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한번도 젊은 적이 없었던 것도 같고 또 한편으론 늘 젊었던 것 같다. 온전한 젊음을 누린 적이 없기에 제대로 늙을 수도 없는 것일까? 마흔을 코 앞에 둔 지금, 가끔씩 난 내가 아직도 서른 살이라고 느낀다. 서른 살처럼 옷을 입고 서른 살처럼 비틀거리고 서른 살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 흔한, 그 잘난 희망이 아니라 차라리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질긴 절망을 벗삼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아무것도 붙잡을 것 없어 오로지 정든 한숨과 환멸의 힘으로 건너가야 했던 서른 살의 강. 그 강물의 도도한 물살에 맞서 시퍼럼 오기로 버텼던 그때 그 시절이 오늘밤 사무치게 그립다.-45쪽
서른이라는 인생의 가을을 앞둔 이들이여. 그 해에 접어들어 당신은 유난스레 거울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아직 젊다고 말하기엔 뭔가 뒤가 켕기는 것 같고, 늙었다고 하기엔 억울한 나이. 서른을 무사히 통과해 내 머리엔 벌써 희끗희끗 흰머리도 제법 심어졌다. 더이상 주책맞게 방황하지 말고, 더이상 내게 없는 것을 애타게 찾지 않고 멋있게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그래서 20세기가 끝나는 올 가을, 조용히 강둑에 앉아 자투리로 남은 청춘을 방생하며 삼십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49쪽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는 우물에 몸을 던졌고, 바흐만은 로마의 호텔에서 담뱃불을 당겼을지도......-59쪽
그날의 광주에 대한 지식인의 해묵은 부채의식에서 태어난 영화 <꽃잎>. 장선우감독이 과거를 들여다보는 창에는 시종일관 감상이라는 필터가 부옇게 끼워 있다. 신파의 본질은 자기연민이다. 일종의 정신적 딸딸이에 다름아니다. 감상과 자기연민의 안개를 걷고 광주는 언제 신파에서 구출될 것인가? '우리'는 언제 눈물을 그치고 현실을 직시할 것인가? 이는 장선우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화두이다. 서둘러 광주를 형상화하려는 허튼 기도보다는 지금은 차라리 광주를 손대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시사회장을 떠나며 나는 다짐했다. 싸구려로 위로받느니 차라리 냉정한 무관심을 택하겠노라고.-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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