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인생
이희재 지음 / 청년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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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 가을의 일이었다. 부모님을 뵈러 지방에 내려갔다가 M 서점이 문을 닫은 것을 알게 되었다. M 서점은 그 지역에서는 꽤 오래된 서점이었다. 정확히 서점이 언제 문을 열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초등학교 때 그 지방으로 온 이래에 작년까지 있었으니 이십년 가까운 세월을 한곳에서 지킨 셈이다. 그런데 그 서점이 무슨 연유에서인지 갑자기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문을 닫은 텅 빈 매장을 보고나니 참으로 마음이 씁쓸했다. 내게는 지나간 삶의 여러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였던 그곳이 그렇게 한순간에 문을 닫게 될 줄은 몰랐다. 마치 다 맞추어놓은 퍼즐의 한조각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아홉살 인생"은 성장소설의 틀 안에서 여민이라는 아홉살 소년의 이야기를 무리없이 담아낸다. 어찌보면 아주 평범하고 별 특색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 이 책이 흥미를 끌게 된 큰 이유는 아마도 여민이가 살았던 산동네에 관한 묘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공간은 "악동이"를 그린 만화가 이희재 씨의 그림체에 힘입어 생생하게 살아난다.

  산동네에서 살면서 만났던 이웃들, 친구들, 그리고 그곳에서 겪었던 여러사건들을 통해 여민이는 자신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갖게 된다. 만약에 그 공간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면 여민이가 갖게될 아홉살 인생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끝부분에는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이제는 아파트 숲을 이룬 예전의 산동네가 있던 곳을 찾아가는 어른 여민이가 있다. 그곳에 자신의 아홉살 인생이 있었노라고 회상하는 대목은 인생에서 어떤 공간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그 사람의 일부가 되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아직도 부모님의 집에는 용돈을 모아서 M 서점에서 샀던 내 많은 책들이 먼지를 뒤집어쓴채 있다. 그 서점 앞의 분수대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했던 이야기들이며, 그곳의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었던 일까지도 나의 기억에는 남아있다. 이제는 그 서점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이 그 기억의 끝부분을 이루게 되었다. 자신과 관련된 어떤 공간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홉살 인생에 담긴 여민이의 삶을 보다 더 가깝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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