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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천 개의 연극 - 유럽 연극의 수도에서 삶을 뒤흔든 작품들을 만나다
박철호 지음 / 반비 / 2011년 12월
평점 :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 <베를린, 천개의 연극>이란 연극에 관한 책이 출간 한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러한 기사를 보면서 책에 대한 관심도가 급격히 진해 집니다. 조만간 서점에서 이 책을 한번 훑어보아야 겠다며, 스마트폰 메모 기능에 꾹꾹 눌러 기억을 해 놓았지요, 그리고 며칠 뒤 광화문의 대형 서점을 찾아, 쉬엄쉬엄 , 책 내음을 맡으며 이곳 저곳을 둘러보던 중 이번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후루룩 넘김의 갈증은 곧 이번 책은 꼭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이렇게 제게 , 이 책을 품게 되었지요.
쉼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저의 숨 트임은, 어쩌면 남들과 다르지 않은 , 마음으로 느낄수 있는, 그 무엇이였습니다. 소설, 연극, 뮤지컬등의 공연과, 잠시나마 지그시 하나의 작품을 바라볼수 있는 여유를 느끼고 싶을땐 아주 드물게 전시를 관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 , 그리고 쉽게 내 마음을 다독여주는 건 단연코, 소설과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사실, 연극과 뮤지컬 또한 쉼없이 보고 싶고, 아주 가까이 자주 접하고 싶지만,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는건 어쩔수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 저는 소극장의 공연들을 즐겨 봅니다.작은 무대에서 배우들의 호흡을 그대로 느낄수 있는 그 소극장 공연이 정말 좋거든요.

하지만, <베를린, 천 개의 연극>에서는 저와는 전혀 다른, 아니 감히 근접하다고 생각할수 없는 괴리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저자 박철호님은 우연한 기회에 연극을 접하면서 연극의 매력에 푹 빠져 2년동안 베를린과 유럽도시에서 500여편에 이른 연극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또한 연극 연출가이기도 비평가 이기도 합니다.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베를린과 유럽의 서양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꽤나 디테일하고 깊이 있게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저 나름대로 연극을 즐긴다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좌절을 맛보고 마네요. 오롯이 연극이란, 그 어떠한 것보다,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오롯이 즐거움, 감동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고, 저 또한 그런 모습들만 찾아 보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책 속의 수많은 작품들을 간접적으로 접하다 보면, 꽤나 충격적이기도, 또는 놀랍기도 한 이야기들이 담뿍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연극과는 달리, 서양의 연극들은 그 한정된 공간에서 하나의 소품을 다용도로 사용하여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며,과도한 노출이나 선정적인 모습조차 거리낌 없이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런 장면들은 오롯이 그것이 연기이고 연극의 일부분이라 생각 합니다. 책 속 어느 한 부분, 체호프의 「벚꽃 동산」에서 체호프는 이 작품을 코미디로 생각하고 썼는데, 이 작품은 초연 당시부터 비극으로 다루어져 이 공연을 본 체호프가 기절초풍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문득 때로는 공연을 관람시 관객들의 어느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해석 또한 각기 달라질수 있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기도 하네요.

어제 나는 시간의 신, 즉 시간의 의인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친구는 무대로 들어올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시간에 대해 우리는 이해하지도 , 보지도 못한다. 그저 흘러가고 또 오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여기 우리들 무릎 위에 앉아 있다는 것은 믿지 못한다. 무대의 한순간에 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란 놈은 우리의 양심이 되거나, 아폴론 신전의 사제가 되거나, 또는 예언자가 될수도 있고, 어쩌면 잠깐 동안 맥베스의 손을 잡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 아리안 므누슈킨의 [연습노트] 중에서
이번 <베를린, 천개의 연극>은 어찌보면 왠지 조금은 낯설고, 잘 알지못하는 서양 연극에 대한 거부감이나 또는 문외한으로 조금은 난해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 하며 읽기 전부터 부담감으로 다가 올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처럼 , 베를린, 또는 유럽 연극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정보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책을 읽다 보면 묘하게 빠져드는 쏠쏠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16편이라는 작품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스토리, 또한 저자의 소소한 베를린에서의 생활들을 조근조근 들려주어, 부담스럽지 않으며, 연극의 포인트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냄으로써, 각 작품에서의 무대 장치, 그리고, 배우들의 이야기 까지, 덧붙이는 이야기 식으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삶의 고단함과 두려움 속에서도 웃음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웃음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웃음만 위안을 주는가? 슬픔도 위안을 준다. 연극이라는 옷을 입은 슬픔은 아픔과 함께 위안을 준다. 그것이 연극이다. 비록 우리가 3개월이면 모두 사라진다 해도 슬픔과 웃음이 공존하는 연극이 있다면 삶이라는 괴물을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다. 이것이 아리안 므누슈킨의 질문에 대한 태양극단 단원들의 대답이다. (310쪽)
하지만 이번 <베를린, 천 개의 연극>은 어쩌면 호 불호가 강한 책이 되지 않을까,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연극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루하고 따분한 한 권의 책이 될 것이고, 그와 반대로 연극을 사랑하고, 좀더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싶어하시는 분들에게는 달콤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저는 연극에 대한 무한 사랑을 느끼는 편은 아니지만, 연극을 관람함에 있어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내공 쌓기에 조금이나마 보템이 되고 양식이 되었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약간의 보는 시각이 트이는 듯도 하지만, 저자처럼 박학다식한 지식에는 감탄하지 않을수가 없네요. 조금이나마, 잠시나마 책 속의 삽입된 공연 사진들과, 디테일한 저자의 글 솜씨로 연극을 상상속으로 오버랩하며 대리만족을 느낄수 있었던 짧지만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