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발터 벤야민 지음, 김남시 옮김 / 그린비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모스크바 일기”는 도시에 대한 벤야민의 관점과 생각을 알 수 있는 단초들을 제공하기는 해도 무엇보다 그것이 일기임을 고려할 때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더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의 대부분은 아샤 라시스라는 여인과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누구인가? 벤야민에게 사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이후 벤야민의 학문적 여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 아니던가?


  그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벤야민은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고, 아샤는 아이의 엄마였으며 동거하는 사람이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벤야민과 아샤, 아샤의 동거인 라이히, 이 세 사람이 만난다. 이쯤 되면 무슨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이 연상될 듯도 한데, 이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일상적이다. 그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사상적 입장을 공격하며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시쳇말로 ‘쿨’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아니면 그 시대 사람들의 교양이란 덕목이 그토록 내밀한 감정들을 표현하기 보다는 응시하고 성찰하게 만든 것일까? 솔직히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이들의 관계는 그리 잘 이해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일기에는 아샤를 비롯해 모스크바에서 만난 다양한 문화 예술인에 대한 단상, 모스크바라는 도시에 대한 관찰, 그곳에서의 예술적 체험도 기록되어있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은 부록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기는 벤야민이 아샤 라시스라는 여인을 통해서 본 모스크바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 두 사람이 그곳에서 함께 한 순간에 대한 정밀한 기록인 것이다.


  누군가를 통해서만 어떤 장소, 도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벤야민에게 아샤와 모스크바라는 도시는 바로 그러한 것이었으리라. 번역에 있어서 다소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더러 발견되지만, 이십세기의 뛰어난 문예 이론가였던 벤야민의 인간적 면모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는 즐거운 책읽기의 경험을 제공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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