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스케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2
도리스 레싱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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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한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세계의 깊이와 넒이는 어느정도나 될까? 레싱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그 질문에 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실감하게 된다. 어느 특정한 주제나 분야에만 매달리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가 매일 맞닥뜨리는 세세한 일상에서부터 철학과 세계관까지 전방위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런던 스케치는 레싱의 작품들 가운데 약간은 평범하고 소품처럼 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수록된 단편들의 수준이 균일하지 않을 뿐더러 어떤 것은 지루하고 별다른 감흥을 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레싱이 쓰는 글은 이런 것이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어머니와 딸 사이에 존재하는 팽팽한 긴장감과 세대차를 잘 그려낸 "장미밭에서", 길거리에서 사생아를 낳은 고등학생 미혼모의 이야기 속에서 여성들의 연대를 포착해낸 "데비와 줄리", 결혼에 종속되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중년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는 "흙구덩이" 와 같은 글은 레싱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런던이란 도시,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이 특정 공간과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기이한 느낌을 들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을 읽고나서 런던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 보다는 나 자신과 내 주변의 사람들의 삶,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생각했다. 결국 사람살이의 모습은 비슷하다는 것, 그것이 비록 서로 다른 겉모습을 갖고 있을지라도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겹쳐질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쩌면 그것은 그 글들에 작가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영국에 정착하기까지의 다양한 삶의 체험을 통해 얻은 국제성이라고나 할까, 통합적인 세계관이 투영되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들은 악하고 어리석어요." 단편 "폭풍우"에 나오는 택시기사의 말은 마치 레싱이 독자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 인간들과 세상을 바라보며 글을 쓰는 것, 레싱은 다른 의미에서 구도자처럼 보인다. 그건 분명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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