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파헤치고, 잠수를 하다


1.

  여자는 오른손에 돌돌 말린 두툼한 밧줄을, 왼손에는 쇠망치를 들고 있다.
  언제든, 어디로든 달려나갈 준비는 되어있다.


2.

  소설 쓰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올해 나에게 남은 마지막 공모전에 낼 단편을 써야 하는데, 겨우 한 문단을 써놓았을 뿐이다. 분명히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머릿속에 있는데,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수도 있나? 소설 쓰는 법을 안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어쨌든 쓰기는 했다. 그런데 글이 써지질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쩌면 이 소설은 내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글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혹시 그런 생각은 핑계가 아닐까? 글이 써지지 않는 것에 대한 그럴듯한 핑계.

  글쓰기도 근육 같은 것이라서, 매일 무언가를 써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일기를 쓴다. 그 일기마저도 쓸 시간이 나질 않아서, 사흘 나흘을 밀렸다가 기억을 더듬어 쓰기도 한다. 때로는 어제, 엊그제의 일을 마치 오늘의 일처럼 복기하고 쓰는 것이 뭔가 나 자신에게도 사기를 치는 것 같다. 일기마저도 진실에서 조금은 삐딱하게 나가버린 느낌.

  '내가 공모전에 당선될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알려줄까요? 미친 것 같은 글을 써보세요. 심사 위원도 사람이에요. 그들이 산더미 같은 지겨운 원고들 읽어낼 생각을 해봐요. 거기에서 미친 척하고 써낸 재미있는 글이 있으면 눈에 확 띄지 않겠냐는 거죠.'

  누군가 공모전 당선 비법이라면서, 조언이랍시고 그렇게 써놓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일기마저도 진실의 선에서 조금 삐딱하게 벗어난 것을 견디지 못하는데, 미친 척하고 글을 써내는 것은 더 못할 것 같다. 미쳐버린 글을 어떻게 쓰지? 진짜 미쳐야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테고. 그것도 쓰기의 기술적인 부분이 있나? 공모전 당선자들을 무수히 배출한 어느 글쓰기 강좌에서는 그런 비법들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에 꿈을 꾸었다. 현관문 앞에 커다란 종이 박스들이 서너 개 제멋대로 놓여있었다. 문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박스들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저걸 어떻게 치울까 하다가 꿈에서 깼다. 나는 그 박스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잘 알고 있다. 버리면 되는데 버릴 수 없는 것들. 글을 쓸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처럼, 꿈속의 박스들이 계속 머릿속에 있다. 

 
3.

  여자의 아들은 19살의 나이에 갑자기 실종되었다. 갱단의 테러와 연루된, 무수한 죽음들 가운데 여자의 아들이 있을 터였다. 여자는 10년 넘게 아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멕시코의 어딘가에서 비밀 매장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여자는 그곳으로 길을 떠난다. 여자의 오른손에 쥐어진 밧줄은 매장지의 구덩이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몸을 묶는 용도로 쓰일 것이다. 왼손에 든 쇠망치는 땅을 파헤치기 위한 유용한 도구이다.

  어느 사진작가가 그렇게 여자의 고통스러운 삶의 한 단면을 기록했다. 나는 그 사진에서 기이한 감동을 받았다. 죽어버린 것이 확실한 아들에게 제대로 된 무덤을 만들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57세의 어머니. 나는 여자가 밧줄로 몸을 묶고, 시신들로 뒤엉킨 구덩이로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여자에게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이 있다. 필사적으로 땅을 파헤치면서 사라진 혈육의 흔적을 찾으려는 사람들. 그들은 엄청난 두려움과 대면하면서 과거의 상처 속으로 잠수한다.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일. 땅을 파헤치고 잠수를 하듯, 그렇게 써 내려가야지. 이 글을 쓰는 데 영감을 준 사진 속의 주인공은 미국의 공영 라디오 언론 npr.org의 다음 기사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npr.org/2026/03/08/g-s1-112521/photos-international-womens-day-justice-rights-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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