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평가가 무척이나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또한 각각의 주관적인 시점에 따른 판단일 수 밖에 없다. 영화 클래식을 보고 내가 느낀 것은 그것이었다. 내가 자주 검색하는 영화 사이트에 실린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이 영화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또는, "첫사랑의 순수함을 떠올리게 한다"는 다소 감성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 얼마나 슬프길래 가슴을 저미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지 한번 보기나 하자고 -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영화를 무척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 마음먹었고 결국 보고난 후, 나에게 남은 것은 눈물이나 가슴저림이 아닌 씁쓸함이었다.

  영화의 어떤 점이 나로 하여금 눈물을 머금게 만들려다 쏙 들어가게 만들었을까? 영화의 끝부분으로 갈수록 역시 이건 영화구나, 라고 절실히 느끼게 했을까? 감독이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도 순수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상하게도 마음에 와닿질 않는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정제되어 있고 매우 아름답게 포장되어있다. 놀라운 것은 주인공 준하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상처를 떠안고 떠밀리듯이 가버린 베트남전의 전투신마저 엉성한 가짜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는 점이다. 감독은 영화에서 몇분 되지도 않는 그 장면의 사실성을 살리기 위하여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쏟아부었다는 후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사실성과는 먼 지점에 오히려 자신의 진지를 확고히 구축했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가 생명력을 획득하는 유일한 근거일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여인이 준 목걸이를 전투중에 잃어버리고 그것을 찾아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을 다시 되돌아 가는 사람을... 이 세상은 순수함을 믿고 지키는 사람에게 댓가를 치루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준하의 두 눈을 댓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목걸이는 살아남는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던 여인의 딸을 우연히 만나 다시 사랑하게 될 때, 목걸이는 그 딸에게 건네어져 눈부시게 빛을 발한다.

  너무나 순수해서, 타락하고 물질화된 세상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이에게는 잃었던 감성을 일깨우고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다른 어떤이에게 그것은 그럴듯한 환상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설레이며 애태웠던, 그리고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첫사랑이 세월이 흐른뒤에 보여주는 모습은 세파에 찌든 주름 가득한 얼굴과 굽은 등, 허물어지는 어깨일 뿐이다. 준하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뜸으로써 그것을 보여주는 대신에 클래식한 사랑이 담긴 추억의 상자를 남긴다. 과연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나 그러한 순수함에 일생을 몸담을 수 있을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영화가 존재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