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꽃이 질 때
1.
엊그제는 동시 공모전에 낼 시들을 골라서 응모했다. 그 공모전은 온라인 응모라서 참으로 편했다. 10편을 내는 것이었는데, 내고 보니 맨 처음의 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제출한 원고의 변경이 쉽지가 않았다. 변경 과정에서 자꾸 오류가 나서, 그냥 제출을 취소하고 다시 접수했다. '어차피 안될 것이다'와 '어쩌면 뽑힐지도 모른다' 사이에서 어쨌든 동시 원고를 냈다.
동시를 쓰면서, 나는 가상의 독자를 상정하기보다는 그냥 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느낌으로 써나갔다. 그것이 의외로 편했다. 글을 쓰는 작업이 작가 자신에게 가장 유익하고 즐겁지 않다면, 글쓰기는 별다른 쓸모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버려진 시간처럼 느껴졌던 2년 동안의 시 습작 기간이 도움이 되었다. 시 속에 화자를 설정하는 것, 사물과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 이런 것들이 동시를 쓰면서 다시금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는 지난달에 응모했던 동화 공모전의 결과 발표가 있다. 그냥 장려상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또 떨어져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발표가 나는 날에도 아마 동시를 쓰고 있을 것이다. 50편을 내야 하는 동시집 원고는 이제 9편을 채웠다. 어떻게든 써내지 않을까 싶다. 자꾸만 머리 복잡하게 이걸 왜 하나 생각을 하면 답이 나오질 않는다. 지금은 동시를 써야 할 때인가 보다, 하고 쓰고 있다.
2.
지난주에는 에어컨 필터를 청소하고, 에어컨에 커버를 씌웠다. 올해도 덥기는 했지만 의외로 여름이 선선히 물러선 느낌이다. 작년에는 지독한 늦더위로 9월 말까지 에어컨을 켰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남은 것은 선풍기 2대, 그건 아직은 낮이 더우니까 좀 더 있다 들여놓을 생각이다. 선풍기 가운데 한 대는 15년 된 것인데, 목 부분이 부러져서 스카치테이프로 칭칭 감아두었다. 그 모양새가 참으로 볼품없다. 하지만 모터가 멀쩡히 돌아가는데, 버리는 것도 아까워서 쓰고 있다. 고장 나면 버려야지 싶지만, 고장이 나질 않는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죄다 중국산 일색인 소형 가전제품이 국산이었던 시절은 참으로 만듦새가 좋았다.
오늘은 마음먹고 생두를 볶았다. 원두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바람에 다시 커피를 볶아서 먹기로 했다. 오늘처럼 날이 선선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 로스팅하기에 좋은 날이다. 이건 할 때마다 그냥 사먹는 게 낫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엄청난 연기와 가스불의 열기, 한 이틀은 집안에서 빠지지 않는 미친 듯한 커피 냄새 때문이다. 다시 원두를 사는 것은 오늘 볶아놓은 1kg을 다 먹고 난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3.
옆 단지 아파트에는 멋진 배롱나무들이 있다. 여름 동안 그 나무의 꽃들이 피어있는 것을 보러 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주말에 모처럼 시간이 나서 꽃들을 보러 갔다. 한창 고왔던 때의 꽃들은 지고, 이제는 빛바랜 배롱나무꽃들이 듬성듬성 남아 있었다. 그것이라도 보았으면 되었다, 고 혼잣말을 했다. 이렇게 또 여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