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 당시에 시위 참가자들이 만들어낸 구호 가운데에는 “상상력에게 권력을”이라는 것도 있었다. “안달루시아의 개”는 우리의 현실인식을 부정하는 지점, 즉 상상력이 유일한 권력을 획득하게 되는 무의식의 세계에 관한 영화이다. 여자의 눈을 예리하게 가르는 그 유명한 장면을 보라. 이것이 보여주는 의미는 너무나 분명해서 달리 무슨 말이 필요 없다. 새로운 세계를 보기위한 눈을 뜨라는 것이다.

 

  브뉘엘은 우리가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의 제도와 권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을 전복시킬 힘에 대해 모색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종교, 계급, 언어, 시공간에 대한 감각 등과 같이 현실적 토대를 이루는 요소들이 조롱과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다. 브뉘엘은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 와서 보시오, 당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과연 그것은 진짜일까?”

 

  영화는 그 질문에 분명히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 대답이야말로 이 영화가 현실 비판을 넘어서서 체제 전복적인 메시지까지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것을 꿈꾸는 인간은 권력을 지닌 집단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인 존재일 수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에 대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때에라야 우리는 진정한 인식과 이해의 눈을 뜨게 된다. 진정한 변혁의 시작은 거기에서부터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브뉘엘은 속삭인다. 문을 열면 바로 해변이 펼쳐지는 놀라운 세계로 오라고. 그곳에서 상상력의 권력을 마음껏 획득하라고. 상상하는 순간 모든 것이 실재하게 되는 세계는 얼마나 멋진가! 이 세계를 보기 위해 우리는 단지 "새로운 눈"을 뜨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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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5-10-09 14:03   좋아요 0 | URL
무라카미 류의 <69>라는 소설에도 이 구호가 인용됐어요.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한 말이더라구요.^^;; 요즘도 가끔 이 말에 대해 생각해 본답니다. 이 영화 꼭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