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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김영하 씨가 번역을 해서 더 각광을 받고 있는 위대한 개츠비 번역본이다. 위대한 개츠비가 그렇게 씹으면서 욕할 만큼 재미 없는 소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변호하기 위해서 번역하셨다는 번역자님의 해설 속 말씀에 따라서 이 책 재미 없지 않았다. 아니 참 좋았다.
외국 작품을 한국말로 번역해 올 때 번역자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영어에서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존칭의 문제를 어떻게 한국말로 풀 것인가. 미묘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독자로서 읽을 때 이런 미묘한 처리들이 가지고 오는 총체적인 효과는 실로 크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존의 번역본들과는 다르게 대화체의 번역에 있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었다. 닉과 개츠비가 서로 말을 놓는 설정으로 했기 때문이다. 사실 닉도 개츠비도 중심인물들 모두 이십대와 많아 봐야 서른인 것이다.
자신의 청춘을 자신이 세운 이미지에 맞춰서, 사랑이라는 이미지에 내어 던진 개츠비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삶. 맹목적으로 내가 내던지고 있는 이미지의 타당성을 생각해 보게 한다.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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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제목은 많이 들었지만 결코 책장을 넘겨 본 적이 없는 소설. 드디어 넘겨봤고 끝 장을 덮었다. 초반은 읽기 쉽지 않았지만 중반 넘어가면서 몰입해서 읽은 것 같네. 뒷편에 실려 있는 김영하 작가님의 해설의 덕도 톡톡히 봤다.
줄거리는 생략.
5년 전 만난 데이지라는 상류층 여자를 사랑했던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제이 개츠비.
개츠비에게 그토록 집요하게 사랑을 받을 만한가? 생각해 보면 썩 그렇지 않은 허영쟁이 데이지.
데이지의 남편이자 대 놓고 불륜을 저지르는 전통 있는 부잣집 아들 톰 뷰캐년.
그들을 바라보는 서른의 한 남자. 닉 캐러웨이.
내가 가장 강하게 느낀 대목은. 결국은 허상인 이미지를 사랑하는 개츠비의 모습이 현대인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 이미 결혼을 한 한 때 만났던 데이지의 사랑을 다시 쟁취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을 저지르면서 부를 축적하고, 그녀의 집이 내다 보이는 맞은 편에 집을 구해서 사는 남자 개츠비. 그녀의 관심을 사기 위해서 관심도 없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밤이면 밤마다 불러 들여서 파티를 열곤 하는 개츠비. 그의 그 열심은 과연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현대인들의 모습. 참 열심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청춘을 모두 불사른다. 요즘은 그 마저 자발적인 동기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고 부모의 욕망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어쨌건 간에 그렇게 '성공'과 '돈'이라는 목표에 목숨을 걸고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그 목표는 실제하는 것은 아니다. 상상하고 환상으로 가져가고 있는 맹목적인 신념이기 때문에 목표한 바를 손에 쥔다고 해도 그 것은 내 머리 속의 이상과는 괴리 될 수 밖에 없다.
어쨌거나 개츠비는 데이지를 만나고 함께 떠나고 싶어하지만. 데이지는 개츠비가 아닌 자신의 남편 톰을 선택한다. 그리고 누명을 쓰고 톰의 애인의 남편인 윌슨의 총에 맞아 죽는다. 그의 장례식에는 아무도 찾아오지를 않는다. 그 숱한 날들을 문지방 닳듯이 오갔던 수많은 파티 참여자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관심 조차 보이지를 않는다. 사랑을 원했고, 그 사랑을 얻기 위해서 발버둥 쳤던 한 인간의 치열한 인생의 끝이 참 씁쓸하기 짝이 없다.
닉의 표현처럼. 휘황찬란했던 파티장이 한 순간 카드로 만든 집처럼 무너져 내려버렸다. 치열했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한 체 싸늘하게 죽어갔다.
1925년에 발간된 소설. 그때와 지금. 크게 다르지 않다. 맹목적인 달음질. 그 달음질은 결국 허무하게 끝날 거다. 이미지라는 괴물과의 싸움. 나 역시 싸워야 할 것이며. 데이지가 홀렸던 세속 문명의 아름다움 또한 나 역히 조심해야 할 괴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