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자본-국가-민족(국민)의 삼위일체에 의해 운용되며 그 생명력이 각각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 쪽이 위기에 처해지면 다른 쪽이 보완하는 형태로 그 생명력을 유지한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독립된 하나(자본 또는 국가 또는 민족)만을 문제삼아 극복하는 것은 잘못된 대응이라고 하며 그 대안을 어소시에이션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아래는 이 책의 결말이며 대안적 실천의 장인 어소시에이션에 대한 정리글이다.  

어소시에이션은 3가지 교환양식 중 자본주의와 관련이 있는 상품교환을 중지시키기 위한 호수 또는 호혜를 기반으로 하는 교환양식이 중심인 공간이다. 특히 맑스의 공산당 선언에서와 같이 고진은 단순한 어소시에이션만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호혜적 교환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의 구성과 함께 그런 공동체간의 호혜적 교환이 지속되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품교환을 중지시키는 호수적(호혜적) 교환의 어소시에이션에 대해 고진은 생산자협동조합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고진은 <<트랜스크리틱>>에서 우리가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인 것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이 둘의 연결을 주장하며 생산자협동조합뿐만 아니라 소비자협동조합도 상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동체의 공동체도 가능하지 않을까? 즉, 맑스가 말한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이며 이럴 경우 자본주의에 의한 상품교환은 숨이 멎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생산자협동조합과 같은 어소시에이션을 확대 강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진은 프루동과 맑스의 경험을 통해 이에 대한 해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고진의 주장을 되돌아보면 알다시피 3가지 교환양식 중 또 문제가 되는 교환양식이 국가에 의한 약탈-재분배양식이다. 이 양식은 상품교환양식과 병행하여 서로 의존하고 있다. 서로 기대어 부양하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상품교환양식을 중지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에 의한 약탈-재분배양식도 중지시켜야만 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시도되었던 것이 우선 프루동과 같이 생산자협동조합과 같은 어소시에이션을 국가가 조장해야한다는 주장과 혁명을 통한 국가를 어소시에이션이 대체해야 한다는 맑스의 주장이다. 경제혁명과 함께 정치혁명이 동시에 존재해야하는 것이다. 물론 맑스는 정치혁명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한시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국가의 소멸이 진정한 해방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있다고 고진은 강조한다. 즉 국가란 다른 국가에 대해서 국가라는 것이다. 따라서 내부적 투쟁을 통해 국가를 해체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했던 파리 꼬뮨과 소비에트를 생각하면 이점은 충분이 이해할 수 있다. 국가는 다른 국가와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혁명 이후에 해체되어야할, 맑스의 표현으로 보면 어소시에이션에 의해 대체되어야할 국가가 오히려 강화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경험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이 지점이 고진의 독창적인 주장이며 이 지점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넘어가는 지점이다. 즉, 국가들을 제어할 수 있는 세계공화국의 건설을 주장한다.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상품교환이 중지되는 경제혁명 또한 내부적인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화폐 때문이다. 화폐도 또한 국내적 유통에 사용되지만 이를 넘어서 국제적 결재수단이다. 어소시에이션 안에서의 대체화폐 또는 신용화폐만으로는 자본의 마지막 숨통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고진은 맑스를 넘어서고 있는 듯 보인다.

자! 이제 고진의 최종 결론을 정리해 보자.

고진의 결론은 조금 허망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필요한지는 이해가 되지만 어떻게 하면 그걸 만들 수 있는지는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국가와 자본의 공생관계를 끝장내고자 하는 시도가 어떤 지점에서 실패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면서 우리들에게 실패를 딛고 또 다른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장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진의 해결은 경제 및 정치혁명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운동만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운동(“국가들을 ‘위로부터’ 封함으로써”)을 통한 글로벌 커뮤니티의 실현이다. 그 단초는 칸트의 영구평화를 위한 ‘국가연맹’ 구상에 기초하고 있이다. 이미 역사 속에서 2차례 전개된 예가 있다. 1차 세계대전과 관련하여 국제연맹이 2차 세계대전과 관련하여 국제연합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둘은 칸트에게서도 현실주의적 타협안에 지나지 않았기에 현실적으로 실패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국가들을 위에서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여전히 미국을 비롯한 패권 국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 이제 고진의 철학적 기초인 칸트의 평화론을 언급하지 않고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224~225쪽 요약) 현재 인류의 긴급한 과제를 세 가지로 집약됩니다. 전쟁, 환경파괴, 경제적 격차가 그것이죠. 이 세 가지는 분리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가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죠. 더불어 이것들은 국가와 자본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그렇다면 국가와 자본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것들은 일국 단위로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국가에 대항하면 좋을까요?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각국에서 군사적 주권을 서서히 국제연합에게 양도하도록 하여, 그것을 통해 국제연합을 강화 재편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국에서 일어나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은 국가들을 ‘위로부터’ 봉(封)함으로써만 단절을 면합니다. ‘아래로부터’와 ‘위로부터’의 운동의 연계에 의해 새로운 교환양식에 기초한 글로벌 커뮤니티(어소시에이션)가 서서히 실현됩니다. 물론 이 실현은 용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 길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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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 사단의 개념사 사전은 개념을 역사적으로 따져 묻는 것인데 그 이유는 개념의 역사철학적 성격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즉 목적론적인 기대지평을 개념이 가지고 있고 이런 개념의 역사를 묻는 것은 현재는 물론 미래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문명과 문화 개념도 이같은 기획 속에 독일에서의 문화가 역사철학적 운동 개념으로 포착된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또한 독일사의 측면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독일의 관점에서 문화와 문명을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문화 개념은 독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였던 반면에 프랑스에서는 문화 개념은 거의 쓰이지 않고 문명 개념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더불어 프랑스어의 독일 진출로 인하여 독일에서는 같은 의미로 쓰인 문화와 문명 간의 구별이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보다 더 논쟁적으로 진화되었고 이 과정에 문화와 문명 개념은 동의어에서 반의어로 위치되게 되는 단초가 18~19세기 사상가들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문화와 문명 개념에는 민족주의라든지 인종주의가 개입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개념으로 넘어설 단초는 이 시기 점차 내포하기 시작했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일반인에게까지 민족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문화와 문명 개념을 퍼진 것은 아마도 진보 개념과의 결합 이후 20세기에야 가능했을 것이다. 재미난 것은 교양과의 관계인데 이 시기까지만 해도 교양은 문화와 동의어였다는 것이고 이후 구분되고 있는 점이다. 이 장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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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와 19세기 초: 현대적 문화 및 문명 개념의 생성
(외르크 피쉬,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 - 문명과 문화』, 푸른역사, 2010)


1760년대 이래로 ‘문화’라는 개념은 독일에서 폭넓게 확장되는 동시에 대중화되었으며,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는 ‘문명’이라는 신조어가 동일한 기능을 떠맡았고 이 두 개념은 늦어도 1815년에는 일종의 의미의 스펙트럼을 형성했다고 한다.

1. ‘문화’
프랑스: 개념 발전의 중단
프랑스에서 문화 개념은 농업적 의미로부터 비유적인 영역에서는 ‘마음의 가꿈’이라는 전통이 전면에 나서며 이와 연결되어 개인적인 ‘교육’, ‘교양’의 의미가 중심이 되었다. 이어서 이와 같은 개인적인 개념은 “특정 집단, 제 민족들, 심지어 인류에까지” 확장되었다. 한편 ‘문화’는 농업적 의미라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인 가치였으나 교육의 영역으로 옮겨 감에 따라 개념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실천에 대한 비판(예를 들면, ‘좋은 문화’ 또는 ‘해로운 문화’ 등)에도 스스로를 개방했다. 이 때문에 이 개념이 더욱 드물게 사용되었고 ‘문명’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독일: 역사철학적 운동 개념으로의 확장
처음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프랑스처럼 개인적 정신문화와 교양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안에 현대적 문화 개념의 기본 특징들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문화 개념이 널리 확산되고 동시에 내용적 발전을 이룬 이유는 넓은 의미에서 역사적 사유 및 역사철학적 사유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역사를 신학적 전통에서 분리시키고 그 흐름에 의미를 채워 넣기 위해서는 인간 특유의 업적을 개념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 개념은 역사철학적 기획에 종속되어 그것을 위한 일종의 공명체가 되었고 여기서 운동 개념의 특수한 성격이 드러나는데, 즉 인간의 문화 업적들을 단순히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시각 안에 세워 놓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이 개념의 대상은 그 고유한 의미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이 되려면 개념의 확장이 필요한데, 우선 개인에서 집단으로, 제 민족으로, 그리고 인류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어서 농업, 교육, 학문들과 같은 개별적인 능력 또는 영역들로부터 인간의 모든 생산물들로 이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 혹은 그 환경의 교양화라는 과정에서 시작하여 그 결과물(교양화된 인간과 문화 생산물들)에 이르는 이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범위는 독일에서 이미 포괄적인 문화 개념에 도달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정에 집중하고 있음도 지적하고 있다.  


이어빙, 헤르더
문화 개념을 가장 일찍 주제화한 것은 이어빙(“인류 전체의 문화에 관한 시론”)이며 그는 여전히 ‘문화’를 교양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이미 결과의 요소도 담고 있다. 문화 개념의 폭넓은 확장과 전파는 뒤이은 헤르더(<<이념>>)를 통해서다. 헤르더는 이 책에서 문화의 전통적 의미인 농업적 의미를 자주 사용하면서 정신문화와 교양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넘어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을 포괄한다. 또한 한 민족을 문화의 담당자로 보며 역사화한다. 따라서 그에게 한 민족의 역사는 동시에 그 민족의 문화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고 문화의 복수성을 강조하거나 보편적 통일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개별 민족의 문화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역사라고 하더라도 인류 진보의 정도는 회의적이다. 한편 헤르더는 문화를 유/무로 개념화한 전통 및 미래와 달리 문화는 인간이 존재하기 시작하는 곳에서는 가장 낮은 단계라도 존재한다고 이해한다. 더불어 그의 문화 개념은 긍정적인 가치(‘참된’ 문화로서의 인간성)를 지닌다. 그리고 그의 문화 개념에는 사회적 요소가 강조되고 국가와 정치는 제외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종속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정치적이라든가 탈정치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처럼 헤르더의 한 민족의 문화, 즉 ‘국민문화’는 그가 개별 문화의 운동에 집중하는 세계시민이기는 하지만 그 개념을 민족주의적으로 징발하는 중요한 전제 조건을 마련토록 하는 양가적인 유산이었다. 단, ‘국민문화’와 ‘문화민족주의’를 동일시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18세기 말엽과 19세기 초엽: 보편 개념으로의 확대
18세기 말 문화 개념의 진정한 새로움은 개념이 민족사 혹은 인류사 속에 편입된 것이다. 이어빙을 거쳐 아델룽에 의해 문화사가 역사 서술에서 우선권을 부여받는다. 아델룽의 ‘문화’가 본질적으로 ‘교양화’와 ‘교양화된 상태’에 그쳤지만 최초의 보편적인 주장으로 인하여 유사한 표현들을 제치고 개념의 확장을 가져왔다. 이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것이 1801년 예니쉬였다. 그는 문화를 “발전, 교양, 훈련” 등과 “깨달음과 계몽-완성과 고귀화-그리고 기타 몇몇 비슷한 단어들”을 동의어로 사용하였다. 이어 카루스가 문화를 완전한 현대적 개념 범위에 도달하도록 하였다. 즉 본래의 문화는 결과물들에 한정하였으며, 이에 반해 그 과정들은 교양화의 일부로 간주하였다. 물론 이 정의는 일반인의 어법에 반영되지도 카루스 자신에 의해 항상 지켜지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간명화 및 한정화 시도
카루스에 이르러 ‘문화’가 보편 개념으로 확립된 이후 의미 영역의 확대가 아니라 천박화와 변질화를 겪게 되었고 이 때문에 이를 간명하게 파악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먼저 성과는 없었지만 한정화 시도는 1784년 멘델스존에 의해 문화(‘연마’/‘도덕’으로 구분)와 계몽의 구분을 통해 진행되었다. 이에 반해 1790년대 피히테와 실러는 문화의 자명해진 개념을 엄밀하게 사용하고자 했으며 문화 개념은 역사철학 속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개념의 개인화(“자유로의 교화”)와 주관화가 이루어진다. 한편 피히테가 문화 개념을 민족주의로 전환하였다고 하며 ‘문화’가 특수하게 독일적인 것을 구현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독일의 우월성이 주장되었다고 하지만 그는 문화 개념의 세계시민적 성격을 간접적으로 매우 분명하게 인정하였으며 ‘문화’가 민족주의적 여운을 풍기는 일은 단지 산발적으로 발견될 뿐이다. 피히테가 좀 더 상세하게 긍정적인 개념으로 규정하였다면 실러는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즉 실러에게 문화는 자연상태로부터 인간을 빠져나오게 할 경우 “문화의 압박과 문화의 해악”으로 운위되고 다시 자연상태로 회귀시키는 문화는 “아름다운 문화” 또는 “미적 문화”로 구상되었다. 문화 개념을 역사철학적 구상 아래 종속시킨 것은 셸링에서 뚜렷해진다.

2. ‘문명’
이탈리아어의 ‘civilta’를 빼고 유럽의 언어들 중 ‘civis’에서 도출된 모든 표현들(‘civilitas, civiliser, civilise, civilite, civility’)이 18세기 중엽에 ‘cultura’보다 근본적으로 제한된 수용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프랑스어와 영어는 신조어 ‘문명civilisation’의 길로 갔다.  


프랑스
1756년 미라보 1세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단어 ‘문명’은 본질적으로 능동형이었고 이 때문에 ‘문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문명화 과정과 문명화(결과)는 철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이미 문명의 현대적 의미, 특히 역사철학적 맥락 속에서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문명’이 ‘문화’와는 달리 민족들 혹은 인류 등 집단과 관련된 점이며, 다음으로 결정적인 것이 진보와 도덕의 이원론으로 ‘문명’은 운동, 변화, 분화를 의미하며 가치중립적이기 해도 미라보에 의하면 부정적인 측면과는 관련이 없었다. 한편 초기 개방성을 제외하고 ‘문명’은 ‘문화’처럼 포괄적이며 나눌 수 없는 개념이 되며 경험적으로 다양한 문명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는 하나의 문명의 구성 성분들이 되었다. 1770년대 초반 ‘백과전서파’ 안에서 새로운 개념이 이미 널리 퍼졌고, 문명의 진보와 무제한적인 인류의 진보가 일치하고, 도덕은 별도로 주제가 되지 않았다. 자주 사용하면 할수록 ‘문화’와의 유사성이 드러났고 점점 더 일종의 역사 발전의 지표가 되었다. 개념 내부의 구분(‘문명’의 반대는 ‘야만성’과 ‘조야성’)도 애초부터 분명했다. 한편 ‘문명’은 집단과의 관련성이 더 강하기 하였지만 ‘문화’보다 더 정치적인 개념은 아니었다. 이렇게 볼 때 독일의 ‘문화’와 프랑스의 ‘문명’은 본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다면 중요한 차이점은 18세기 독일의 ‘문화’는 민족주의적 의미부여가 거의 확인되지 않는데 반하여, ‘문명’은 1767년 미라보에게서 그 단초가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독일의 문화 개념과 프랑스의 문명 개념은 기본 특징에서 폭넓은 부분에서 서로 일치하며 개념이 가리키는 실상들은 비본질적인 점에서만 서로 구분된다. 대신 차이는 오히려 언어적 전제들(‘문화’와 ‘문명’)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영국과 미국
법률적 의미의 ‘civilization’은 영국에서 더 빠른 시기(1704~1710)에 확인되며, 예절로 축소된 ‘civility’는 종종 ‘문명화된 상태’라는 의미를 지녔다. 영국에서 없었던 의미는 오직 문명화라는 역동적 요소뿐이었다. 프랑스와 같은 의미는 1767년 퍼거슨에 의해 발견되는데 이때도 프랑스의 경우보다 집단적인 측면이 더 분명하며 긍정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도덕적인 의미(척도)가 부과되지는 않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사회적이고 정치적 측면인데 사람들은 프랑스 혁명기에 이 개념의 정치적 편입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한층 분명하게 된 것은 미국에서였다. 1770년대 이후 급속하게 확산된 미국의 ‘문명’ 개념은 토머스 페인에 의해 정치적 강조가 정점에 다다랐다. 페인은 문명을 정부의 혁명적 전복을 통해서만 도달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문명과 사회는 그 당시 정부와 반대극을 이루었다. 하지만 1797년에는 문명과 정치 생활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독일
1770년대 독일에서도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civilisation’이 수용되었고 이때는 이미 ‘문화’가 폭넓게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문화’로도 번역되었다. 이 표현은 이후 확산되지 못하다가 1800년경 ‘문화’의 그늘 속이지만 유행하게 된다. 이때 두 가지 의미의 갈래가 형성되는데 그 하나는 ‘문명’과 ‘문화’를 구별하려는 시도이고, 다른 하나는 두 개념이 거의 비슷하거나 완전히 똑같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이탈리아
18세기 ‘civilte’는 ‘civilitas’의 옛 의미들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civilta’가 문명 개념의 기능들 중 일부를 받아들였고 (문명화) 과정의 요소가 빠져 있다는 약점은 ‘civile’라는 형용사와 결합함으로써 지칭할 수 있었다.

3. ‘문화’와 ‘문명’을 구별하려는 시도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문화’와 ‘문명’은 같은 상황, 같은 필요에 의해 도입된 이래 실상을 구별하기 위한 보충이나 대립의 형태로 언어의 구분(이분법)이 필요했다. 특히 독일에서 먼저 두 개념의 구분이 시도된 이유는 특히 프랑스어가 독일어에 미친 영향이 그 역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고, ‘문화’가 신조어 ‘문명’보다 더 강고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며, 헤르더 이후 문화 개념을 둘러싼 독일에서의 논쟁이 ‘문명’에 관한 프랑스와 영국, 미국에서의 논의보다 더 치열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정상적이지 않았고 시도들 간의 차이도 존재하였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도들이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도 중에 이후의 문화-문명 간의 대립을 규정할 요소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칸트, 훔볼트, 볼프, 페스탈로치
‘civilisation’을 사용한 당대의 저술가를 참조하지 않고 오직 루소를 참조하여 발전시킨 칸트의 ‘문명’ 개념은 ‘문명화Zivilisierung’라는 개념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칸트는 인간의 발전과정을 교양화-문명화-도덕화로 파악한다. 여기서 문화와 문명이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문명은 ‘도덕성’과 사이에 대립한다. 더불어 문화는 도덕성까지 포함된 개념이다. 반면 문명화는 17세기와 18세기의 예절 개념으로 명백히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한편, 좀 더 긍정적인 ‘시민 미덕civilitas’이라는 의미를 재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문명화를 낮게 평가하지는 않지만 ‘문화’와 ‘문명화’ 사이에는 명백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칸트의 ‘문명화’는 ‘civilisation’처럼 능동의 의미로 쓰인다고 해도 이를 수용하거나 독일어화한 것이 아니라 독일어에서 새로운 단어를 채택한 것이다. 물론 이 신조어는 옛 요소들과 새 요소들 사이의 대립에 부딪쳐 실패하였다.
몇십 년이 지난 후 훔볼트에 이르러서야 몇 가지 구조적 일치점이 나타났다. 훔볼트는 종종 두 개념을 나란히 사용한다. 더불어 두 개념의 의미를 의식적으로 깎아내리기도 했다. 이유는 ‘교양’ 때문이다. 훔볼트의 경우 칸트처럼 ‘문화’와 ‘문명’이 제3의 변수인 ‘교양’과 대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교양’은 칸트의 윤리적 추구를 실러의 미적 추구와 결합시킨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훔볼트의 ‘문명’에 대한 이해는 사회적 상태를 강조함으로써 여전히 옛 ‘civilitas'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볼프는 고대학을 통해 두 개념의 대립을 전개하였다. 즉 생존 목적과 관계되는 좀 더 낮은 문명과 정신적 혹은 문학적인 좀 더 높은 문화의 대비가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화’는 여전히 상위 개념으로 남아 있고, 문명은 문화의 일종이 된다. 물론 이런 구별은 고대학에 국한된다. 다만 그 영향은 더 폭넓게 미치게 되어 유럽 민족들 간의 구분은 아니지만 유럽과 비유럽간의 구분으로까지 나아간다.
페스탈로치에 이르면 ‘문명’과 ‘문화’의 대립은 거의 최고조의 근본적 논의에 이르며 전체 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정신적 투쟁으로까지 고양된다. 물론 일반인들의 의식에까지 이런 구분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페스탈로치는 그간 ‘문화’와 ‘문명’의 정반대 극에 있던 ‘야만성’, ‘조야함’, ‘미개함’의 전통을 벗어나 ‘야만성’ 자리에 ‘문명’을 위치지운다. 이제 문명은 문화의 일부가 아니라 문화와 대립되게 된다. 그렇다고 이러한 구분의 위험인 특정한 민족들이 더 이상 인가이 아니라 단순히 동물적이고 문명화된 존재로 취급되는 것은 아직 페스탈로치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유럽과 비유럽 간의 대립이 아니라 유럽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유럽 내부에서 민족적 구분이 나타난다. 어쨌든 늦어도 1835년에는 ‘문화’와 ‘문명’ 간의 날카로운 구별을 위한 제 요소들이 독일에서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페스탈로치에게는 두 개념의 공통된 토대(문명은 교양의 한 형태)는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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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자신의 쾌락을 꿈꾸기 

1. 아르테미도로스의 방법
아르테미도로스의 <<해몽의 열쇠>>는 독자에게 어떻게 한 편의 꿈을 여러 요소들로 분해하고 그 꿈의 진단적 의미를 확립하는지, 또 어떻게 그러한 요소들에 입각하여 전체를 해석하며, 각 부분을 해독함에 있어서 이 전체를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가르쳐 주는 책이다. 그리고 아르테미도로스가 이 책에서 대상으로 삼는 꿈꾸는 사람의 전형은 일개 평범한 개인으로서 대부분의 경우 가정과 재산, 또 대부분 직업을 가진 남자이며, 종종 하인과 노예들을 거느리기도 한다. 이처럼 아르테미도로스의 책은 하나의 생활방식과 보통 사람들이 지닌 관심사들의 한 유형을 드러내는 ‘일상적 삶을 위한 개설서’이다.
한편 아르테미도로스는 이 책을 통해 몽복술의 반대자들을 논박하고, 어떠한 형태의 점술도 좀처럼 믿으려 들지 않는 회의주의자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신중한 조사방식과 방법적 논쟁을 통해 꿈을 밝히고 있다. 즉 이전 문헌의 광범위한 조사와 그 속에 있는 풍부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경험과 대조해 보고, 추론과 증명 작업을 통해 꿈을 검토하였다. 우리는 성적인 꿈의 분석 밑에 감춰진 도덕적 원칙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먼저 아르테미도로스가 적용한 분석방법에 잠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르테미도로스는 꿈을 “에누프니아”와 “오네이로이스”의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에누프니아”는 상태, 즉 욕망에 대한 꿈으로 개인에 관해 말하며, 육체와 영혼의 상태로부터 파생되고, 욕망과 혐오감의 영역에서 너무 과도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결핍된 것의 작용을 드러내어 현재 상태에서의 마음의 현실을 드러낸다. “오네이로이스”는 사건, 즉 존재에 대한 꿈으로 세상사와 시간의 사슬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미리 말해 주며, 영혼에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영혼을 형성하고, 세계의 질서 속에서 사건의 미래를 말해 준다. 아르테미도로스는 꿈의 두 가지 범주마다 또 다른 형태의 구분을 시도한다. 즉 해독이나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스스로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과, 비유적 방식으로 처음과 다른 이미지들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의 구분이다. 또한 두 가지 구분 사이의 작용은 꿈을 꾸는 주체의 존재양상들(덕성스러운 영혼과 평범한 영혼)에 따라 구별된다. 아르테미도로스가 꿈의 유형, 의미 방식, 그리고 주체의 존재양상 사이에 설정한 관계는 다음 표와 같다.   




 


상태에 대한 꿈


사건들에 대한 꿈


직접적으로


징조에 의해


정리적


우의적


덕성스런 영혼의 경우


 


결코 일어나지 않음

(비이성적인 충동을 다스릴 줄 알고 자신의 육체도 균형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


대개의 경우

(신이 직접 이야기한다는 것은 전통)


 


평범한 영혼의 경우


전문가


 


대개의 경우


 


대개의 경우


비전문가


대개의 경우


 


 


결국, 아르테미도로스가 <<해몽의 열쇠>>에서 해몽 작업의 영역으로 규정한 것은 평범한 영혼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우의적인 꿈이다.

한편 꿈의 알레고리에 대한 해독은 유추의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아르테미도로스는 이러한 유추를 두 가지 차원에서 작동시킨다. 하나는 꿈의 이미지와 그것이 예고하는 미래의 요소들 사이의 성질상의 유추이며, 다른 하나는 해몽술이 일어날 사건이 길한 것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가치상의 유추이다. 따라서 해몽의 두 가지 큰 규칙인 꿈은 존재를 말하되 유추의 형식으로 말한다는 것은 꿈은 현실 속에서 주체의 존재양식을 특징짓게 될 사건이나 행운 혹은 불운, 번영 혹은 불행을 말하되, 꿈속 성행위 장면의 행위자로서의 주체의 존재양상(좋거나 나쁘거나, 길하거나 흉하거나)과의 유추관계를 통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문헌 속에서 주체의 윤리학을 계시해 줄 것을 찾자.

2. 분석
아르테미도로스는 성적인 꿈을 법률에 부합하는 행위, 법률에 위배되는 행위, 자연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세 가지 행위유형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명료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다.

“법률에 부합되는” 행위에 관한 장에서 아르테미도로스는 꿈의 예측적 의미, 즉 일정한 방식으로 꿈에 나타난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 행위 자체의 형태가 아니라 남자가 됐건 여자가 됐건 파트너의 조건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이때의 조건이라는 말은 “상대방”의 사회적 신분이다. 따라서 법률에 부합하는 행위에는 부부관계나 애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창녀와의 관계, 지나가는 여성과의 관계, 하인과 노예와의 관계, 다른 남자와 맺는 능동적․수동적 관계, 심지어 수음행위까지도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성적 파트너와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 길흉의 징조를 파악한다.

“법률에 위배되는” 행위로는 근본적으로 근친상간,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로 한정한다. 먼저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 맺는 꿈의 경우, 그 꿈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을 언제나 상서롭지 못한 것으로 파악한다. 이에 반해 어머니와의 근친상간은 종종 길조의 조짐으로 파악한다. 왜냐하면 어머니를 무수한 사회적 관계와 활동형태에 대한 일종의 모델이자 원형으로 만듦으로써 그것에 종종 길조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때문이다.

“자연에 위배되는” 행위로는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자연이 정해 준 위치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 즉 정해진 체위(인간의 경우 정상위)를 벗어나는 것이며, 아르테미도로스는 오랄 에로티시즘에 특별히 중점을 둔다. 또 다른 하나는 파트너가 지닌 고유한 “특성” 자체를 위배하는 것으로 아르테미도로스는 신들과의 성 관계, 수간, 시간, 자기 자신과의 관계, 두 여자와 맺는 관계를 들고 있다. 그리고 자연에 위배되는 이러한 행위는 대부분 흉조를 의미한다.

3. 꿈의 행위
아르테미도로스의 꿈 분석에는 항상 두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먼저 꿈꾸는 주체와 꿈에서 보여 지는 행위주체가 정확히 일치한다. 한편 성행위와 성적 쾌락은 꿈의 구성요소 및 사건을 예측하게 하는 요소로서 분석되고 재분류된다. 따라서 그의 해석 작업은 성행위와 꿈속에서의 주체의 역할에서 출발하여 꿈에서 깨어난 이후 그에게 일어날 일을 해독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래서인지 아르테미도로스의 점술은 성적인 꿈들에서 어떤 사회적 의미를 매우 일정하게 해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이유는 첫째, 언어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즉, 그리스어에는 성적 의미와 경제적 의미가 거의 같이 쓰여 진다. 둘째, 그의 저술이 갖는 특수한 형식과 목적에서 기인한다. 즉, 그의 책은 남성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남자들에게 바쳐진 것이다. 따라서 그가 꿈의 이미지들을 통해 밝혀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가족적, 경제적, 사회적 삶의 짜임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성적인 꿈이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적 장면처럼 지각․가공․분석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따라서 아르테미도로스가 사용하는 분석방법을 따라가 보면, 성공 또는 실패, 사회적 출세 혹은 불운의 용어로 표현되는 “아프로디지아”의 꿈들에 대한 해석이 꿈과 사회의 사이에 일종의 동질성을 가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분석을 위한 재료로서 취해진 꿈의 요소들의 차원과 그 요소들에 의미(예측적 ‘가치’)를 부여해 주는 원칙들이 차원으로 나타난다.

아르테미도로스가 자기 분석의 타당성을 제시하는 성적인 꿈의 양상은 등장인물과 파트너를 사회적 특징을 고려한 사회적 윤곽으로서만 나타낸다. 그리고 등장인물들과 꿈꾸는 사람 사이의 관계는 단지 삽입이라는 본질적 형태를 중심으로 매우 단순하게 구성된다. 삽입행위는 몇몇 체위의 변화, 특히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그것의 양극과 함께 성행위의 질을 규정짓는 요소로 나타난다. 이러한 삽입행위는 사회적 배경 내부에서 즉각 감지된다. 그는 삽입행위와 관련된 요소들을 통해 성행위를 우선 지배와 복종의 “전략적” 게임으로, 또한 손실과 이득의 “경제적” 게임으로 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성행위의 질을 규정하는 요소들이 사회적으로 표명되는 요소들에 대한 분석을 사전에 충족시킨다는 사실이다.

아르테미도로스는 분석의 타당성을 위해 성적인 꿈의 “가치”를 세우는데, 그 가치는 예고되는 사건의 유형뿐만 아니라 그것의 “질”을 의미한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긍정적 가치”를 지닌 성행위는 법에 의해 허용되고 여론에 의해 존중되며 관습에 의해 인정되는 성행위와 대부분 일치한다. 그러나 차이(어머니와 근친상간)도 있으며 이 차이는 중요하다. 결국, 꿈에 나타난 성 관계의 질(가치)을 규정하는 것은 “깨어있을 때의” 사회적 관계와의 합치여부이다. 이 원칙은 “위치의 유사성”의 원칙, 즉 성관계를 맺는 꿈꾸는 주체와 꿈속 파트너가 실제 현실 속에서 맺고 있는 위치의 부합관계와 “경제적 합당성”의 원칙, 즉 성행위에 내포된 “지출”과 “이득”이 적절하게 조정되어야 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이상과 같이 아르테미도로스는 <<해몽의 열쇠>>를 통해 개인을 성 관계 속에서 능동적 주체로 구성하는 것과 사회적 활동 영역 속에 위치시키는 것 사이의 소통을 잘 보여준다. 책의 또 다른 한 단락에서는 꿈에 나타난 다양한 신체 부위들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문제가 된다. 남근은 도시국가 및 세계 속에 개인의 지위를 고정시키는 모든 관계와 활동에 대한 기표이다. 남근은 이 모든 지배 게임의 갈림길에서 모습을 나타낸다. 먼저 자기 절제의 게임으로, 그 다음 성행위 파트너에 대한 우월성의 게임으로, 또한 출생의 특전과 지위의 게임으로 말이다.
한편, 성적인 꿈에 할애된 아르테미도로스의 장들은 고대에서는 친숙한 정경이다. 우선, 남성적 인물이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와 성 관계에서 남성 역할에 부여된 주요성이 매우 강하게 부각되는 세계이며, 결혼이 성적 쾌락을 위한 최상의 환경으로서 간주되기에 충분한 가치를 부여받은 세계이다. 그리고 규약의 여러 요소가 존재하지만 극히 적을 뿐 아니라 매우 불분명하고 성행위의 질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이러한 규약의 요소들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반면 우리는 해석의 절차 자체를 통하여 성행위를 판단하는 또 다른 방식과 평가원칙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자연적 구조와 실제적 규제에 대한 행위의 적합성여부보다는 주체가 자신의 가족적, 사회적, 경제적 생활의 다른 측면들과 성행위 사이에 설정한 관계, 즉 주체의 “행위양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기울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성행위자로서의 주체로부터 그 주체가 활동하는 삶의 다른 영역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아프로디지아”에 대한 도덕적 경험의 기본 특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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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주권, 즉 전지구적 통제 사회의 관리 
 

자본과 주권은 모순적인 결합으로 보일 수 있음. 주권은 주권자의 초월성에 근거하며 특히 근대 주권은 영토, 주민, 사회적 기능 등등의 사이에 고정된 경계들을 만들고 유지함으로써 작동함. 즉, 주권은 사회적 장의 홈패임을 통해 작동함.
이에 반해, 자본은 초월적 권력 중심에 의거하지 않고 지배 관계의 연계와 네트워크를 통해 내재성의 구도 위에서 작동함. 자본은 역사적으로 전통적인 사회적 경계들을 파괴하고, 영토를 가로질러 확장하고, 그러한 과정들 안에서 새로운 주민들을 감싸 안는 경향이 있음. 즉, 자본은 탈코드화된 흐름들, 유연성, 계속적인 조율, 균등화 경향에 의해 규정되는 매끄러운 공간을 향하는 경향이 있음.
따라서 근대적 주권의 초월성은 자본의 내재성과 충돌하며, 역사적으로 근대적 주권 패러다임들은 특정한 역사 시기 동안 자본의 작동을 지지하지만, 결국은 극복해야 할 자본 발전의 장애물들임.
한편 시민사회는 어떤 역사 시기 동안 자본의 내재적인 힘들과 근대적 주권의 초월적 권력 사이의 매개자로 복무함. 그러나 현재 시민사회는 더 이상 이러한 매개지점에 복무하지 않음(노동조합의 예). 이러한 시민사회의 소멸은 또한 훈육 사회에서 통제 사회로의 이행과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음. 이처럼 제도들의 붕괴, 시민사회의 소멸, 훈육 사회의 쇠퇴는 모두 근대적인 사회적 공간의 홈패임을 매끄럽게 하는 것을 포함함. 여기서 통제 사회의 네트워크들이 발생.
훈육 사회 및 시민사회와 관련하여 볼 때, 통제 사회는 내재성의 구도를 향해 더 나아감. 먼저 훈육 제도는 그 자체가 주권이 아니라, 주체성 생산의 사회적 장으로부터의 훈육 제도의 추상화나 그 장을 넘어선 훈육 제도의 초월성이 훈육 사회의 주권 실행에서 핵심 요소를 구성. 따라서 주권은 가상적이고 현실적임. 언제 어디서나 훈육의 실행을 통해 실현됨. 통제 사회는 훈육의 내재적인 실행을 더 일반적으로 확장시킴. 즉 통제 사회로의 이행에서 훈육 사회의 초월적인 요소들이 쇠퇴하는 반면, 내재적인 측면들은 강조되고 일반화됨.
통제 사회에서 주체성의 내재적 생산은 공리계적인 자본의 논리와 일치하고, 그것들의 유사성은 주권과 자본 사이의 새롭고 보다 완벽한 양립 가능성을 가리킴. 통제 사회로의 이행은 정체성에 고정되지 않는, 잡종적이고 변화하는 주체성 생산을 포함하며, 이러한 잡종적 주체성은 어떤 정체성에도 속하지 않고 모든 정체성에 속하여 제도 바깥에 있지만 제도들의 훈육 논리에 훨씬 더 강하게 지배당함. 바로 제국적 주권처럼, 통제 사회의 주체성들은 혼합된 구성을 지님.

매끄러운 공간
국민 국가 경계의 홈패임을 매끄럽게 하는 전지구적 통제 사회의 확립은 세계 시장의 실현과 자본 아래 전지국적 사회의 실질적 포섭과 함께 진행됨.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제국주의는 자본의 생존과 팽창에 기여하였지만 효과적으로 자본, 노동, 상품의 자유로운 흐름과 세계 시장의 완전한 실현을 막으면서 내외부의 경직된 관념들을 만들어 내고 강화시킨 전지구적인 홈패임 기계임. 그러나 세계 시장은 코드화되지 않고 탈영토화된 흐름으로 이루어진 매끄러운 공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제국주의는 극복되지 않으면 자본의 죽음일 것’이며, 따라서 세계 시장의 완전한 실현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의 종말임.
국민 국가 권력의 쇠퇴와 국제 질서의 해체는 “제3세계”라는 용어의 효과도 결정적으로 제거함. 제3세계는 자본의 측면에서 제1세계의 잠재적 자본확대와 자본의 미래정복의 가능성을 가진 지형, 즉 열린 공간이었으며, 이러한 잠재적 포섭이라는 입장에서 제3세계는 실제로 하나였음.
또한 자본주의 영역 안에서 중심, 주변 그리고 반주변 국가들을 구별하는 이론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국제적 대립의 잠재적 통일성, 즉 반자본주의 국가들과 세력들의 잠재적 합류를 지칭함.
그러나 국민 국가들 사이의 혹은 심지어 국민 국가들의 중심과 주변, 북과 남 사이의 지리적 구분은 더 이상 생산, 축적, 그리고 사회적 형태들의 전지구적 분할과 배분을 파악하는데 충분치 않으며, 생산의 탈중심화와 세계 시장의 공고화를 통해 노동과 자본의 국제적 분업과 흐름은 깨지고 다양화하여서, 거대한 지리적 지대들을 중심과 주변, 북과 남으로 구분할 수 없음. 또한 차이가 있더라도 분성의 차이는 없고 오직 정도의 차이만 존재.
물론, 국제 질서의 보증자였으며 제국주의적 정복과 제국주의 주권에 핵심이었던 국민 국가는 반제국주의 세력의 성장과 조직화 시기 내내 국제 질서를 가장 위협하였음. 그러나 국민 국가의 쇠퇴는 구조적이고 불가역적임. 국민의 사법적-경제적 구조를 대체하는 GATT, WTO, IMF 등 전지구적인 사법적-경제적 기구들의 진화현상과 좀 더 중요하게는, 비록 국민이 여전히 효과적인 무기일 수 있을지라도, 국민은 완전하게 억압적인 구조들과 이데올로기들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국민에 의거하는 모든 전략을 거부해야 함.

새로운 분할
시민사회의 소멸과 국가 경계의 쇠퇴 속에서 사회적 불평등과 분할은 더욱 심해져 제국은 이를 특징짓고, 이 때문에 영구적인 사회적 위험 상황을 만들어 내며, 분리를 유지하고 사회적 공간의 새로운 관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통제 사회의 강력한 장치들을 필요로 함. 새로운 분리와 분할은 컴퓨터 및 정보혁명을 통한 노동자들의 사이의 격렬하고 무제한적인 경쟁이라는 노동의 정치에 의해 더욱 분명하게 정의됨. 이곳이 제국의 행정 행위론의 중심. 제국의 노동 정치는 사실상 본원적 축적 과정, 재프롤레타리아화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을 더욱 분화시키고 분할시킴. 또한 화폐 정책은 노동 정책이 명령한 분할을 강화함.
소통 정치를 통한 폭력, 빈곤 그리고 실업에 대한 공포는 새로운 분할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힘이며,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노동을 위한 투쟁을 만들어 내고 제국적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 갈등을 유지하는 데 핵심 열쇠이며, 새로운 분할을 궁극적으로 보장하는 것임.

제국적 행정
제국적 행정을 규정하는 첫 번째 원리는 제국적 행정 안에서 정치적 목적의 관리가 관료적 수단의 관리와 분리되는 경향이 있음. 행정 문제는 통일성의 문제가 아니라 도구적인 다기능성의 문제. 제국 체제에서 근본적인 것은 특별한 목적을 위한 행위들이 지닌 특이성과 적합성임.
두 번째 원리는 사회적 통합에 기여하는 대신 제국적 행정은 오히려 분산시키고 분화시키는 메커니즘의 역할을 함. 각자를 다르게 다루는 절차들의 차별화와 특이화가 모든 것을 동등하게 다루는 보편성이라는 낡은 행정 원리를 대체하는 것임.
세 번째 원리는 행정 행위는 근본적으로 비전략적이므로, 이질적이고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 정당화함. 행정 행위의 자율성과 통일성은 경찰과 군대의 논리, 경제 논리,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이고 소통적인 논리와 같은 제국을 구성하는 데 능동적인 구조적 논리들에 순응함으로써 만들어짐. 이상이 제국적 행정 행위에 관한 세 가지 “소극적인” 원리들(도구적인 특성, 절차적인 자율성, 그리고 이질성)임.
폭력적인 사회적 적대를 지속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제국적 행정 행위를 기능하게 하는 제국적 행정이 지닌 “적극적인” 특징인 네 번째 원리는 국지적 효율성임. 중세 봉건적인 영토 조직과 군주 권력 구조 사이의 예와 근대 마피아 조직과 국가 구조 사이의 예에서처럼, 국지화된 행정 기구들이 지닌 자율성은 제국적 행정과 모순되지 않고 반대로, 전지국적 효율성을 돕고 확대함. 따라서 제국 체제의 발전에 국지적 자율성은 필수 조건임. 또한 제국 체제에 대한 동의는 체제의 국지적 효율성을 통해 형성됨.
하지만 제국 행정은 최후의 위협, 폭동, 전복, 봉기에 맞서, 또한 심지어 행정의 국지적 분파들 사이에서의 정상적인 갈등에 맞서 체계를 지킬 수 없음. 우리는 여기서 행정문제가 명령 문제로 변형됨.

제국적 명령
제국적 명령은 근대 국가와 달리 생체 정치적 통제의 양태들을 통해서 실행됨. 그리고 명령 체계의 조직된 주체는 인민이 아니라 대중이 지닌 이동성, 유연성 그리고 영구적 분화에 의해 대체됨. 대중은 탈근대적 자본주의 체계의 도구로 지배되고, 실질적으로 포섭된 사회관계 안에서 지배됨. 그러나 대중은 자신의 탈영토화된 자율성 속에서 생체 정치적으로 실존한다는 것은 자율적인 많은 지적 생산성으로, 절대적 민주 권력으로 변형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지배의 전복도 가능함. 결국 제국 정부[통치]의 첫 번째이자 주요한 임무가 이를 막는 것임. 하지만 제국의 구성은 또한 이런 위협을 제기하는 생산적 협동을 하는 자율적 세력들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세력들의 역능은 통제되어야지 파괴되어서는 안됨.
제국적 통제는 세 가지 전지구적이고 절대적인 수단들, 즉 폭탄, 화폐 그리고 에테르를 통해서 작동. 제국의 꼭대기에 있는 수소 폭탄 무기는 삶 자체를 지속적으로 파괴할 가능성을 나타냄. 핵 기술의 발전과 제국적 집중이 주권에 대한 전통적 정의의 주요한 요소인 전쟁과 평화에 관한 결정권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제거하는 한, 이것은 그러한 나라들의 주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모든 전쟁을 제한된 갈등, 내전, 추한 전쟁 등으로 축소하며, 모든 전쟁을 행정력과 경찰력의 독점하는 영역으로 만듦.
화폐는 두 번째 전지구적인 절대적 통제 수단임. 세계 시장은 구축은 무엇보다 먼저 국내 시장의 화폐적 파괴, 일국적 그리고/또는 지역적 화폐 조절 체제의 해체, 그리고 국내 시장들의 금융 권력의 욕구에의 종속으로 이루어짐. 화폐 메카니즘은 시장을 통제하는 제1의 수단임.
에테르는 제국적 통제의 세 번째이자 최종적인 근본적 매개체. 소통의 관리, 교육 체계의 구조화 그리고 문화의 조절은 오늘날에는 전보다 더 최고 대권으로 나타남.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에테르 속에 용해됨. 소통 공간은 완전히 탈영토화됨, 소통 공간은 잔여의 문제가 아니라 변형의 문제임. 소통은 자본이 자신의 체제에 사회를 전체적으로, 전지구적으로 복종하게 하여 모든 대안적인 길을 억압하는 데 성공한 자본주의적 생산 형태임. 따라서 대안은 실질적 포섭사회 안에서 생겨나며, 실질적 포섭 사회의 핵심에 있는 모든 모순을 드러내야 할 것임.
이런 세 가지 통제 수단을 제국적 권력 피라미드의 세 층을 참고하여 보면, 이런 메커니즘들이 통제력을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모든 영토적인 제국 공간 개념은 제국 장치의 핵심에서의 근본적인 유연성, 이동성 그리고 탈영토화에 의해 지속적으로 동요함.

거대 정부는 끝났다!
“거대 정부는 끝났다”는 제국 전역에 있는 보수주의자와 신자유주의자의 전투 구호임. 그러나 탈근대적인 정보 혁명의 발전이 자신의 노력을 지지하기 위해 거대 정부를 매우 필요로 하는 바로 그 때에, 보수 진영의 대표자들이 거대 정부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는 것은 최종적이고 잔인한 아이러니였음. 소련의 붕괴 이후 바로 이 시기에 미국정부가 직면한 제국적 임무는 매우 긴급했고, 거대 정부가 매우 필요했음.
이제 우리가 “거대 정부는 끝났다!”라고 외칠 차례임. 제국적 탈근대에서 거대 정부는 단지 전제적 지배 수단이며 전체주의적 주체성을 생산할 뿐이며 욕망의 한계를 규정함. 그러나 욕망은 한계가 없고 누구나 삶을 지속적으로, 자유롭게, 동등하게 즐길 수 있고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투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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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된 구성 

생산 패러다임의 네트워크 모델로의 전환은 국민 국가의 전통적 경계를 넘어 초국적 기업의 권력을 증대시킴. 이러한 새로운 관계는 자본가와 국가 간의 오랜 권력 투쟁의 측면에서 인식되어야 하는데, 즉 국가는 자본의 집합적 이해 속에서 개별 자본가들의 이해를 증대․조절하는 신중함을 요구받고, 자본가는 국가가 자신들의 집합적 이해를 위해 행동하고 있는 동안에도 국가 권력에 맞서 싸울 것임. 이러한 갈등은 실제 사회적 총자본의 관점에서는 행복하고 효력 있는 변증법임.

거인들이 지구를 지배할 때
국가와 자본 간의 변증법은 자본주의 발전의 서로 다른 국면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임. 18세기와 19세기의 유럽의 개별 자본가들은 유럽 국민 국가들 안에서는 큰 갈등 없이 식민지를 지배하였고, 식민지 영토들에서는 실제로 주권을 가지고 있었음.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 국가의 경계를 넘어 확장하는 특정한 산업들 및 일단의 산업들을 지배하는 준독점체들은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침식에 의한 자본주의 번영에 직접적 위협을 가하는 한편 국가의 관리 능력도 훼손시킴. 따라서 산업에 대한 국가 규제의 확장과 기업에 대한 자신의 지배[명령]의 확립이라는 일련의 투쟁이 발생함. 또한 식민지 영토들에서도 행정 기관들과 사법권 아래에서 식민지의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효율적으로 회수[포획]하여 사회적 총자본의 이해를 보장함.
오늘날은 거대 초국적 기업이 국민 국가의 사법권과 권위를 효율적으로 넘어선 것을 보고 ‘국가는 패배했고 기업들이 이제 지구를 지배한다!’라고 파악할 수 있음. 그러나 국가 없이 사회적 자본은 자신의 집합적 이해를 계획하고 실현시킬 수 없음. 초국적 기업과 생산 및 유통의 전지구적 네트워크가 국민 국가의 역능을 침식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기능과 헌법적 요소는 효율적으로 다른 수준들 및 차원들로 대체되어 옴.
먼저 정치적 관계의 위기로 국민 주권이라는 개념이 효율성을 잃어 가고 있는 만큼 정치적인 것(정부와 정치, 정치적 매개 메커니즘)의 자율성도 효율성을 잃어 가고 있음. 모든 자율적 정치 국면의 쇠퇴는 혁명의 장소인 모든 독립 공간의 쇠퇴를 나타내는 전조가 되어, 전통적인 대항 권력과 근대 주권 일반에 대항하는 저항이라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져 다시 한 번 새로운 저항형태를 발명해야 함. 또한 민주 국가의 기능은 전통적인 정치 및 저항 국면의 쇠퇴를 보완하는 측면으로 변형. 일련의 독립 기구들(전통적인 독립 기구들 외에 은행, 국제적 계획 기관들 등)이 정당성을 권력의 초국적 수준에서 찾음.
그러나 국민 국가의 입헌적 메커니즘과 통제가 쇠퇴해 왔고, 국민 국가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초국적 기업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스스로를 관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음. 따라서 어떻게 권력이 초국가적 수준으로 이루어지는가를 탐색해야 함

전지구적 구성의 피라미드
전지구적 권력의 모습을 그 권력의 다양한 기구들과 조직들 속에서 분석할 때, 각각 몇 가지 수준을 지닌, 점점 더 넓어지는 세 층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구조를 인식할 수 있음.
피라미드의 좁은 정점에는 전지구적 무력 사용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최강 권력인 미국이 위치. 그 정점의 두 번째 수준으로, 전지구적 통화 수단을 통제하며 국제 거래의 조절능력을 가진 일련의 조직체들(G7, 파리와 런던클럽, 다보스 등)이 존재. 다음 세 번째 수준으로, 문화권력과 생체 정치권력을 전개하는 군사적, 재정적 수준에서 헤게모니를 발휘하는 다소 동일한 능력의 이질적인 단체들이 위치.
다음 두 번째 층에는 세계 시장을 통해 확장해온 초국적인 자본주의 기업들의 네트워크들(자본 흐름, 기술 흐름, 인구 흐름의 네트워크들 등)이 구축되어 있음. 또한 초국적 기업들의 힘에 종속되는 수준에서 국민 국가들의 일반적 틀도 존재. 이 국민 국가들은 전지구적 권력으로부터 부의 흐름을 포획하여 전지구적 권력에 부의 흐름을 분배하며, 가능한 많은 주민들을 훈육시킴.
마지막 세 번째 층에는 전지국적 권력의 배치에서 인민의 이해를 대표하는 집단들로 구성. 대중[다중]은 전지구적 권력의 구조들 속에 직접적으로 편입될 수 없고, 대의제를 통한 국민 국가로, 매체로, 종교 조직으로, 그리고 전지구적 시민사회에서 가장 새롭고 가장 중요한 세력인 비정부기구(NGO)로 걸려져 제국의 토대가 됨.

폴리비우스와 제국적 통치
폴리비우스가 분석한 로마제국의 세 가지 “좋은” 권력 형태(황제, 원로 회의, 그리고 인민적 의회의 이름들로 구현된 군주제, 귀족제, 민주주의)는 오늘날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제국과 사회․정치 세력과 매우 다르다 할지라도, 형식적으로 양립 가능한 관계임. 그러나 폴리비우스의 해석의 계보학에 서있지만 마키아벨리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통해 이어진 해석에서는 폴리비우스의 고전적인 삼자 모델을 삼기능적인 헌법 구축 모델로 변형시킴.
어떤 점에서는 당초의 폴리비우스의 고대적인 제국 구성 모델이 근대 자유주의적 전통이 변형시킨 모델보다 오히려 우리의 현실에 더 가까운 것 같음. 왜냐하면 우리가 경험한 제국의 (형태상) 구성은 실제로 전통이 내세우는 “좋은” 정부[통치] 형태들보다는 “나쁜” 정부[통치] 형태들의 전개와 공존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임.

잡종적 구성
오늘날 등장하고 있는 제국(사법적 형식화의 틀, 입헌적인 보증 메커니즘, 그리고 균형 도식)은 근대적 지형에서 탈근대적 지형으로 넘어가는 이행 속에서 두 가지 주요 축을 따라 변형됨.
변형의 첫 번째 축은 혼합된 구성(독립 기구들이나 기능들의 혼합이라는 고대적이면서 근대적인 모델)에서 현 상황에서의 통치[정부] 기능의 잡종적 구성(탈근대적 군주제와 귀족제, 그리고 민주주의적 기능들 자체의 잡종화)으로의 이행.
구성 이론의 대체와 구성 자체가 지닌 새로운 특성 둘 다를 드러내는 구성적 변형의 두 번째 축은, 현 국면에서 명령은 사회의 시간적 차원(주체성 차원)에 대해서 더욱더 커다란 정도로 실행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에서 드러남. 이러한 변형의 핵심은 시간적 차원에서 대중과 관련한 민주주의적 계기에 존재. 이곳이 가장 중요한 질적 도약, 즉 통치의 훈육적 패러다임에서 통제적 패러다임으로의 도약을 인식해야만 하는 곳. 규칙[지배]은 생산적이고 협동하는 주체성들의 운동에 대해 직접 실행되고, 제도들은 이러한 운동의 리듬에 따라 지속적으로 형성되고 재규정되며, 권력의 지형학은 더 이상 공간적인 관계와 일차적으로 관계하지 않고, 주체성들의 시간적 전위[대체] 속에 각인됨, 즉 제국의 잡종적 통제 기능은 무-장소(잡종적 공간)에서 실행됨.
이러한 제국적 무-장소(잡종적 공간)에서 구성 과정을 항상 규정하는, 사회적인 것으로부터 정치적인 것 및 사법적인 것으로의 움직임이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며, 입헌과정에서 형식적인 인정을 요구하는 사회 세력과 정치 세력 간의 호혜적인 관계가 등장하기 시작하며, 다양한 기능들은 자신들을 구성하고 자신들의 구성 과정의 단편들을 포획하려는 주체성들이 지닌 힘을 가늠함.

구성을 둘러싼 투쟁
제국의 구성을 둘러싼 투쟁은 모호하고 변화하는 영역에서 전개되어야 함. 이러한 투쟁을 규정할 세 가지 핵심 변수, 즉 공통적인 것과 특이한 것 사이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변수, 명령의 공리계와 주체의 자기 동일시 사이에서 작동하는 변수, 권력에 의한 주체성 생산과 주체 자신의 자율적 저항 사이에서 작동하는 변수임.
이러한 변수에 따라 각각의 주체성은 일반적인 통제 네트워크 속에서 지배받는 주체가 되어야 하면서도, 동시에 또한 네트워크 안에서 독립적인 생산 및 소비의 대행자[담지자]이어야만 함. 여기서 정치적 주체는 덧없고 수동적이지만,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행자는 현존하며 능동적임을 알고 있고, 새로운 혼합된 구성의 형성은 기존 행위자들 간의 근본적인 불균형을 가져오고, 따라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를 정치적 메커니즘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새로운 사회적 원동력이 되게 한다는 것을 의미. 여기가 바로 제1의 투쟁 장소가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임. 주체성의 생산 및 조절의 영역에서 그리고 정치적 주체와 경제적 주체 간의 분리 속에서, 우리는 모든 구성 책략과 세력 균형을 재개할 수 있는 실제적인 투쟁의 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임.

구성의 스펙터클
그러나 이러한 열린 투쟁의 장도 스펙터클이라고 하는 공적담론과 여론을 생산하고 조절하는, 통합하고 확산적인 이미지 및 관념 장치에 의해 사라짐. 스펙터클은 모든 집합적인 사회성[사교] 형태를 파괴하며 동시에 새로운 대량 사회성, 행동과 사고의 새로운 획일성을 부여하여 구성을 둘러싼 전통적 투쟁 형태들을 상상할 수 없게 함. 스펙터클은 여론과 정치 행동에 대한 매체 조작을 통하여 마치 매체, 군대, 정부, 초국적 기업, 전지구적 금융 제도 등이 단일한 권력에 의해 의식적이고 분명하게 지도받는 것처럼 기능하며, 또한 구시대의 무기인 공포(구시대와 차이는 공포를 소통시키는 미신의 형태와 메커니즘)를 통하여 일차적으로 사회를 통제하며 공포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욕망과 쾌락의 형태를 창조함.
탈근대적․잡종적 구성과 공적인 것 및 정치에 대한 매체 조작을 결합하는 공포의 스펙터클은 제국적 구성을 둘러싼 투쟁에서 그 근거를 빼앗음. 그러나 낡은 투쟁 장소들과 투쟁 형태들이 쇠퇴해감에 따라 새롭고 더욱 강력한 투쟁 장소들과 투쟁 형태들이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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