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 라틴여성문학소설선집
이사벨 아옌데 외 지음, 송병선 옮김 / 생각의나무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사실 난 저 책 제목에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다. 분명 여성의 삶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을 저 책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위대한 어머니상으로 대변되는 남성이 추앙하는 끊임없는 희생의 여성상도 어이가 없었지만 사랑엔 옹색하고 자아발견과 그 실현만을 외치는, 소위 페미니즘적 여성상도 적잖이 싫었다. 시작은 남녀평등이라는 당연한 요구였으나 어느새 남성들과 같이 자신의 권익을 도모하며 자신의 상처를 내세우는 그녀들이 도무지 불편했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도대체 부인과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쳐 헌신하고 희생하는 남자는 또 어디 있으며, 반대로 그 넘의 사랑은 중요치 않다며 자아발견과 그 실현만을 위해 살아가는 남성은 또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우리 역시 어느 날은 가족 사랑에 올인하고 싶지만, 내일은 또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민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다만 비난의 대상에서 벗어난 남성과는 달리 양쪽이 품고 있는 그 잘난 위대한 여성상 때문에 그 어느 선택에서도 여성은 비난을 피할 길 없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였다. 어쨌든 여성은 그렇게나 많고 그렇게나 다양한데 분명 그 여성 속엔 내 아이, 내 가족이 자신의 이상보다 더 소중한 사람도 있을테고, 내 가족만큼 나 자신의 길이 중요한 사람도 있을테고, 내 꿈이 너무 중요해 가족이 거추장스러워 독신을 택한 사람도 있을테고, 내 꿈이 너무 커 가족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실 이제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만의 가치을 비난과 죄책감없이 따를 수 있는 환경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런 찜찜한 기분으로 읽었던 이 책은 사실 참 유쾌했다. 라틴 여성작가들의 단편을 모아놓은 것일뿐 그것은 여성의 삶에만 한정되어 있지도 않았고, 세상의 불합리함이 깜찍한 촌철살인적 한마디나 은근한 비유에 녹아 묘한 쾌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물론 그 쾌감의 절정엔 할머니와 황금다리가 있다. 딸랑 두장이지만 혁명의 그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고 유쾌하게 자신이 할 일을 다 하는 할머니는 정말 탄성을 자아냈다. 눈 하나 깜짝 않고 거짓말을 하는 상황이나 광주리 밑에 파쇄 수류탄, G-3 총알 카트리지, 81박격포탄을 숨기고 태연하게 다니는 그 모습에선 실소를 금할 길 없었다. 이 작가의 다른 글들이 정말 궁금했다. 독립 영웅에서는 영웅상보다 그를 태운 말이 더 거만해지는 어이없는 상황이며 영웅상의 하루 나들이를 통해 현 남미의 문제점을 담담히 그리고 있어 거부감 없이 남미의 단편을 엿볼 수 있었다. 또 훌륭한 어머니처럼에서는 우리나 그들이나 어머니라 일컬어지는 위대한 여성상이 사실 얼마나 이루기 힘든 꿈인가를 적날하게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보여 준다. 그것은 강한 비판보다 오히려 더 가슴 뜨끔했다.

그래서 송병선의 후기 중 '이제 여성작가가 쓴 우리의 작품들도 페미니즘 문학이 아닌 문학이 되어야 하고, 또 그런 관점에서 평가받아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공감할 수 있었지만 또 심히 유감스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희생적인 여성상이 그렇게나 강요되지 않았다면 페미니즘도 그런 모습으로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적 담론의 씨가 되었던 남성만의 몽상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또 그렇게 비난의 화살은 정작 여성작가에게로만 돌아가는 것 같아 매우 씁쓸해졌다. 여성의 삶을 제한하는 위대한 여성상도 없어지고 여성이 그 많은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와진다면 저절로 우리도 '페미니즘 문학'이 아닌 '문학'을 갖게 되지 않을까?  어쨌든 재미있게 읽고 이 따위 이야기나 쓰고 있다니 정말 마음 한구석이 싸할 뿐이다. 또 내가 보기에도 여전히 자기만의 문제로 코가 석자라 실질적 약자에 대해선 여전히 무관심할 수 밖에 없는 그녀들도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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