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의 영화들을 볼 때마다 새삼 느끼는 것은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거의 모든 것이 가슴을 통하여 오기 때문이다. "러브 레터(1995)"의 눈부신 설원에서 안부를 묻는 여주인공의 애절한 목소리라던가, "4월 이야기(1998)"에 나오는 비오는 날의 빨간색 우산은 어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다. 최근작 "하나와 앨리스(2004)"를 보라. 감독 자신이 작곡한 영화 음악은 러닝타임 내내 관객의 귀를 떠나지 않는다. 그는 영상과 소리를 다루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감독임에는 틀림이 없는듯 하다.

  이런 그가 1996년에 만든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영화가 다루는 소재나 분위기가 과연 이와이가 만든 것인가 하는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할지도 모른다. 깔끔하게 정제된 화면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피가 튀는 잔혹한 장면과 더러운 뒷골목의 이곳저곳을 누비는 카메라의 시선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새삼 놀라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인다. 그리코가 엔타운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라던가(이 역을 맡은 여배우 차라는 실제로 가수이며 배우 아사노 타다노부의 아내이다), 정체불명의 요원 란(와타베 아츠로 분)과 관련된 액션 장면들은 이와이의 영상을 다루는 솜씨를 보여준다. 화면은 쉴새없이 지나가고 관객은 여러명의 인물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숨이 찰 지경이다. 그러니 무슨 생각을 오래 할 수 있겠는가. 그저 보고 느낄 따름이다. 거기에다 일어와 영어, 중국어가 섞인 대사는 혼란스럽게 들린다.

  두시간 반에 가까운 러닝 타임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이와이 슌지가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매우 충실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제목이 의미하는 "나비"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꿈, 더럽고 비참하고 불공평한 세상을 살아나가게 만드는 아주 작은 희망 같은 것을 의미하지만, 그 나비는 그리코와 아게하의 가슴에 새겨진 날지 못하는 문신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현실은 절망스러운 것이다. 어쩌면 그 현실을 과도한 희망과 꿈으로써 넘어서려고 하는 시도는 무위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리코와 함께 행복하기를 꿈꾸었던 페이홍이 "마이웨이"를 부르며 결국 감옥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장면과 그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친구들이 돈다발을 불 속에 모두 넣어버리는 장면은 비극을 넘어서 허무에 가깝다. 

  꿈을 꿔, 꿈을 꾸라니까, 하고 이와이 슌지는 자신의 영화들 속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 같다. 현실이 괴롭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그도 분명 알고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극복하는 방식은 바로 환상을 통해서이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얼핏 보기에는 좌절된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그 밑바닥에 깔린 것은 환상성이다. 단지 현실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꿈과 환상의 힘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와이 슌지를 단순히 아름답고 감각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쉽게 단정할 수 없게 만드는 근거이기도 하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이야기 얼개가 다소 빈약한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여러면에서 볼 거리가 많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코 역으로 나온 차라의 노래와 독특한 매력, 이제는 중년에 접어든 란 역의 와타베 아츠로의 고운 얼굴(!)과 명료한 영어발음을 들을 수 있다(그가 이처럼 분명한 대사처리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의 작품들에서 배역의 차이가 있기는 해도 점차적으로 발음이 불분명하게 뭉그러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밖에도 이와이 슌지가 생각한 가상의 세계인 엔타운의 모습들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최근작 "하나와 앨리스"에서도 이와이 슌지는 여전히 자신만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새로운 느낌들을 앞으로 어떤 작품을 통해 보여줄지 기대를 품게 만드는 감독, 그는 바로 이와이 월드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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