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와 혼혈, 근대의 잔여들(허병식)고아란 근대적 인간의 모습을 처음으로 상상했던 근대적 주체이기도 하지만, 가족로망스와 시민적 정상성을 상정하는 시민사회의 바깥에서 규제되고 관리되어야 할 존재로 발견되기도 했다.혼혈인이란 경계 위에서 태어나 정체를 갖지 못한 자들이지만, 민족과 해방의 서사는 그들을 끊임없이 동일자의 자리로 기입시키려 한다.그리하여 혼혈인이라는 주체는 국민국가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끊임없이 떠올리게 하는 존재가 된다. ...고아와 혼혈인은 이러한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그 배제의 영역 속에 머물러 있는 타자의 얼굴을 상연한다. 자기동일성의 우위 하에서 ‘존재론적으로‘ 간주된 동일자와 타자의 변증법은 실질적 사고 속에서 타자의 부재를 조직하고 타자에 대한 진정한 경험을 제거하며 타자성에 대한 윤리적 열림의 길을 봉쇄한다.(42)...모든 분할 내에서 무한히 남겨지거나 저항하는 존재인 그 잔여들(고아와 혼혈인, 빈민, 이방인, 과부 등)은 진정한 정치적 주체로서 국민국가의 근대를 심문하고 있다.(43) - P4243
※ 서양제국주의의 원인 중 기술요인의 중요성결론은 분명하다. 역사가들은 현재의 논의에서 신제국주의의 원인으로 기술 요인은 거의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19세기 제국주의에서 기술의 역할을 이렇게 부인하는 것은 같은 시기의유럽 사회와 경제에서 기술의 변화 산업혁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가 했던 중심 역할과 분명하게 비교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태도는 근대 초기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대양洋의 발견과 아메리카의 탐험과 정복에서 기술적인 면들을 주의 깊게 다루는 것과는 비교되는 것이다. - P17
이 유대인 여인 가자가 원색적인 방식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라고 한 말은 축제 날 드넓은 초원에서 춤에 도취되어 삶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외침이기도 하고, 그날그날을 살아갈 뿐 앞일을 미리 걱정하지않는다는 사고의 표현이기도 하다. 반대로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항상 대비하고 계획해야 된다는 생각이며, 세계를 합리적이고 의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사고를 가리킨다. 이것이 바로 현대성modernite이다.-> 전통이 아니라 현대에도 관통하는 성질, 아래의 추가적인 설명이 이를 잘 드러냄죽음의 친숙성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이미지는 이렇게 서민들의 언어에서 매우 초보적이고 천진난만한 삶의 기호가 되어 있었다."위험을 각오하고 죽음을 사유하느니 차라리 생각지 않는 편이 죽음을 견뎌내기 쉽다" 라고 파스칼이 말했다. 그런데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오늘날 기술 문명이 채택하고 있는방법, 곧 죽음 자체를 거부하고 금기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 전통적인 사회에서 취했던 태도이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거부가 아니었다. 죽음이 이미 우리 가까이에 있고 일상생활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의도적으로 몰입해서 사유하기가 불가능했을 뿐이었다. - P70
자연스럽고도 본능적으로 운명과 자연을 체념하고 받아들인다는태도, 즉 수천 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지속되어온 죽음 앞에서의 태도...는 분묘를 비롯한 장의에 관련된 것들을 대하는 태도, 즉 무관심과 친숙함으로정의되는 죽은 자들 혹은 죽은 육신을 대하는 태도와 상응한다. 죽은자들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한정되는 한 시기의특성이었다. 그것은 이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시점인 기원후 5세기경에 나타났다가 18세기 말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었지만 명확하게 한정되는 이 시기는 길들여진 죽음으로 정의되는 서구 정신사적 한 태도의 기나긴 연속성 내부에 그렇게 자리하고있다. - P83
전쟁터에서 그렇게도 용감하던 기사들은 기회가 있을때마다 정신을 놓아버린다. 이러한 남성적 감성 형태는 바로크 시대까지 계속된다. 그러다가 17세기 이후나 되어서야 비로소 남성들에게 감정을 제어하는 능력이 주어진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면 ‘실신‘은 여성들의 전유물이 된다. 게다가 그 당시의 여성들은 그것을 남용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실신이 질병에 대한 임상적 징후일 뿐 그이상의 의미는 없다.-> 감성을 둘러싼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은 근대의 산물 - P43
자연적인 징후와 초자연적인 징후를 구분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노릇일 것이다. 사실 이 시대에는 자연성과 초자연성을 가르는 경계가 매우 불분명했다. 중세 시대에 임박한 죽음을 예고하기 위해 가장 빈번하게 동원된 징후들은 오늘날 ‘자연적‘이라고 정의되는 것들이다. 즉 일상적인 삶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하고 친숙한 사실들을 그저 단순하게 확인하는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오히려 근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는 동안 학자들이 예고적 현상들의 초자연적인 성격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이것들이 결국 대중적인 미신으로 간주되고 만 것이다.-> 전대근적 미신도 근대의 산물, 자연적인 것을 초자연적인 것으로 전환해 미신화함 - P45
역사에 대해 생각하기는 그 부제처럼 오늘날 역사학에 던지는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질문은 6가지로 누구의 역사인가, 어디의 역사인가, 무엇의 역사인가, 역사는 어떻게 생산되는가, 원인이 중요한가 의미가 중요한가, 역사는 사실인가 허구인가 이다.모두 현재까지 역사학을 둘러싼 가장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질문에 대한 역사학을 둘러싼 논쟁을 소개하며 그 양쪽을 드러내며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것으로 역사에 접근하게 한다. 따라서 이 책은 결론에서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에 대해 "역사는 다른 학문이 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다는 것"이라 간단하게 정리한다. 물론 대답은 하나가 아니다. 열려있다. 오히려 질문하는 힘이 역사임을 강조한다. 즉 "역사가들은 해답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통시적으로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어떻게 올바른 질문을 하는지를 가르쳐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