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기다림 - 바깥의 소설 23
샤를르 쥘리에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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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바깥의 소설이라는 테마로 발간된 샤를르 쥘리에의 소설집에는 가을 기다림, 마리아, 소용돌이 이 세편의 글들이 실려있다. 작가가 오늘날의 프랑스 문단의 지배적인 경향과는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추구해왔기 있기 때문에 "바깥"에 있게된 것인지는 모르나, 어떤이에게는 그가 바깥에서 쓰는 글들이 반갑고 그리웠을 것이다. 그의 글은 카레르나 노통의 문체처럼 감각적이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읽는 이가 무언가 본질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다면 충분히 마음안에서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길을 찾는 과정의 한 방법으로써 글쓰기를 받아들인다는 작가의 태도는 독자에게 즐거움이나 신기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구도자의 수행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년전 화제가 되었던 노희경의 TV드라마 대사를 떠올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러했다. 사랑은 교통사고와 같은 것이라고. 사고가 젊은이 늙은이,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사랑도 그러하다고...  

  세편의 글에 나온 주인공들은 우연한 계기로 만난 아름답고 분별력 있는 여성들과 사랑에 빠지면서 이전까지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인생의 행복에 대한 갈망에 눈뜨기 시작한다. 이러한 설정 자체로만 보자면 통속 소설의 일부와 맞닿아 있다는 느낌도 들 수 있지만 작가의 역량이 두드러지는 것은 그러한 만남 이후에 주인공들의 내면을 탁월하게 그려내는 데에 있다. 인물들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교통사고와도 같은 사랑의 만남에 전적으로 환호하고 긍정하는 대신에 떨림과 두려움이 가득한 마음을 안게된다. 그 기나긴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거쳐 비로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되고 사랑과 행복을 향해 두팔을 벌리게 되는 것이다. 샤를르 쥘리에는 소설이라는 틀을 빌어서 가공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기실 작가의 살아온 이야기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독자로 하여금 품게 만들만큼 글 속에는 진정성이 흐르고 있다.

  최근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는 대개의 프랑스 작가들의 소설들이 난해하다거나 마음 깊이 와닿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 문학의 바깥에는 중심과는 또 다른 글쓰기와 작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책은 고요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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