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무”에는 주인공 소무가 주점의 아가씨와 거리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시퀀스가 있다. 짓다 말았거나, 마치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건물 안으로 소무는 잠깐동안 들어갔다가 나온다. 내게는 그것이 마치 급격한 개발이 진행 중인 중국의 모습에 대한 은유처럼 생각되었다. “소무”에는 그런 식의 공간적 기호가 곳곳에 포진해있다. 영화는 소도시와 그 외곽의 시골 풍경을 마치 다큐를 찍듯 건조한 화면에 담아낸다. “소무”에 나오는 모든 공간은 전근대성의 의미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친구가 경영하는 잡화점이나, 약국, 미용실, 주점, 소무의 부모님 집을 보라. 이것은 마치 70년대 개발 독재가 횡행하던 한국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이에 반해 "몰완몰료"가 보여주는 도시 공간의 이미지는 서구적이며 세련된 것이다. 물론 북경이라는 공간은 자금성으로 대표되는 역사적 의미가 강한 곳이지만 이러한 옛 건축물들이 몰완몰료에서는 하나의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초반부의 관광객이 등장하는 장면이라던가, 갈우가 사장을 협박해서 돈을 갖고 나오게 하는 장소 정도인 것이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강조되고 있는 공간은 마치 멋진 모델하우스를 연상하게 하는 오천련의 집을 비롯해, 병원, 경찰서 등과 같은 도시 기능의 핵심을 담당하는 곳이다. 그러한 장소들은 "소무"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낡고 구질구질한 소도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근대화된, 또는 근대화를 지향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대변하는 기표들로 작동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 또한 그 기표들을 풍부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몰완몰료”에서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나오는 음악은 빠르고 비트가 강한 랩 음악이고, "소무"에서는 비교적 느린 템포의 중국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영화는 마치 작심을 하고 북경 시내를 보여주기로 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돈을 갖고 나오기로 한 사장과의 약속은 계속 틀어지고, 갈우와 오천련은 하릴없이 차를 타고 북경의 이곳저곳을 쏘다닌다. 카메라는 그들의 차를 따라가면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마치 북경 시내 곳곳을 보여주는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장면들은 영화가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북경의 도시적 이미지, 또는 중국 근대화의 상징적 의미로서의 북경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두 영화가 보여주는 중국의 모습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현실에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각각의 영화가 제작된 시기가 “소무” 97년, “몰완몰료”는 99년이라는 점은 두 영화가 각각 담아내고 있는 공간적 의미를 단순히 중국의 과거와 현재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두 영화는 근대와 전근대, 개발과 비개발, 도시와 농촌, 새것과 옛것, 실리와 명분이 혼재하는 현대 중국의 초상과 맞닿아 있다.

 

  공간은 단지 배경으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규제하고 변화시킨다. 같은 경찰서라 하더라도 “소무”에 나오는 경찰과 “몰완몰료”에 나오는 경찰의 일처리 방식은 다르다. 전자는 공포와 위압감을 주는 모습으로, 후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이것은 파기하고 도태시켜야할 전근대성에는 낡고 오래된 건물뿐 만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무”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 제거해야할 공공의 적이며 사회악으로 지목된 소무는 경찰에 연행된다. 경찰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소무는 수갑이 채워진 채로 방치되고, 곧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된다. 나는 소무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서 증오보다는 깊게 드리워진 수치심을 보았다. 그것은 비단 소매치기 잡범인 소무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소무로 대변되는 그들 자신의 빈곤과 무기력, 부정부패와 미신, 물신적 욕망으로 채워진 자본주의적 심성이 온존하는 전근대적 공간과 생활방식에 대한 자조적 시선으로 읽힌다.  

 

  그에 반해 “몰완몰료”가 보여주는 결말은 급격한 근대화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도입이 가져다준 어두운 일면, 즉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가치의 상실에 대한 중국인들의 열렬한 희구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누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려는 갈우, 그의 곁에는 아름답고 마음씨 착한 오천련이 자리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결말은 지금의 중국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것이기에 영화 속에서나 재현된 것일지도 모른다. “소무”에서 소무가 잠시나마 마음을 주었던 주점의 아가씨가 돈 많은 남자를 만나 떠나버리는 것이 현실이라면, “몰완몰료”의 결말은 매우 이상적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작위적인 것이다.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조만간 중국에서 “소무”에서 보았던 정체되고 낙후된 소도시들의 모습은 빠르게 변할 것이다. 중국인들이 열렬히 지지해마지 않는 자본주의는 그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여줄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몰완몰료”가 보여주는 세련된 도시적 공간에서 도덕적인 가치를 지키며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중국인들의 바람과는 달리 그들이 잃어버려야할 것들이 너무 많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영화는 그들의 상상 속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지금보다 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찾아 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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