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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의 주요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재자의 말로가 대부분 좋지 않지만, 아마도 현대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독재자는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아닐까 싶다. 20년이 넘게 루마니아를 철권 통치했던 이 독재자는 도망치는 장면이 루마니아 전국에 생중계 되었으며, 체포된지 이틀 만에 곧바로 처형되었다. 루마니아에서는 독재자의 죽은 모습을 전세계 방송국에 열심히 뿌렸다. 지금과 같은 방송 윤리 기준에서라면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은 장면을 1989년이 저물어 가던 12월의 끝자락에 대한민국의 TV 뉴스에서는 쉽게 볼 수 있었다. 죽은 독재자의 모습은 참혹하기 짝이 없었고, 그것은 당시 루마니아 국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만들었다. 루마니아의 감독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Corneliu Porumboiu)의 2006년작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12:08 East of Bucharest)'는 1989년의 루마니아 혁명을 16년이 지난 시점에서 회고한다.

  부쿠레슈티 동쪽의 소도시 바슬루이, 사람들은 성탄절 준비로 들떠있다. 지역 방송국의 책임자인 버질은 혁명 16주기를 기념하는 생방송 토크쇼를 기획한다. 그러나 초빙하려는 연사들이 모두 거절하자 궁여지책으로 자신이 알고 지내는 두 사람에게 부탁한다. 한 사람은 까다롭고 엄격한 노인 피스코치, 다른 한 명은 늘 술에 절어 사는 역사학과 교수 마네스쿠이다. 토크쇼의 주제는 '16년 전인 1989년 12월 22일, 바슬루이 광장에서 정말로 혁명의 시위가 있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바슬루이 주민들이 차우셰스쿠가 도주하던 시각인 낮 12시 8분 이전에 주도적으로 시위를 조직하고 독재자의 축출을 요구했는지, 아니면 그 이후에 소식을 듣고 놀라서 광장으로 나온 것인지가 토론의 쟁점이 된다.


  마네스쿠 교수는 광장에서 자신이 처음으로 시위를 시작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버질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세세히 들려줄 것을 요구하고, 교수는 지인들과 함께 비밀 경찰과 맞섰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버질은 토크쇼 중간 중간 시청자들의 전화를 받아서 의견을 듣는다. 그런데 마네스쿠 교수는 그때 술집에서 취해있었고 방송에서 하는 말들은 거짓말이라는 전화가 이어진다. 과연 교수의 말대로 16년 전 그날, 바슬루이 광장에서 혁명의 움직임이 있었을까? 아니면 몇몇 사람들의 증언대로 광장은 비어있었고, 교수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일까...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은 루마니아 뉴웨이브(Romanian New Wave)의 대표 주자로 자신의 영화들에서 차우셰스쿠 이후 루마니아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는 고향 바슬루이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 영화도 바슬루이를 배경으로 한다. 그는 'Police, Adjective(2009)'에서도 바슬루이의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경직된 루마니아 사회와 비효율적인 관료주의를 보여준다. 그가 고향에서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 가장 익숙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하게 찍기에 좋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의 각본은 감독이 고향에서 보았던 실제 TV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받아서 씌여졌다. 포름보이우는 작은 소도시를 배경으로 루마니아의 현실을 짜임새있고 치밀하게 직조해 나간다.

  과연 바슬루이에 진짜 혁명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렇다고 주장하는 마네스쿠 교수의 말은 연이은 시청자들의 전화 증언에 무너져 내린다. 교수가 맞서 싸웠다는 비밀 경찰은 전화를 걸어서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면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는 현재 자신이 백 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중소 기업의 수장이며, 당시 비밀 경찰국에서 회계사로 일했을 뿐이라며 강변한다. 이 장면에서 포름보이우는 루마니아 혁명의 씁쓸한 일면을 부각시킨다. 혁명으로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루마니아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었다. 차우셰스쿠 주변의 권력 엘리트들이 그대로 정권을 인수했으며, 말 그대로 '그 밥에 그 나물'인 기득권 세력들이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루마니아를 깊은 나락으로 밀어넣었다. 비밀 경찰에 몸담았던 회계사는 16년이 지난 시점에서 어엿한 기업체의 사장이 되었다. 토크쇼를 진행하던 버질은 그의 말에 쩔쩔매면서 교수를 몰아세운다.

  깊은 빡침을 느낀 마네스쿠 교수도 가만 있지 않는다. 진행자 버질에게 그때 넌 뭐하고 있었느냐고 반격한다. 버질은 자신의 개인 사업체나 다름없는 지역 방송국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교수의 말에 따르면, 16년 전에 버질은 공장 기계나 만지고 있었던 별 볼 일 없는 엔지니어였다. 교수는 그런 그가 혁명 당시 아무 것도 하지도 않았으면서 지금 시점에서 혁명이 있었네 마네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비꼰 것이다. 그 지점에서 포름보이우는 저널리즘에 대한 전문적 이해도 없는 장사꾼 같은 버질이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혁명 이후 루마니아 언론은 소수 언론 재벌에 의해 독점되면서 자정과 비판 능력을 상실했다. 이렇게 영화 속 토크쇼 촬영 장면은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가득하다. 화면은 기울어져 있고, 때로 흔들린다. 무슨 영화를 이렇게 엉터리로 촬영했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촬영 기사가 버질에게 삼각대(Tripod)가 고장났다고 하소연 한다.  

  잠자코 있던 피스코치 노인이 들려주던 그날의 기억은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들도 채워져 있다. 나는 영화 속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본 1987년 6월 항쟁을 떠올렸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여느 때처럼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커다란 함성이 들리길래,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다 보니 근처 도로를 시위대가 가득 메우고 크게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내가 느끼기로는 '저러다 세상 뒤집어 지겠네'가 아니라 '뭔가를 하고 있구나' 정도였다. 그리고 얼마 후, 뉴스에서 직선제 선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시위의 열기는 금새 가라앉았고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그 항쟁이 미완의, 좌절된 혁명임을 증명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정한 변혁을 바랬다기 보다는, 현실의 안정에 더 큰 무게추를 두었다.

  포름보이우 감독이 들려주는 혁명 이후의 루마니아 사회는 암울함과 답답함으로 채워져 있다. 결코 회복하지 못한 경제 침체와 청산되지 않은 독재 권력의 유산은 오늘날 루마니아가 당면하고 있는 크나큰 어려움이기도 하다.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는 개인의 미시사적 기억을 통해 과거의 역사로서 혁명의 의미, 그것이 현재에 드리운 기나긴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 관객들은 단지 '루마니아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사회적 격변의 시기도 함께 성찰해 보게 된다.   



*사진 출처: filmlinc.org



*다음 글은 수요일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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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 소련의 붕괴와 해체 과정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일종의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일련의 개혁 개방 정책은 서서히 침몰해가고 있었던 소련을 구하기 위한 응급 처방이었다. 그러나 성급하게 추진된 설익은 정책들은 오히려 소련의 침몰을 가속화시킨다. 카렌 샤크나자로프(Karen Shakhnazarov) 감독의 1986년작 '메신저 보이(Courier)'는 고르바초프 집권 시기 소련 사회가 겪었던 갈등과 혼란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원작은 감독 자신이 1982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로,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스탈린의 철권 통치를 이상으로 생각했던 브레즈네프가 사망한 해가 1982년, 뒤를 이은 안드로포프 시절에도 소련은 철의 장막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다. 1985년, 마침내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이 되고서야 소련은 장막 바깥의 세상을 향해 문을 연다. '메신저 보이'는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

  영화는 이혼 법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반은 부모의 이혼 법정 한 구석에 앉아있다.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난 이반의 아버지는 이혼 후 아프리카로 연구를 위해 떠난다. 엄마와 함께 남겨진 이반은 대학에 가지 않고, 출판사의 메신저 보이로 취직한다. 엄마가 자신을 걱정하며 잔소리를 하자, 아빠가 그래서 엄마를 떠난 거라고 독설을 퍼붓고는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신문지를 잔뜩 가져와서 자신의 방에서 불을 붙인다. 골때리는 이반의 기행은 계속 이어진다. 출판사에 적어낸 허황된 이력서에는 자신의 집안을 봉건 시대 귀족으로 소개한다. 그런가 하면, 교수 집에 전달해야할 원고를 3시간이나 늦게 갖다주고는 배가 고프니 먹을 것 좀 달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인생의 목표가 뭐냐하면 말이죠, 많은 봉급, 자동차, 크고 멋진 다챠(dacha, 러시아의 시골 별장), 그리고 시내 중심가의 아파트를 갖고 싶군요."

  이반의 뻔뻔스러움에 기가 막힌 쿠즈네초프 교수는 '자네 꿈이 뭔가'를 묻고는 그런 대답을 듣는다.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살려거든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지."

  이반에게 교수는 '요즘 애들은 노오력이 부족해'라고 훈계하는 꼰대일 뿐이다. 쿠즈네초프 교수는 지인들을 초대한 식사 자리에서 젊은 애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의 지인은 속썩이는 아들에 대해 성토한다. 영화에서 이러한 세대 갈등은 매우 중요한 이야기의 축으로 자리한다. 미래에 대한 별다른 희망도 꿈도 없이 표류하는 이반의 모습은 기성 세대에게는 나태한 낙오자로 인식된다.


  이런 이반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친구는 바진인데, 바진은 가난한 하층민 계층으로 하는 일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운다. 바진과 그 주변 친구들은 당시 하층민 청소년들의 또래 문화 활동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낮에 공터에서 미국 음악을 틀어놓고 브레이크 댄스를 연습하고, 저녁이면 댄스 배틀을 벌인다. 영화에는 다양한 음악들이 사용되는데, 신디사이저를 사용한 전자 음악을 비롯해 스콜피온스의 노래와 미국의 팝송들까지 흘러나온다. 이는 고르바초프 시대의 서구 문화에 대한 관용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반의 똘끼어린 남다른 모습에 쿠즈네초프 교수의 대학생 딸 카챠는 호감을 느낀다. 둘은 곧 친해지지만, 카챠와 이반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사이에 존재하는 계급적 차이를 인식하게 된다. 이반은 카챠 친구의 생일파티에 갔다가 부유한 계층의 일상을 엿보고는 거리감을 느낀다. 기분이 상한 이반은 그 집에서 값비싼 프랑스 향수를 들이마시는 객기를 부린다. 이러한 장면들은 당시 소련 사회에서 세대 갈등과 함께 기존에 존재하던 계층간의 갈등이 점차적으로 심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성 세대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 그들에게 더이상 사회주의의 이념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밀려드는 서구 문화와 자본주의의 파고 속에서 그들은 공산주의 국가의 건실한 노동자를 꿈꾸지 않는다. 그런데 젊은이들 자신도 스스로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이반의 상상과 꿈 속에서 나타나는 아프리카의 사막과 원주민의 모습은 무작정 도피하고 싶은 이반의 현실인식을 보여준다.

  "넌 꿈이 뭐냐?"
  "코트 하나 갖는 거. 이제 곧 겨울이 오잖아. 작년 겨울에 재킷 하나 가지고 버티다 감기 걸렸거든."
 
  영화의 마지막, 바진과 함께 공터에 앉아있던 이반은 자신의 코트를 벗어서 바진에게 건네주며 이렇게 말한다.

  "자, 이 코트 입고 이제부터 다른 꿈을 꿔봐."

  그렇게 말하는 이반의 눈에 멀리서 집으로 돌아가는 젊은 군인이 보인다. 초췌한 군인의 얼굴은 흉터로 일그러져 있다. 이제 막 아프간에서 돌아온 군인의 모습은 이반이 살아갈지도 모르는 또 다른 미래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렇게 방황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끝마친다. 가끔 '좋은 영화'의 기준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람마다 다른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시대 정신'이 들어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이다. '메신저 보이'는 그런 면에서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고르바초프 시대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의 명암을 감지한다. 영화는 그것이 향후 소련 사회에 미칠 파장까지도 예측하게 만든다. 샤크나자로프 감독은 자신이 서있는 시대의 정신을 영화라는 매체에 예언자적인 감수성으로 담아냈다.   



*사진 출처: ru.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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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따르면, 사도 세자는 '의대증(衣帶症)'이라는 병을 앓았다. 일종의 강박증으로 옷 입는 것을 고통스러워 했던 병이었다. 영국 하노버 왕가의 조지 3세도 정신 질환으로 고통을 받았다. 당시의 기록은 왕의 질병에 '광기(madness)'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을 꺼려했던 탓인지, 가계의 유전병인 '포르피린증(Porphyria)'의 다양한 증상 가운데 하나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연구자들은 조지 3세가 앓았다고 추정되는 병이 '포르피린증'인지도 불분명하며, 남겨진 기록으로 볼 때 기분 장애(mood disorder)의 일종인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앓았을 거라고 본다. 조지 3세는 쉴 새 없이 떠들어 대고 말을 멈추지 못했으며, 흥분한 상태로 궁정을 질주하거나 돌아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 행동들은 '조증(躁症)'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간주된다.

  앨렌 베넷이 쓴 희곡 'The Madness of George III'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조지 왕의 광기(1994)'는 조지 3세의 재위 후반기에 발병한 광기와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왕의 광기가 발병한 이후, 그 과정에서 벌어진 왕세자와의 권력 다툼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조지 3세의 기나긴 재위 기간 동안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가던 왕세자는 부친의 병을 기회로 삼아 왕의 자리를 넘보려고 한다. 물론 사치스럽고 방탕한 왕세자 혼자만의 힘으로는 무리다. 의회는 조지 3세의 정치적 동반자인 피트 수상이 잡고 있다. 비밀스럽게 의회의 지지자를 모은 왕세자는 차근차근 계획을 진행시켜나간다. 한편 피트 수상과 샬럿 왕비는 왕의 치료를 위해서 의사 윌리스를 초빙해 온다. 과연 윌리스는 조지 왕의 광기를 잠재울 수 있을까?
 
  언젠가 EBS의 세계 테마 기행 영국 편을 보는데, 조지 왕이 말년에 정신질환으로 연금 상태로 지냈던 별궁이 나왔다. 궁전이라고는 하나, 생각보다 비좁고 단촐한 일반 주택처럼 보였다. 응접실은 탁자 하나와 의자 몇 개가 전부였는데, 저런 곳에 갇혀있으면 없던 병도 생길 것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영화에서 미쳐버린 조지 왕이 유폐된 별궁은 그것과는 달리 상당히 넓다. 아무튼 초빙된 명의 윌리스는 자신의 조수들과 함께 왕의 '치료'를 시작한다. 그런데, 말이 치료이지 당시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란 처참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잭 니콜슨이 주연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에서 묘사된 정신 병동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영화의 원작 소설(1963) 작가 켄 케이시는 당시 미국에서 만연하던 정신 병동의 비윤리적인 치료와 억압적 행태에 대해 비판했고, 그것은 정신 의학계에 반성과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20세기에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 1788년 무렵에 윌리스가 쓴 방법은 학대에 가까운 감금이었다. 왕이라서 얻어맞지 않았다 뿐이지, 당시 광인들은 폐쇄된 곳에서 폭력과 감금으로 죽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영화는 18세기 영국의 정신 질환에 대한 이해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윌리스가 나무로 된 구속(拘束) 의자에 조지 3세를 강제로 앉히고 묶는 장면에서 헨델의 '대사제 자독(Zadok the priest)'이 장엄하게 흐른다. 영국 왕실의 대관식 음악이 그 장면에서 쓰인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은유라 오히려 별 다른 감흥이 없다. 고증에 따라 재현된 의상, 영화 전편을 흐르는 바로크 음악들, 촬영 장소로 쓰인 영국의 멋진 궁전들, '조지 왕의 광기'는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조지 3세를 연기한 나이젤 호손의 열연은 큰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자신을 사로잡은 광기로 고통받는 왕의 모습을 호손은 처절하고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영화는 조지 3세가 광증에서 벗어나 다시 권좌를 회복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의 병은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생의 마지막 10년을 유폐 상태에서 지내다 삶을 마감했다.

  '조지 왕의 광기'는 왕실과 의회 사이의 권력 암투도 실감나게 그려져 있지만, 나는 이 영화를 정치 드라마가 아닌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 흥미롭게 보았다. 헬렌 미렌이 연기한 샬럿 왕비는 미쳐버린 남편에 대한 슬픔과 연민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왕비는 왕이 끔찍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과정에 개입할 수 없으며 전적으로 무기력하게 기다릴 뿐이다. 영화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 정신질환을 앓게 될 때 주변 사람들이 겪는 정서적 어려움과 현실적 문제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광기'는 왕이라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은 최고 권력자인 왕에게는 권력의 상실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조지 왕의 광기'는 왕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홀로 견뎌야만 하는 어둡고 긴 고통의 시간과 그 가족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사진 출처: pics.alphacod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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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인대회 출신인 여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왕자님 같은 남자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짧은 기간 동안 연애를 했고, 여자는 결혼을 꿈꾸었다. 그런데 몰몬교도인 남자는 선교를 위해 영국 런던으로 파송된다. 여자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다. 영국으로 남자를 찾아 떠났다. 여자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경호원까지 채용한 여자는 남자를 찾아내 납치한다. 데본 지역의 시골 오두막집으로 남자를 데려간 여자는 3일 동안 남자를 감금하고 함께 지낸다. 여자는 런던에서 진짜 결혼식을 올릴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런던으로 돌아온 남자는 경찰서로 달려간다. 그리고 자신이 납치와 감금, 강간을 당했다고 여자를 고발했다.

  에롤 모리스의 2010년작 다큐 '타블로이드(Tabloid)'는 1977년에 영국과 미국을 뒤흔들었던 희대의 사건을 다룬다. 사건의 주인공인 여자는 미인대회 출신의 조이스 맥키니, 자신이 사랑한 남자 커크 앤더슨의 고발로 맥키니는 정식 재판까지 3개월을 감옥에서 지낸다. 보석으로 겨우 풀려나서는 캐나다를 경유해 미국으로 도망쳤다. 맥키니는 재판 전 청문회에서 앤더슨과 보낸 3일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했다. 맥키니 사건은 황색 언론에게 둘도 없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온갖 선정적이고 저질스러운 내용의 기사가 신문에 넘쳐났다. 미국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하이에나 언론의 사냥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다큐는 맥키니의 인터뷰, 당시 사건을 보도한 영국 타블로이드와 TV 영상 자료들, 맥키니의 주변 인물들과 전직 몰몬 선교사의 증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커크 앤더슨은 인터뷰를 거부했기 때문에 관객은 맥키니가 일방적으로 진술하는 인터뷰 내용으로 사건을 들여다 보게 된다. 이 여자의 말솜씨는 정말이지 대단해서 배우, 성우, 만담가를 뺨친다. 맥키니는 여자가 남자를 강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며 합의하에 이루어진 관계라고 강변한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이에 대해 전직 몰몬교 선교사였던 이는 하나의 단서를 던져준다. 맥키니가 주장한 합의에 의한 관계, 앤더슨이 고발한 강압에 의한 범죄, 아마도 그 둘의 이야기가 섞어진 중간 지점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한다.

  이미 맥키니 기사로 돈맛을 본 영국의 신문들은 미국의 맥키니를 취재하기 위해 '특파원'을 파견한다. 데일리 익스프레스(Daily Express)가 맥키니의 협조하에 이벤트와 설정 사진과 같이 흥미롭고 다채로운 뉴스를 쏟아냈다면, 데일리 미러(Daily Mirror)는 맥키니의 과거를 파헤치며 악의적이고 선정적인 합성 사진으로 맞불을 놓았다. 신문의 전면 2페이지가 맥키니의 누드 사진과 불미스러운 과거(맥키니는 영국행 여비를 모으려고 콜걸로 일했다) 기사로 도배되었다. 맥키니는 절망했고, 거의 정신이 나가서 자살 시도까지 했다.

  에롤 모리스는 황색 언론의 추악한 보도 행태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당시 기사 자료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의 발달 덕분이었다. 마이크로 필름으로 저장된 기사들은 자료 복사 신청을 하고 돈만 부치면 대서양을 건너 모리스에게 배달되었다. 관객들은 너절하고 입에 담기도 민망한 기사 제목과 사진들로 도배된 당시 신문들과 시간을 뛰어넘어 마주한다. 그 기사들은 한 여성에 대한 인격적 모독과 사회적 죽음을 선고하는 부고장 같다. 물론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감독인 에롤 모리스조차도 맥키니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나중에 토로했다. '타블로이드'는 실체적 진실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관객들 또한 감독이 맥키니에 대해 느끼는 혼란스러움과 불신을 공유할 수 밖에 없다. 과장과 허풍이 섞인 이 여자의 진술은 진실과 허구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다큐의 후반부는 언론에 의해 수난을 겪은 여성이 중년에 이른 현재 이야기를 담는다. 외딴 근교의 거주지에서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지낸다는 맥키니는 다시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자신이 아끼던 개가 죽자, 맥키니는 한국의 유전 공학 사업체에 개 복제를 의뢰한다. 타블로이드는 맥키니를 잊지 않고 있었다. 여자는 가명을 쓰며 부인했으나, 결국 정체가 드러난다. 다큐의 마지막, 여자는 누군가 자신의 집에 침입하려 한다면서 개들만이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쓸쓸히 말한다. 과연 맥키니가 이런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 때문일까? 이 괴상하고 특이한 한 인물의 연대기를 에롤 모리스는 균형감각을 가지고 찬찬히 펼쳐 보여준다.

  '타블로이드'가 개봉된 뒤에 맥키니는 2011년과 2016년, 두 번에 걸쳐서 에롤 모리스를 고소했다. 다큐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모리스는 '가늘고 푸른 선(The Thin Blue Line, 1988)'에서 살인범으로 몰린 남자가 무죄 판결을 받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그런데 남자는 모리스가 다큐로 부당한 이득을 취득했다며 소송을 냈다(그는 제작사와 합의해서 돈을 뜯어갔다). 독특한 소재와 흥미로운 인물들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스트의 숙명인가? 어쨌든 맥키니의 소송은 모두 패소했다. 다큐 제작자가 아무리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건과 인물에 접근한다고 해도,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에롤 모리스는 실제적으로 입증한다. 지리한 소송으로 에롤 모리스를 타블로이드에 오르내리게 만들었던 맥키니는 노숙자로 매우 곤궁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사진 출처: movieste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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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기억 속에 '남쪽'이란 영화는 페르난도 솔라나스(Fernando E. Solanas)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역시 제목이 '남쪽'으로 번역되는 또 다른 영화가 있다. 스페인의 감독 빅토르 에리세(Víctor Erice)는 1983년에 'El Sur'를 만들었다. 페르난도 솔라나스의 영화는 정관사 el이 없는 'Sur(1988)'로 표기된다. 빅토르 에리세는 프랑코 정권의 폭압적 지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벌집의 정령(El espíritu de la colmena, 1973)'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현대 스페인 역사는 '프랑코'란 이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프랑코는 1975년에 사망했지만, 스페인 정부가 국립 묘역인 전몰자의 계곡에서 그의 유해를 이장시킨 것은 2019년이었다. 독재자의 그림자는 죽어서도 스페인을 암묵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빅토르 에리세의 '남쪽'에서도 프랑코의 어두운 그림자가 감지된다.

  영화는 어린 소녀 에스트렐라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별'이란 뜻의 이름을 지닌 소녀는 별 모양의 반지를 늘 끼고 있다. 에스트렐라는 의사인 아버지 아구스틴, 평범한 주부인 엄마 줄리아와 함께 스페인 북부에서 살고 있다. 소녀에게 아버지는 신비한 비밀과 영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비춰진다. 진자로 수맥을 알아내 마을 사람들이 우물을 파도록 돕는 아버지는 에스트렐라에게 흠모의 대상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을 대부분 다락방에서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에 어린 딸은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엄마는 아버지가 프랑코 충성파였던 할아버지와 싸우고 '남쪽'의 고향집을 떠났다고 일러준다. 어느 날, 에스트렐라는 아버지의 다락방 서랍에서 '아이린 리오스'라고 써진 종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얼마 후, 시내 영화관 앞을 지나다 본 영화 포스터에 그 이름이 적혀있다. 소녀는 영화관에서 나오는 아버지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아가씨가 된 에스트렐라는 어렵게 아버지에게 여배우와의 관계를 묻지만, 아버지는 답해주지 않는다. 예기치 않았던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에스트렐라는 아버지가 말해주지 않은 과거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 '남쪽'으로 떠난다.

  놀랍고 허망하게도,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아니, 무슨 영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중간에서 그렇게 끝나는가? 그렇다. 이 영화는 미완성작이나 다름없다. 에스트렐라가 남쪽으로 떠난 이후의 이야기가 영화의 후반부를 채우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제작자는 도중에 제작 중단을 통보했고, 빅토르 에리세는 그것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표면상의 이유는 '제작비 부족'이었지만, 에리세는 다른 모종의 이유가 있을 거라며 이후 여러 번에 걸쳐서 불만을 토로했다. 영화의 원작은 에리세의 부인이 쓴 소설이었다. 굳이 소설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 언급하자면, 에스트렐라는 '남쪽'에서 이복 오빠를 만나게 된다. 여배우는 아버지의 과거 연인이었다. 아버지의 숨겨진 삶의 이야기는 결국 영화로 만들어질 수 없었다. 에리세는 이미 찍어놓은 전반부를 가지고 편집을 해서 '남쪽'으로 내놓았다.

  미완성작이 반드시 실패작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영화를 이야기 중심의 서사로 파악한다면, '남쪽'은 분명 불완전한 작품이다. 그러나 소녀 에스트렐라가 아버지의 비밀스런 과거와 조금씩 조우하면서 성장하는 과정 그 자체로도 이 영화의 서사는 충만하다. 무엇보다 사물 그대로의 색감을 온전히 살리면서 빛과 어두움을 대비시킨 촬영이 무척 빼어나다. 에스트렐라가 살고 있는 북쪽 마을의 풍경, 에스트렐라의 첫 영성체와 파티 장면을 비롯해 '남쪽'은 풍성한 회화적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이 영화가 절반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많은 이들에게 완전한 작품으로 여겨지는 데에는 그런 영화적 요소들 때문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영화가 말해주지 않은 나머지의 이야기들, 에스트렐라의 남쪽 여행과 아버지의 과거의 삶에 대한 이야기 없이도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남쪽'을 반드시 스페인 현대사와 연결지어서 해석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물론 에스트렐라의 아버지는 공화파로 프랑코 지지자인 할아버지와의 불화로 고향을 떠난 인물로 나온다. 그러나 영화는 에스트렐라와 아버지의 관계, 한 소녀의 '성장'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와 관계를 맺는 방식, 그것이 한 사람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한다. 어린 에스트렐라는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진다. 표현하기 보다는 속으로 감추고, 아버지와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인생에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어떤 비밀이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한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그의 삶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으로 그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 아닌 타인의 삶에는 말해지지 않은 것, 알지 못하는 접혀진 시간들이 존재한다. '남쪽'은 관계와 삶의 불완전성에 대해 넌즈시 일러준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남쪽'을 실패작이라고 느끼지 않는 데에는 영화가 담고 있는 그러한 인생의 진실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출처: criterionchann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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