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너머의 것


  좀 오래전 TV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동물 관련 프로그램이었다. 특별 손님으로 나온 사람은 외국 여자였는데, 동물의 마음을 읽는다는 소개말이 붙었다. 그걸 동물 심리치료사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 여자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말 못 하는 동물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었다. 어린이 소설 '닥터 두리틀'의 주인공 박사를 생각하면 대충 맞다. 여자는 일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동물의 마음을 알아듣고 풀어서 말해주었다. 자신이 키우는 동물들이 왜 문제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했던 주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고 반성했다.

  동물들에게도 마음이란 것이 있는지는 철학에서도 주요한 주제이다. 생태 철학은 이제는 더 나아가 식물의 마음까지도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나의 모친은 덜덜거리면서 돌아가는 선풍기를 보면서 안타까운 듯 말씀하신다.

  "쟤가 저렇게 열심히 바람을 만들려면 얼마나 힘들겠냐?"

  살아있는 것을 넘어서서 기계에까지 감정을 이입하는 어머니의 상상력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애착을 갖는 물건을 때론 살아있는 것처럼 여기기도 하니까. 나는 10달째 아픈 오른쪽 팔에 감정을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날부터 팔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컵을 드는 것과 양치질 같은 일상도 아주 힘들게 되었다. 테니스 엘보(Tennis Elbow)였다. 손목에서 팔꿈치 바깥으로 이어지는 힘줄에 염증이 생겨서 아픈 병이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팔을 많이 써서 그런 것이다. 아무튼 팔을 많이 썼다. 그래서 아픈 팔이 견디다 못해 파업한 것이다. 문제는 이게 쉽게 낫는 병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은 휴식인데, 팔이란 것은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발도 마찬가지다. 재작년에는 족저근막염에 1년 넘게 시달렸다. 그냥 좀 쉬면 나을 거라 여기다가, 의사를 한번 만나보기는 하자 싶어서 대학병원의 족부 정형외과 전문의를 찾아갔다. 의사는 푹신한 신발을 신어야 하며 쉬는 것이 좋다고 말해주었다.

  "낫기는 나아요. 그런데 시간이 좀 많이 걸립니다. 1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언젠가는 낫는다. 이 말은 얼마나 좋은 말인가. 어쨌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나는 테니스 엘보에 걸린 내 팔도 그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버텼다. 그러면서 아픈 팔을 낫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했다. 통증을 덜하게 하려고 매일 압박붕대를 팔에다 감았고, 팔에 부하를 줄 수 있는 청소 방식도 바꿨다. 무거운 청소기 대신에 먼지 제거 부직포 밀대를 썼다. 물건은 무엇이든 두 손으로 잡았다. 가정용 저주파 치료기가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그것도 샀다. 그리고 매일 아픈 팔과 대화를 했다.

  "그래, 내가 너를 너무 혹사시켰다. 미안하다. 나도 노력할 테니, 너도 조금씩 나아지면 좋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팔은 나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컵 하나 드는 것도 너무 아파서, 무거운 도자기 컵은 들여놓고 플라스틱 컵을 꺼내놓았다. 제일 힘든 것이 화장실 청소였다. 화장실 청소는 말 그대로 일하는 사람의 노동력을 순전하게 갈아 넣는 일이다. 구석구석 수세미와 솔로 힘을 주어 밀고 닦아야만 깨끗해진다. 팔이 아픈데, 화장실 청소를 하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대걸레에 전용 세제를 묻혀서 대충하곤 했다.

  그런데 지난주에 드디어 손으로 화장실 청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혹시라도 청소하고 나서 팔이 다시 아프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통증이 도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압박붕대로 팔을 감고 생활하고 있고, 청소기를 자주 돌리지는 못한다. 그래도 이제는 견딜만하다는 말이 나온다.

  나도 내 팔이 어떻게 극심한 통증에서 벗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무리가 가지 않게 덜 썼으니까, 팔은 쉴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번 것인지도 모른다. 10달 동안, 나는 이 아픈 팔과 씨름하면서 그 통증의 기원과 내가 팔을 쓰는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통증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성찰의 도구였던 셈이다.

  대개의 만성적인 통증에는 그것을 일으킨 원인이 있다. 그리고 아픈 사람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통증을 통해 삶의 방식을 돌아보는 작업이 내게는 나름대로 유용했다. 여전히 팔의 통증은 남아 있다. 조금만 많이 걸으면 발도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온다. 내가 무리했구나, 쉬어야지. 통증은 그렇게 몸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이다. 그 신호를 잘 알아채고, 통증과 그럭저럭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체득하는 것. 그렇게 나는 통증 너머의 것을 볼 수 있는 약간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