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FE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왕가위 감독, 양조위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예전 언젠가 라디오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커피 믹스를 타먹는데 적량의 물은 반 컵이라고...
사람의 감정을 채우는 데에도 정량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의미에서 왕가위 영화는 내게 특별하다...
이상하게도 그의 영화는 항상 나의 마음의 정량을 채워준다...
그 때문일까? 난 항상 그의 영화를 따라다니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엔 어찌된 일인지 화양연화가 개봉되었단 소식을 듣고도
여러 가지 여의치 않은 사정으로 겨우 이제야 이 영화를 접하게 되었고
난 또 그의 영화가 가지는 매력에 며칠을 앓아야 할듯하다...

줄거리로 치자면 별 얘기는 없다...
옆집으로 이사 온 두 부부....
한집의 남편과 또 다른 한집의 아내가 만나기 시작한다...
자신과 똑같은 핸드백으로...넥타이로...그 상황을 직감하는 그들...
그들을 같은 처지의 상대를 연민의 감정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쯤 되면 뻔한 삼류 애정영화의 줄거리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그보다 깊은 그만의 인생철학이 있다...

어쨌든 바람난 아내와 남편을 바라보아야 하는 배우자들이든지...
아님..킬러와 연락책이든지, 아니면 또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동성애자이든지,
또 아니면...사랑을 두려워하는 젊은이든지...
그의 영화에선 그런 것은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사막에 흩날리는 흰 옷자락, 유효기간이 같은 파인애플 통조림,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열대림의 모습, 깜박이는 형광등 불빛...
그게 어떤 모습이든지 난 항상 그의 영화 안에서
공통된 한가지를 보게 되는 것 같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끊임없이 침잠해 들어가는 고독의 무게를.....

고독한 영혼들...고독이 서로에게 맞닿아 있을 때 사랑은 시작된다...
그러나, 고독이란 건 도대체가 사라지지 않아서
사랑도 결국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곧 빛을 바래게 된다...
그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을 강요하지도 않고, 그렇게 멀어져 가는 사랑도
또 그렇게 다가오는 사랑도 무기력하게 인정할 뿐이다...
사랑은 인간의 고독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얘기했듯이 고독이란 건 죽어야만 벗어놓을 수 있는
인간의 짐인가 보다...
아무튼 사랑은 지나가는 바람과 같고,
그의 영화에서의 사랑은 별반 희망이 없어 보인다...
(중경삼림의 두번째 에피소드에서만 예외 적으로 희망적이다...
그러나 그건 사랑의 시작만을 얘기했을 뿐이다...)
어쨌든 그의 영화에서는 인간의 본질적인 그 고독이란 것을 인정하고
그 바탕에서 여러 사랑이야기를 풀어간다....그래서 그의 영화는 담담하다...
그러나 그 깊이는 다른 영화와는 비교할 수가 없어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을 수 없게 한다...

아무튼 그의 이 영화도 그랬다...
또한 그의 영화만의 특징인 아름다운 영상과 그를 통한 심리묘사는
여기서도 역시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또 그 영상을 돋보이게 하는 음악 및 효과음도...
가로등에 부딪치는 빗줄기...뿌옇게 빛을 내던 전구
그의 손끝에서 타들어 가는 짧은 남은 담배....
그의 영상은 대사 없이 그들의 심리를 너무도 탁월하게 반영하고 있다.
또깍대던 하이힐 소리...
느릿느릿하게 반복되던 그래서 더 슬펐던 음악...
그에 맞춰 걸어가던 나긋나긋한 그녀의 걸음걸이...
그녀의 뒷모습은 너무도 외로워 보인다...
그런데 그건 단지 그녀 남편때문만도 아니고....
어느새 사랑으로 다가온 그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때문만도 아니라고 여겨지는건...
그의 영화이기때문에 가지게 된 복잡한 상념탓인가 보다...

화양연화.... 여자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때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영화제목과 동일한 제목의
시대에 뒤떨어진듯한 느낌의 나긋나긋하고 구슬펐던 노래가
그 음악을 듣던 장만옥의 축 처진 드러난 팔과 함께....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이영화는 또 다시 내게
복잡한 감정들과 해결하기 힘든 생각거리를 준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