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난간(欄干)


1.

  소년은 난간에 매달려 있다.
  자신의 발밑으로 떠내려가는 무언가를 본다.


2.

  학생 시절에 내가 쓴 시는 3.5인치 플로피 디스크(floppy disk) 안에 얌전히 잠들어 있다. 지금의 컴퓨터는 플로피 디스크를 인식하지 못하므로, 이제는 이 시를 읽어낼 방법이 없다. 아마도 그 시의 제목은 '난간(欄干)'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난간'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시 창작 워크숍을 강의하던 시인 선생은 내가 쓴 그 시를 칭찬했다. 그 학기 중에 내가 들은 드문 칭찬 가운데 하나였다. 나머지 나의 시에 대해서, 선생은 침묵했다.

  그 수업을 같이 들었던 A와 B는 이듬해 각각 시와 소설로 등단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나는 그들의 이름이 가끔은 공모전의 심사위원 명단에 있는 것을 확인한다. 내가 왜 좀 더 젊었을 때 글쓰기에 매진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고는, 새삼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 늦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늦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말은 완벽하게 틀린 말이다. 늦은 것은 늦은 것이다. 돌이킬 수 없다.


3.

  눈의 알레르기가 심해져서 안과를 예약하려고 보니, 내 주치의가 병원 홈페이지에서 보이질 않는다. 그 의사는 눈을 참 잘 보았다. 내 생각에 그렇게 실력이 좋은 의사는 보통 그들 세계에서 로컬(local)이라고 부르는 개인 병원에 오래 있질 않았다. 이전의 주치의가 그곳에서 2년을 있다가 대학병원으로 갔듯이, 이 의사도 다른 도시의 대학병원으로 가버렸다. 나는 진료 예약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뭔가 약속 장소에 나갔다가 바람맞은 사람의 심정이 된다. 새로 온 의사는 어떤지 또 기대해 보고, 그 실력을 가늠해 보는 과정은 피곤하다.   

  의사들의 경력을 보다 보면, 뭔가 나름의 정해진 경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로컬이든 대학병원이든, 자신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따라가는 트랙이 있다. 나는 그러한 명확한 경로, 트랙,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직업의 세계와 글쓰기를 비교해 본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무슨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길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변수가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에 진학하려고 다들 목을 매는 것처럼, 작가 지망생들은 '등단'에 필사적이다. 등단해야 그래도 '작가'라는 직업적 명함을 내밀 수 있으니까. 그 등단의 경로도 워낙 복마전(伏魔殿) 같은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얼마 전에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그런 글을 읽었다. 가정주부인 여자가 자비 출판(自費出版)으로 책을 냈다. 수필집인지 시집인지 아무튼,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낸 여자는 그 이후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작가'로 소개한다고 했다. 어떤 이는 여자에게 멋지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그건 좀 아니잖아, 라고 썼다. 와, 정말 뻔뻔한 사람이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우리가 '작가'라고 부르는 직업의 기준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4.

  그 본관 건물은 꽤 낡았다. 공간도 협소했다. 복도는 두 명 정도가 걸어 다니기에 적합한 너비였다. 그 좁고 불편한 건물에 예술학교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공부를 했다. 건물의 가장자리는 옆 건물과의 연결 통로로,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난간이라고 해도, 뭔가 위험해 보이고 그런 느낌이라기보다는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면 그곳에 쏟아져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에 대해 뒷담화를 했다. 말하자면, 만남의 광장 같은 그런 곳이었다.

  내가 그 당시에 쓴 시는 그 난간을 생각하면서 쓴 시였다. 그 비좁고 낡은 건물은 내가 재학 중에 버려졌다. 나중에 크고 멋진 신축 건물에서 수업을 들었지만, 나는 예전의 본관을 지나다니면서 가끔은 그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시일이 지나 건물은 폐쇄되었고, 결국 그 난간에도 다시는 가볼 수 없었다.

  덥고 축축한 7월의 대기가 흐르는 그 난간에 문득 다시 서보고 싶어졌다. 사실, 내가 쓴 시의 화자가 소년이었는지, 소녀였는지, 늙은이였는지, 청년이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누가 되었든, 그는 그 난간 아래로 무언가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가버린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슬프거나 괴롭지는 않다. 소망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없이, 앞으로도 그냥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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