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집에 있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의 LP 커버 해설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연주자 빌헬름 박하우스를 "비르투오조"라고 소개해놓았더랬다. 아주 어릴적이라 그 "비르투오조"란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면서도 그 단어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에 아마도, 대단하다는 뜻일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요즘의 소소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낙소스 온라인에 접속해서 새로운 연주자들을 발굴(!)해내는 것이다. 훌륭한 연주자들의 음반을 하나씩 발견해가면서 느끼는 것은, 예전의 대가들의 연주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 같은 것이라고 할까. 재능이 넘치는 연주자들은 널리고 널렸지만,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진정한 비르투오조를 발견하기란 참으로 쉽지가 않다.
바이올린에 있어서 나의 베스트 음반들은 오이스트라흐와 그뤼미요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들은 아론 로잔드의 연주는 새로움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 이런 연주자가 있었구나하는 탄식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물흐르는듯한 보잉과 넘치는 감성으로 빚어낸 로잔드의 바이올린 연주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다.
한때, 그뤼미요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듣고는 더이상 이 곡의 다른 음반을 살 일이 없을 거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로잔드의 연주를 듣고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로잔드는 자신의 연주로 진정한 비르투오조란 무엇인지 듣는이로 하여금 절절히 느끼게 만든다.
올해 나이가 여든둘, 그를 가리켜 사라져가는 마지막 대가라고 하는 것은 매우 정당한 평가일 것이다. 이런 바이올리니스트를 언젠가 또 만나게 될 수 있을까. 그의 연주를 들으면서 어릴적에 각인되었던 "비르투오조"란 단어를 떠올린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