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오초완


1.

  9월 말일이 마감인 동시 공모전은 써내야 할 응모 편수가 10편이다. 공모전 공고를 본 것은 8월이 끝나갈 무렵.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채우나 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동시를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루에 2편을 쓰는 날도 있었다. 생각보다 쉽게 10편을 채우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좀 더 써서 나중에 동시집으로 묶으면 어떨까 하는. 물론 그냥 시집도 잘 안 팔리는 판국에 동시를 누가 얼마나 사서 볼까 싶기도 하다. 차라리 동화는 나름의 시장성이 있어서 동시보다는 낫다. 큰 상금이 걸린 동화 공모전도 여럿 있다. 그게 다 시장의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굴러다니는 동시집 몇 권을 읽다가, '참 재미없네' 하고는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저런 동시는 쓰지 말아야지, 하는 깨달음을 주는 책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렇다. 동시가 재미있어야 하나? 밝고 희망을 주는 그런 메시지만을 아이에게 주어야 하나? 나는 그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처음 쓰기 시작한 동시는 짐짓, '너희들, 세상의 밝은 면을 보아라' 하고 조금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써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시를 쓰는 것이 싫어졌다. 점점 내가 쓰는 동시에는 삐딱하고, 외롭고, 괴로운 아이의 목소리가 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매우 솔직한 동시라고 생각했다. 물론 솔직함이 재미와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대중성과는 더 멀어지고 있는 길인지도 모른다.  


2.

  원래 목표는 동시는 그냥 써보고, 동화 부문에 응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동시를 쓰다 보니, 소설 쓰기로의 전환이 되질 않는다. 2년 동안 시를 쓸 때도 그랬는데, 압축하면서 좁게 들어가는 시를 쓰는 동안에는 일반적인 산문 쓰기가 잘 되질 않았다. 반대로, 서사를 확장하고 풀어서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시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나에게 시와 소설을 동시에 쓰는 건 양립 불가능한 작업 같다. 그러니 지금 동화를 써야 하는데, 도무지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이 와중에 동시집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50편의 동시를 써서 내야 한다. 기한은 10월 31일까지. 요즘 동시를 하루에 2편을 쓸 때도 있으니까, 어떻게 규칙적으로 매일 써낸다면 마감일에 맞춰서 원고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써내는 것이 맞는지,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그쪽, 그러니까 아동문학 분야도 나름대로 준비하는 지망생들이 많을 것이고 내봤자 안될 거 같기도 하다. 뭔가 김수영 문학상에 2년 동안 시 써서 보냈다가 떨어진 그때의 기분이 스멀스멀 느껴지는 듯도 하다.

  이것이 된다, 하는 확신을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공모전에 글을 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는 감정의 파고를 겪는다. 오늘, 문학 커뮤니티에서 읽은 우스갯소리는 이랬다. '글 잘쓰는 사람의 사주에는 반드시 문곡귀인(文曲貴人)이 있는데, 내 사주에는 그것이 있다!' 대충 알아듣기로는 문곡귀인이란 글로써 이름을 날리게 하는 명운인 모양이었다. 지망생이 여북 답답하면 그런 것에나 의지할까 싶어서 쓴웃음이 나왔다. 요새 드는 생각은 인생의 7할, 아니 8할 정도는 그냥 운의 영역 같다. 나머지 2할은 재능이나 노력이 마구 욱여지는 무언가일 테고.

 
3.

  어떤 사람이 문학 커뮤니티에 자기 기록처럼 '오초완'이라고 올리는 것을 보았다. '오초완'이 뭐지? 하고 궁금해하다가 나중에서야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오늘의 초고(草稿) 완료'의 줄임말이었다. 무슨 소설을 어떻게 써내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투지 하나만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면에서 글쓰기는 시간과 체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게 거의 매일 '오초완'이라고 써낼 정도라면, 습작의 여건이 괜찮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위층에서는 보름째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집안을 깨부술 듯 울리는 소음은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집 앞 놀이터에서는 선선해진 날씨에 아이들이 악다구니를 쓰면서 논다. 노안으로 침침해진 눈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저녁이나 되어서이다. 오늘도 동시 한 편을 써냈다. 새롭게 동시집 공모전에 낼 시를 세어 나간다. 50-1. 49편이 남았다. 그걸 써낼 수 있을지는 지금은 모른다. 10월 말일까지 매일 '동시, 오초완'을 해내다 보면 가능할지도. 이건 마치 실수로 잘못 탄 기차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 같다. 나는 이 기차의 종착역에 무엇이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어쨌든 지금은 기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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