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음 

  평범한 여대생 나카무라 유미(시바사키 코우 분)에게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연달아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더군다나 죽은 이들은 죽기전 자신의 음성이 담긴 메시지를 받는데 그 메시지를 보내온 시각은 현재가 아닌 미래. 메시지를 보낸 시각에 그들이 어김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을 알게된 유미는 자신마저 죽음의 메시지를 받게 되자 공포에 사로잡히고, 참혹하게 죽은 여동생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알아내려는 장례업자 야마시타 히로(츠츠미 신이치 분)와 함께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유미와 야마시타는 마침내 이 사건의 배후에는 한 어린아이의 원혼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 여동생과 살고 있었던 미미코는 여동생 나나코에게 칼로 상처를 입힌 후 사탕을 주고 동생을 보살핌으로써 일하는 어머니의 관심을 끌어내고자 하나 여러번 그런일이 반복되자 어머니에게 들키고 만다. 상처입은 나나코를 병원에 데려가려는 순간에 미미코는 천식 발작을 하지만 어머니는 매몰차게 미미코를 못본채 떠나버리자 결국 미미코는 고통 속에 죽게 되었고 죽은 미미코의 원혼이 어머니는 물론 어머니의 핸드폰에 담긴 전화번호의 인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대강의 얼개이다. 

  이런 줄거리라면 참 심심한 공포영화가 아닐 수 없는데 미이케 다카시의 저력은 역시 관객의 기대와는 배반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우여곡절 끝에 착신 메시지의 예고된 죽음의 시각을 넘기고 집으로 돌아온 유미의 방에서 갑자기 시계가 거꾸로 돌면서 죽음의 시각을 향해 간다. 왜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가? 어린 시절 유미에게는 어머니에게 심한 육체적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고 그것이 심한 심리적 외상으로 남아 어른이 되어서도 고통스러워했던 유미는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어머니와 대면하게 되고 그 당시의 공포와 두려움을 다시 느낀다. 학대당하는 입장이었던 유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주변의 관심과 배려였음에도 그것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의 고통과 분노가 마침내 가해자(동생 나나코에게 상해를 입힘)이면서 피해자(어머니의 관심과 배려를 어리고 연약한 동생에게 빼앗김)인 미미코의 원혼과 만나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모든 일은 인간의 연약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심과 배려,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을 때 이 채워지지 않은 욕망은 파괴와 극단의 참혹한 결말을 향해 달려나가기도 한다. 미미코의 원혼이 저지른 살인은 죽어서도 미처 채워지지 못한 사랑과 관심을 끌어내려는 울부짖음과 다르지 않다. 

  <착신아리>에서 미이케 다카시는 가장 친밀한 관계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전제로 하는 혈연의 가족이 실은 학대의 폭력과 공포가 쉽게 일상화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일상화된 학대의 고리가 단절되지 않고 세대에 세대를 거쳐 전이될 뿐 아니라 자신과 관계없는 타인의 삶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착신아리>를 단순한 공포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미미코의 혼에 빙의된 유미는 자신을 구하러온 야마시타를 칼로 찌른다. 야마시타는 혼수상태에서 미미코에 의해 죽임을 당한 여동생 리스코를 만나는데 리스코는 기이한 말을 남긴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의 하늘이 있다고...

  이 영화에는 서로 다른 자신만의 하늘을 가진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유미를 학대했던 어머니,  그 학대를 받았던 유미, 동생을 학대했던 미미코, 자신을 학대한 언니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믿는 동생 나나코, 동생이 겪었던 죽음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는 야마시타... 그들 각자가 가진 하늘은 다른 이의 눈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사람들이 하나의 하늘 아래서 사랑과 평화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야마시타는 자신에게 칼을 숨긴채 다가서는 유미(미미코의 혼에 빙의된)가 건네주는 사탕을 맛있게 받아 먹는다. 그가 유미와 미미코를 보살핌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바라는 파괴적인 사랑과 배려의 방식에 동의함으로써 그들은 비로소 하나의 하늘 아래서 평화를 얻게 되는 것이다. 미이케 다카시는 이 고통스런 결말을 통해 인간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인간의 마음에 자리한 채워지지 못한 일그러진 사랑과 관심의 욕구임을 알려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