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 'Liquid Sky(1982)'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영화는 뉴욕의 신데렐라에 관한 영화죠."

  영화 'Liquid Sky(1982)'의 촬영 감독 Yuri Neyman은 그렇게 대답했다(출처: modernmythology.net과의 인터뷰). 마약과 섹스,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외계인, 클럽의 네온 조명과 패션 모델, UFO와 과학자... 그 모든 요소를 다 섞어 넣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희한한 1980년대의 cult movie가 현대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면 그 대답이 얼마나 간명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소련 출신으로 1976년에 미국으로 이주한 슬라바 추커만(Slava Tsukerman) 감독은 1982년에 자신의 아내와 공동 집필한 시나리오로 영화를 한 편 만들었다. 500만 달러의 예산으로 만든 이 영화는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1700만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냈다. 2021년의 관객의 눈으로 보아도 기괴하기 짝이 없는 영화, 대체 'Liquid Sky'는 어떤 영화인가?

  영화는 뉴욕 뒷골목의 어느 클럽을 비춰주며 시작한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특이하고 중독성 있는 신디사이저 음향이 흐르는 가운데, 클럽의 사람들은 한창 춤에 빠져있다. 패션 모델로 마약 중독자이며 양성애자인 마가렛은 동성연인 에이드리언과 같이 살고 있다. 에이드리언은 클럽에서 음악 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본업은 마약상이다. 마가렛과 비슷한 외모의 지미(마가렛을 연기한 Anne Carlisle이 1인 2역을 한다)는 경쟁 관계에 있는 남자 모델이다. 지미는 마가렛을 괴롭히며 모욕감을 준다. 그런데 그들이 있는 클럽 건물의 상공에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나타난다. 이 비행체는 외계에서 온 것으로 마가렛의 집 옥상에 자리잡는다. 한편, 독일에서 이 UFO를 추적하러 뉴욕으로 날아온 과학자 요한이 있다. 그는 우연히 만난 지미의 엄마 실비아의 집에 자리잡고 UFO와 마가렛의 동향을 관찰한다. 괴비행체가 마가렛의 근처에 자리잡고 나서 마가렛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의 줄거리를 파악하는 일은 영화가 시작하고 1시간쯤 지나야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Liquid Sky'는 편집이 무척 특이하다. 일반적인 헐리우드의 영화 문법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 영화를 촬영한 소련 출신의 Yuri Neyman이 '쿨레쇼프 효과(Kuleshov effect)'라고 불리는 러시아 몽타주 기법을 쓴 데에서 기인한다. 이 기법은 별개의 의미를 가진 쇼트를 연속적으로 이어붙여서 새로운 의미를 파생시킨다. 영화는 전혀 관련이 없는 서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로 이어 붙인다. 예를 들면 마가렛과 지미의 대화 장면에 마약 중독자 폴과 그 아내의 이야기가 바로 이어진다. 이런 개연성 없는 생뚱맞은 편집에 대해 Neyman은 사건의 동시성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라고 언급했다. 

  그런 편집과 더불어 외계인의 시점(외계인은 사물이 아니라 에너지의 형태로 존재한다)에서 보여지는 특수 효과 장면, 등장 인물들의 펑크 의상과 분장, 영화 전편을 흐르는 신디사이저 음악(주요 테마는 감독이 작곡가에게 직접 제시했다)은 관객의 눈과 귀를 단단히 붙잡는다. 마치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영화는 계속 출렁거린다. 주인공 마가렛은 신데렐라가 계모와 두 의붓자매에게 온갖 구박을 받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학대와 모욕, 심지어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강간까지 당하는 마가렛. 그런데 기이하게도 마가렛과 관계한 이들은 모두 죽는다. 마가렛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혼령이 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외계 생명체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마약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외계인은 뉴욕에서 더 효과적인 에너지원을 사람들에게서 발견한다. 성에너지를 탈취당한 이들은 모두 죽지만, 불감증이었던 마가렛은 살아남는다.

  이 괴상망측한 독립 SF영화는 1970년대에 활성화된 미국의 심야 영화관(주로 컬트 공포 영화를 상영)에 내걸리면서 꽤 짭짤한 흥행 수익을 냈다. 어떤 면에서 'Liquid Sky'는 그러한 'Midnight Movie'의 끝물을 화려하게 장식한 영화였다. 1982년에 만들어졌으나 영화는 그 시대를 한참이나 앞질러간 유행 감각을 보여준다. 특히 젠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등장 인물들은 이 영화가 지닌 비주류적 감성을 드러낸다. 물론 마약과 외설스런 장면에 거부감을 지닌 관객들에게는 시간의 힘도 그것을 누그러뜨리기는 어렵다. 영화의 제목 'Liquid Sky'는 헤로인을 칭하는 비속어이다. 슬라바 추커만 감독은 이민자로 자신이 관찰하고 탐구한 뉴욕의 하위 문화를 극한의 방식으로 영화에 재현한다.

  이제, 영화의 촬영 감독 Neyman의 설명이 조금은 와닿을지 모른다. 'Liquid Sky'는 1980년대 뉴욕 클럽의 펑크 신데렐라 마가렛이 호박마차(UFO)를 타고 왕자님(외계 생명체)과 함께 떠나는 이야기이다. 제작비의 압박 때문에 호박마차로 쓰인 UFO는 크게 만들 수가 없었다. 큰 접시 크기의 비행체를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하지만, 관객의 영화적 상상력은 언제나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이 '선 넘은' 신데렐라 스토리는 거칠고 소란스러우며, 뒤틀리고 특이한 유머 감각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목에서 수수께끼로 사람들을 낚길 기다리던 스핑크스처럼 'Liquid Sky'는 오늘도 자신의 관객을 기다리는 중이다. 



*사진 출처: newtimesslo.com  영화 속 지미와 마가렛을 연기한 Anne Carlis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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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The Sleeping City(1950)'의 결말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The Sleeping City'는 특이한 도입부를 가지고 있다. 영화의 주연 배우인 리처드 콘테가 영화 속 사건과 실제 뉴욕시의 벨뷰 병원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설명하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이 영화가 배경이 된 뉴욕시와 벨뷰 병원(Bellevue Hospital)의 평판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시장의 입장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영화는 뉴욕 벨뷰 병원의 인턴이 의문의 총격을 당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수사 당국은 병원 내부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형사 프레드(리처드 콘테 분)를 의사로 잠입시킨다. 그는 주변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해 나간다. 프레드는 곧 매력적인 간호사 앤, 사교적인 엘리베이터 기사 팝과 친해진다. 그러던 중에 같은 방을 쓰는 동료 의사의 자살 사건이 일어난다. 동시에 프레드에게도 어둠의 손길이 다가온다. 팝에게 진 도박빚 때문에 한두 번 써주기 시작한 마약 처방전은 계속 늘어난다.

  조지 셔먼 감독의 'The Sleeping City'는 명백히 줄스 다신 감독의 'The Naked City(1948)'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두 영화 모두 Universal Pictures에서 제작했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다루고 있으며, 대도시의 풍경 속에 '밤'이 아닌 '대낮'에 범인과의 추격전이 이루어진다. 일종의 도시 탐구 필름 느와르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매우 현대적이고 세련된 벨뷰 병원의 내부 모습을 포함해 1950년대 뉴욕의 풍광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멋진 외관의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의 양상은 은밀하고 복잡하다. 영화 속 '의사'는 직업적 스트레스 때문에 도박과 우울증, 약물 중독에 취약한 상황 속에 놓여있다. 오늘날에도 의사들의 약물 중독은 민감한 문제로 다루어지는데, 1950년대의 상황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므로 영화의 내용이 '사실 무근'임을 알리는 도입부 내레이션은 외부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것이다.

  주인공 프레드는 기숙사 룸메이트 스티브가 재정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에게는 또한 가난한 간호사 여자 친구 캐시가 있다. 스티브의 자살은 캐시에게 큰 충격이 되는데, 캐시는 자신의 남자 친구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지 잘 모른다. 이 가련하고 순수한 간호사 아가씨는 추악한 범죄의 연결 고리에서 동떨어진 희생자로 묘사된다. 이와는 달리 프레드와 같은 병동에서 근무하며 애인처럼 가까워진 앤은 전형적인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모습을 보여준다. 앤은 영화 초반부 총을 맞고 사망한 인턴을 비롯해 스티브와도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암시된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앤은 새로운 먹잇감이 될 프레드에게도 접근한다. 프레드는 앤이 도박 자금을 의사들에게 빌려준 댓가로 마약을 얻어내는 팝과 공모하고 있음을 알아챈다. 앤의 돈에 대한 갈망은 자신이 유혹한 남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물론 앤에게도 사정은 있다. 이혼녀로 아이를 홀로 키우는 싱글맘 앤에게 돈은 목숨과도 같다. 그렇게 일그러진 모정은 범죄에 스며든다.

  앤과 함께 의사들의 약점을 이용해 마약 유통 범죄에 끌어들이는 엘리베이터 기사 팝은 늙고 추악한 얼굴의 악인을 보여준다. 그가 영화의 마지막에 프레드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는 장소는 병원의 거대한 지하실이다. 크고 구불구불한 파이프들이 뱀처럼 끝없이 이어진 공간 속에서 형사와 범죄자는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최신식 병원의 지하 공간은 마치 욕망의 하수구처럼 묘사된다. 'The Naked City'의 살인범이 백주의 도시의 다리 맨 꼭대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처럼, 팝은 병원 옥상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곳에서 보이는 한낮의 도시 풍경은 정물화처럼 평온하게 흐르고 있다.

  이 영화는 필름 느와르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병원'이라는 의외의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범죄 사건을 담았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조지 셔먼 감독은 프레드가 병원에 부임해서 의사들의 세계에 적응하는 일련의 과정을 짜임새 있게 제시한다. 수술방에 들어간 프레드는 학술회의 참가자처럼 동료 의사의 수술 장면을 참관한다. 의사들이 무리지어 내려가는 수직의 계단을 부감 쇼트로 찍은 장면은 '병원'과 그곳에서 일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권위를 그 자체로 드러낸다. 영화는 병원이라는 공간 속에 내재된 구조적인 문제들이 인간적인 결함과 결합했을 때, 어떻게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건조하게 묘사한다.

  'The Sleeping City'가 보여주는 병원은 결코 온기가 느껴지는 곳이 아니며, 환자들의 고통이 깔리는 배경 뒤에 돈에 대한 집착과 뒤틀린 욕망, 그로 인해 불안하게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이 감춰진 장소이다. 영화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프레드가 홀로 거리를 걸어가는 가운데, 거대한 성처럼 서있는 병원을 비춰주며 끝난다. 그 성채의 위엄을 손상시킨 범죄자는 제거되었다. 빠지고 부서진 부품을 교체하듯 새로운 사람들이 그곳의 일원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 필름 느와르 영화는 도시 속 인간의 삶을 탐구한 작은 보석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 pinter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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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기차 안에서 만난 두 사람의 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대학생 이와가키와 그의 친구 마키타의 삼촌은 고향 와카마츠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와가키는 2년 만에 고향 친구들과 재회한다. 친구들은 각자의 삶을 버겁게 살아내고 있다. 여관집 아들로 가업을 잇고 있는 미네무라, 어머니의 술집 일을 도우며 바텐더로 일하는 마키타, 목공예 장인인 아버지에게 일을 배우는 마스기, 몰락한 무사 집안의 자손으로 노조일에 앞장서는 테시로기, 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이와가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곧 이 친구들의 우정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감독의 1959년작 '봄날이여 안녕(惜春鳥, Farewell to Spring)'은 와카마츠 현의 시골 마을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후 젊은 세대의 불안한 초상을 그려낸다.

  이와가키를 집안이 운영하는 여관에 머물게 한 미네무라는 친구들의 술자리에 게이샤들을 불러 환대한다. 게이샤 미도리는 비감한 백호(白虎)춤을 선보인다. 영화 속에서 이 '백호'의 노래와 이야기는 주요한 테마가 된다. 1868년, 존황양이파와 막부파의 결전이 아이즈 번에서도 일어났다(아이즈 전쟁, 会津戦争). 막부파의 호위 부대였던 아이즈 번의 무사들(白虎隊, White Tiger Unit)은 처절하게 싸웠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끝까지 저항한 19명의 청년 사무라이들은 할복으로 생을 마감했다. 무사도를 보여준 이들의 이야기는 '신선조(新選組)'와 함께 일본 대중 문화에서 자주 다루는 이야기로 자리매김한다. 미도리가 추는 백호춤을 보며 청년들은 좋았던 과거와 자신들의 현재의 모습을 함께 떠올린다.

  '봄날이여 안녕'에는 전후 청년 세대가 당면한 현실적 갈등이 드러나 있다. 백호춤과 노래는 전통적 가치와 과거의 향수를 상징한다. 영화 속 다섯 명의 친구들은 '우정'이라는 가치로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 각자가 처한 현실은 그 우정이란 것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이며 영속되기 어려운 것인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대학생 이와가키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지만, 실상 그는 사기꾼이 되어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우정을 이용하기까지 한다. 가장 가까운 친구 마스기에게는 훔친 카메라를 전당포에 대신 맡겨달라고 하고, 미네무라에게도 학비에 쓴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마키타는 마음에 둔 요코를 두고 친구 테시로기와 경쟁하는 사이가 된다. 테시로기는 몰락한 무사 가문의 자손으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에 부잣집 딸 요코와의 혼담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순수한 시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은 전후 세대의 물질적 욕망을 자신의 영화들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다. '바람 앞의 등불(風前の灯, 1957)'과 '오늘 또 오늘(今日もまたかくてありなん, 1959)'이 그런 작품이다. 역시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이 처한 경제적인 어려움들이 드러난다. 사기꾼이 된 이와가키는 말할 것이 없고, 가난한 테시로기는 노조 운동의 대의명분에 투신하고 있지만 결혼을 가문의 위신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술집 여주인의 사생아 아들 마키타, 여관집 아들 미네무라는 계층적으로는 주류에 진입할 가능성이 그다지 크지 않다. 이들 보다 더 안좋은 처지에 있는 이는 마스기이다. 한 쪽 다리가 불편한 마스기는 부친의 칠기 공예일을 잇고 있다. 값싼 중국산 목기가 수입될 것이라는 소식은 마스기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이 그려낸 전후의 풍경은 어둡고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폐병을 앓는 마키타의 삼촌은 게이샤 미도리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그는 하루종일 누워만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 같다. 새출발을 꿈꾸며 연인들은 다시 만난다. 한밤중, 백호대 비석이 있는 산 중턱에서 남자는 백호춤을 추는 연인을 위해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은 할복으로 죽음을 택했던 백호대 사무라이들의 비극적 최후와 겹쳐진다. 마키타는 삼촌과 미도리의 동반자살 소식을 듣는다.

  "인생에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은 없어. 우정 보다 생존이 중요한 거야."

  테시로기의 신고로 이와가키는 체포되고, 친구들은 이를 두고 말다툼을 벌인다. 그들의 변질되고 조각난 우정은 회복될 수 있을까?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은 그 청년들에게 쉽사리 장밋빛 미래를 선물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마스기는 이와가키가 선물해준 붉은 목도리를 내팽개친다. 미네무라는 그것을 주워서 건네지만 목도리는 다시 한 번 땅바닥에 버려진다. 그래도 그 목도리는 결국 친구의 손에 들려있다. 버려지지 않은 목도리는 롱쇼트 속에서 붉은 점처럼 보인다. 그것은 어쩌면 결코 버릴 수 없는 희망의 한 조각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전후 청년 세대의 불안을 그려낸 이 영화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봄날이여 안녕'이 인상적인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영화의 초반부, 마스기는 이와가키가 왔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여관에 달려 온다. 온천탕에 벗은 채로 있는 이와가키를 마스기는 열렬하게 끌어안는다. 그 장면은 남자들의 진한 우정을 보여주는 장면치고는 뭔가 생경한 느낌을 준다. 학창 시절, 몸이 불편한 마스기를 괴롭히는 아이들과 이와가키는 많이 싸웠다. 둘 사이는 친구 이상으로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 이와가키가 마스기에게 건넨 붉은 목도리가 마치 연정의 징표처럼 보일 정도이다.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은 동성애자였다. 영화 속 두 친구가 보여주는 관계 묘사를 두고 일본의 평론가들은 감독의 '영화적 커밍아웃(coming out)'으로 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퀴어 영화의 범주에 두기 보다는,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의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내면적 탐구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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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의 삶과 작품 세계를 다룬 다큐 3편


1. BBC 다큐 'Francis Bacon : A Brush with Violence(1997)', 1시간19분

2. The South Bank Show 제작 'Francis Bacon(1985)', 55분

3. 미국 휴스턴 미술관(The Museum of Fine Arts, Houston) 제작, Francis Bacon: Late paintings(2020), 55분


* 위 세 편의 다큐들은 모두 유튜브에서 검색 가능함.


  1945년, 런던의 전시회에 걸린 그의 삼면화(triptych, 세 개가 이어진 그림으로 주로 가톨릭의 제단화에 쓰였음)는 관객들에게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2차 대전이 막 끝난 직후여서 사람들은 가급적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들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화가는 기괴하게 변형된 신체와 인물의 이미지들을 자신의 그림 속에 계속해서 변주해 나갔다. 그는 동성애자였으며, 술과 도박에 빠져 지냈고, 그림으로 누릴 수 있는 명예와 부를 생전에 다 누렸다. 죽어서도 그의 그림을 비롯해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 소장품이 엄청난 가격에 팔리고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아마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도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를 무시무시한 이미지로 그려낸 초상 연작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1997년에 BBC에서 제작한 다큐는 화가 베이컨의 일대기와 작품, 그의 주변 지인들의 인터뷰를 충실하게 담고 있다. 이 다큐는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화가의 작품 세계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아주 좋은 안내자가 되어준다. 거칠고 폭력적인 아버지와의 불화, 베를린과 파리에서 지냈던 20대 초반의 시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시작했던 경력의 초창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30대, 그리고 그의 동성 연인들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베이컨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에 무척 솔직했다. 동성애는 그의 예술 세계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1950년대를 함께 했던 동성 연인 피터 레이시는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다. 유리잔을 베이컨의 얼굴에 던져서 눈이 찢어지는 큰 부상을 입고도 베이컨은 그를 떠나지 못했다. 결국 레이시가 모로코의 탕헤르(당시 국제 관리 지역인 탕헤르는 동성애자들의 천국이었다)로 떠나면서 종결될 수 있었다. 가학적이었던 레이시와의 관계가 끝난 후, 베이컨이 안착한 새로운 인물은 조지 다이어였다. 이스트 엔드의 그저 그런 술꾼이었던 다이어는 베이컨의 모델로 1960년대 그려진 주요한 그림들을 채우게 된다. 이 관계에서 베이컨은 연인 레이시에게 피학적인 입장이었던 것과는 달리, 지배적이고 우세적인 위치를 점한다. 베이컨의 그림 속 다이어의 이미지는 파괴적인 절단과 변형을 보여준다. 베이컨은 다이어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끌어내었지만, 그럴수록 다이어는 피폐해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비극적이고 참혹한 결말로 끝났다.

  베이컨이 그림을 시작한 계기는 피카소의 전시회였다. 그는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자신도 저 정도는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피카소가 누린 명성과 평생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1971년, 프랑스 파리 Grand Palais에서 열린 회고전은 베이컨 인생의 정점과도 같았다. 그것은 그가 서양 현대 미술에서 거장으로 인정받게 됨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진다. 전시회를 앞두고 파리의 호텔에서 같이 머물던 다이어가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사건이 가져올 파장을 생각해서 신고는 이틀 동안 미루어졌다. 전시회가 끝난 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자살로 대충 마무리되었지만 사건은 베이컨에게 커다란 상흔으로 남았다. 시신을 발견하고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윤리적인 비난, 연인의 죽음을 목격한 정신적인 충격, 사건 이후 속죄와 고통의 감정이 베이컨의 그림 주제가 된다.

  영국 ITV의 프로그램 The South Bank Show에서 1985년에 제작한 다큐는 Melvyn Bragg이 베이컨과 했던 인터뷰가 주를 이룬다. 술을 좋아하는 베이컨을 위해 여러 술집에서 이루어진 솔직하고 재기 넘치는 인터뷰를 통해 베이컨의 뛰어난 말솜씨를 엿볼 수 있다. 진행자 Bragg은 절제되어 있지만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다이어의 죽음에 대한 베이컨의 생각을 비롯해, 화가가 직접 설명하는 그림 속 테마의 의미도 들을 수 있다. 왜 그의 그림에서 '입'을 반복해서 그리는지에 대한 질문에 베이컨은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단순명료하게 답한다. 술을 좋아하는 이유로는 자신은 술집의 분위기를 좋아하며, 그곳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미국의 현대 미술 작가 마크 로스코와 잭슨 폴록을 비웃는 베이컨의 모습도 나온다.

  "사람들은 선생의 그림에서 공포를 봅니다. 선생의 그림은 공포에 대한 것입니까?"
  "공포는 우리의 일상 어디에나 있어요. 매일 보는 신문, 방송의 사건 기사를 보세요. 나는 내 그림 속에 공포를 담지 않습니다.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삶이에요. 삶 그 자체입니다. 이미지의 충격으로 보는 이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내가 그림을 통해 추구하는 바입니다."

  2020년, 휴스턴 미술관에서 제작한 다큐는 미술관 큐레이터 Alison de Lima Greene이 1970년대 이후 베이컨의 후기 작품에 대한 분석을 들려준다. 앞서 언급한 두 다큐를 보았다면 편하게 볼 수 있다. 베이컨이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한 방식, 초창기 영화사와 관련이 있는 사진가 마이브리지(E. Muybridge)의 영상물 작업을 응용한 것을 비롯해 회화사의 대가들 작품을 어떤 식으로 차용했는지도 알 수 있다. 베이컨의 화풍은 독자적 실험 속에서 완성된 것이지만, 그 작업은 이전의 미술사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격렬한 폭력과 외설, 파괴적 이미지로 점철되었던 베이컨의 중기 회화는 말년에 이르러서는 부드러워진다. '늙음'은 이 예술가에게도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비서이며 그의 작업에 필요한 사진을 담당했던 존 에드워즈는 노년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말년에 만난 젊은 연인 호세와의 결별은 베이컨에게 생의 마지막 불꽃과도 같았다. 호세를 만나겠다며 찾아간 스페인에서 베이컨은 생을 마감한다. 그의 최종 유산 상속자는 존 에드워즈가 되었다.

  3개의 다큐를 통해 들여다 본 화가 베이컨의 삶은 여전히 거대한 수수께끼처럼 느껴진다. 그의 스튜디오는 마치 hoarder(온갖 물건과 쓰레기들을 모아서 쌓아두고 사는 이들)의 쓰레기집을 연상케 한다. 한 번도 청소하지 않은 것 같은 화구통의 붓에는 먼지들이 켜켜이 쌓여있고, 책과 잡지를 비롯해 사진 자료들이 거대한 탑을 이루고 있다. 캔버스 앞에서 겨우 그림 그릴 정도의 통로가 확보된 기이한 스튜디오. 이곳을 상속자 에드워즈는 영국 정부에 기증했고, 새로운 기념관을 만들기 위해 스튜디오를 해체하는 과정은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원천이 되었다.

  베이컨이라는 화가가 성취한 명성은 그의 재능과 내적인 광기, 인간적 특성만으로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전후의 불안과 고통은 실존주의 철학을 낳았고, 그러한 시대적 배경은 베이컨이 그려낸 충격적인 이미지들과 강력하게 공명했다. 다큐에서 본 그의 많은 작품들 가운데,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베이컨의 마지막 유작이었다. 흰 배경의 캔버스 위쪽에 희미한 이미지의 황소가 사각형의 창을 뚫고 나오려는 것처럼 서있다. 그는 동성애자로 평생 자신의 시대와 불화했고, 술과 도박으로 삶의 위안을 찾았다. 그의 인생은 마치 폭주기관차 같았다. 그림은 어쩌면 그 열차의 창 밖으로 그가 바라본 바깥의 풍경과 자신의 내면을 결합시킨 창조적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프랜시스 베이컨의 초상 사진(1950년대)


**그림 출처: en.wikipedia.org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1944(영국 테이트 갤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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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내 그림은 왜 훔쳤어요?"
  "그러니까, 그건... 그림이 아름다워서요."

  화가는 전시를 위해 화랑에 걸어 두었던 그림 2점을 도둑맞았다. 감시 카메라에 찍힌 두 명의 강도는 곧 경찰에 붙잡혔다. 재판정에서 자신의 그림을 훔친 도둑과 마주친 화가는 그림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벤자민 리 감독의 2020년작 다큐 '화가와 도둑(The Painter and the Thief)'은 그림을 두고 생겨난 화가와 도둑 사이의 기이한 유대를 담는다. Photorealism (사진을 바탕으로 다양한 매체적 이미지로 재현하는 예술) 화가 바르보라와 그의 그림을 훔친 도둑 칼의 이야기가 3년에 걸친 시간 동안 펼쳐진다.

  도둑의 몸에는 눈에 띄는 많은 문신들이 새겨져 있었다. 마약 중독자로 이미 전과가 있는 이 남자는 신진 작가의 그림을 훔쳤다. 화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자신의 그림을 왜 훔쳤는지 궁금해 한다. 그림이 아름다워서 그랬다는 답이 바르보라의 마음을 움직였다. 남자는 화가의 요청대로 모델이 되었고, 그러는 동안 두 사람은 친구처럼 인간적으로도 가까워진다. 과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칼을 범죄자로 인식하는 관객들이 화가에게 생길 수 있는 안좋은 일에 대해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대담한 화가는 칼을 처음 본 순간부터 범죄자가 아닌 상처받은 인간으로 보았다. 바르보라가 그린 칼의 초상화는 그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준다. 그림을 보고 그가 흘린 눈물은 거짓처럼 보이지 않는다. 화가와 도둑의 예기치 않았던 예술적 협업 관계는 그런 신뢰 속에 지속된다.
 
  관객들은 전반부에는 화가 바르보라의 시점으로, 후반부에는 도둑 칼의 시점에서 그 관계의 전모를 탐색할 수 있다. 칼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바르보라는 그의 불우했던 인생에 대해 알게 된다. 어린 나이에 겪었던 부모의 이혼, 외로웠던 성장기와 그로 인해 겪은 정서적인 문제, 그 모든 것이 칼의 현재를 만들어 냈다. 화가는 모델의 고통에 깊이 감정이입을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가 침묵하는 훔친 그림의 행방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는다. 그는 당시에 약물 중독 상태여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다.

  "바르보라가 나를 보는 것처럼, 나도 바르보라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종종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도둑인 칼은 자신이 바라본 화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이 화가와 그림에 꽤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바르보라에게는 고통스런 과거가 있었다. 전 남자 친구의 폭력에 시달렸던 체코 출신의 화가는 현재의 노르웨이인 남자 친구를 만나고 나서야 회복의 여정에 들어설 수 있었다. 칼은 바르보라의 그림에 내재된 죽음과 고통의 의미에 공감했다. 화가와 도둑은 각자가 가진 인생의 상처를 그림을 통해 들여다 보았던 것이다.

  이 독특한 인간적 유대는 결코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칼은 마약 중독의 악순환에 다시 빠지고, 치명적인 차사고를 겪는다. 바르보라는 칼과 자신의 미술 작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연인과 문제가 생긴다. 과연 바르보라가 칼을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가는 남자 친구와 함께 한 커플 심리 치료 session에서 타인의 고통을 응시하면서 그것을 그림의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거기에 착취적(exploitative)인 면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바르보라와 칼은 어떤 면에서는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격려하면서 친구로서의 우정을 쌓아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보여주지 않은, 또는 보려고 하지 않은 내면의 모습이 있다. 칼은 공예학교에서 목공을 전공했고, 뛰어난 운동 선수이기도 했다. 그는 바르보라가 그런 사실 보다는 자신에게 관심있는 어두운 고통만을 보려고 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다큐는 둘 사이에 생긴 인간적 유대에 군데군데 비어있는 틈과 뒤틀린 부분을 보여준다.

  벤자민 리 감독은 '화가와 도둑'을 마치 추리 소설을 읽듯 영화적 내러티브를 도입해서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진행되는 사건의 현재 시점에서 돌아가 과거를 들여다 보게 하는 비선형적 시간 구조는 다큐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또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羅生門, 1950)'처럼 각자의 관점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관계의 숨겨진 면모를 바라보게 한다. 바르보라가 칼이 말해주지 않은 그림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결국 한 점을 찾아내는 과정은 스릴러물 같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거기에 칼이 수감된 노르웨이 감옥의 현실은 관객의 놀라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마치 호텔방 같은 1인실에서 편안히 지내면서, 체력 단련실에서 운동을 하고 상주 심리 치료사의 도움을 받는 칼은 출소할 즈음에는 '밖이 두렵다(!)'고 말한다. 범죄자에게 충분한 재활의 기회를 주고 사회적 안착을 적극적으로 돕는 나라. 어떤 면에서 이 다큐가 보여주는 기이한 우정의 연대기는 '노르웨이'라는 나라의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나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뜻밖의 결론에 다다른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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