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살고 있는 집, 대학 등록금은 다 나한테서 나온 거다. 내가 얼마나 뼈빠지게 일했는지 알기나 해?"

  아버지 톰은 자식들에게 자신의 공덕을 입버릇처럼 내세운다. 가족들에게 독불장군처럼 군림해온 그는 자식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대학교수인 아들 진은 강압적이고 독선적인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미워한다. 딸 앨리스는 유태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큰 비난을 받은 후 아버지와 소원한 상태다. 그런 자식들은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 이후, 연로한 아버지의 거취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앨리스는 입주 가사 도우미를 두자고 하지만 톰은 완강히 거부한다. 재혼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나려는 진은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강한 아버지 밑에서 상처받은 아들을 연기한 진 해크먼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프렌치 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 1971)'의 그 열혈 형사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길버트 케이츠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노래(I Never Sang for My Father, 1970)'에서의 해크먼은 매우 위축되어 있고, 많은 감정을 속으로 삭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통불능의 아버지 톰은 자신이 좋아하는 TV서부극을 크게 틀어놓으면서, 아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에 가서 함께 살자는 아들의 제안을 듣고는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면 되는데 왜 그러냐고 말한다. 톰은 자식들이 자신을 짐짝처럼 여긴다고 분노하며, 배은망덕하다고 비난을 쏟아낸다. 결국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해묵은 불화가 독설과 함께 터져 버린다.

  영화는 매우 건조하며, 연출은 밋밋하기 짝이 없다. 오직 미움만이 존재할 뿐인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깊게 패인 세월의 상처를 보는 일은 괴롭다. 여기에 자식이 가진 부모에 대한 '부양의 의무'라는 윤리적 가치가 개입되면서 이야기를 더 무겁게 만든다. 진이 아버지의 거취에 대한 대안으로 요양 병원과 양로원을 살펴보는 장면은 마치 공포영화의 장면들처럼 제시된다. 그때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음산하기 짝이 없는데, 이 영화에 쓰인 음악들은 그렇게 단선적이고 조잡스럽다. 그 장면은 그런 곳에 부모를 보내는 행위는 '유기'나 '방치'와 같다는 암시를 준다. 그곳을 돌아보고나서, 진은 미워하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로 아버지의 노후에 대한 책임감을 더욱 느끼게 된다.

  미국 사회가 고령화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사회학자와 경제학자들은 고령화가 미칠 노동 시장에서의 고용 방식, 연금 수당, 건강 관리 및 가족의 형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영화 '아버지의 노래'는 부모의 사회 경제적 능력의 상실이 가져오는 가족 내의 노후 부양 문제를 부각시킨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과 갈등은 단순히 가치관과 신념에서 비롯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회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발생한다. 톰은 진과 앨리스에게 키워준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며 부양의 의무를 부각시키지만, 자식들은 그 의무를 부담스럽게 여긴다. 그 의무를 온전히 지는 것은 진과 앨리스에게는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흔드는 일이 된다.

  '아버지의 노래'가 보여주는 그런 고민들은 이미 1937년에 만들어진 '내일을 위한 길(Make Way for Tomorrow)'에서 제시된 바 있다. 레오 맥캐리 감독의 이 영화는 오갈 데가 없어진 노부부가 자식들에게 삶을 의탁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가슴아픈 일을 담았다. 바크와 루시 부부는 은퇴 후 소득없이 지내면서 집을 은행에 저당잡히게 되는데, 부부가 의지할 곳은 5명의 자식들 뿐이다. 서로 헤어져 다른 자식들의 집에서 지내던 부부는 자신들이 짐짝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건강이 악화된 남편은 또 다른 자식의 집으로, 아내는 양로원으로 갈 예정이다. 그 부부는 떠나기 전 함께 50년 전 신혼여행지 뉴욕을 돌아본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만남을 끝으로 그들은 기차역에서 헤어진다. 이 영화에 드러난 노부부의 고통은 노후 계획의 실패와 자식들과의 갈등이라는 개인적 차원에 머무른다. 세월이 흘러 1970년에 만든 '아버지의 노래'는 그 부모 부양의 문제가 좀 더 사회적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이 목격한 열악한 수용소와 같은 요양원의 실상은 미국 사회가 직면하기 시작한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부각시킨다.

  동명의 희곡을 영화화한 '아버지의 노래'는 상처와 증오 뿐인 부자간의 관계를 뻣뻣하고 거칠게, 그리고 전혀 영화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준다. 길버트 케이츠 감독은 원작 연극의 제작을 맡기도 했다. 그는 차라리 연극 제작자로 남아있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로 강인한 남성상을 연기했던 진 해크먼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새롭다. 해크먼은 1988년 Filmcomment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멜빈 더글라스가 자신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촬영 내내 불편했었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것이 영화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데에는 좋게 작용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서로를 싫어하는 배우들의 진짜 연기와 함께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당시 미국 사회가 가진 노인 문제에 대한 고민도 엿볼 수 있다.



*사진 출처: filmcomme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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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시골의 농민들이 일본군으로부터 전사한 이들의 유골함을 받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유골함에는 일장기가 꽂혀 있다. 군악대가 연주하는 일본 군가와 경쟁하듯 농민들이 부르는 피리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불협화음의 여운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두 집단의 근원적 차이를 보여준다. 뉴 타이완 시네마(New Taiwanese Cinema)를 이끌었던 대만의 왕툰(王童)감독은 50년이 넘는 영화 경력 기간 동안 15편의 장편 영화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현대 대만 3부작이 유명하다. 'Strawman(1987)', 'Banana Paradise(1989)', 'Hill of No Return(1992)'은 농촌과 자연을 배경으로 대만의 굴곡진 현대 역사를 담아냈다. 그 첫 번째 작품 '허수아비'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가혹하게 수탈당하는 농민들의 고통을 그려낸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는 2차 대전의 끝무렵, 가난한 시골 농부인 진파의 가족은 굶주림에 시달린다. 참새떼는 끊임없이 곡식을 쪼아먹고, 일본의 수탈은 갈수록 더해져서 키우던 소마저 빼앗긴다. 가장 진파에게는 귀가 어두운 노모, 덜 떨어진 동생, 남편이 전사한 뒤로 미쳐버린 막내 여동생, 그리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있다. 진파가 기댈 곳이라고는 참새를 내쫓기 위해 세워둔 허수아비와 동네 산신각 뿐이다. 그는 틈만 나면 제발 먹고 살게만 해달라고 빈다.


  그의 노모는 밤마다 형제의 눈에다 소똥을 몰래 바르는데, 그건 눈병을 핑계로 아들들에게 나온 징집 영장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그들이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마을에 주둔하는 일본 순사는 수시로 마을을 돌며 감시하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천황의 은혜는 태양과 같은 것이라고 교육받는다. 일제의 식민지 자원의 침탈은 문고리를 뜯어오고 포탄을 주워오는 일을 아이들에게 강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이들은 포탄 조각을 줍기위해 미군의 폭격이 이루어지는 다리밑에서 소쿠리를 가지고 기다린다. '허수아비'에는 그 누구도 죽거나 다치는 장면이 나오지 않음에도 식민 통치의 엄혹함과 피폐함이 드러난다.

  대만의 일본 통치는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 보다 더 이전에 시작되었다. '대만일치시기(臺灣日治時期)'라고 불리는 그 시기는 청나라가 청일전쟁의 패배로 대만을 일본에 할양한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대전 당시에 일본은 21만 명의 대만인을 징집하였고, 그 가운데 3만 명에 이르는 전사자가 발생했다. 영화의 첫 부분은 그렇게 끌려간 대만 청년들의 희생을 상기시킨다. 일제는 사람과 함께 물자 수탈에도 적극적이었다. 쌀과 사탕수수 재배를 위한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을 주도하면서 대만의 농민들은 노동력과 물산(物産)을 착취당했다. 영화에서 그 부분을 보여주는 인물은 진파의 여동생과 결혼한 일본인 사업가 야마모토이다. 그는 폭격이 심해진 도시를 떠나 아내의 고향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왔다. 야마모토는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농장을 팔아버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농지는 진파 형제가 힘겹게 농사짓는 땅이다. 식민지인들에게 온전히 자신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언제든, 무엇이든 빼앗길 수 있다.

  왕툰은 식민통치기 대만과 일본의 관계를 진파의 집 식사 장면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동생 내외와 일본인 순사 일가를 대접하려고 진파의 가족들은 어렵게 생선과 쌀밥, 반찬을 장만해서 내놓는다. 아이들은 그들이 음식을 많이 남기길 기대한다.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부자는 생선의 앞면만 먹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뒷면까지 뒤집어서 알뜰하게 발라먹는다. 제일 어린 막내는 그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결국 그들이 먹게 된 것은 뼈와 대가리 뿐인 생선이다. 나중에 그 가족이 생선을 실컷 먹게 된 것은 미군 덕분이다. 진파 형제가 논에 떨어진 불발된 포탄을 바닷물에 내던지자, 죽은 물고기가 떼로 떠오른다.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매일 매일 폭격이 일어나면 그런 포탄들이 나올 테고, 그러면 생선을 계속 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영화 '허수아비'는 그렇게 매끄럽고 보기 좋은 만듦새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서사는 툭툭 끊어지며, 배우들의 연기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대만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제의 식민지 시절을 날카로운 비유와 풍자로 그려낸다. 관객들은 영화 속 농민들이 보여주는 무지와 순박함, 그리고 그런 그들을 삶의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군국주의의 잔혹함을 선명하게 파악하게 된다. 때로 역사란, 책에 쓰여진 길고 건조한 문장들 보다 그런 소박하고 간결한 영화 속의 이야기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왕툰 감독이 대만인으로서 이 영화를 만들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허수아비'는 기억해야할 대만의 역사에 대한 영화적 증언인 셈이다.   



*사진 출처: peiy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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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아내는 결혼한 딸에게 줄 커튼을 샀다. 그러나 딸은 마음에 안든다며 가져가지 않았다. 아내는 자신이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며 운다. 딱한 마음이 든 남자는 딸이 왔을 때, 그냥 가져가지 왜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냐고 말한다. 딸은 아빠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아빠나 엄마한테 잘하세요."

  딸의 핀잔을 듣고 남자는 머쓱해진다. 이 남자,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의 속이 문드러지는 데에는 그가 상당부분 일조했기 때문이다. 게오르기 다넬리야 감독의 1979년 영화 '가을 마라톤(Autumn Marathon)'은 중년 남자의 가을앓이를 그려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을 풍경과 함께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남자의 내면 풍경이 펼쳐진다.

  실력있는 번역가이며 대학 교수인 안드레이는 자신의 원고를 정리해 주는 젊은 타이피스트 알라와 눈이 맞았다. 알라는 안드레이가 가정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와주길 바라지만, 안드레이는 그럴 생각이 별로 없다. 아내에게 충실하지도 않으면서 두 여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 남자는 시간이 갈수록 거짓말 실력만 늘어난다. 그의 아내 니나는 남편에게 딴 여자가 있는 것은 알지만, 그저 속만 끓이면서 지켜보는 중이다. 이 마음 약한 남자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알라와 함께 있을 때는 알라의 뜻을 받아주고, 집에 돌아와서는 갱년기 우울증을 겪는 힘든 아내를 안쓰러워 한다. 안드레이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알렉산드르 볼로딘이 붙인 원래의 제목은 '도둑의 괴로운 생활'이었다. 도무지 영화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제목은 영화를 만들면서 바뀌었다. 중년이란 나이가 '가을'이라는 계절과 어울리기도 하고, 마침 영화를 찍었던 시기가 그렇기도 했다. '마라톤'이 붙은 이유는 이렇다. 안드레이는 덴마크 교환 교수 빌의 도스토옙스키 번역을 도와주고 있는데, 빌은 아침마다 조깅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안드레이는 좋아하지도 않는 달리기를 빌의 뜻에 맞춰주느라 매일마다 뛴다. 이 남자는 도무지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는 법이 없다. 그의 옆집에 살고 있는 바실리가 보드카 사들고 들어와서 빌과 자신에게 막무가내로 술을 권하는데도 거절하지 못한다. 바실리가 근처 숲에 버섯을 따러 가자고 하자 억지로 따라나선다.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안드레이의 일상은 뭔가 계속 엉키기만 한다.

  이 사람 좋은 안드레이는 번역 실력이 좋지 않은 동료 바르바라가 일감도 얻지 못한 것을 마음에 걸려한다. 대신 번역일을 도와주다가, 급기야 자신에게 맡겨진 번역일을 바르바라에게 빼앗겨 버린다. 그 와중에 갑자기 먼곳으로 직장을 옮기게 된 딸과 사위 때문에 니나는 상심이 크다. 아내 곁에 머무르기로 마음 먹지만, 아내는 안드레이의 우유부단함과 거짓말에 진력을 내고 별거를 통보한다. 알라도 그를 떠난다. 안드레이는 갑자기 각성한다. 그는 사이가 좋지 않은 동료 교수와 큰소리로 싸우고, 좋지 않은 수업 태도를 보인 학생들에게도 똑바로 수업 들으라고 말한다. 그저 사람 좋은, 싫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이 남자는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아내와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편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국영 영화사 Mosfilm이 지향하는 건전한 인민의 사고방식에 그다지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제작 담당자는 시나리오를 쓴 볼로딘에게 대놓고 본인 이야기냐고 물었고, 그건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했다. 다넬리야 감독은 제작사에서 결말에 대한 수정을 요구할까봐 걱정을 했다. 남편이 아내에게 확실하게 돌아가는 결말이 아니라는 데에 당시의 많은 소련 여성 관객들은 분노했다. 1979년에 소련에서 만든, 중년의 위기에 처한 남자의 서글픈 코미디 영화에는 그런 사연이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안드레이는 매일 아침 늘 그랬듯이 빌의 방문을 받는다. 그는 빌을 따라 내키지 않는 새벽 조깅에 나선다. 어스름한 새벽녘, 스산한 가을 풍경 속에 힘겹게 달리는 안드레이의 뒷모습은 애잔하게 보인다. 중년의 나이에 무언가를 바꾸는 일은 그토록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살아왔던 삶의 방식, 인간 관계, 내적 심성, 그 모든 틀을 깨고 새로운 인생을 꿈꾸기에는 늦은 걸까? '가을 마라톤'에는 오랜 삶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괴로운 중년 남자의 초상이 레닌그라드의 가을 풍경 속에 담겨져 있다.  



*사진 출처: pikabu.ru  안드레이 역의 배우 올레그 바실라시빌시. 그는 이 영화의 연기로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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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 코일의 친구들(The Friends Of Eddie Coyle, 1973)'은 조지 히긴스가 1970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 에디 코일은 보스턴 갱들의 세계에서 그저 그런 뒷설거지나 하면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총기 밀매업자다. 에디는 뜻하지 않게 말려든 주류 밀매 트럭 수송 건으로 이제 3번째 복역을 치뤄야할 상황에 처해 있다. 그에게 이런 역경을 선물한 친구는 자기 소유의 주점을 운영하는 딜런이다.


  에디는 모르고 있지만, 딜런은 자신의 혐의를 벗는 대신에 ATF(미국의 주류, 화기, 담배, 폭발물 단속국)요원 폴리의 정보원 노릇을 하고 있다. 친구에 대한 원망은 접어둔 에디는 어떻게든 형량을 줄이려고 애를 쓴다. 그에게는 아내와 세 아이들이 있다. 벌어놓은 돈도 없는데 감옥에 가게 되면 가족들은 거리에 나앉을 판이다. 그 와중에도 총기 밀매일은 계속 한다. 그는 신출내기 갱 재키 브라운에게 총기를 사들여서, 은행 강도 패거리 친구들에게 공급한다. 그 패거리들은 용의주도하게 연달아 강도 행각을 벌인다. 에디는 폴리에게 친구들의 신상 정보를 주는 댓가로 형량을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과연 에디는 가족의 곁에 남아서 가장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제목에서 '친구들'이란 말은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다. 에디는 딜런과 은행 강도 지미와 아티를 친구로 생각하지만, 그들은 에디를 친구로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딜런은 자신의 밀매 사업에 에디를 끌어들여서 범죄 혐의를 덤탱이 씌워 놓고도 당당하다. 단속국 요원 정보원이 되어 빠져나갈 구멍을 찾은 딜런과는 달리, 에디는 감옥에서 몇 년을 썩을 판이다. 딜런에 대해 경찰에 불지도 않은 에디는 의리를 지켰다고 생각하지만, 혼자서 그 뒷감당을 하기가 버겁다. 냉혹한 강도짓을 벌이는 지미와 아티는 에디를 총기 공급책으로나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에디는 그들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유대와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재판 형량을 줄이기 위한 정보원 노릇에 갈등한다. 딜런이 이미 정보를 넘긴지도 모르고 폴리와 거래하려던 에디의 기대는 빗나간다. 어쨌거나 친구들이 감옥에서 썩게 되었다는 사실에 슬픔과 연민을 느끼는 에디. 지역 갱 두목은 에디를 밀고자로 지목하고, 딜런에게 뒷처리를 맡긴다. 딜런은 늘 그런 일을 해왔다. 에디에게는 그렇게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온다.

  더러운 뒷골목의 갱으로 살았으면서도 에디에게는 인간적인 면모가 남아있다. 그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세계에서 밥벌이하며 견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에디의 그런 인간적 사고방식은 냉혹한 세계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그 세계를 이루는 소모품일 뿐이다. 그 세계의 강렬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인물은 딜런이다. 치밀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위치를 선점하고, 주변인들을 철처하게 이용한다. 그가 보스의 명령을 실행하는 데에는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에디는 자신의 친구들과 그 세계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무대 앞의 꼭두각시였을 뿐이다. 딜런과 폴리 같은 무대 뒤의 조종자들은 에디를 필요에 따라 써먹는다. 리처드 조던이 분한 단속국 요원 폴리는 갱들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가 보여주는 간계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정보원의 범죄 행위도 눈감아 주는 것도 포함된다. 

  에디 역을 연기한 로버트 미첨은 어깨 처진, 삶에 대한 별다른 기대도 없는, 그저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이 걱정스러울 따름인 늙은 갱을 담담히 연기한다. '에디 코일의 친구들'은 그의 후반기 연기 경력에서 가장 빛나고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그는 보스턴 갱들의 말투를 익히기 위해 실제로 보스턴 갱 조직의 일원과 만남을 가졌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영화 속 은행 강도 지미를 연기한 알렉스 로코였다. 로코는 영화 '대부(1972)'에서 콜레오네와 대립하는 모 그린 역을 연기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는 젊은 시절 실제로 보스턴 갱 단원으로 조직의 싸움에 살인을 저지른 범죄 경력도 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에서 알렉스 로코의 은행 강도 역할은 한 치의 빈틈도 없다. 그 어떤 표정 변화도 없는 냉혈한 딜런을 연기한 피터 보일의 연기도 좋다. 딜런은 에디 코일의 친구가 아니라 그를 기만하고 착취하는 악한이다. 피터 보일은 평범한 얼굴로 나누는 일상적이고 시시한 대화 속에 매서운 칼날을 숨긴 인물을 연기한다.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인 데이브 그루신이 맡은 음악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어둡고 단조로운 영화의 결을 오히려 흐트러지게 만드는 튀는 음악처럼 들린다. 감독 피터 예이츠의 연출 또한 특출난 것이 없다. 어쩌면 뒷골목 삶의 고단함에 찌든 중년의 갱의 일상과 그가 맞이하게 될 비극을 그려내는 데에 있어 절제된 연출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에디 코일의 친구들'은 감독 자신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cineoutsider.com  에디 코일 역의 로버트 미첨



*다음 글은 토요일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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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볼로쟈는 자신이 쓴 단편소설이 잡지에 실린다. 그의 소설에 관심을 가진 작가의 초청으로 모스크바에 오게 된 그는 공항에서 흥얼거리는 젊은 여성과 마주친다. 누굴 기다리냐고 묻자 여자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볼로쟈는 행복하냐는 질문을 던진다. 여자는 결혼을 하라고,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답한다. 볼로쟈는 그런 일은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날 믿어요. 반드시 행복해질 거에요."

  이 영화, 온갖 긍정과 낙관의 기운이 흘러넘친다. 그저 젊은 청춘들이 모스크바 거리를 쏘다니는 것이 전부일뿐인데도, 보고나면 웃음을 짓게 만드는 정말 사랑스런 영화다. 영화 속 모스크바의 거리는 활기가 가득하고, 젊은이들은 사랑하는 이와 희망에 찬 미래를 꿈꾼다. 게오르기 다넬리야 감독의 1964년작 '나는 모스크바를 걷고 있네(Walking the Streets of Moscow)'는 소련의 '해빙기(The Khrushchev Thaw)'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볼로쟈는 지하철에서 같은 또래 콜랴와 우연히 알게 되어 친해진다. 머물기로 한 지인이 모스크바에 없다는 걸 알고 난감해 하는데, 콜랴가 자신의 집에 머무르도록 해준다. 콜랴에게는 군 입대를 앞두고 결혼이 예정되어 있는 친구 샤샤가 있다. 샤샤의 결혼 예복을 사기 위해 그들은 백화점에 들른다. 그곳 레코드 가게 점원 알료냐에게 볼로쟈와 콜랴가 관심을 보이고, 콜랴는 알료냐를 샤샤의 결혼식에 초대한다. 과연 알료냐의 마음은 누구에게로 기울어질까?
 
  '젊은이들이 할 일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영화'라는 흐루시초프의 비판 때문에 무참한 검열과 삭제를 당하는 운명을 겪었던 '나는 스무 살(Мне двадцать лет, 1965)'과는 달리, '나는 모스크바를 걷고 있네'는 살아남았다. 영화는 1963-64년의 모스크바에 대한 역사적 기록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볼료자, 콜랴, 알료냐가 밤늦게까지 쏘다니며 바라본 모스크바는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젊은 여성은 즐겁게 비를 맞으며 맨발로 걷고, 우산을 든 청년은 자전거를 타고 따라가며 여성에게 구애한다. 시민들을 위한 음악회와 신나는 놀이공원의 풍경이 모스크바의 야경을 채운다. 아마도 구 소련 시절을 엄혹한 철의 장막으로만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놀랄만한 영화다. 

  물론 이 영화의 그런 자유로움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흐루시초프 시절의 사회 문화적 '해빙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제한의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린 쿠치예프 감독의 '나는 스무 살'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1959년부터 제작이 시작되었던 그 영화는 혹독한 비판을 받으며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다. 쿠치예프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쓴 겐나디 스팔리코프는 무능하고 한심한 관료주의에 치를 떤다. 그는 '나는 모스크바를 걷고 있네'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소련 당국의 검열을 비판하는 장면을 은유적으로 집어넣는다. 콜랴와 함께 볼로쟈가 자신을 초청한 작가를 만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를 만난 자리에서 볼로쟈는 자신이 문학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삶의 진실과 사람들 사이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하자, 작가는 그런 건 죄다 쓸데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지독한 이기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런 그의 말에 볼로쟈는 당황하는데, 그때 진짜 작가가 등장한다. 볼로쟈가 그때까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건물의 청소부였다. 자신이 관찰한 작가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흉내낸 청소부의 연기를 통해 스팔리코프는 예술에 무지한 검열 당국을 비꼰다. 그 장면이 가지는 의미를 당국은 알아채지 못했다.

  영화의 초반부, 콜랴의 집 건너편 가게에서 영어와 팝송을 크게 틀어놓는 장면이 나온다. 영어를 사용하는 일본인 관광객이 박물관에 가려고 택시를 타는 장면도 나온다. 당시 모스크바에 넘치는 자유와 활기는 그런 것이었다. 콜랴는 그런 모스크바를 걸으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 젊은 날의 기쁨과 설레임에서 저절로 나오는 찬가이다.

  '나는 모스크바를 걷고 있네
  어느 날 나는 태평양을 건너겠지
  툰드라와 타이가(taiga)도
  흰색의 닻을 올릴 거야
  그러다 향수병이 도지면
  눈 속에서 보라빛을 찾을 거야
  그렇게 모스크바를 떠올리겠지' (번역 푸른별)

  서정적인 노래와 함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촬영 감독이었던 바딤 유소프가 담아낸 유려한 모스크바 풍광을 결코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영화. '나는 모스크바를 걷고 있네'를 만나는 관객들은 영화 속 1963년의 모스크바 거리를 마냥 행복한 주인공들과 같이 걷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 출처: ru.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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