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자본-국가-민족(국민)의 삼위일체에 의해 운용되며 그 생명력이 각각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 쪽이 위기에 처해지면 다른 쪽이 보완하는 형태로 그 생명력을 유지한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독립된 하나(자본 또는 국가 또는 민족)만을 문제삼아 극복하는 것은 잘못된 대응이라고 하며 그 대안을 어소시에이션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아래는 이 책의 결말이며 대안적 실천의 장인 어소시에이션에 대한 정리글이다.
어소시에이션은 3가지 교환양식 중 자본주의와 관련이 있는 상품교환을 중지시키기 위한 호수 또는 호혜를 기반으로 하는 교환양식이 중심인 공간이다. 특히 맑스의 공산당 선언에서와 같이 고진은 단순한 어소시에이션만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호혜적 교환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의 구성과 함께 그런 공동체간의 호혜적 교환이 지속되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품교환을 중지시키는 호수적(호혜적) 교환의 어소시에이션에 대해 고진은 생산자협동조합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고진은 <<트랜스크리틱>>에서 우리가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인 것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이 둘의 연결을 주장하며 생산자협동조합뿐만 아니라 소비자협동조합도 상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동체의 공동체도 가능하지 않을까? 즉, 맑스가 말한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이며 이럴 경우 자본주의에 의한 상품교환은 숨이 멎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생산자협동조합과 같은 어소시에이션을 확대 강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진은 프루동과 맑스의 경험을 통해 이에 대한 해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고진의 주장을 되돌아보면 알다시피 3가지 교환양식 중 또 문제가 되는 교환양식이 국가에 의한 약탈-재분배양식이다. 이 양식은 상품교환양식과 병행하여 서로 의존하고 있다. 서로 기대어 부양하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상품교환양식을 중지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에 의한 약탈-재분배양식도 중지시켜야만 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시도되었던 것이 우선 프루동과 같이 생산자협동조합과 같은 어소시에이션을 국가가 조장해야한다는 주장과 혁명을 통한 국가를 어소시에이션이 대체해야 한다는 맑스의 주장이다. 경제혁명과 함께 정치혁명이 동시에 존재해야하는 것이다. 물론 맑스는 정치혁명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한시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국가의 소멸이 진정한 해방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있다고 고진은 강조한다. 즉 국가란 다른 국가에 대해서 국가라는 것이다. 따라서 내부적 투쟁을 통해 국가를 해체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했던 파리 꼬뮨과 소비에트를 생각하면 이점은 충분이 이해할 수 있다. 국가는 다른 국가와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혁명 이후에 해체되어야할, 맑스의 표현으로 보면 어소시에이션에 의해 대체되어야할 국가가 오히려 강화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경험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이 지점이 고진의 독창적인 주장이며 이 지점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넘어가는 지점이다. 즉, 국가들을 제어할 수 있는 세계공화국의 건설을 주장한다.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상품교환이 중지되는 경제혁명 또한 내부적인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화폐 때문이다. 화폐도 또한 국내적 유통에 사용되지만 이를 넘어서 국제적 결재수단이다. 어소시에이션 안에서의 대체화폐 또는 신용화폐만으로는 자본의 마지막 숨통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고진은 맑스를 넘어서고 있는 듯 보인다.
자! 이제 고진의 최종 결론을 정리해 보자.
고진의 결론은 조금 허망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필요한지는 이해가 되지만 어떻게 하면 그걸 만들 수 있는지는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국가와 자본의 공생관계를 끝장내고자 하는 시도가 어떤 지점에서 실패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면서 우리들에게 실패를 딛고 또 다른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장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진의 해결은 경제 및 정치혁명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운동만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운동(“국가들을 ‘위로부터’ 封함으로써”)을 통한 글로벌 커뮤니티의 실현이다. 그 단초는 칸트의 영구평화를 위한 ‘국가연맹’ 구상에 기초하고 있이다. 이미 역사 속에서 2차례 전개된 예가 있다. 1차 세계대전과 관련하여 국제연맹이 2차 세계대전과 관련하여 국제연합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둘은 칸트에게서도 현실주의적 타협안에 지나지 않았기에 현실적으로 실패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국가들을 위에서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여전히 미국을 비롯한 패권 국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 이제 고진의 철학적 기초인 칸트의 평화론을 언급하지 않고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224~225쪽 요약) 현재 인류의 긴급한 과제를 세 가지로 집약됩니다. 전쟁, 환경파괴, 경제적 격차가 그것이죠. 이 세 가지는 분리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가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죠. 더불어 이것들은 국가와 자본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그렇다면 국가와 자본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것들은 일국 단위로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국가에 대항하면 좋을까요?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각국에서 군사적 주권을 서서히 국제연합에게 양도하도록 하여, 그것을 통해 국제연합을 강화 재편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국에서 일어나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은 국가들을 ‘위로부터’ 봉(封)함으로써만 단절을 면합니다. ‘아래로부터’와 ‘위로부터’의 운동의 연계에 의해 새로운 교환양식에 기초한 글로벌 커뮤니티(어소시에이션)가 서서히 실현됩니다. 물론 이 실현은 용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 길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