것처럼 말하며 우쭐대는 모습이라니, 당신도 아직 성장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루디를 볼 때마다 치밀어 올랐는데, 헬렌의 눈에도 어느 순간 그 모순이 보였으니 말이다. 학교를 졸업한 지 일 년이 지났고, 그 일 년 동안 아버지가 다니는 애서턴 광산 사무실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던 헬렌은 처음에는 루디의 영향으로 대학도 거부하더니, 마침내 요하네스버그 대학교로 진학한다. 두 번째 변화의 계기다. 그리고 이 두 번째 계기는 헬렌이 속했던 애서턴과의 진정한 결별을 뜻하기도 한다.

 

내가 교복이나 명예를 위해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님은 확실했다. 나는 의심과 무료함과 삶에 대한 경이감 때문에 대학에 갔다. 그것은 모든 탐색의 시작이었고 자아를 찾기 위한 혼란스러운 여행의 시작이었다. (156)

 

열일곱 헬렌에게 다른 세상도 있음을 보여준 사람은 루디 단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학에 진학한 헬렌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유대인 친구 요엘’, 흑인 친구 메리’, ‘이사’, ‘마커스 부부등 다양한 인종에, 다양한 출신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고, 스치듯 연애도 하던 헬렌은 드디어 진짜 사랑이라고 할만한 을 만나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러는 사이 헬렌은 이 수많은 사람들의 영향으로 인종차별이 나날이 심해지는 남아프리카의 현실에 눈을 뜬다. 특히 흑인 친구 메리를 통해 지금까지 흑인들의 말소리가 개 짖는 소리나 새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던 헬렌은 바로 그 흑인들 속에서 자신이 자라왔음을, 자신 또한 이 세계에서는 이방인임을 통렬하게 깨닫는다.

 

헬렌과 메리가 처음 만나는 곳은 대학교의 화장실이다. 헬렌은 화장실에서 메리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백인과 흑인이 한 공간에 나란히 있다니! 그도 그럴 것이 대학은 남아프리카에서 흑인과 백인이 같은 장소에서 손을 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였다. 요하네스버그를 통틀어 그런 곳은 대학 밖에 없었다. 헬렌은 이런 상황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흑인 대학생이나 백인 대학생이 인종차별 없다는 엄숙한 선언보다 더 실감 나게 다가오는 그런 사실에 익숙해지는 데는 상당한 적응 기간이 필요’(164)하다. 헬렌은 메리와 평범한 친구 관계가 되고자 무던히도 애쓰지만 무언가 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일상생활에서 흑인들을 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져보려는 하찮은 시도 또한 번번이 벽에 부딪히는 것이다. 백인인 헬렌은 메리가 어떤 곳에 들어갈 수 없고, 어떤 출입구를 사용할 수 없고, 어떤 의자에 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린다. 도시에 거주하는 모든 흑인들처럼 메리는 금기시 되는 것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걷는 법을 배워야 했지만 헬렌에게는 그것들이 모두 당연했다. 그러는 사이 헬렌은 처음으로 백인으로서의 죄의식을 느낀다.

  

나는 메리에게 손을 뻗으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사람들은 예수의 희생정신과 정의감과 인권선언을 가지고 노력한다.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그것은 선언되는 순간 넌센스가 된다. 절대적인 것은 흑과 백처럼 합해지고 변화하는 삶에서는 현실성이 없다. 그것이 올 때는 아무 관련 없이 온다. 이렇게 싸구려 냄새가 나는 쓸모없는 분위기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깊이 수용하는 데서 온다. (371)

 

헬렌이 흑인의 인권을 생각하는 것도, 남아프리카의 참혹한 현실과 모순도, 백인으로서의 죄의식을 느끼는 것도 모두 개인적인 감정을 깊이 수용한 것에서 시작된다. 더욱이 헬렌이 미치도록 사랑하는 남자 은 흑인사무국에서 일하면서 흑인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온몸을 던지는 백인 남자가 아닌가. 헬렌은 그의 영향도 받지 않을 수 없다. 광산도시 애서턴에서 나탈의 바닷가, 그리고 이제 요하네스버그라는 도시로 이주한 헬렌. 처음에는 집을 떠나 친구 부부의 방 한 칸을 빌려 독립하고, 그 다음에는 폴의 집에서 그와 동거하면서 삶의 모습도,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도 서서히 변화해 간다. 헬렌이 도시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녀의 모습은 그저 이상주의자였다. 그녀 스스로도 한 인간이 남아프리카에서 자기를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흑인들에 대한 압제에 맞서는 것이라고 믿는 시기였다. 공부할 장소가 없는 메리를 위해 무턱대고 부모에게 메리를 초대하겠노라 말하던 헬렌의 모습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이상주의자일 뿐이다. 훗날 헬렌이 깨달았듯이 옳은 일을 한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잘못된 것을 바로잡았다고 믿는 위선적인 사고방식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인도인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고 인종의 벽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578)라는 것을 헬렌을 뒤늦게 깨닫지만 그 시절에는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나 몇 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헬렌은 그런 삶의 방식이 초래하는 결과, 즉 그런 믿음을 가질 권리와 그 믿음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의 부적절함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426)하게 된다. 정신적으로 한결 성장한 것이다.

 

괜찮은 삶에 대한 생각과 실제로 사는 삶사이의 모순 사이에서 고민하고 번뇌하던 헬렌은 자신이 조금씩 성장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아차렸을까. 그녀는 심지어 영원할 것처럼 사랑한 폴과의 관계에서도 모순이 있음을 깨닫는다. 너무나 익숙했던 폴의 방이 사실은 폴의 공간일 뿐, 자기 자신을 위한 곳이 결코 아님을 깨닫는 헬렌. 그 방이 낯설게 여겨질 때 그녀는 다시 그곳을, 그리고 폴을 떠날 수밖에 없다. 헬렌은 이제 남아프리카가 아닌, 한 번도 발을 디뎌본 적 없는 유럽으로 가고자 한다. 남아프리카도 아닌, 아직 유럽도 아닌 곳에 머물 때 헬렌은 가장 객관적으로 지나온 자기의 삶과 자기가 떠나온 도시를 돌아볼 줄 안다. 그렇게 훌쩍 성장한 것이다. ‘거짓의 날들이라고 느꼈을지언정, 그 모든 날들이 헬렌의 성장에 밑바탕이 되었다. 물론 헬렌이 그러한 삶의 조각들을 긍정적인 자기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을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한몫했으리라. 이 아름답고 눈부신 작품은 헬렌이라는 한 소녀의 7여 년간의 세월을 그리며 인간이라면 어떻게 자라야하는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헬렌은 그 이후로도 계속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네이딘 고디머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더 이상 자기기만을 하는 게 아니야. 달아나는 것도 아니야. 사랑의 모험이든, 백인이기 때문에 느끼는 죄의식이든 이상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에 따르는 위험이든, 다시 말해 내가 달아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든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아니야. 내가 돌아오리라는 것을 아니까.(60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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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3-26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앞부분에 공감이 가네요~잠자냥님 별5개면 일단 보관함으로^^

잠자냥 2021-03-26 14:11   좋아요 2 | URL
네 이 책 정말 모두에게 추천입니다. 특히 여성에게.
그나저나 절판이라는 점이 안타까운데, 아마 많은 분들이 찾으면 다시 재발간하지 않을까요.
네이딘 고디머가 저작권료에 비해 사람들이 많이 안 찾아서 수지가 안 맞는지 원.....-_-

레삭매냐 2021-03-26 15: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욱겨요...

잠자냥님이 책을 땡기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장 중고서점에 사러 갔는데
상권이 없어서 일단 하권이 사두었답
니다. 상권만 있으면 읽기라도 할 텐데
하권 밖에 없으니 읽을 수도 없더라는.

왜 좋은 책들은 하나 같이 구하기가
어려운 건지 참 -

잠자냥 2021-03-26 15:1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권부터 읽으시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인공의 인생을 회고록 읽듯이 읽는 겁니닼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3-26 15:19   좋아요 3 | URL
이상하게도 이쪽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작가들 책이 절판이 많더군요. 쿳시는 그래도 최근 다시 나오긴 하는데... 아무래도 저작권료에 비해 수지가 안 맞는가 봅니다.

미미 2021-03-26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반에 써주신 내용에 공감되기도하고 딱 저렇진 않지만 찔리는 부분도 많네요.^^;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가 참 미숙한 인간이구나 여러번 느껴요. 저도 찜~♡

잠자냥 2021-03-26 16:13   좋아요 2 | URL
찔리긴요.ㅎㅎㅎㅎ 책 읽으며 함께 성장해 보아요. ㅎㅎㅎㅎ

Falstaff 2021-03-26 1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흠. 별 다섯 개짜리 절판 책은 리뷰 쓰지 말기 할까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1-03-26 17:58   좋아요 3 | URL
아닙니다. 저는 이 책의 재출간을 바라는 마음으로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겁니다!!! ㅋㅋㅋㅋㅋㅋ
(이 작품 정말 문장이 아름답습니다. 서정성 철철, 번역가 역할도 한몫했겠지요.)

mini74 2021-03-26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어도 참 재미있을거 같아요. 좋은 성장소설을 읽으면, 예전의 그 나이때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몸은 사그라들고 있지만 마음은 성장하는 느낌 ㅎㅎㅎㅎ 근데 왜!!! 절판인거죠 ㅠㅠ

잠자냥 2021-03-26 21:56   좋아요 2 | URL
네 작가가 이 작품을 스물아홉에 썼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빼어난 작품입니다. 이걸로 노벨문학상도 받았고요. 그런데 정말 절판이라니! 말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