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토불이 육아법 - 잔병치레 없는
박미자 지음 / 동아일보사 / 1998년 3월
평점 :
절판
아직 아기를 임신 중일 때 이 책을 구입했다. 당시에 이 책을 비롯한 몇권의 신토불이 육아책이 한창 화제를 모으고 있어서, 어느 정도는 호기심에서 구입했었다. 아직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이라 실감이 안 나서 대충 훑어 보았는데, 언뜻 좋은 내용들인 것 같았다. 우리 땅에서 나는 싱싱한 우리 음식으로 아기를 기르자는데, 누가 반박하랴.
하지만, 아기를 낳아 모유를 먹이고, 이유식도 먹이기 시작하면서 이 책의 헛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가공식품을 먹이지 말자, 신선한 제철 음식을 먹이자, 생수를 먹이자...다 좋은 말들이지만, 구체적인 식단으로 들어가 보면 문제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서양의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불신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식단이라는 것이 영양학적으로 불균형한 부분이 많고, 정작 중요한 부분들은 많이 소홀히 하고 있다. 내가 바라보는 관점이 서양 의학의 영양학적인 면에 치우져 있는지는 모르나, 짚고 넘어갈 것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우선은, 식단이 지나치게 곡류 위주이다. 특히 오곡을 섞어만든 오곡죽을 강조하는데, 이 오곡죽 위주의 식단 역시 문제가 있다. 이유식을 통해 세상의 갖가지 맛을 처음 익히는 아이들에게는 서로 다른 맛을 비교할 기회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소아과에서는 여러 종류의 음식을 섞어먹이지 말것을 권한다. 여러 맛이 뒤섞인 죽을 매일 먹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게다가, 오곡죽을 쑤어 젖병에 분유와 섞여 먹이라니... 분유에 다른 음식을 섞지 말고 이유식은 숟가락으로 떠먹여야 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 아니던가?
또한, 육류의 섭취를 지나치게 배제하고 있다. 얼마전 채식열풍이 불면서 육류는 건강을 해치는 음식인양 알려지고 있는데, 특히 성장하는 아기들에게는 철분, 단백질의 섭취를 위해 육류가 꼭 필요하다고 한다. 이 책 속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만 먹이고, 두유로 보충하라고 하는데... 두유 자체도 알려진만큼 완전한 식품은 아니다. 더구나 두유에 알레르기를 보이는 아기들도 많다.
그 외에도 이 책 속의 식단은 염분 섭취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보이질 않는다. 이유식 초기부터 멸치 국물은 물론, 된장국, 김치까지 먹이라고 하는데... 하지만, 된장국, 김치는 얼마나 고염분 식품인가. 두세살이 지나 먹기 시작해도 결코 늦은 것이 아닐텐데 저자는 자신의 자녀들이 이런 음식을 잘 먹어 건강하다고 주장하지만, 짠맛에 길들여진 입맛은 성인이 된후 성인병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근거가 희박한 주장들이 많다. 11개월쯤 되면 더 이상 모유를 먹일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근거인지... 모유도 동물성 식품이라는 말인가? 저자의 자녀는 6개월부터 모유, 분유 다 끊고 오곡죽만 먹었다고 당당히 주장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서 나는 저자의 둘째가 불쌍하단 생각을 했다. 돌 이전의 아기는 양질의 지방을 모유를 통해서 (아니면, 분유)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하는데, 그 아인 6개월부터 순 탄수화물만 먹고 살았다는 말이 아닌가.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우리 아기는 건강해졌다'는 경험론을 앞세우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표본 수가 2명인 건 좀 너무 하지 않은가?
서양 의학에서 권장하는 이론들은 수많은 과학적인 실험과 연구의 결과이다. 얼마간의 부작용을 목격했다고 해서, 서양 의학 전체를 부인하고 나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더구나, 저자는 이 분야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일도 없이 그저 자신의 경험담에만 의존하고 있다. 과연, 이 책에 따라 내 아이를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까? 글쎄, 나는 결코 그렇게 용감하질 못하다.
물론, 이 책 속에는 귀기울여 들을 이야기도 많다. 그러나, 책 내용의 모두가 믿을 만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책 한권만 읽고 섣불리 따라하지 말고, 보다 종합적인 정보를 얻어 걸러가며 육아에 이용하시길 바란다. 아이를 한번 잘못 키우면,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것. 부모라면 좀 더 균형잡힌 시각을 가져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