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취향이라는 것은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사부의 영화 “포스트맨 블루스”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나에게 이 감독의 세계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잘려진 손가락이 영화에서 수시로 나온다거나, 킬러와 야쿠자, 살인 장면의 반복적인 노출이 그렇게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 세계를 조금씩이나마 탐험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배우 “츠츠미 신이치” 덕분이다.

  츠츠미 신이치는 사부의 영화 “하드 럭 히어로(2003)”와 “행복의 종(2002)”을 제외한 전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감독과 배우가 지속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서로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츠츠미 신이치는 사부의 영화세계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자이자 후원자로 자신의 연기 영역 뿐만 아니라 사부 감독의 영화적 역량을 극대화시키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그를 사부의 페르소나라고 부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된 “탄환 러너(1996)”는 사부의 이름을 전세계 영화계에 알리는 신호탄 같은 작품이었다.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세 명의 인물들은 쫓고 쫓기면서 달리는 과정 속에 각자의 욕망을 응시하고 스스로를 성찰하게 된다. 제목 그대로 이 영화의 대부분은 달리는 신이 차지하고 있다. 속도감 넘치는 영화적 전개로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두는 사부 영화의 특징은 1997년작 “포스트맨 블루스”에서도 빛난다. 

 

  인간의 육체가 지닌 능력을 극단으로 밀어붙여서 시험이라도 하듯 이 영화에서 츠츠미 신이치는 자전거와 하나가 되어 달리고 또 달린다. 평범한 우편 배달부가 예기치 못한 우연한 사건으로 희대의 살인범으로 몰려서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거기에 사부만의 이야기 작법과 유머 감각이 들어가면서 영화는 독창성과 힘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렇듯 사소한 사건이 오해를 낳고, 그 오해가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동인이 되는 이야기 구조는 “포스트맨 블루스” 뿐만 아니라 사부의 또 다른 영화 “먼데이(1999)”와 “드라이브(2001)”에서도 볼 수 있다. 

 

 

  “먼데이”와 “드라이브”의 주인공들은 별다른 희망이나 기대도 없이 매일매일의 익숙해진 일상에 지쳐있는 소시민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런 그들에게 어느날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에서 인물들은 이전과는 다른 극적인 정체성의 변화를 겪는다. “먼데이”의 주인공은 평범한 회사원에서 나중에는 인류의 진정한 평화를 역설하며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려는 인물로 변화하는가 하면, “드라이브”의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은행 강도들에게 인질로 잡히는 시련을 겪는 동안 자신의 나약함과 직면하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그의 또 다른 영화인 “언럭키 몽키(1998)”는 사부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단지 인간성에 관한 탐구뿐만이 아니라 좀 더 보편적인 사회 문제까지 포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꾼에서 더 나아가 설득력을 갖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내는 영화작가로서의 사부의 면모는 그의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예를 들면 “언럭키 몽키”에서 츠츠미 신이치가 분한 은행 강도는 공청회장에서 자본주의의 추악한 일면과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일장의 연설을 하고, “드라이브”에서 테라지마 스스무가 비판적 가사의 랩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장면이 그것이다. 

 

  "행복의 종(2002)”은 전형적인 사부 영화의 틀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츠츠미 신이치 대신 역시 사부 영화에서 자주 얼굴을 보이는 배우 테라지마 스스무를 주연으로 한 이 영화는 공장폐쇄로 실직한 노동자가 삶의 참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이전의 사부 영화들을 보아온 이들이라면 이 영화가 과연 사부가 만든 것인지 의문을 품게 만들 정도로 “행복의 종”은 평탄한 이야기 전개와 다소 밋밋한 결말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 작품은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지칠 줄 모르고 달려온 사부가 자신을 돌아보는 중간 휴식 지점의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003년에 인기 절정의 아이돌 그룹 V6의 뮤직비디오 의뢰를 받고서 만든 영화 “하드 럭 히어로”는 이제 사부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그가 앞으로 들고 나올 영화가 어떤 모습일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사부만의 독창성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사부의 영화에 열광하는 이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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