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삶


1.

  마침내 알료샤가 불쌍하게 죽은 소년 일루샤의 장례식에서 자신의 말을 끝마쳤을 때, 이 길었던 소설이 끝났다. 나는 고개를 들어 식탁 옆,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새벽 1시 반이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뭉클한 감동이 가슴속 깊은 곳을 채웠다. 그것은 감정을 뒤흔드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것. 나는 내 기억 속에서 이 비슷한 감정을 느낀 때를 헤아려 찾아보았다. 대학교 1학년 겨울, 추운 빈 강의실에서 파스테르나크의 '의사 지바고'를 읽었을 때도 그러했다. 분명히 소설 속의 그 인물들은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았다. 작가는 그 인물들에게 영원한 삶을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선물한 사람이었다.


2.

  그 세계문학 전집은 60권짜리였다. 금성출판사에서 1987년에 펴낸 하드커버의 양장본 전집이었다. 당시에는 화장품을 비롯해 책 전집과 같은 것들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파는 이들이 있었다. 엄마는 책을 팔러 다니는 사람에게서 그 전집을 샀다. 책 대금은 할부로 매달 쪼개어 내는 방식이었다. 쪼들리는 살림에 60권을 다 사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엄마는 앞부분의 30권은 사지 않고 31권부터 시작되는 뒷부분의 책들을 샀다. 루쉰의 수필과 단편선, 솔제니친의 '암 병동', 릴케의 '말테의 수기', 그 전집 뒤편에는 그런 소설들이 있었다. 나는 솔직히 엄마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책등에는 전집의 소설 제목들이 다 나와 있었는데, 나는 항상 그 앞의 30권의 제목들을 보면서 그 읽지 못한 명작들에 대해 생각했다. 거기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있었다.

  나는 엄마가 그때 사준 그 30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 이 양장본의 종이는 얇지만 아주 좋은 것이라, 그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결코 색이 바래지 않았다. 그리고 최고의 역자들에게 의뢰해서 그런지 번역도 무척 좋았다. 다만 책은 문고본보다 조금 더 큰 정도라서 글씨가 너무나도 작았다. 정말이지 팥알보다도 작은 정도의 크기이다. 지금 나더러 그 책을 읽으라면 도저히 읽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책들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 엄마는 계몽사에서 펴낸 한국 문학 전집도 샀다. 이 전집에는 해방 이후 한국 문학의 주요한 소설가들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오래된 전집도 나는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 책들은 아무리 해도 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가끔은 그 책들을 보면서, 버겁게 살림을 꾸려가던 젊은 날의 엄마를 생각한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무언가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어쩌면 그것은 엄마에게 오래전 사라져 버린 글쓰기와 문학에 대한 열정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엄마는 틈날 때마다 그 책들을 꺼내어서 읽곤 했다. 

 
3.

  우체국에서 동시집 원고를 부쳤다. 이것 다음에는 또 무얼 쓰지? 올해 신춘문예에 무언가를 써서 내야 하나?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스친다. 아파트의 가로수는 시시때때로 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사람의 인생을 계절로 본다면, 나는 진작에 가을로 들어왔다. 아주 추운 겨울이 되기 전에 그래도 무언가를, 의미 있는 무언가를 써서 남기고 싶다고 생각한다. 물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같은 작품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비슷한 무언가를, 그 언저리에라도 닿을 수 있는 무언가를 쓸 수 있다면 좋겠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진정으로 위대한 작가구나. 나는 오래전에 그의 '죄와 벌'을 읽었을 때와는 다른 차원의 감동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받았다. 언젠가 이 지구라는 별이 사라질 때까지, 그의 이름과 그가 쓴 소설은 살아남을 것이다. 문학은 영원히 인간적인 것이다. 인간의 삶을 말하고, 그 삶을 증언으로 남기는 것. 그것이 작가의 의무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알렉세이, 이반, 알료샤와 여러 인물은 언제까지고 자신들의 삶을 계속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불멸의 삶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나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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