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면서도 꽉 찬, 참 좋은 영화였다.
영화는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한 남자가 있고 이 남자는 길에서 노래를 부른다. 낮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노래를, 밤엔 자신의 아픔을 담은 자신만이 아는 노래를 부르는 이 남자. 바로 같은 상처를 안고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한 여자가 알아본다. 여자는 남자의 노래 속에서 아픔을 보았고 남자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왜 굳이 남자의 상처를 캐묻고 대낮에 청소기를 질질 끌면서 남자 앞에 나타난단 말인가!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여자는 남자의 잠재적 연인이라기 보다는 예술가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 이게 바로 이 영화가 시시해지지 않은 이유이지 않을까.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호감은 있지만 이를 연애감정으로 발전시키기 보다는 서로의 꿈과 사랑에 대한 발전적인 지지자 관계로 풀어나간 것. 아, 뭐 물론 서로간의 미묘한 감정도 있고 또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과 함께 가자는 말도 하긴 한다. 그리고 이게 또 이 영화의 감칠맛을 거해주는 것이고.
음악 영화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동시에 남녀 간의 미묘한 연애 감정도 엿보이고 또 그게 너무 멋있게 운명적으로 그려지기 보다는 흔히 보통 사람들이 해 봤을 법한 말과 행동들로 소소하게 보여줘서 좋았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둘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고 각자의 옛 연인에게 돌아간 것 마저도 이게 오히려 현실 속에서 더 잘 일어나는 일이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서로의 노래를 완성시켜 나가고 그 노래들을 녹음하는 과정은 보여주지만 그렇게 해서 성공을 했다던가 하는 것은 보여주지 않는다. 정말 말 그대로 서로의 아픔을 알아보고, 서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서로가 서로를 채워가며 그렇게 노래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만을 보여주었다. 그러하기에 이 영화는 거창한 스토리는 없지만 그래도 아주 잔잔하면서도 꽉 찬 느낌의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