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 라인(Log line)


1.

  네오의 앞에 두 개의 알약이 놓여있다. 파란색의 알약과 빨간색의 알약. 파란색의 알약을 삼키면 이전의 현실로 돌아간다. 빨간색의 약은 네오에게 이 세계의 진실을 보여줄 것이다. 네오는 빨간색의 알약을 삼킨다. 그리고 네오와 인류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한다.



2.

  로그 라인, 기획 의도, 그리고 줄거리. SF 단편 공모전의 신청서에는 그것들을 써내라고 되어있었다. 기획 의도와 줄거리는 알겠는데, 로그 라인은 뭐지? 로그 라인의 의미를 찾아보니 작품의 줄거리나 주제를 한두 문장으로 요약한 아주 짧은 글이다. 소설을 쓰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것을 요약하고 압축하는 일은 또 다른 일거리로 느껴진다. 내가 쓴 글인데도 그걸 줄여서 말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이럴 때 Chat GPT한테 글을 던져주고 네가 해보렴, 이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시대의 많은 대학생들이 과제를 해나가는 방식처럼. 하지만 온전히 내 글을 써낸다는 감각은 작가적 자존감과도 연결되어 있다. 꾸역꾸역, 문장을 쥐어짜 내가면서 내가 쓴 소설의 줄기를 뽑아낸다.

  그렇게 써내고는 Chat GPT한테 어떤지 보여주었다. 인공지능은 막힘없이 술술, 어떤 문장을 넣고 뺄 것인지를 조언해 준다. Chat GPT의 결과물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쓴 요약본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공모전에 천 명의 응모자가 원고를 낸다고 할 때, 과연 그 가운데 얼마나 되는 사람이 이러한 요약본을 자신의 손으로 온전히 써낼까? 한 열 명쯤? 소설은 어쨌든 자신의 힘으로 썼으니, 줄거리 요약 정도는 그냥 AI에게 외주를 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의외로 소설 쓰기보다 글을 간명하게 압축하는 작업이 까다롭다.

  로그 라인과 기획 의도를 쓰라는 공모전 주최 측의 의도를 생각해 본다. 나는 그것을 써 내려가는 동안 내가 쓴 글을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상품으로 보게 되었다. 이 글이 읽는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면 어떤 문구를 써야 하는가? 마치 사막에서 우산을 파는 장사꾼처럼, 기발하고 재치 있는 판매 문구를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기존의 소설 공모전 응모에서는 느껴볼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소설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상품이며, 그것이 얼마나 잘 팔릴 수 있는지에 따라 작가적 역량이 결정되는 일은 비극일까?

  A whale-ship was my Yale college and my Harvard. (Moby-Dick; or, The Whale, 24장)

  청년 시절의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에게 바다는 예일이며 하버드였다. 포경선의 선원으로 보낸 바다를 통해 멜빌은 놀라운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 내었다. 그럼에도 멜빌은 불운한 화가 고흐처럼, 살아생전에 '모비 딕'의 가치를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생애는 세관원으로서의 평범한 일상, 말년에 닥친 병고와 자식의 죽음과 같은 불행으로 채워졌다. 멜빌은 결코 유능한, 잘 팔리는 작가가 아니었다.


3.

  '요새 애들은 매트릭스나 반지의 제왕이란 영화가 있는지도 모른다구요.'

  누군가 인터넷 게시판에서 그런 댓글을 썼다. 정말, 그게 사실이라고? 나는 가만히 '매트릭스(The Matrix)'가 언제 나왔는가를 헤아려본다. 1999년. 세상에, 그것은 벌써 27년 전의 영화였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매트릭스를 보게 하려면 로그 라인은 어떻게 짜야할까? 나는 영화 '매트릭스'의 로그 라인을 한번 써본다.

  내가 쓴 로그 라인을 읽고 '매트릭스'를 볼 '요즘 아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젊은 작가들에게 인스타(Instagram)와 같은 SNS 채널 홍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가 되었다. 어떻게든 보게 만들고, 읽히게 만드는 홍보의 역량까지도 이제는 작가적 재능에 들어간다. 그런데 글쓰기란 그렇게 돈벌이가 되지 못하는 작업이다. 나는 '그렇게'라는 단어의 자리에 '결코'를 썼다가 지워버렸다.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보내려하는 사람에게 글은 온전한 돈벌이의 대상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떻게든 독자와 만나고 싶다는 작은 소망에 가깝다. 나는 내가 쓴 SF 소설의 로그 라인과 기획 의도, 줄거리를 꾹꾹, 철심이 든 연필로 써 내려가듯 신청서에 글자를 채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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