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눈으로

어린이와 그림책 - 그림책을 선택하는 바른 지혜 ㅣ 행복한 육아 15
마쯔이 다다시 / 샘터사 / 2003년 7월

지식이나 정보를 얻을 속셈으로 펼쳐든 책에서, 예상치 못하게 저자의 '마음'까지 만나고 감동을 받는 경우가 있다. 아기를 기르면서 읽게된 책 중에는, <삐뽀삐뽀 119 소아과>와 <어린이와 그림책>이 그런 책이다.

<삐뽀삐뽀 119 소아과>에선 잘못된 육아방식으로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진심어린 걱정과 우려를 만났고, <어린이와 그림책>에서는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따뜻한 마음을 만났다. 저자들의 마음과 가슴이 묻어 있어서 그런지, 두 책 모두 전하고 하는 지식들에 힘이 담겨있다.

생소한 일본인 저자의 <어린이와 그림책>에서는 정말 배운 게 많다. (칭찬으로 가득한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읽고 구입한 책인데,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림책들이 쉬운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그런지, 어른들은 스스로 '그림책'을 잘 알고 있고 잘 평가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자기 만족적인 선택을 앞세우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림책에서 진정 원하는 것을 쉽게 놓치곤 한다.

어른들의 경우엔, 글자화된 내용부터 훑어보고 (절대 소리내어 읽어보진 않는다) 내용이 교육적으로 좋다 싶으면 전체적인 그림의 인상을 본다. (그림의 디테일은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그림책을 보는가. 엄마나 아빠가 읽어주는 목소리를 통해 그 책 속의 세계를 처음 만나고, 삽화를 볼 때는 아기 곰의 양말 무늬까지도 눈여겨보며 그 안에도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믿는다.

이 책은 아이들의 눈으로 책을 고르기 위해선 어른 역시 아이들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그 방법을 정성스럽게 알려주고 있다. 좋은 그림책의 예를 따라가다 보면, '아, 그래, 어릴 땐 나도 이런 그림책을 좋아했었지!'하며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오랜 시간 속에 퇴화된, 그러나 분명 몸 속 깊숙이 베어있던 '선천적인 그림책 선별능력'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 외에도 그림책은 아이 혼자 읽히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소리내어 읽어주면서 공통의 언어 경험을 나눌 때 가치가 있다는 내용, 흔히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겨지는 '권선징악'의 동화들이 사실은 평생을 통해 이어지는 '선'에 대한 희망과 믿음의 바탕이 된다는 내용 등... 이 책에는 정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그림책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바탕을 둔 주장이 아니라, 저자가 수십 년을 어린이 책 발간에 몸 담아오면서 경험으로 체득하고 아이들로부터 직접 배운 내용들이라 더욱 설득력이 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여러모로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비해 책의 편집과 인쇄가 너무 조잡하다는 점이다. 특히 외국 그림책의 삽화가 실린 부분은 복사기로 카피해서 책에 실은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로 거칠다. 책의 초라한 외양 때문에 자칫 겉치장만 화려한 엉터리 육아책들의 뒷전에 밀리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정말 좋은 내용을 담은 책은 입소문을 통해 결국은 알려지게 되는 법... 내가 알라딘의 독자서평란에 이 글을 더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바쁘신데 이 책에 시간 투자하지 마세요...

IQ에 EQ까지 쑥쑥 높여주는 실천 O세 교육 ㅣ 엄마 글방 2
김미랑 지음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1996년 5월

아기 기르시느라 바쁘신 아기 어머님들, 괜히 이 책에 시간 투자하지 마시길. 우선은 읽느라 한나절 보내는 게 아깝고, 그 다음엔 쓸데없이 '우리 아기도 영재 교육시켜야 되는데, 어느 교육 방법으로 시키나'하고 고민하는 시간도 아깝습니다. 더욱 최악의 상황은 큰돈주고 씨찌다 교육이니, 은물 교육이니 덜컥 회원 가입하는 겁니다. 유혹에 빠지지 말기 위해서라도 이 책 읽지 마세요.

이 책에서 건질 내용은 딱 한가지, '인간의 두뇌 발달의 대부분은 0세에서 3세 사이에 완성된다' 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어머님들도 다 알고 있는 거 아닌가요? 두뇌 발달이라는 것이 이 책에 제시된 시찌다니 돗트, 칼 비테 교육법으로만 완성되는 것은 아니니 절대 조바심내지 말자구요. 엄마들의 지속적이고 애정이 담긴 자극과 관심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책에서 제시한 내용들은 저자의 실증적인 연구 결과도 아니고, 검증되지 않은 이론들을 적당히 편집한 내용입니다. 서점에 가서 미리 내용을 살펴보지 않고, 제목만 보고 주문한 책이라 구입한 걸 후회하고 있답니다...

훌륭한 부모가 되려면 우선 훌륭한 인간이 되자

지혜로운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박경애 지음 / 오늘의책 / 2001년 2월

이 책은 어떤 특별하고 새로운 자녀 교육법을 솔깃하게 제시하는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많은 이들이 알고는 있지만 잊고 있었던,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자녀 교육의 핵심을 되짚어 주는 책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왜 이렇게 당연한 진실을 잊고, 자꾸 별난 육아법이나 교육법에 귀를 기울였던가'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은, 스스로가 훌륭한 인간이 되지 않고서는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은 부족한 것 투성이면서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부족한 것을 말한다) 책에서 보고 배운 교육법으로 무장하고 훌륭한 부모 노릇만 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자녀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이해하고, 그의 욕구를 헤아리고 적절하게 반응하며, 그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등... 비단 자식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타인 어느 누구와의 소통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힘든 부분들이다.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주관이 제대로 서 있어야만 훌륭하게 수행될 수 있는 부분들인 것이다.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는 제대로 행해지지 못하는 부분이, 자식과의 관계에서만 제대로 행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 아닌지.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점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책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성숙한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인격적 성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들 준연이에게만 훌륭하게 자라라고 다구칠 일이 아니라...

마음을 사로잡는 쯔베르커의 삽화

안데르센 동화 - 마루벌의 새로운 동화 하나 ㅣ 마루벌의 새로운 동화 1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지음, 정문영 옮김, 리즈베스 츠베르거 그림 / 마루벌 / 1996년 5월

이 동화책은 시중에 흔한, 내용도 제멋대로인 안데르센 동화책들과는 분명히 다른 책이다. 원작을 적당히 잘라낸 내용을 또 베끼고 또 베껴서, 나중엔 엉뚱하게 변형되어버린 안데르센 동화책들이 얼마나 많던가. 아이들에게 걸맞게 편집되었다는 미명 아래...

이 책에는 '인어공주'같은 유명한 안데르센 동화들은 실려있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원작에 충실하다는 인상을 준다. 지나치게 교훈적인 면을 강조하지도 않고, 위트가 넘치는 세세한 표현들을 그대로 살려서 진짜 안데르센 동화의 색깔이 오히려 살아나는 느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동화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삽화가 아닌가 싶다. 독특한 향기가 배어나는 수채화 빛깔과 생략의 미학을 최대한 살린 구도. 리즈벳 쯔베르커라는 낯선 일러스트레이터의 이름이 이 동화책 한권 때문에 내 머릿 속에 뚜렷하게 새겨지게 되었다. 역시 그녀가 그렸다는 <난장이코>도 서둘러 구입할 생각이다.

알라딘에서는 이 책을 4-6세 용 아동도서로 분류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 이상의 연령층에서 훨씬 더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 마음 속 깊은 곳의 추억을 아련하게 건드리는, 그런 매력이 있는 책이다.

독특하지만, 섬뜩한 삽화

론포포
에드 영 글 그림 / 보림 / 1996년 11월

낱권으로는 절판이지만, 알라딘에서도 구입이 가능한 <테마동화 2000> 전집에 속해있는 책이다. 전집 속의 다른 동화들이 대부분 서구의 동화라서,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이 그림책이 금새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의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거의 흡사한 내용의 이 동화책은 무엇보다 독특한 삽화가 남다르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탓에 동양적인 느낌이 강한데, 그 '동양적'이라는 것이 사실 서양 사람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의 '동양적'인 느낌이다. 솔직히, 동양에 사는 진짜 동양 사람들이 보기엔 오히려 생소하다. 지은이 에드 영은 텐진 출신이라는데, 왜 이렇게 서양의 시각에서 중국을 그렸는지 오히려 의아하다.

섬뜩한 느낌의 이 동화책의 삽화를 보며 늑대의 눈이 너무 무섭다고들 하는데, 나는 솔직히 주인공 남매의 눈이 더 무서웠다. 서양인들이 동양인의 눈을 묘사할 때마다 강조되는 '옆으로 쫘-악 찢어진 눈'이 어찌나 섬찟하던지. 정말 우리들의 눈이 이렇게 생겼던가...?

칼데콧 상을 수상한 동화책 중엔 대체적으로 훌륭한 동화책들이 많다.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과연 칼데콧 상을 탈만큼 좋은 동화책인가 하는 점에는 의문이 남는다. 아마도 민속적인 내용이란 점에 점수를 후하게 주었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그저 '독특하다'는 정도의 인상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