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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가하자, 끙끙 - 0~3세 아기그림책 ㅣ 아기 그림책 나비잠
최민오 지음 / 보림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우리 아들에게 특별히 지시를 해가며 배변훈련을 시키지 않았다. 어떤 아이도 부모가 뭔가를 강제로 시키는 걸 달가와하지 않겠지만, 우리 아들녀석도 고집에 워낙 세서 억지로 시키다가는 역효과만 나타날 것 같았기때문이다. 주위에선 18개월부터는 슬슬 시켜야 된다며 왜 배변 훈련을 안 시키냐고 성화였지만 (특히 시아버님...-_- 돌 무렵부터 쉬를 가리게 해야한다고 성화셨다.) 나는 그저 느긋하게 때를 기다렸다.
대신 응가와 관련된 그림책을 4-5권 정도 샀다. 그리고, 그 책들을 간간히 돌려가며 읽어줬다. 그래도 너도 얘네처럼 이렇게 응가를 하고 쉬를 해야한다는 말은 한번도 안했다. 그냥 얘네들은 이렇게 응가를 하는구나 하고 그 모습들만 보여줬다.
그런데, 응가 관련 책 가운데 아들 녀석이 제일 좋아한 책이 바로 이 '응가, 끙끙'이었다. 사실 나에게는 제일 첫인상이 안 좋은 책이었는데 말이다. 다른 응가 책들은 변기에 쉬를 하거나 응가를 하는 과정들이 좀더 자상하게 나와있다. 그런데, 이 책은 뭔가 좀 설명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저 동물들이 차례로 나와서 '응가하자, 끙끙'하며 일을 보는게 전부였다. 콜라쥬 스타일의 그림도 어쩐지 애들이 보기엔 좀 복잡해 보였다. 이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시던 친정어머니께서 '어린애가 어디 정신사나워서 그런 그림책을 좋아하겠냐'는 말씀까지 하셨었다.
하지만, 아이와 어른의 시각은 분명 다르다. 아들녀석은 이 책 속의 동물과 친구가 응가하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다른 응가 책들은 시큰둥해하고 이 책만 좋아했다. 동물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응가하는 모습을 따라하면서 제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힘을 주곤 했다. (저러다가 정말 싸는 거 아닌가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날부터 자기가 알아서 유아용 변기에 달려가 똑같은 포즈로 응가를 하기 시작했다. 힘을 줘도 잘 안나오면 책 속의 대사처럼 저혼자 '괜찮아' 그러고는 다시 힘을 준다. 누가 그러라고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서 그런지, 응가하는 과정을 무척 즐거워한다. 아마도 책 속의 동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 같다.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서 시기적으로는 배변훈련이 좀 늦어졌는지 모르지만, 정말 아무런 어려움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된 과정이었다. 나는 시기가 빠르고 느리고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변훈련을 하는 과정 속에서 아들녀석이 별다른 불쾌감을 느낀 적이 없었고, 나역시 한 순간도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 과정 가운데에는 이 책의 도움이 정말 컸다. 무척이나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