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이 돈에 미친 것 같아요. 오늘 보니 사무실 사람들 점심 먹고 죄다 스마트폰으로 주식 시황 보고 있더라구요. 직원 하나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해서 대출을 받았는데, 마침 20년된 아파트 매물 나온 거 본다고 점심도 못먹고 나갔다 왔어요."


  얼마 전, 가끔 들르는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읽었다. 주식과 집값 이야기 빼면 요새 웬만한 사이트 게시판이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1952년 영화 '번개(Lightning)'를 보면서, 문득 그 게시판 글을 떠올렸다. 그의 영화 가운데 이토록 '돈' 이야기가 많이 나온 영화가 있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없었던 것 같다. '번개'의 인물들은 시종일관 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야기한다.


  각기 다른 아버지를 둔 네 명의 남매. 첫째 누이코는 탐욕스럽고 제멋대로이며, 둘째 미츠코는 착하지만 유약하다. 셋째 가스케는 파친코로 소일하는 실업자, 넷째 기요코는 관광 버스 가이드로 그 세 명과는 달리 가장 성실하고 강단있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누이코가 돈푼 꽤나 있는 빵집 주인을 기요코의 신랑감으로 소개하면서부터 그렇지 않아도 번잡스러운 집안이 더 시끄러워진다. 기요코는 남자의 됨됨이가 영 마뜩지 않은데, 돈이 궁한 누이코는 어떻게 해서라도 혼사를 맺게 하려고 한다. 그 와중에 둘째 미츠코는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는데,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 남편의 내연녀의 돈 요구에 아연실색한다. 미츠코가 받게 되는 남편의 보험금에 눈독을 들이는 또 다른 사람으로는 언니와 남동생이 있다. 돈벌이가 시원찮은 남편을 팽개치고, 결국 빵집 주인과 눈맞아 살림차린 첫째. 딸에게 버림받은 사위를 어쩔 수 없이 거두는 기요코의 어머니.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진 기요코는 시 외곽에 하숙을 얻는다. 이 바람 잘 날 없는 집구석에 평화라는 것이 오기는 올까...


  '번개'를 보는 내내 나는 'こんじょう(根性)'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흔히 하는 말로 '곤조'는 '더러운 성질머리'로 쓰이지만, 원래의 뜻은 '타고난 성격', '성깔'의 의미이다. 아버지가 각자 다른 네 명의 아이를 키운 여자로서 기요코 엄마의 삶도 참 기구하다 싶기도 하다. 네 명의 자식들은 성깔도 제각각이다. 뭐랄까, 그 자식들의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아버지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첫째 누이코의 극성스럽고 뻔뻔한 모습, 둘째의 착하지만 근기없는 유약함, 셋째의 게으르고 대책없는 삶, 막내 기요코의 올곧은 품성과 따뜻한 마음. 그것이 그들이 타고난 삶의 조건이다. 그런 바탕을 가지고 자신들에게 닥치는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나루세 미키오는 이렇게 제각각의 성격을 타고난 네 명의 동기간에게 '돈'이란 화두를 툭, 하고 던져주는 것 같다. 그리고 나서 그 인물들의 성깔이 어떻게 삶 속에 들어온 돈을 바라보고 풀어내는지 보여준다. 어떤 것이 더 나은지 정답은 없다. 삶의 방식은 다 다른 것이므로. 그렇게 삶을 휘젓는 그 '돈' 앞에서 고요함과 평화를 찾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기요코는 호젓한 시 외곽의 하숙집에서 비로소 앞날의 희망과 마음의 평안을 느끼지만, 갑자기 찾아온 엄마의 방문은 그 모든 것을 일순 흔든다. 마치 기요코가 엄마와 언쟁을 한 후 창 밖으로 보게되는 번개처럼.


  "왜 날 낳았어요? 엄만 애정도 없이 우릴 막 낳은 거죠? 마치 고양이 같아요. 살아가면서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어요."


  그렇게 퍼붓는 딸의 언사에 속이 상한 엄마는 흐느껴 운다. 결국 마음을 고쳐먹은 기요코는 엄마를 다시 따뜻하게 위로하고 그 두 사람은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집을 나선다. 그 마지막 장면은 진정한 화해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어설픈 봉합이며, 일시적인 멈춤과도 같다. 기요코의 동기들과 엄마는 여전히 돈에 목매는 삶을 살아갈 것이며, 그 분란에서 기요코는 결코 외따로 아무 영향도 받지 않고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요코가 꿈꾸는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하숙집 남매가 보여주지만, 그것에 기요코가 도달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기요코가 관광 버스 가이드로서 늘 아름다운 도시의 풍광을 기계적으로 소개할 뿐, 그 풍광을 마음 편히 감상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그럼에도 영화의 마지막에서 기요코의 표정에는 자신감과 안정감이 묻어나온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모두 다 바꿀 수 는 없지만,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미래에 대해서 만큼은 우직한 걸음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요코의 타고난 천성이다. 기요코는 자신의 아버지가 엄마에게 주었다는 루비 반지가 가짜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진짜였다. 그 사실을 이야기하자, 기요코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네 아버지는 거짓말을 모르시는 양반이었어."


  올곧고 성실한 성품을 지닌 아버지의 딸로서 기요코는 자신의 삶에 닥치는 어려움을 그만의 방식대로 헤쳐나갈 것이다. 느닷없이 내리꽂히는 삶의 번개는 어찌할 수 없지만, 그것은 순간이며 삶은 어떻게든 이어진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지만, 결코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 영화 '번개'는 그렇게 너저분한 삶의 풍광 속에서도 존재하는 한 줄기 희망을 이야기 한다.


 

*사진 출처: avoir-al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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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샤오윈. 올해 나이 스물 여섯. 별 볼 일 없는 시골 극단에서 노래를 부르며 웃음을 팔고 있지.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는 유부남인데, 딱히 죽고 못사는 사이도 아냐. 그냥 마음 둘 데가 없어서 그런 거지. 학교 선생인 우리 엄마는 나를 마치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셔. 극단에서 공연하고 버는 돈은 달리 쓸 데도 없고, 그냥 엄마를 드리는데 그걸 싫어하시는 것 같아. 그냥 사는 게 지겹고 그래. 그런데 요새 알게 된 마을의 조그만 녀석 샤오융이 자꾸 날 따라 다니네. 극단 사람들은 걔를 내 '꼬마 애인'으로 불러. 가만 보면, 이 심한 개구쟁이 녀석은 밉지가 않아. 가끔 난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 생각을 하곤 하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들었어. 어쩌면 내 인생이 이렇게 꼬여버린 건 그 아이가 생긴 이후부터였을 거야...


  중국의 여성 감독 리위의 2005년 영화 '둑길(紅顔, Dam Street)'은 16살에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인생의 행로가 뒤틀어져 버린 젊은 여성의 삶을 담아낸다. 리위는 2012년작 '로스트 인 베이징(苹果, Lost in Beijing)'으로 급변하는 중국의 현실과 젊은이들의 모습을 대담하게 담아내었다. 이 작품의 일부 성적인 묘사와 몇몇 장면들은 중국 당국의 심기를 건드려서, 리위와 제작사는 한동안 영화 제작을 할 수 없었다. 그 이전 작품인 '둑길'에서는 도시가 아닌 시골, 그곳의 정체된 삶과 전근대적인 가치관 속에서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로스트 인 베이징'이 치열한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면, '둑길'에서는 여성 감독으로서 인물들의 섬세한 내면 묘사와 깊이있는 연출이 돋보인다.


  샤오윈은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 왕펑과 사귀다 임신하게 되고 그 사실이 알려진 후 공개적으로 퇴학을 당한다. '헤픈 여자'라는 손가락질과 비난을 오물처럼 뒤집어쓴 채로 지난 십 년을 살아왔다. 천극(川劇, 사천 지방의 전통극)단에서 공연을 하며 살아가지만, 관객들은 공연 도중에 유행가를 부르라며 야유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저 매일매일을 겨우 숨만 쉬는 것처럼 살아가는데, 조그만 녀석 샤오융을 알게 된 이후로 웃을 일이 생긴다. '누나'라고 부르면서 자꾸 쫒아다니는 녀석이 귀엽기도 하고, 녀석의 얼굴을 보면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같다.


  영화의 첫 장면은 차가운 시냇물에 누워 있는 샤오윈의 물에 잠긴 얼굴이다. 결국 막달이 되어서 출산을 하게 된 샤오윈. 명예를 중시한 샤오윈의 엄마 쑤 선생은 딸에게는 아이가 죽었다고 하고, 아이는 먼곳의 지인에게 입양시킨다. 샤오윈과 엄마는 그렇게 아이의 존재를 잊고서 살아왔다. 그런데 아이는 그 두 사람 가까운 곳에 있었다. 10년 만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샤오윈과 쑤 선생은 충격을 받는다. 샤오윈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영화의 영어 제목 'Dam Street'은 마을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둑방길을 의미한다. 그 길은 샤오융이 사는 집 바로 밑을 지나가는데, 소년은 늘 그 길을 뛰어다닌다. 샤오윈이 남자 친구와 마지막으로 헤어진 곳도 둑방길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인 둑방길에 원치 않는 삶을 마지못해 살아가는 샤오윈과 어린 소년이 있다. 소년은 샤오윈이 자신을 낳아준 엄마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결국 샤오윈은 둑길이 있는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예쁜 누나가 더이상 자신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간다는 것을 알게 된 샤오융은 슬프기만 하다.


  "누나, 저를 잊으면 안돼요."

  "안잊어. 나중에 나하고 비슷한 얼굴을 가진 사람을 보면, 그게 바로 너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샤오윈은 소년의 손을 자신의 눈, 코, 입, 마지막으로 이마에 대고 두 사람이 비슷한 외모임을 상기시킨다. 이 장면이야말로 관객, 특히 여성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깊은 울림을 준다. 샤오윈과 샤오융의 만남과 이별에 이르는 과정은 말 그대로 '핏줄의 당김'이 어떤 것인지 절절하게 보여준다.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으나 결코 품에 둘 수 없었던 핏줄을 떠나야 하는 어미의 심정이 스크린 너머 흘러내린다. 


  영화의 중국어 제목 '홍안'은 아름다운 젊은 여성의 얼굴을 뜻한다. 극중에서 샤오윈이 분하는 천극의 여주인공 '화단(花旦)'은 요염하고 교태를 부리는 역으로 화려한 의상과 분장을 한다. 단아한 양가집 규수 역의 '정단(正旦)'이 검푸른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것과 대비된다. '행실 바르지 못한 여자'로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고 살아온 샤오윈. '화단'은 그가 연기해야 하는 원치않는 삶의 배역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삶은 한 인간, 여성으로서의 자존감과 희망이 무너져내린 삶이었다. 내연 관계의 유부남 가족들이 공연 중에 난입해서 샤오윈을 마구 때리고 모욕을 주는 장면에서 샤오윈은 바닥에 내팽겨쳐진다. 누운 채, 슬프고 지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샤오윈의 표정은 영화의 첫 장면, 시냇가의 그 고통스러운 장면과도 겹쳐진다.


  샤오윈 역의 리우이와 샤오융 역의 황씽라오의 눈부신 연기, 리위 감독의 핍진성 있는 연출, 1990년대 개혁 개방의 시기를 지나는 중국 변방의 풍경, 그 모든 것이 '둑길'에 담겨있다. 이런 영화를 만나는 것은 마치 숨겨진 보석 상자를 발견하는 것과도 같다. 둑길에 흘려 보낸 샤오윈의 슬픔과 고통, 눈물과 희망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이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영화이다.



*사진 출처: cn.hanx.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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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2월 19일, 뉴욕의 재즈 클럽 Slug's Saloon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총을 맞고 쓰러진 사람은 유명한 재즈 트럼펫 연주자 리 모건(Lee Morgan). 그에게 총을 쏜 사람은 사실혼 관계의 부인 헬렌 모건(Helen Morgan)이었다. 엄청나게 많이 내린 눈 때문에 구급차는 늦게 도착했고, 모건은 결국 사망했다. 캐스퍼 콜린 감독의 다큐 '나는 모건을 죽였다(I Called Him Morgan, 2016)'는 그 두 사람의 삶과 사건에 얽힌 뒷이야기를 담아낸다.


  이 다큐의 주된 내레이션은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된 헬렌 모건의 음성으로 진행된다. 재즈 칼럼니스트인 래리 레니 토마스(Larry Reni Thomas)는 자신의 강의를 듣던 헬렌 모건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8년 후에 이루어진 인터뷰를 2개의 테이프에 녹음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에 헬렌은 세상을 뜬다. 다큐에는 그렇게 이미 고인이 된 헬렌의 증언, 리 모건의 여러 지인들, 그리고 그 비극적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리 모건의 여자 친구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그 목소리들은 리 모건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트럼펫 선율을 배경으로 차분하게 그 사건이 일어난 그날 밤을 향해 흘러간다.


  사실 다큐의 우리말 제목은 상당히 자극적인데, 아마도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그렇게 지었을 것이다. 이 제목은 메리 해런 감독의 영화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1996)'을 떠올리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명한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에게 총격을 가한 과격한 레즈비언 작가 발레리 솔라나스, 전도 유망한 재즈 트럼페터를 총으로 쏜 부인. 그러나 이 다큐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메리 해런 영화처럼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다. 그런 점에서 우리말 제목은 상당한 아쉬움을 남긴다.


  사건의 그날 밤. 재즈 클럽에는 리 모건의 여자 친구가 와있었고, 마침 클럽에 들른 헬렌은 그 장면을 보고 격분한다. 그리고 일어난 총격 사건은 어찌 보면 젊은 남편의 애인을 질투한 늙은 마누라(헬렌은 리 보다 13살 연상이었다)의 너저분한 치정 살인처럼 보인다. 다큐 제작자로서 그런 이야기는 '대박 아이템'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캐스퍼 콜린은 아주 좋은 균형 감각을 유지하면서, 결코 욕심을 내지 않고 이야기 뒤에 숨겨진 것들을 탐구해 나간다.


  테이프에 담긴 헬렌의 육성은 그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가난하고 불행한 가정 환경에서 나고 자랐지만,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간 헬렌은 리 모건을 만나면서 삶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헬렌을 만날 당시의 리 모건은 잘 나가던 재즈 연주자에서 마약 중독자로 밑바닥 삶을 전전할 때였다. 그런 리를 헬렌은 다시 일으켜 세웠고, 그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마치 어린 아들을 입양해서 키우는 것 같더군요."


  헬렌을 잘 알던 이웃은 그 시기의 헬렌의 모습을 그렇게 회고했다. 다시 화려하게 재기한 리 모건과 그의 모든 것을 보살피는 매니저 겸 부인의 역할을 자처한 헬렌. 잘 해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관계는 어느 순간부터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바람'이라는 말은 어떤 면에서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 두 사람은 법적 부부가 아니었으므로. 리에게는 단지 젊은 여자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대화가 통하는 여자 '친구'가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에 대해 다큐에 나오는 리의 여자 친구는 매우 담담하게 리와 자신의 관계를 증언한다. 어쨌든 헬렌은 그런 리의 '외도'를 배신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향하게 만든다.


  결국 서른 셋의 젊은 나이에 리 모건은 사망한다. 재즈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크나큰 손실이었다. 다큐는 그 비극이 일어난 2월의 눈오는 밤으로 관객을 천천히, 조용하게 이끌어 간다.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 리 모건의 연주는 그 짧은 삶만큼이나 슬프고 쓸쓸하다. 그리하여 이 다큐의 마지막에서 관객이 만나는 것은 인생과 음악과 어떤 사랑의 모습이다. 자극적이고 통렬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캐스퍼 콜린은 다큐 제작자로서의 윤리 의식과 창작자로서의 상상력, 그 둘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만들어 낸다. 그 결과 영화가 가진 본연의 의미, 즉 타인의 삶을 통해 인생을 성찰하는 데에 이른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음악 다큐의 최고봉은 여전히 빔 벤더스의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다큐에 나온 이들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 오마라 포르투온도의 나이가 90이 넘었다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가 음악 다큐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질 때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 좋은 음악 다큐를 떠올릴 때, 'I Called Him Morgan'을 가장 먼저 기억할 것이다. 헬렌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성씨로 불렀다. 지극한 사랑으로 인생의 나락에서 일어난 남자는 결국 그 사랑 때문에 삶을 마감한다. 그 끔찍한 비극 뒤에 가려진 어떤 인생과 이야기를 음악에 담아 담담한 시선으로 관조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정말로 좋은 음악 다큐의 모범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facebook.com/icalledhimmor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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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뉴욕 영화로 만나는 도시
스콧 조던 해리스 지음, 채윤 옮김 / 낭만북스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책장에 처박아 두었다가 얼마 전에 읽은 '필름 파리'에 이어서 같은 출판사의 '필름 뉴욕'을 읽었다. 아마 세트로 샀었던 모양이다. 품절된 책이기는 하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리뷰하는 것이 의미없지는 않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44편의 스틸컷과 리뷰가 실려 있는 책으로 '필름 파리'와 구성은 같다. 짧은 리뷰들은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르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번역'이다. 역자가 영화와 영화사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번역된 문장이 도무지 읽히질 않는다. 영역에서 흔히 문제되는 피동형 문장으로의 번역은 기본이고(우리말은 피동형 문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어와 술어가 제대로 호응하지 않는다. 여러 번 읽어도 의미는 파악되지 않고,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처음으로 돌아와 다시 몇 번을 읽게 된다. 정말 안좋은 번역의 요건은 다 갖추었다. 이 책을 산 사람이 후회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렇다.


  이 책을 엮은 스콧 조던 해리스는 뉴욕의 영화 관광 안내서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촬영의 개요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포부는 저자만의 것이다. 인상적인 책도 아니고, 관광 안내서로도 흥미를 끌지 못하는 책이다. 거기에다 형편없는 번역이 더해져서 무어라 덧붙일 말도 없게 만든다.


  그런 글들이 있기는 하다. 비문(文)에다 글쓴 사람의 자의식 과잉,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현학적 문장의 나열들... 평론 읽다 보면 그런 한심한 글들 수두룩하게 나온다. 마치 이 책의 번역을 읽는 것과 같은 글들. 글읽기의 악몽을 제공해준다고나 할까. 대부분의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글은 잘 쓰지 못한 글이며, 그건 글을 쓴 사람 자신이 글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길을 모르는 사람이 무슨 길을 안내할 수 있겠는가...


  리뷰에 꼭 평가하게 되어있는 별점에 하나를 클릭했다. 전혀 주지 않으면 글이 올라가지 않는 시스템이다. 별 하나도 솔직히 과하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산 사람은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 것이며, 도대체 이걸 왜 샀나 후회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느니, 뉴욕이 배경으로 나온 영화 한 편 보는 게 낫다. 이 책에 나오지 않는 영화, 마틴 스콜세지의 '디파티드(The Departed, 2006)'를 추천한다. 이 영화는 보스턴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뉴욕에서 촬영되었다. 뉴욕 시 당국의 영화 제작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 때문이었다. 러닝 타임 2시간 30분이 어떻게 흘러가 버리는지도 모르게 만드는 영화. 이런 영화에서 스콜세지를 따라갈 사람은 없구나, 라는 것을 증명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신들린 연기는 언제 봐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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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볼 일 없는 작은 도시의 음악학교 성악 강사로 일하고 있는 왕차이링(장웬리 분)은 아주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파리 오페라단에서 프리마 돈나로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추녀까지는 아니지만 왕차이링의 외모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지저분한 피부와 작달만한 키, 살집있는 몸매는 오페라의 여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오로지 목소리만큼은 곱고 아름답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선은 베이징으로 거주지를 옮기려고 애를 쓴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주증(居證)이 필요한데, 이미 거액의 돈을 건네준 베이징의 브로커는 늘 기다리라는 말만 한다. 그런 왕차이링의 주변에 모여든 이들의 인생도 허섭하기는 마찬가지. 시시한 재능을 가진 화가 지망생, 그곳 사람들에게 냉대받는 게이 발레리노, 왕차이링의 목소리에 반해서 쫒아다니는 공장 노동자까지. 과연 왕차이링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빛을 볼까...


  꾸창웨이 감독의 2007년작 '입춘(立春)'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주변부에 자리한 이들이다. '예술가병'에 걸린 그저그런 인생들이 현실에서 바스라지는 모습을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예술가병'과 비슷한 '영화병'이라는 것도 있다. 자신이 가진 예술과 영화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그것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병. 그 병에는 별다른 치유책이 없다. 성공하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개는 청춘의 시간을 내던지다 망가지고 잊혀진다. 어쩌면 '입춘'의 주인공 왕차이링도 그 '예술병'에 걸린 사람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 병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 '세월'과 '현실'이 그것이다. 흘러가는 시간과 엄혹한 현실이 어설픈 기대와 희망을 깨부수어 버린다.


  왕차이링이 가진 재능이 보잘 것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가 부르는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Tosca)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듣다 보면, 그 절절함이 마음을 울린다. 사랑하는 연인을 구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비운의 여주인공이 신 앞에서 애절하게 부르는 노래. 신실한 믿음으로 착하게만 살아온 토스카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런 토스카처럼 왕차이링은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비통함을 드러내듯 그 아리아를 자주 부른다. 사랑했다고 믿은 남자에게는 모욕적으로 차이고, 게이 발레리노에게서는 위장 결혼을 제안받는다. 왕차이링의 인생에 도무지 볕들 날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꾸창웨이 감독은 시련과 좌절의 연속인 왕차이링의 인생에 섣불리 희망을 선사하지 않는다. 누구 하나 이 여자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꿈을 제대로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고, 여자는 주변의 비웃음과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 와중에 사기까지 당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예술에 매혹당한 것이 잘못인가? 그리고 그것에 인생을 바쳐서 살겠다는 꿈이 무모하기만 한 것인가? 왕차이링이 영화 속에서 부르는 성악곡 가사는 한결같이 아름답다. 노래의 날개 위에 연인을 태우고 가고 싶다는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 봄에는 가난한 마음의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는 슈베르트의 '봄의 찬가'. 그 고결하게 빛나는 가사들과는 달리 왕차이링의 현실은 그야말로 '시궁창'이다.


  어디 왕차이링 같은 낙오자가 한둘이겠는가? 화가 지망생은 너절한 사기꾼이 되고, 게이 발레리노는 감옥에 갇힌다. 그렇게 주변부를 맴도는 시시껍절한 인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짠해진다. 예술이 그들의 인생을 망친 것인지, 삶이 예술을 버리게 만든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당신들 말야, 그 정도의 재능으로는 어림없지'라고 조롱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러한 꿈을 가진 이들의 마음 깊이 흐르는 열정마저 폄하할 수는 없다.


  영화의 마지막은 화려한 무대 의상을 입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추어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르는 왕차이링이 나온다. 그건 꾸창웨이 감독이 극중의 왕차이링에게 보내는 선물이었다. 현실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었던 꿈을 그렇게나마 이루게 해주고 싶었던 감독의 따뜻한 연민은 마음을 울린다. 자신의 딸에게 나방의 짧은 삶에 대한 동화를 읽어주던 왕차이링은 사람은 그 보다는 행복하지 않냐고 말한다. 왕차이링에게 예술은 짧았고, 살아야할 인생은 길었다. 매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나가버리는 봄이 늘 슬펐던 왕차이링에게 딸과 함께 하는 삶이야말로 인생의 봄인지도 모른다.


  장예모, 첸 카이거 영화의 촬영감독으로 유명한 꾸창웨이 감독은 2005년작 '공작(Peacock)'으로 주목을 받았고, 이 영화에서도 아주 좋은 연출력을 보여준다. 여주인공 역을 맡은 장웬리는 그의 아내로, '입춘'으로 2007년 로마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 속의 왕차이링은 '박색(色)'에 가깝지만, 그것은 영화를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우고 분장한 모습이다. 영화제 수상 사진을 보고 다른 사람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실제로는 매우 아름답다.  

 


*사진 출처: moviedoub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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