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예사롭지 않다. 소녀시절 우연히 만난 화가가 건네준 열쇠를 돌려주기 위해 평생을 걸고 그를 찾아다니는 여배우의 이야기는 현실과 그가 주연한 영화 속 장면이 절묘하게 결합되어서 무엇이 진실이고 가공된 이야기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마치 실사 영화를 보는듯한 박진감 넘치는 화면과 빠른 이야기 전개는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잊게끔 한다. 감독이 "퍼펙트 블루"에서 보여주었던 현실과 환상 사이의 기묘한 줄타기, 영화와는 다른 애니메이션만의 독자성을 구현하려는 의지가 "천년 여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모든 점들은 결국 감독이 묻고자 하는 사랑의 실체에 다가가게 만든다. 여배우 치요코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의 실체란 사실 맹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단 한번의 만남이 일생을 걸고 추구하는 사랑이 될 수 있는지 누구나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랑이 있을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과연 사랑이란 감정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치요코는 자신의 사랑을 찾기 위해 자신이 주연한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모든 것, 즉 목숨까지도 거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주 여행을 홀로 떠나는 장면을 연기하는 치요코는 사랑을 찾아 우주 끝까지라도(지구 끝까지가 아닌) 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치요코는 화가가 이미 오래전에 그를 추격하던 형사에 의해 고문으로 죽어버렸다는 사실을 모른채 평생을 찾아다니다가 열쇠를 손에 쥔채 임종을 맞이한다. 그녀는 화가를 만날 수 없었던 이생 대신에 다음생을 기대할까?

 "못 만나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난... 그를 쫓는 나를 사랑하거든요."

  천년 여우 치요코가 보여주는 사랑은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와 믿음에서 먼 지점에 있다. 그것은 매혹된 영혼이 추구하는 극한의 가치이다. 한 사람의 영혼을, 그리고 일생을 바꾸어 놓은 그 눈멀음의 열병은 천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서도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는 사랑의 숨겨진 얼굴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윤회와 전생이라는 소재를 이곳저곳에서 끌어다 쓰는 바람에 이제는 특이하게 여겨지지도 않지만, 그 일반화 현상의 이면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서라도 추구하고픈 무엇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첫작품 "퍼펙트 블루"로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곤 사토시의 2001년작 "천년 여우"는 윤회와 전생이 밑바닥에 깔린,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보았을법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