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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 제127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토가와 유자부로 지음, 이길진 옮김 / 열림원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최근 몇년간 일본 소설은 문학 출판 시장에서 인기있는 아이템이 된듯 하다. 그것은 서점에 가보면 아주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이 잘 나가는 일본 소설 때문에 한국 문학 책이 안팔린다는 자조섞인 푸념까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덕분에 한국 독자들은 이제는 익숙해진 아쿠타가와 상을 비롯해 일본의 각종 문학상 수상작들을 손쉽게 접한다. 하지만 모든 일본 소설들이 수작이 될 수는 없을 터, 더러는 깊이와 알맹이 없는 소설들을 만나고 실망하기도 한다. 그 실망은 기껏 시간을 들여 읽은 소설이 무슨 무슨 상 수상작의 타이틀을 갖고 있을 때 더 배가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게 있어 나오키 상 수상작들 가운데 인상적인 작품은 별로 없었다. 적어도 "살다"를 읽기 전까지는.
책에 실린 세 편은 모두 시대소설이다. 배경과 등장인물은 모두 옛날 것이지만 거기에 담긴 주제의식은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녀간의 정, 명분과 실리 사이의 갈등, 인생에서의 선택과 후회에 대한 이 소설들은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변하지 않는 근원적인 삶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자칫 휘청거릴 수 있는 이러한 무게있는 주제들을 간결하게 정돈된 문체로 풀어낸다.
세 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평온한 모래톱'이다.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딸을 사창가에 판 아버지가 딸에 대한 안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혈육지정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작가는 삶을 견딘다는 것의 고통과 쓸쓸함을 자신의 소설 속 등장인물을 통해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소개되고 있는 일본소설의 대부분은 가볍고 감각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살다"를 읽고서 조금은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다. 내 경우엔 그랬다. 잔잔한 울림이 있는 이 소설책을 덮으며, 일본에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이 내심 반가웠다. 좋은 소설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